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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아버지는 일곱 시 기차를 타고 금촌으로 떠났고 여동생은 아홉 시에 학교로 갔다 그 날 어머니의 낡은 다리는 퉁퉁 부어올랐고 나는 신문사로 가서 하루 종일 노닥거렸다 전방(前方)은 무사했고 세상은 완벽했다 없는 것이 없었다 그 날 역전에는 대낮부터 창녀들이 서성거렸고 몇 년 후에 창녀가 될 애들은 집일을 도우거나 어린 동생을 돌보았다 그 날 아버지는 미수금 회수 관계로 사장과 다투었고 여동생은 애인과 함께 음악회에 갔다 그 날 퇴근길에 나는 부츠 신은 멋진 여자를 보았고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면 죽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날 태연한 나무들 위로 날아오르는 것은 다 새가 아니었다 나는 보았다 잔디밭 잡초 뽑는 여인들이 자기 삶까지 솎아 내는 것을, 집 허무는 사내들이 자기 하늘까지 무너뜨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새점 치는 노인과 변통(便桶)의 다정함을 그 날 몇 건의 교통사고로 몇 사람이 죽었고 그 날 시내 술집과 여관은 여전히 붐볐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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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그 날의 신음 소리를 듣지 못했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뒹구는 돌은 언제 잠깨는가>(198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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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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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관 정리] ◆ 성격 : 현실 비판적, 반어적, 허무적 ◆ 표현 : 비판적이고 비관적인 어조 일상생활의 묘사를 통해 병든 삶의 모습을 표현함. 주제를 역설적으로 강조하여 전달함.(붐볐지만 ~ 듣지 못했다, 병들었는데 ~ 아프지 않았다.) 이질적인 이미지들이 돌연적으로 낯설게 연결되어 있음.(이미지의 연쇄 기법) 무관하게 보이는 일상의 일들이 '그 날'을 향해 집중되어 있음.(자유연상의 파노라마 기법) 모순적인 어법을 구사하여 일상의 본질을 상징적으로 드러냄. 정서나 태도를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하루 일과를 냉정한 시선으로 서술함. 가족에서 사회로 시선을 확대하며 우리 시대의 고통을 응시하고 있음.
◆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그 날 아버지는 ~ 나는 신문사로 가서 하루 종일 노닥거렸다. → 가족 구성원의 일상사를 간략히 제시한 부분으로, 화자는 이러한 자기 가족들의 모습을 예로 들어 부조리한 사회 현실에 무고나심한 사회 구성원들을 비판하고 있다. * 나는 신문사로 가서 하루 종일 노닥거렸다. →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언론사의 모습을 비판함. * 전방은 무사했고 세상은 완벽했다 없는 것이 없었다 → 전후 세대가 느끼는 세상에 대한 인식이 전쟁 체험 세대와는 다르다는 것으로, 모든 것을 전쟁과 연관 짓는 기성 세대의 인식을 은연중에 비판하고 있다. (반어적 표현) * 창녀가 될 애들은 집일을 도우거나 어린 동생을 돌보았다 → 학교에 가야 할 또래의 아이들이 부조리한 현실로 인해 희생당하고 있음을 의미함. 완벽한 세상과는 대립되는 병든 사회의 현실을 냉소적으로 드러냄. * 그 날 아버지는 미수금 ~ 나는 부츠 신은 멋진 여자를 보았고 → 상대적으로 평온하면서도 욕망에 얽매인 삶을 살아가는 나와 가족의 일상의 모습 *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면 죽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 부조리한 사회 구조 속에서는 이상 행동도 합리화될 수 있음을 함축함. * 그 날 태연한 나무들 위로 날아오르는 ~ 새점 치는 노인과 변통의 다정함을 → 시상이 전환되는 부분으로, 화자는 우리의 일상사 속에 숨은 이웃의 아픔을 직접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여인들과 