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역(寒驛)

                                                                              - 권 환 -

                                                       

 

 

     

    바다 같은 속으로

    박쥐처럼 사라지다.

     

    기차는 향수를 싣고

     

    납 같은 눈이 소리 없이

    외로운 역을 덮다.

     

    무덤같이 고요한 대합실

    벤치 위에 혼자 앉아

    조을고 있는 늙은 할머니

     

    왜 그리도 내 어머니와 같은지?

    귤껍질 같은 두 볼이

     

    젊은 역부(驛夫)의 외투 자락에서

    툭툭 떨어지는 흰 눈

 

 

 

 

    한 송이, 두 송이 식은 난로 위에

    그림을 그리고 사라진다.

     

            -<자화상>(1943)-

 

해            설

[개관 정리]

성격 : 회화적(시각적), 감각적, 묘사적, 애상적, 주지적

표현 : 도치법을 통한 대상의 강조(1연과 2연이 도치됨)

              시적 허용을 적절히 활용함.

              비유적 표현을 통해 계절감 및 역의 분위기를 적절히 표현함.

              화자의 시선 이동에 따른 시상 전개(기차→외로운 역→늙은 할머니→젊은 역부→눈)

 

주된 정서 : 외로움, 고독, 우수, 쓸쓸함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바다 같은 속으로 / 박쥐처럼 사라지다.

           → 깊은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기차의 모습(어둡고 무거운 분위기)

    * 같은 눈 → 무겁고 어둡고 차가운 이미지의 눈

    * 외로운 역을 덮는다. → 대상을 통해 느끼는 화자의 대표적인 정서를 직접적으로 표현함.

    * 무덤같이 고요한 대합실 → 대합실의 무거운 분위기

    * 혼자 앉아 / 조을고 있는 할머니 → 고독과 우수의 정서, 시적허용 활용

    * 귤껍질 같은 두 볼 → 할머니(어머니)의 메마르고 찌든 모습

    * 툭툭 떨어지는 흰 눈 → 차가움과 함께 소멸의 이미지를 환기함.

    * 그림을 그리고 사라진다. → 난로 위에서 녹는 눈송이(소멸의 이미지 환기)

                                               현재 시제를 통해 시적 상황을 생생하게 표현함.

 

주제 : 겨울 간이역에서 느끼는 고독과 우수

[시상의 흐름(짜임)]

◆ 1~3연 :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기차와 눈 내리는 간이역

◆ 4~5연 : 쓸쓸한 대합실의 정경과 초라한 할머니의 모습

◆ 6~7연 : 젊은 역부의 모습과 난로 위에서 녹는 눈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전체적으로 외롭고 어두운 이미지를 드리우고 있는 작품으로, 간이역을 배경으로 하여 우수와 고독의 정서를 나타내고 있다. 눈이 내리는 겨울, 시골 간이역의 풍경을 마치 소묘하듯이 그려내고 있다. 차가운 정거장, 끝없이 쏟아지는 눈송이 속으로 기차가 달리고, 텅 빈 대합실의 벤치 위에 혼자 앉은 늙고 찌든 할머니의 모습, 눈 덮인 외투를 입고 난로를 쬐는 역부의 모습 등이 고독과 우수와 음울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 속에서 유일하게 생활의 활기를 뿜고 있는 것은 외투 자락을 털며 들어오는 젊은 역부의 모습이다.

이 시는 눈이 내리는 겨울 시골 간이역을 배경으로 하여 회화적 이미지를 잘 살린 작품으로, 이미지즘 계열의 시에 속한다. 이미지즘의 시는 심각한 주제 의식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사물과 현상에서 포착한 특징적 사건과 의미 또는 인상을 감각적 이미지로 재현하여 그 이미지들의 중첩이 주는 새로운 발견과 지적 충격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드러난 이미지 그 자체의 미적 효과가 더 중시된다.

 

■ 시인 권환(權煥 1903~1954)

1903년 1월 6일 경남 창원에서 출생. 일본 야마가타 고교를 졸업하고, 1927년 교토제대 독문학과를 졸업했다. 1929년 일본 유학생 잡지 <학조>에 발표한 작품 때문에 필화사건을 겪기도 했다. 1930년 7월에는 카프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1931년 카프 제1차 사건으로 피검되어 불기소 처분을 받았고, 1935년 카프 제2차 사건에 연루되어 집행유예로 석방된 바 있다. 1946년 조선문학동맹 산하 전국 문학자대회 조직위원회 위원으로 피선되었으며, 같은 해 전국문학자대회에서 서기장으로 선출되었다. 1954년 7월 30일 마산에서 사망했다.

권환의 작품활동은 시와 평론활동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1929년 무렵 예술대중화 논쟁에 참여하면서 문학활동을 시작하는데, 1930년에 이르러 '무산예술운동의 별고와 장래의 전개책', '실천적 객관주의 문학으로', '조선예술운동의 당면한 구체적 과정' 등의 평론을 발표하면서 문단의 주목을 끌었다. 그의 예술대중화론은 당파성을 근거로 당 이념을 노동자 농민에게 직접적으로 전달해야 한다는 내용인 바, 객관적 현실과의 상관관계를 맺지 못한 정치적 공식주의 차원에 머물로 말았다는 비판을 받는다. 초기 시 역시 정치적 이념이 예술로서 충분히 승화되지 못한 채, 관념 일변도의 미숙한 모습을 드러낸다. 조선프롤레타리아 예술동맹이 해체된 후 집행유예로 석방된 이후 새롭게 논의되던 사회주의 리얼리즘론을 통해 자신의 예술대중화론을 자기 비판한 끝에, 평론활동을 거의 중단하고 시 창작에만 매달렸다. 1940년대 중반에 이르면서 시집 <자화상>과 <윤리>를 통해 감각적이고 회화적 형상화에 주안점을 두는 시적 경향으로 변모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변모는 일제의 강요에 의한 것이었기 때문에 해방 공간에 접어들면서 다시 이념성이 강화되어 나타난다. 1931년 집단사에서 발행한 작품선집 <카프시인집>에 시가 실려 있으며, 개인 시집으로 <자화상>,<윤리>,<동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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