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錦江)

                                                                              - 신동엽 -

                                                       

 

 

     

       제17장

     

    관아는 텅 비어 있었다.

    조병갑은 어젯밤 벌써

    전주로 도망갔고

    이속들도 쥐구멍 속 다

    숨었다.

     

    옥을 부쉈다.

    뼈만 남은 농민들이 기어나와

    관아에 불을 질렀다.

     

    창고를 부쉈다.

    석류알 같은 3천 석의

    쌀이 썩고 있었다.

     

    무기고를 부쉈다.

    열한 자루의 일본도

    스물두 자루의 양총(洋銃)

    6백 발의 탄환이 나왔다.

    동학군은

    대오를 정돈했다.

    인원을 점검하니 3천이 늘어서 8천 명,

    전봉준을 둘러싼

    수뇌진에서는

    동학 농민당 선언문을 작성하여

 

 

 

    각 고을에 붙였다.

     

           -<금강>(1967)-

 

해             설

[개관 정리]

성격 : 저항적, 서사적, 현실비판적

표현 : 인물과 사건을 묘사하며 들려주는 서사시로, 이야기의 형식을 갖춘 시임.

              역사에 항거하는 민중의 모습을 묘사함.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관아는 텅 비어 있었다. → 1894년 고부 민란의 상황을 묘사함

    * 조병갑 → 고부 군수로 폭정을 자행한 탐관오리(실존 인물)

    * 1연 → 지배 계층의 무능함과 비겁함이 잘 그려짐

    * 뼈만 남은 농민들 → 헐벗고 억압받는 민중들의 모습

    * 관아에 불을 질렀다. → 지배 계층의 학정에 대한 민중의 분노

    * 석류알 같은 3천 석의 쌀이 썩고 있었다. → 지배 계층의 탐욕과 부패상

    * 대오 → 편성된 대열

    * 3천 명이 늘어서 8천 명 → 민중들의 동참이 급격히 늘어남

    * 전봉준 → 동학 농민 운동의 지도자

 

제재 : 동학 농민 혁명

화자 : 동학 혁명의 상황을 전달하는 이

주제부당한 역사에 대한 민중의 저항 정신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관아로 쳐들어간 민중들과 도망친 지배 계층

◆ 2연 : 분노로 인해 옥을 부수고 관아에 불을 지르는 민중들

◆ 3연 : 창고와 무기고를 부수고 농민 혁명의 대오를 갖추는 민중들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금강>은 사사(서화), 본사 26장, 후사(후화)로 구성된, 총 30장 4,800여 행으로 구성된 장편 서사시로, '동학 혁명'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형상화함으로써 그 속에 담긴 민중들의 세계관과 시인의 인식을 보여 주고 있다. 김동환의 <국경의 밤>의 930여 행이나, <남해찬가>의 1,900여 행과 비교해 볼 때 질적으로나 양적인 측면에서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1894년 3월의 동학혁명(작품의 주조를 이루는 사건이자 시 정신의 출발임), 1919년 3월의 기미독립운동, 1960년 4월 혁명을 하나로 연결하여 과거와 현재를 하나의 연속적인 현실로 일깨우는 분노의 저항시이다.

<금강>은 동학혁명을 소재로 한 '이야기시'로서 그의 시세계를 대변해 주는 작품으로, 이 작품에서는 단지 이야기의 전개만을 주안점으로 하지 않고, 과거를 통하여 현재의 상황을 원근법적으로 조명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 시를 통해 60년대 대표적 참여시인으로 자리를 잡은 그는 격동기를 겪으면서 역사의 허구성을 목격하게 됨으로써 권력의 폭력성을 배격하는 목소리를 지니게 된다. 민중 · 민족 · 민주의 정치적 신념을 민족 시인으로서 자리매김하게 된 계기가 된다.

제 17장은 전봉준이 인솔하는 동학군이 고부로 진격해 나가는 날의 민중들의 가슴 벅찬 모습을 재구성해 놓았다. 특히 농민 혁명 본부의 이름으로 발표된 통문(通文)은 민중의 억압과 고통을 잘 보여주고 있다. 나아가 시인은 이러한 부당한 역사 상황에 대응하는 정신이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음을 말하고 싶어 한다.