사내들로 대표되는 소외된 사람들의 아픔에 공감하면서 시적 화자의 시선은 기성 세대처럼 전쟁과 같은 외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내의 약자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 그 날 몇 건의 교통사고로 몇 사람이 죽었고 → 그 날의 일상적인 사건 사고를 제시한 것으로, 죽음이 언급되었다고 해서 특별한 사회적인 의미가 담긴 것은 아님. * 그 날 시내 술집과 여관은 여전히 붐볐지만 → 우리의 현실의 단면을 제시하고 있는 부분으로, 사회에 대한 비판 의식 없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지식인들과 소시민들을 비판하고 있다. * 그 날의 신음 소리 → 어두운 사회 현실로 인한 고통을 의미함. '창녀가 될 애들이 집일을 도우거나 어린 동생을 돌보았다' 와 '잡초 뽑는 여인들이 자기 삶까지 솎아내는 것'이 해당됨. * 모두 병들었는데 ~ 않았다 →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이나 소외된 사람들의 아픔에 무관심한 우리나 모두 병들었다는 비판적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
◆ 제재 : 사회의 각종 부조리한 병리 현상들 ◆ 주제 : 현대 사회의 피폐하고 부조리한 삶에 대한 비판적 인식과 고발 일상의 병든 의식과 소외에 대한 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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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나와 가족의 일상사(1) ◆ 2연 : 부조리를 잉태한 완벽한 사회 ◆ 3연 : 나와 가족의 일상사(2) ◆ 4연 : 사회의 부조리를 깨달은 화자 ◆ 5연 : 부조리한 사회 현실과 고통에 무관심한 사회 구성원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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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화자가 경험하는 일상적 세계와 사회의 이면에 존재하는 소외된 이웃들에 대한 이야기가 대비되면서 전개되고 있다. 화자는 자신의 일상사와 대비되는 사회의 어두운 현실을 통해 우리 사회와 그 구성원들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화자 자신을 포함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궁핍하고 퇴폐한 삶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일 뿐이며, 현실이 얼마나 부조리한 곳인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화자는 '그 날'로 지칭된 어느 날 자신이 바라본 세상의 모습과 자기 가족의 일상사를 서술하고 있다. 여기서 '그 날'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있지만, 우리 현대사에서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난 날일 수도 있고, 양심의 고통을 감내하며 시를 써 나가던 젊은 날의 하루하루였을 수도 있다. 화자는 결코 '완벽하지' 않고 모두 병들어 있는 '그 날'의 모습을 관찰하면서 무력한 자신에 대한 자괴감과 가족 관계의 쓸쓸함, 그리고 현실의 아이러니 등을 드러내고 있다. 이 작품에서 연상에 의해 끊임없이 이어지며 그려지는 일상의 모습은, 무감각하게 마비된 병든 삶의 모습을 담담하게 드러내고 있다. 아버지가 기차를 타고 떠나는 것에서 출발한 연상 작용은 결국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라는 마지막 시행으로 시상을 마무리하여,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은 궁핍하고 퇴폐와 연대감의 상실과 소외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이며, 이러한 현실이 부조리함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이 시는 숨가쁘게 이어지는 공간 이동과 이미지의 비약이 나타난다. 현기증을 느낄 정도인 현대 사회의 속도감, 무수한 일들이 우연처럼 일어나고 연속되는 삶의 실체를 보여주는 듯하다. 이들 이미지들은 비약적이어서 서로 무관한 것처럼 보이지만 연상의 고리를 가지고 있으며, 결국에는 '그 날'이라는 초점에 맞춰지게 되고, 이는 '병'의 이미지로 귀결된다.
