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 백 석 -

                                                       

 

 

 

나는 북관(北關)에 혼자 앓아 누워서

어느 아침 의원(醫員)을 뵈이었다.

의원은 여래(如來) 같은 상을 하고 관공(關公)의 수염을 드리워서

먼 옛적 어느 나라 신선 같은데,

새끼손톱 길게 돋은 손을 내어

묵묵하니 한참 맥을 짚더니

문득 물어 고향이 어데냐 한다.

평안도 정주라는 곳이라 한즉

그러면 아무개씨(氏) 고향이란다.

그러면 아무개씨(氏)를 아느냐 한즉

의원은 빙긋이 웃음을 띠고

막역지간(莫逆之間)이라며 수염을 쓸는다.

나는 아버지로 섬기는 이라 한즉

의원은 또다시 넌즈시 웃고

말없이 팔을 잡아 맥을 보는데

 

 

 

손길은 따스하고 부드러워

고향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다 있었다.

 

                     -<삼천리 문학>(1938)-

 

해            설

[개관정리]

◆ 성격 : 서사적, 회고적

◆ 표현

* 시각적, 촉각적 심상

* 다정다감한 어조

* 인물 사이에 주고받는 대화와 시적 상황을 압축적으로 서술함.

 

◆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북관(北關) → 함경남도 지방의 별칭

    * 여래(如來) → 석가모니 여래의 약칭, 부처를 높여 부르는 말

    * 관공(關公) → 삼국지에 나오는 관운장

    * 막역지간(莫逆之間) → 벗으로서 아주 허물없는 사이

    * 북관에 혼자 앓아 누워서 → 타향을 유랑하는 시적 화자의 소외감과 고독감

    * 먼 옛적 어느 나라 신선 같은데 → 동화적 요소이면서, 과거 회상의 실마리를 제공해 줌.

    * 손길은 따스하고 부드러워 → 육친과 고향의 이미지

    * 고향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다 있었다.

            → '공동체적 삶이 느껴지는 공간'으로서의 고향의 이미지가 드러남.

 

◆ 제재 : 고향(향수)

주제육친에 대한 그리움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

[시상의 흐름(짜임)]

◆ 1 ∼ 2행 : 북관에서 병이 들어 의원을 뵘

◆ 3 ∼ 4행 : 의원의 풍모

◆ 5 ∼15행 : 의원이 진맥하며 화자와 대화를 주고 받는 모습

◆ 16 ∼17행 : 의원의 손길에서 느껴오는 향수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시가 환기시키는 정서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그 고향이 불러일으키는 따스한 정이다. <여우난 곬족>에서는 고향을 무대로 그 곳에서 벌어지는 토속적이고 원형적인 삶의 모습을 서사적 구조를 통해 고향 정서를 보여 준 데 반해, 이 시는 인물들 사이에 주고받는 대화와 시적 상황을 압축적으로 서술하는 기법을 통해 나타내고 있다.

이 시는 연 구분 없이 전 17행의 단연시 구조로 되어 있다. 시적 자아는 낯선 타향에서의 힘든 삶에서 병을 얻어 의원을 찾는다. 우연히 의원으로부터 고향이 어디냐는 물음을 받고 , 시적 자아는 자신의 부친과 의원이 막역한 친구임을 확인한다. 낯선 타향에서 외로운 신세에 놓여 있던 시적 자아는 그 순간 잊고 있던 고향을 떠올린다. 순간 고향은 자신의 출생지이며 아버지를 비롯한 가족이 있는 곳일 뿐만 아니라, 공동체적 삶의 유대로 묶인 상징적인 공간으로 확대된다.

사람이 앓아 누우면 보고 싶고 그리운 것도 많고 가 보고 싶은 곳도 많은 법, 의원은 '나'가 타관을 떠도는 외로운 처지임을 단번에 알아차리고 '네 병은 딴 병이 아니라 고향이 그리워 생긴 병'이라는 듯이 한참 맥을 짚더니 문득 '고향이 어데냐'고 묻지 않는가. '어디가 어떻게 아프냐'고 묻는 대신에 '고향이 어데냐'고 묻는 데에 이 시의 전개의 묘미가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시의 마지막 단락에서 '손길은 따스하고 부드러워 / 고향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다 있었다'와 같은 직접적인 감정 토로는 특별한 시적 수사 없이도 절실한 감동의 울림을 주고 있다. 그것은 셋째 단락에서 화자를 진맥하는 의원의 행위와 그와 함께 나눈 대화를 통해 그러한 정서가 충분히 환기되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작가론 <백 석>]

1. 약력

1912년 평안북도 정주 출생, 본명은 백기행, 1020년 오산고보 졸업, 동경 아오야마학원에서 영문학 공부, 1934년 귀국 후 조선일보사에 입사, 1935년 <조선일보>에서 시 「정주성」을 발표하여 등단, 함흥 영생여고보 교원 역임, 1942년 만주 안동에서 세관 업무에 종사, 1945년 해방 후 북한에서 문학 활동, 시집으로 「사슴」(1936)이 있음.

