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孤高)

                                                                              - 김종길 -

                                                       

 

 

 

북한산(北漢山)이

다시 그 높이를 회복하려면

다음 겨울까지는 기다려야만 한다.

 

밤사이 눈이 내린,

그것도 백운대(白雲臺)나 인수봉(仁壽峰) 같은

높은 봉우리만이 옅은 화장을 하듯

가볍게 눈을 쓰고

 

왼 산은 차가운 수묵으로 젖어 있는,

어느 겨울날 이른 아침까지는 기다려야만 한다.

 

신록이나 단풍,

골짜기를 피어오르는 안개로는,

눈이라도 왼 산을 뒤덮는 적설(積雪)로는 드러나지 않는,

 

심지어는 장밋빛 햇살이 와 닿기만 해도 변질하는,

그 고고(孤高)한 높이를 회복하려면

 

백운대와 인수봉만이 가볍게 눈을 쓰는

 

 

 

어느 겨울날 이른 아침까지는

기다려야만 한다.

 

 

해        설

[개관 정리]

성격 : 비유적, 유가(儒家)적

표현

     * 북한산에 인격을 부여(의인화)

     * 당위적 어법으로 의지적 태도를 드러냄.

     * 수미상관의 구조, 반복을 통한 의미의 강조

     * 이미지의 대립(신록, 단풍, 안개, 왼 산을 뒤덮는 적설 ↔ 옅은 화장, 차가운 수묵, 고고한 높이, 백운대와 인수봉만이 가볍게 눈을 쓰는 어느 겨울날 이른 아침의 북한산)

 

중요 시어 및 시구

    * 높이 → 고고함(초연하고 고상함)

    * 옅은 화장 → 눈이 살짝 쌓인 상태

    * 차가운 수묵 → 겨울산을 그림(수묵화)에 비유함.

    * 신록, 단풍, 안개, 적설 → 산의 고고함(참모습)을 변질, 훼손시키는 것들

 

제재 : 북한산

시적 화자 : 세속적인 번뇌에서 벗어나 고고한 정신 세계에 도달할 수 있기를 소망함.

주제고고한 삶의 지향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겨울에야 알 수 있는 북한산의 진면목

◆ 2, 3연 : 눈이 쌓인 산의 모습

◆ 4, 5연 : 산의 진면목을 가리는 존재들

◆ 6연 : 산의 고고한 모습을 드러내는 겨울을 기다림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북한산의 모습을 제재로 하여 고고한 삶의 자세를 지향하는 시적 화자의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가벼운 눈이 내린 겨울이어야만 산의 진면목을 알 수 있다는 화자의 말에서, 세상 일에 초연하고자 하는 태도를 읽을 수 있다.

이 시에서 노래하고 있는 고고함이란 어느 겨울날 이른 아침까지는 기다려야 겨우 확인할까 말까한 것일 수 있다. 즉 고고함이라는 정신세계는 세속화를 거부하는 것인 동시에 삶의 긴장감을 떠받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쉽게 변질될 수 있을 만큼 아슬아슬한 것으로 긴장감을 늦추어서는 얻을 수 없는 세계의 것이다. 이것은 시인이 추구하는 고고한 정신세계를 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산이 그 고고함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다음 겨울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노래하고 있다. 가볍게 눈을 쓰고 차가운 수묵으로 젖어 있는 겨울날 이른 아침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눈이라도 왼 산을 뒤덮는 적설로는 그 고고함이 드러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옅은 화장'은 산봉우리에 눈이 살짝 쌓인 북한산의 모습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는 산의 미묘한 변화에 주목한 표현이다. '차가운 수묵'은 겨울 산의 모습을 그림에 비유하여 표현한 것이다. 대상의 속성이 드러날 수 있는 정황을 묘사하고 있다. '신록', '단풍', '안개'와 같은 소재들은 겨울이 아닐 때의 산의 모습을 나타낸다. 이들과의 대비를 통해 겨울 산의 의미를 부각하고 있다. '왼 산을 뒤덮는 적설'은 가볍게 눈에 덮여 있는 상태와는 반대로서, 세속적인 것에서 벗어나 홀로 존재하는 산봉우리의 모습을 감추어 버린다. '장밋빛 햇살'은 가볍게 눈덮인 산봉우리의 속성을 변질시킨다. 산봉우리의 고고함은 긴장을 조금만 늦추어도 쉽게 변질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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