■ 감상을 위한 더 읽을거리 이성복은 평상인들을 뛰어넘는 특유의 상상력에 의한 자유 연상의 기법으로 등단부터 주목을 받아 오고 있는 시인이다. 현실과 직결되며 현재의 불행을 구성하는 온갖 누추한 기억이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연상은 초현실주의 시를 방불케 하는 현란한 이미지를 빚어낸다. 이처럼 현실과 밀착된 기억에서부터 창출해내는 비현실적인 이미지는 바로 왜곡된 현실을 고발하는 시적 방법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그러므로 그의 시는 지극히 개인적인 소재를 가지고도 보편적이고 공적인 차원으로까지 그 의미를 확대시킬 수 있다. 삶의 범주 차원에서 그의 시가 암시하는 것은 모든 사물은 상관적으로 존재할 뿐 아니라, 유일한 핵심은 없다는 점이다. 이 시는 연상의 원리를 특징으로 하는 이성복의 초기시 대표작이다. 시적 화자의 연상에 의해 그려지는 일상의 소묘는 무감각하게 마비된 병든 삶의 모습을 담담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의 시에서 가족이란 삶의 기본 단위로서 중요한 의미를 갖지만, 이 시에서 보는 것처럼 초기시에서는 주로 피폐하고 타락한 현실의 초상을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가장인 아버지의 움직임에서 출발한 연상작용은 여동생과 어머니에 이어, '나'에까지 이른다. '하루 종일 노닥거렸다.'에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고단한 삶에 비해 무기력하게 소일하는 화자 자신의 자괴감을 엿볼 수 있다. 젊은 그가 한가롭게 노닥거리는 행동은 한반도의 분단 현실에 비추어 전방의 무사함을 연상시킬 뿐 아니라, 불안한 휴전 상태가 삶의 조건이 되어 있는 현실은 전방이 무사하기만 하면 세상은 완벽하다는 아이러니를 유발시킨다. 이러한 연상의 고리는 통치의 미비함을 무마하고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전시 상황을 강조하던 당시의 정치 현실에 대한 은밀한 비판을 이루기도 한다. 완벽한 세상이라면 없는 것이 없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뒤이어 나타나는 창녀들에 대한 연상을 통해 화자는, 이 현실이 없어야 할 것조차 있는 부조리한 세상임을 강조한다. 게다가 더욱 섬뜩하게 이어지는 '몇 년 후에 창녀가 될 애들'의 연상은 미래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으로까지 연결되는 강한 현실 부정에서 비롯된다. 집일을 돕는 애들의 연상은 가장인 아버지의 피로한 일상으로 다시금 이어지고, 여동생의 데이트에 대한 상상에 이어 '멋진 여자'를 본 기억으로 가 닿는다. 자신의 잘 풀리지 않는 사랑에 대해 골똘히 생각한 끝에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면 죽일 수도 있을' 것이라는 과격한 상상을 하기도 한다. '완벽한 세상'에서 태평스럽게 노닥거리는, 그러나 전혀 편하지 않은 '나'의 현실은 '태연한 나무들 위로 날아오르는 것'들이 모두 다 새가 아니라는 생각에 이르며, '잔디밭 잡초 뽑는 여인들이 자기 / 삶까지 솎아내는 것'과 '집 허무는 사내들이 자기 하늘까지 / 무너뜨리는' 것을 발견하기도 하는 등 곤고한 사람들의 삶에 가 닿는다. 그러다가 '새점 치는 노인과 변통의 / 다정함'을 떠올리기도 하고 교통 사고로 인해 여러 사람이 죽는 사건을 떠올리기도 하지만, '시내 술집과 여관은 여전히 붐볐'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의 향락을 즐기기만 할 뿐, 죽어가는 사람의 신음 소리를 듣지 못한다며 씁쓸해 한다. 결국 화자는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라는 마지막 시행으로 시상을 마무리하며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궁핍과 퇴폐의 현실적 삶 속에 살아가는 존재일 뿐 아니라, 이 현실이 얼마나 부조리한 곳인지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성복의 첫 시집이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삶의 죽음으로서의 '망각'에 대한 '드러내기'에 있고, 그 망각의 드러냄은 '아픔'에 의해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 날>이라는 시에서 보이는 것은 '아픔'을 '아픔'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병듦'의 상태, 그리고 그 '병듦'의 상태에 대한 연대의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라는 마지막 행의 메시지는 이러한 '치욕'의 상황에 대한 자각, 그리고 '치욕의 연대'를 통해 '병들어 있음'을 치유하기 위한 강력한 열망이라고 읽어볼 수 있다. <그 날>이 보여주는 세계는 계속적으로 재생산되는 일상의 모습이다. 그것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걸쳐 있는 '그 날'의 치욕적인 아픔의 망각 상태에 대한 괴로움의 발견이다. 이러한 발견은 '병듦'의 치료를 위한 첫 번째 이행, 즉 '치유의 첫 단계'라고 말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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