 

■ 시인 신동엽(1930~1969)에 대하여

1. 작품 경향

1950년대의 우리 시단은 모더니즘의 물결과 전통 지향적 보수주의의 조류로 크게 나뉘어 대립하는 듯한 양상을 보이면서도 역사와 현실의 진정한 문제를 피해가고 있다는 점에서는 거의 모든 시인이 일치하는 형국을 드러내었는데, 신동엽은 이런 풍조를 철저히 배격하는 자리에서 스스로의 시세계를 출발시켰다. 당대 시단의 양대 주류를 거부한 채 처음부터 민중적 지식인으로 시를 익히고 시를 발표하기 시작한다.

50년대에 신동엽은 생애 가운데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가장 커다란 고통을 경험한다. 해방 후의 갈등이 6 · 25와 남북 분단, 전후의 폐허로 이어지며 그가 겪게 된 허무와 상실감은 매우 컸다. 그의 의식은 민족사의 비극인 6 · 25를 체험하면서 현실에 대한 인식이 구체화된다. 이로 인해 민족의 정신적 실체를 찾기 위한 노력이 동학사상에 대한 관심으로 집약되었고, 이것이 서사시 <금강>을 낳는 계기가 된다. 그러나 그는 전후의 폐허에서 심한 고통과 갈등을 겪는데, 아픔을 딛고 시 쓰기에 몰두하여 1959년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가 『조선일보』신춘문예에 입선하여 문단에 데뷔한다. 그러나 이 작품은 20여 행이 삭제되어 발표되고, <진달래 산천>으로 불온성 문제로 시달리게 된다.

60년 4 · 19 혁명은 그의 의식 세계의 충격을 주었다. 50년대 후반, 전후의 좌절감과 허무감, 허탈감 같은 것으로 거의 모든 시들이 패배주의적인 색채를 띠고 있던 상황에서 발발한 4 · 19혁명은 시대적 흐름에 대하여 방향 감각을 상실한 시인들에게 신선하고 강력한 충격으로 작용해 새로운 세계로 발을 내딛게 한다. 이렇듯 4 · 19를 계기로 한국 사회에는 지식인의 사회 참여가 고조되었다. 그는 4 · 19 혁명을 찬양하는 시 <아사녀>를 쓰고, 7월에는 『학생 혁명 시집』을 간행하였다. 그러나 62년 무렵부터 그의 시세계는 비교적 안정을 찾아 정신 지향적인 특성을 드러낸다. 당시 4 · 19에서 5 · 16으로의 반전은 시인들에게 희망에서 절망으로 심정 변화를 유도했고, 또 다른 좌절을 맛보게 하였다. 따라서 그 고통을 정신지향적 자세로 넘어서야 했기 때문이다. 이 때에 그가 쓴 시들이 1963년에 첫 시집 『아사녀』로 간행되었다.

그 후 65년 초까지 신동엽은 거의 침묵으로 시간을 보낸다. 이것은 새로운 모색의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그 동안 4 · 19에 대한 추상적인 기대와 희망이 무산된 뒤, 정신지향적 세계에 머물던 신동엽은 그것이 갖는 현실 대응의 한계를 딛고 구체적으로 현실에 부딪쳐 나간다. 이시기에 이르러 신동엽의초기의 대지는 한반도로, 원초적 생명력의 그리움은 민족 주체성의추구로, 과거 역사에의 관심은 구체적인 현실 인식으로 전이되었다. 1965년에 시 <삼월>의 발표를 기점으로 '민중적 자기 긍정'에 도달한다. 그는 <발>, <4월은 갈아 엎는 달> 등을 썼고, 이어서 대표작 <껍데기는 가라>를 발표하였다. <껍데기는 가라>에 대한 조동일과 김수영의 평가를 시작으로 그는 문단의 조명을 받기 시작한다. 1967년에는 4,800여 행에 달하는 서사시 <금강>을 발표함으로써 그의 문학의 결정판이 되었고, 그 결과로 신동엽은 확고한 문학사적 위치를 차지한다. 이 때의 작품들은 대개 민족적 동일성을 훼손시키는 모든 반민족적 세력에 대한 거부와 저항이 기조를 이루며, 민중에 대한 자기 긍정을 노래하고 있다.

