해 일

                                                                              - 서 정 주 -

                                                       

 

 

 

바닷물이 넘쳐서 개울을 타고 올라와서 삼대 울타리 틈으로 새어 옥수수밭 속을 지나서 마당에 흥건히 고이는 날이 우리 외할머니네 집에는 있었습니다. 이런 날 나는 망둥이 새우 새끼를 거기서 찾노라고 이빨 속까지 너무나 기쁜 종달새 새끼 소리가 다 되어 알발로 낄낄거리며 쫓아다녔습니다만, 항시 누에가 실을 뽑듯이 나만 보면 옛날 이야기만 무진장 하시던 외할머니는, 이때에는 웬일인지 한 마디도 말을 않고 벌써 많이 늙은 얼굴이 엷은 노을빛처럼 불그레해져 바다쪽만 멍하니 넘어다 보고 서 있었습니다.

그때에는 왜 그러시는지 나는 아직 미처 몰랐습니다만, 그분이 돌아가신 인제는 그 이유를 간신히 알긴 알 것 같습니다. 우리 외할아버지는 배를 타고 먼 바다로 고기잡이 다니시던 어부로, 내가 생겨나기 전 어느 해 겨울의 모진 바람에 어느 바다에선지 휘말려 빠져 버리곤 영영 돌아오지 못한 채로 있는 것이라 하니, 아마 외할머니는 그 남편의 바닷물이 자기집 마당에 몰려들어오는 것을 보고 그렇게 말도 못하고 얼굴만 붉어져 있었던 것이겠지요.

 

 

 

 

                                -<질마재 신화>(1975)-

 

해                설

[개관 정리]

성격 : 낭만적, 애상적, 신화적, 회고적, 대조적

표현 : 대조(나와 할머니, 평소의 할머니와 그날의 할머니)를 통해 대상을 부각시킴.

              이야기 형태의 시로, 친근감이 느껴짐.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바닷물(해일) → 그리움의 대상인 남편의 사랑

    * 할머니의 얼굴이 불그레해지는 모습 →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고 할아버지가 떠난 지도 오래건만,

                                       여전히 고이 간직하고 있는 남편에 대한 할머니의 그리움, 사랑, 수줍음.

 

제재 : 해일(바닷물=남편의 사랑=그리움의 대상)

주제시공을 초월한 변함없는사랑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작품은 미당의 제6 시집 <질마재신화>에 나오는 시이다. 이 시집에서 미당은 유년 시절의 체험을 신화라는 이름으로 발표하였다. 이 시집은 전통 탐구의 한 성과이고, 한국시의 새로운 영토를 개척하려는 시도로 평가되고 있다. 모두 평범한 이야기시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미당 특유의 시적 자질이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해일의 신화성은 무속 신앙과 동양 정신에 기반한다. 어린 소년으로 설정된 화자가 바다에서 죽은 할아버지가 해일이 되어 돌아온 것으로 생각하는 할머니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이 시는, 삶과 죽음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불연속이 연속의 세계로, 양분적 대립이 동질적 화합으로 나아가는 새로운 개안의 경지를 형상화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시에는 인고의 세월을 보낸 할머니의 모습이 매우 따뜻하게 담겨 있다. 서정주의 또 다른 작품 <신부>에서 언젠가 남편이 돌아올 날만을 기다리며 빈 방을 지키고 있었던 여인처럼, <해일> 속의 여인도 인고의 세월을 보내는 여성으로 그려져 있다. 하지만 <해일>은 <신부>보다 독자에게 더 풍부한 감정을 이끌어 내는 힘이 담겨 있는 듯하다. 과거 우리나라의 유교적 도덕관의 사회 속에서 여인들이 보낸 인고의 세월을 시인은 젊은 여인이 아닌 할머니를 통해 형상화함으로써 더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기도 하다. 시인은 시 속에 우리 민족 고유의 정서를 담아내고 싶었던 것이 분명하다.

또한 이 작품의 내용은 아마도 허구이겠지만, 과거에 어쩌면 진짜 있었던 일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너무나도 있음 직한 이야기를 그림을 그리듯 말하고 있는 시인이 또한 위대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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