2. 백석의 시세계

백석의 시에 나타나 있는 가장 중요한 정신인 시적 대상으로서의 자연과 시적 주체로서의 인간이 결코 분리될 수 없는 '하나'라는 데 있다. 그의 시에는 무수히 많은 사람과 사물들 또는 풍속과 자연의 명칭이 나오지만 이들은 결코 따로 독립되어 있는 개별적 존재가 아닌, 합일을 기다리며 모여 있거나 이미 합일된 경지에 있는 관계에 있다. 그런데 이 사물이나 풍속이 주로 농촌 공동체에 한정된 것으로 나타나는데, 그것은 이 시인이 식민지 시대에서 문학이 할 일을 농촌 공동체, 곧 민족적 원형을 시적으로 탐구하여 모국어로 보존하고 재생하는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백석은 무너진 시대 안에서의 주체적 정서와 자아를 모국어로써 견고히 유지하려 했던 시인이었고, 이러한 그의 정신은 당대의 젊은 시인들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다.

백석의 시는 식민지 현실 아래서 무너지고 상실된 자아의 주체적 정서를 모국어의 결로 살려서 유지하려고 노력하였다. 그의 시적 화법은 '시골 사람이 쓰는 말 그대로'의 토착성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그것은 모국어의 지역성과 향토성을 강하게 풍기며 식민 통치의 강압에 대해서 민족의 주체적 공간 의식을 토속어를 통해 암시하고 지켜나가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그의 시의 주된 공간은 현실 속에서 일제의 식민지 정책에 의해 수탈되어 가고 있는 농촌이며, 해체의 위기 속에 빠진 농촌 공동체의 합일을 지향하고 있다.

'고향'의 주제를 펼쳐 가는 백석의 시 중에는 시적 자아가 개인적인 특징을 뚜렷하게 내보이지 않는 작품이 있다. 이러한 시에서 시적 자아는 공동체의 품 속에 깊이 잠겨 있다. 그리고 그러한 공동체적 세계로부터 멀어져 있는 현실의 자아가 자신의 고향이라는 공동체를 그리워하고 있다. 이럴 경우 고향이라는 공동체는 삶의 풍요로움을 더해 주는 세계로 형상화된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의 시와는 달리 공동체의 풍요로움을 더 이상 드러내지 않는 작품들도 있다. 이러한 시에 나오는 인물들의 삶은 공동체의 풍요로움이 모두 제거된 상황 속에서 아주 빈약하게 드러나 있다. 이 인물들은 공동체적 품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가난해진 존재들이다. 따라서, 이들 시에는 공동체의 풍요로움이 완전히 소멸되어 있는 셈이다. 백석의 시 「고향」은 전자의 경향을 보여주는 작품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백석의 시는 한국인의 원초적인 고향 개념을 환기하고 있다. 그의 시가 보여 주는 현란한 토착어와 현대적 가족 제도, 풍물의 세계는 단순한 풍물이 아니라 인간이 반드시 개입된 풍물이다. 이런 점에서 그의 시는 일제 강점기의 온갖 현란한 운명과는 관계없이 대다수 우리 민족의 삶의 방식을 감동적으로 보여 준다. 또 백석의 시 세계는 주인공은 공동체의 품 속에 깊이 잠겨 있다. 그리고 자신의 고향 세계에 잠겨 있는 만큼 그러한 공동체적 세계로부터 멀어져 있는 현실의 자신과 모순되어 있는 상태를 심화시킨다. 바로 이 모순이야말로 백석의 시를 의미있게 만드는 창조적 힘이다.

3. 백석 시의 특징과 표현 방식

     ㉠ 토착어의 적절한 활용과 토속 풍경을 배경으로 한 원초적 삶의 조명

     ㉡ 체험을 바탕으로 한 감각적 · 구상적 표현

     ㉢ 전통적 율격과 접목하여 산문시의 가능성을 보여줌

     ㉣ 삶의 리얼리티를 통한 민족 공동체적 연대감 형성

     ㉤ 자신의 어릴 적 생활 반경과 연관된 고향 근처의 지명을 소재로 삼아 시를 쓰는 방식

     ㉥ 일가 친척 및 이웃들과의 공동체적 체험을 바탕으로 시를 쓰는 방식

     ㉦ 어릴 때 보고 들은 샤머니즘적 요소들에 대한 기억을 살려 시를 쓰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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