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의 비명(碑銘)

                                                                              -  함형수  -

                                                       

 

 

 

나의 무덤 앞에는 그 차거운 비(碑)ㅅ 돌을 세우지 말라.

나의 무덤 주위에는 그 노오란 해바라기를 심어 달라.

그리고 해바라기의 긴 줄거리 사이로 끝없는 보리밭을 보여 달라.

노오란 해바라기는 늘 태양같이 태양같이 하던 화려한 나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라.

 

 

 

푸른 보리밭 사이로 하늘을 쏘는 노고지리가 있거든 아직도 날어 오르는 나의 꿈이라고 생각하라.

               

                        -<시인부락>(1936)-

 

해            설

[ 개관정리 ]

성격 : 명령적, 열정적, 낭만적

◆ 표현 : 단호한 명령형 종결어미의 사용(삶에의 열정과 의지를 강렬하게 드러냄)

              시행의 길이가 점차적으로 길어짐.

              그림이 주는 강렬한 이미지를 문자화함.

              강렬한 색채의 효과

              생명파적 성향이 짙음.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해바라기 비명 → '해바라기라는 비석에 새겨진 글'이 아니라, 해바라기가 지니고 있는

                                        "불멸의 생명감(불멸의 비문)"으로 파악하는 것이 좋음.

    * 차거운 빗돌 → '생명의 부재, 죽음' 상징

    * 해바라기

         → 생명이 넘치는 소재. 죽음을 초월하는 삶에의 강렬한 의지와 정열을 상징.

             시인이 화가라는 것을 고려할 때, 인상파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해바라기"라는 작품이 연상

    * 보리밭 → 해바라기와 마찬가지로 생명이 넘치는 소재. 풍성한 생명력을 상징

 

주제 : 죽음을 초월한 삶에의 열정과 의지

            죽음을 초월한 예술혼의 추구

[시상의 흐름(짜임)]

◆ 1행 : 빗돌을 세우지 말라(죽음의 거부)

◆ 2행 : 무덤 주위에 해바라기를 심어 달라

◆ 3행 : 보리밭을 보여달라

◆ 4행 : 해바라기는 나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라

◆ 5행 : 노고지리는 나의 꿈이라고 생각하라.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서정주, 김동리와 함께 [시인부락] 동인 활동을 하며 시를 쓰기 시작한 함형수는 심한 정신착란증에 시달리다 해방 직후 33세로 요절하였다. 세상에 발표된 그의 시는 10여 편에 불과하지만, 동경(憧憬)의 꿈과 소년적 애수를 주조로 하는 개성 있는 시인의 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

시적 화자 '나'는 이 시의 부제인 '청년 화가 L을 위하여'를 고려해 볼 때, 죽은 청년 화가 L로 추측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시는 이미 죽은 청년 화가 L이 자신의 죽음을 노래하는 형식을 취하여 죽음을 초월한 그의 삶에의 열정과 의지를 형상화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시행의 길이가 점차 길어지고 있다는 표현 특징 뿐 아니라, 각 행이 '세우지 말라'·'심어 달라'·'보여 달라'·'생각하라' 등 단호한 명령형으로 끝맺는 종결 처리법도 결국 이와 같은 주제 의식과 깊은 관련을 갖는다고 볼 수 있다.

1행에서 화자는 '차가운 비(碑)걁돌'을 세우지 말라고 한다. '비(碑)걁돌'은 죽음을 뜻하는 비석이므로, 이는 자신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라 할 수 있다.   2행에서는 '비(碑)걁돌' 대신 '노오란 해바라기'를 심어 달라고 한다. 화자가 화가인 것을 생각하면 이는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 <해바라기>라는 작품을 연상하게 하는 구절이다. 해바라기는 향일성(向日性) 식물로 정열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1행에서 드러난 의지의 표명이 2행에서는 죽음을 초월한 삶에의 강렬한 의지 내지 정열을 해바라기를 통해 표출하고 있다.  3행에서는 '끝없는 보리밭'을 보여 달라고 한다. '끝없는 보리밭'은 풍성한 생명력을 표상하는 것으로, 이 구절 역시 생명의 충일함을 통해 죽음을 초월하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낸다고 하겠다.    4행에서는 자신의 무덤가에 심어 놓은 해바라기를 '늘 태양같이 태양같이 하던 화려한 나의 사랑'으로 생각해 달라고 당부한다. 이것은 자신의 정열적인 사랑과 삶이 죽음을 초월하여 잊혀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5행에서는 보리밭 사이로 날아오르는 노고지리를 '아직도 날아오르는 나의 꿈'으로 생각해 달라고 당부한다. 이는 꿈을 간직하며 살던 자신의 삶이 영원하기를 소망하는 것으로, 결국 '노고지리'는 화자의 감정이 이입된 대상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이 시는 '차거운 비(碑)걁돌'로 표상된 비생명적(非生命的)인 것을 거부하고, '노오란 해바라기'와 '끝없는 보리밭'을 통해 뜨거운 생을 향한 강한 의지를 표출하고 있어, 이른바 [시인부락] 동인들의 생명파적 특징을 잘 보여 주고 있다. 해바라기는 화려하고 정열적인 사랑을, 보리밭은 생명의 터전을, 노고지리는 하늘을 날아오르는 꿈을 각각 상징할 뿐 아니라, 그것들이 지면과 지상, 공중에서 서로 대응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또한 노란색과 푸른색의 색채의 대조로 인하여 더욱 싱싱하고 강렬한 생명 의식을 느낄 수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므로 섬세한 수식 하나 없는 투박한 언어 사용으로 인해 다소 거칠다는 느낌을 갖게 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도리어 이 시인의 순수함과 젊음을 반증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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