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꽃씨를 받으시다

                                                                                  - 박남수 -

                                                       

 

 

     

    할머니 꽃씨를 받으신다.

    방공호 위에

    어쩌다 핀

    채송화 꽃씨를 받으신다.

     

    호(壕) 안에는

    아예 들어오시질 않고

    말이 숫제 적어지신

    할머니는 그저 노여우시다.

     

    ― 진작 죽었더라면

    이런 꼴

    저런 꼴

    다 보지 않았으련만…….

     

    글쎄 할머니,

    그걸 어쩌란 말씀이셔요.

    숫제 말이 적어지신

    할머니의 노여움을

    풀 수는 없었다.

     

    할머니 꽃씨를 받으신다.

    인젠 지구가 깨어져 없어진대도

    할머니는 역시 살아 계시는 동안은

    그 작은 꽃씨를 받으시리라.

 

 

 

     

           - <1958 >-

 

해                설

[개관 정리]

성격 : 상징적, 주지적, 대조적

표현 : 상징적인 시어를 통해 부정적인 시대 상황을 암시

              두 인물의 현실 대응 태도를 대비하여 주제를 강조함.

              전쟁의 참혹함과 할머니의 정성스러운 마음이 대조됨.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꽃씨 → 생명, 희망의 상징

                  전쟁의 비극을 넘어서는 휴머니즘의 상징

    * 채송화 → 꽃 중에서도 가장 작고 보잘 것 없는 꽃으로, 전쟁의 야만성과 비정함과 대조되면서

                                  생명의 숭고함을 부각시키는 소재임.

    * 방공호 위 → 전쟁의 상황(죽음, 파괴)

    * 어쩌다 핀 → 생명의 위태로움

    * 호 안에는 / 아예 들어오시질 않고 →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 전쟁 자체를 부정하는 모습

    * 할머니의 노여움 → 전쟁과 파괴와 죽음에 대한 분노

    * 3연 → 할머니의 말씀을 직접 화법으로 제시

                 전쟁에 대한 분노가 담긴 말

    * 글쎄 할머니 / 그걸 어쩌란 말씀이셔요. → 전쟁 앞에서 무기력한 화자의 목소리와 태도

    * 인젠 지구가 깨어져 없어진대도 → 부조리한 상황, 절망적인 상황

    * 그 작은 꽃씨를 받으시리라.

           → 꺼지지 않는 희망. 어떠한 상황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는 할머니의 모습

 

제재 : 할머니와 꽃씨

주제생명의 소중함과 미래에 대한 희망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방공호에 핀 꽃씨를 받으시는 할머니 ― 생명을 소중히 여기시는 할머니

◆ 2연 : 전쟁의 상황에 대해 분노하시는 할머니

◆ 3연 : 전쟁의 상황에 대해 분노하시는 할머니

◆ 4연 : 무기력한 '나'와 여전히 분노하시는 할머니

◆ 5연 : 절망적 상황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으시는 할머니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제목에서 나타난 것처럼 할머니가 꽃씨를 받는다는 단순한 상황이지만, 시를 읽게 되면 그것이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시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시적 상황인데,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방공호'이다. 방공호는 적의 공습을 피하기 위해 땅 속에 파놓은 구덩이를 말한다. 이것이 공간적 배경이라는 것은 할머니와 시적 화자가 전쟁이라는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끔찍한 희생과 파괴를 만들어낸 전쟁이 아직도 계속 중이라는 사실이다. 이것을 바라보는 할머니와 시적 화자의 시각은 확연히 다르다. 방공호가 무엇인지도 몰랐을 할머니는, 갑작스럽게 방공호에 들어가 살아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자 화가 나서 말수조차 적어져 버렸다. 시적 화자는 주어진 상황을 무기력하게 받아들이며 할머니의 분노에 짜증 섞인 대꾸를 할 뿐이다. 그러나 할머니는 전쟁으로 인해 돌변한 상황에 화만 내는 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묵묵히 방공호 위에 핀 채송화의 꽃씨를 받으신다. 전쟁 이후를 생각하며 생명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이다. 비참한 상황 속에서도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으려는 의지를 느낄 수 있다.

 

■ '꽃씨'의 상징성

시적 화자와 할머니는 방공호에 들어가야 하는 상황, 즉 전쟁으로 인한 죽음의 위협으로부터 피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그러나 할머니는 방공호에 들어가지 않으려 한다. 왜일까? 그것은 전쟁이라는 폭력 사태를 온몸으로 거부하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직면한 상황을 인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쩌다 핀 채송화 꽃씨'를 받는다. 끔찍한 파괴와 죽음의 현장에서 피어난 채송화는 끈질긴 생명력을 상징하며, 그 '꽃씨'는 생명과 희망을 상징한다. 전쟁의 비정함에 굴복하지 않고 꽃씨를 받는 할머니의 태도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생명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으려는 휴머니즘을 그대로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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