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 한 켤레의 시

                                                                              -곽재구-

                                                       

 

 

 

차례를 지내고 돌아온

구두 밑바닥에

고향의 저문 강물 소리가 묻어 있다.

겨울 보리 파랗게 꽂힌 강둑에서

살얼음만 몇 발자국 밟고 왔는데

쑥골 상엿집 흰 눈 속을 넘을 때도

골목 앞 보세점 흐린 불빛 아래서도

찰랑찰랑 강물 소리가 들린다.

내 귀는 얼어

한 소절도 듣지 못한 강물 소리를

구두 혼자 어떻게 듣고 왔을까.

구두는 지금 황혼

뒤축의 꿈이 몇 번 수습되고

지난 가을 터진 가슴의 어둠 새로

누군가의 살아 있는 오늘의 부끄러운 촉수가

싸리 유채 꽃잎처럼 꿈틀댄다.

고향 텃밭의 허름한 꽃과 어둠과

구두는 초면 나는 구면

건성으로 겨울을 보내고 돌아온 내게

고향은 꽃잎 하나 바람 한 점 꾸려 주지 않고

영하 속을 흔들리며 떠나는 내 낡은 구두가

저문 고향의 강물 소리를 들려준다.

출렁출렁 아니 덜그럭덜그럭.

 

 

 

 

            -<5월시 1집>(1981)-

 

해           설

[개관 정리]

성격 : 성찰적, 회고적, 감각적, 상징적

특성

① 구두를 의인화하여 표현함.

② 감각적 이미지의 빈번한 활용

③ 공간의 이동에 따른 시상 전개 방식

④ 의성어의 변화로 화자의 심리를 표현함.

⑤ 친숙한 사물을 통해 화자의 마음이 향하는 공간을 환기함.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고향의 저문 강물 소리가 묻어 있다. → 공감각적 표현(시각의 청각화)

* 쑥골 상엿집 ~ 흐린 불빛 아래서도 → 공간의 이동에 따른 시상의 전개

* 내 귀는 얼어 → 고향에 가서도 고향을 피상적으로 보고 온 외면적 자아

* 구두 혼자 어떻게 듣고 왔을까 → 고향을 진정으로 바라보는 내면적 자아

* 구두는 지금 황혼 → 구두가 오래되어 낡은 상태임을 비유한 말. 의인법

* 뒤축의 꿈이 몇 번 수습되고 → 구두 뒤축을 몇 번 정도 수선한 듯함. 의인법

* 지난 가을 터진 가슴의 어둠 → 80년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이 있을 법함.

* 누군가의 살아 있는 오늘의 부끄러운 촉수 → 지난 가을의 아픈 마음들 사이로 살아 남은 자의 부끄러움

* 구두는 초면 나는 구면 → 오랜만에 고향집을 찾았음을 알려줌.

* 고향은 꽃잎 하나 바람 한 점 꾸려 주지 않고 → 고향엔 아직 봄이 오지 않았음을 의미함.

* 내 낡은 구두

    → 과거(고향)와 현재(화자)를 연결하는 매개체로, 화자와 대비적으로 쓰여 성찰의 계기가 됨.

* 출렁출렁 아니 덜그럭덜그럭

    → 강물의 '출렁출렁' 소리를 신발의 '덜그럭덜그럭' 소리로 바꿈(시적 상황을 생동감 있게 드러냄.)

 

제재 : 강물 소리(고향에 대한 화자의 그리움. 화자와 고향 사이의 심리적 매개물)

주제고향을 다녀온 뒤, 피폐해진 고향을 인식하지 못한 부끄러움과 반성

[시상의 흐름(짜임)]

◆ 1 ~ 8행 : 고향에 다녀온 뒤에 들리는 강물 소리

◆ 9~23행 : 낡은 구두에 묻혀온 고향의 강물 소리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낡은 구두를 신고 오랜만에 고향을 다녀온 화자가, 고향의 이미지를 출렁이는 강물 소리로 떠올리고 있는 작품이다. 차례를 지내기 위해 고향에 다녀온 화자는 자신의 낡은 구두에 고향의 모습을 묻혀 왔다고 인식한다. 이 시에서 '강물 소리'는 화자가 현재 있는 곳과 고향을 이어주는 심리적 매개 역할을 하는 소재이다. 즉, 현재의 공간에서 낡은 구두를 신고 다녀온 고향에 대한 인상을 지속적으로 지각하게 하는 대상이다. '~들린다', '~꿈틀댄다', '~들려준다'와 같이 현재형 어미를 사용하여 고향의 풍경을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 보이고, 시각과 청각 등 다양한 감각적 이미지를 활용한 점, 강물의 '출렁출렁' 소리를 신발의 '덜그럭덜그럭' 소리로 인식하는 참신한 발상 등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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