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층 빌딩 유리창닦이의 편지

                                                                              -김혜순-

                                                       

 

 

 

저녁엔 해가 뜨고

아침엔 해가 집니다.

 

해가 지는 아침에

유리산을 오르며

나는 바라봅니다.

깊고 깊은 산 아래 계곡에

햇살이 퍼지는 광경을.

 

해가 뜨는 저녁엔

유리산을 내려오며

나는 또 바라봅니다.

깊고 깊은 저 아래 계곡에

해가 지고 석양에 물든

소녀가 붉은 얼굴을

쳐드는 것을.

 

이윽고 두 개의 밤이 오면

나는 한 마리 풍뎅이가 됩니다.

그리곤 당신들의 유리창문에 달라붙었다가

그 창문을 열고

들어가려 합니다.

창문을 열면 창문, 다시 열면

창문, 창문, 창문 ……

창문

밤새도록 창문을 여닫지만

창문만 있고 방 한 칸 없는 사람들이

산 아래 계곡엔 가득 잠들어 있습니다.

 

밤새도록 닦아도 닦이지 않는 창문.

두드려도 열리지 않는

창문, 두드리면 두드릴수록 두꺼워지는

큰골의 잠, 나는 늘 창문을 닦으며 삽니다.

저녁엔 해가 뜨고

아침엔 해가 지는 곳,

그 높은 곳에서 나는 당신들의 창문을 닦으며 삽니다.

 

 

 

 

            -<아버지가 세운 허수아비>(1994)-

 

해           설

[개관 정리]

성격 : 상징적, 비판적

특성

① 역설적 표현을 사용하여 사람들과 유리되어 살아가는 화자의 처지를 드러냄.

② 대립적 공간을 제시하여 전달 의도를 강화함.

③ 화자를 직접 드러내면서 시상을 전개함.

④ 시각적 이미지를 통해 화자의 정서를 드러냄.

⑤ 반복적 행위를 통해 화자의 태도를 드러냄.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1연 → 역설적 표현, 아침에 높은 곳에 오르고 저녁엔 해보다 낮은 곳에 있는 화자의 처지를 나타냄.

* 유리산 → 고층 빌딩의 유리창

* 나는 바라봅니다 ~ 햇살이 퍼지는 광경을.

    → 고층 빌딩에서 내려다보는 세상, 화자와 세상 사이의 단절감

* 두 개의 밤 → 빌딩 안(세상)과 빌딩 밖(유리창닦이)의 밤

* 풍뎅이 → 화자를 비유함, 타인과의 소통을 갈망하는 존재

* 그 창문을 열고 / 들어가려 합니다. → 타인과의 소통 시도

* 창문을 열면 ~ 창문 → 반복적 표현을 통해 소통의 불가능성을 강조함.

* 창문만 있고 ~ 가득 잠들어 있습니다. → 소통이 불가능한 상황(창문은 단절, 방은 소통)

* 밤새도록 닦아도 닦이지 않는 창문 → 소통을 갈망할수록 단절이 심화되는 상황

* 저녁엔 해가 뜨고 ~ 그 높은 곳 → 사람들과 유리된 공간

* 나는 당신들의 창문을 닦으며 삽니다. → 타인과의 소통을 갈망함.

 

화자 : 고층 빌딩의 유리창을 닦는 이

주제타인과의 소통에 대한 갈망

[시상의 흐름(짜임)]

◆ 1~3연 : 고층 빌딩에서 유리창을 닦으며 세상을 내려다 봄.

◆ 4연 : 빌딩 안으로 들어가려 하지만 들어갈 수 없음.

◆ 5연 : 세상과 단절된 공간에서 열리지 않는 유리창을 닦는 화자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고층 빌딩 유리창닦이'라는 화자를 내세워 세상과 단절되어 타인과 소통하지 못하는 현대인의 소외와 고독을 풍자하고, 소통에 대한 갈망을 노래하고 있다. '두드려도 열리지 않는 / 창문', '두드릴수록 두꺼워지는 / 큰골의 잠'은 단절된 인간 관계의 견고함을 상징한다. 그렇게 견고하게 단절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화자는 끊임없이 창문을 닦는데, 이 행위는 곧 소통에 대한 간절함과 단절에 대한 극복 의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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