2. 시어

신동엽의 시어는 고유어의 사용이 두드러진다. 이 점은 그의 시 소재와도 직결되어 있다. 그는 민족의 순수성 및 동일성 회복을 위하여 시적 표현으로 우리말의 순수성 회복에 역점을 두었다. 고유어는 자연을 표상하는 시어가 많고, 우리 민족의 생활 속에서 노동이나 민속과 관련되어 나타난다. 또한 다수의 한자어를 사용하였는데, 한자는 관념적인 제목이나 추상적인 어구 혹은 강조하고자 하는 시어와 고유명사, 특히 자연물, 문명, 인칭 등에서 높은 빈도를 보인다. 그리고 외래어의 사용은 대개 지명, 인명, 문명이나 사물을 지칭하는 경우에 국한하였고, 무질서하게 외래어를 쓰지는 않았다.

그는 시어의 반복적 사용으로 상징적 의미를 형성하고, 단일 시편 속에서 반복됨으로써 강조의 효과를 나타낸다. 아울러 그의 시에는 부정적 의미를 나타내는 시어가 많이 나타난다. 이와 관련하여 그의 시어는 감탄적 성향을 다분하게 드러냄으로써 시어의 '자기 표출성'이 강하다. 이 점은 시에 긴장감이나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약화시킴으로써 시적 묘미를 절감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3. 어조

강하고 뚜렷한 남성적 어조와 여리고 자기고백적인 여성적 어조가 동시에 나타난다. 이러한 두 가지 어조의 혼용 양상은 그의 시에 흐르는 저항과 거부, 연민과 비애의 정서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시에 나타나는 여성적 어조는 한국 전통 시가와 연관성을 갖고 있는 반면에, 남성적 어조는 직설적이고도 능동적 측면을 보여준다. 그의 시가 직접적인 발언의 저항시로 파악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부정적 현실 인식에서 비롯된 정서와 여성주의는 한국 시문학의 정서적 원형질로서 신동엽도 여기에 맥을 잇는다. 그러나 그의 경우는 항시 민족의 역사와 관련되어 있는 점이 전통적인 측면과는 다르다.

4. 율격

그의 시 전반에 나타나는 율격은 민요적 성격이 강하며 한의 정서를 표출한다. 짧고 간결한 행의 운율과 여성적 어조는 한을 드러내는 민요의 전통적 분위기로 이해된다. 그의 시 기본 율격은 민요의 율격인 3음보격과 4음보격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전통적 율격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었으며 다양한 변용까지를 수용하여 현대적 감각을 살리고 있다.   

5. 문학사적 의의 - 참여시, 전통성 계승

그는 1950년대의 혼미한 문단에 발을 딛고, 1960년대의 이 땅 현대시사에 현실 대응의 한 문학적 전범을 보여 주었다. 그의 문학적 가치의 한 측면은 현대의 문명과 사회 현실의 모순과 부조리를 비판하는 데에 있다. 그리하여 70, 80년대로 이어지는 민족문학, 민중문학의 교두보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의 시는 전통적 요소의 시적 수용과 현실 대응이라는 문제를 잘 결합시켜 놓았다. 이 점에서 전통의 창조적 계승이라는 시적 가치를 지니게 된다. 그의 시는 여성적 어조의 문제, 민요의 율격과 고유어 및 토속어의 활용 그리고 우리 민족의 한을 형상화하였는데, 그 이전의 시들이 대개 개인의 고백적 양상을 보여 주었던 점을 뛰어넘어 그의 시는 민족적인 문제로 확대되어 간 점을 가치 있게 들 수 있다.

6. 신동엽의 시세계

50년대 전후 문인인 신동엽은 전후 시인들이 답습했던 '1950년대 모더니즘'을 향유하지 않았다. 농촌 정서를 바탕으로 민족의 토착적인 서정성을 구사하여, 역사의식을 담은 리얼리즘을 추구하였다. 특히 그는 장시의 이야기를 담화함에 있어 과거 역사의 사실을 현재화하는 원근 조명법을 써 살아 있는 현재로 역사가 복원되게 하는 데 기여했다. 신동엽은 시를 개인적 즐거움보다는 '민족 공동체의 노래'로서의 시에 의미를 두었던 만큼 이념적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러나 그는 시를 이념의 대행물이나 종속물 또는 도구화로 만들지 않았다. 그의 시세계의 중심을 이루는 이미지를 '하늘, 눈동자, 껍데기, 알맹이, 4월, 동학, 아사달과 아사녀, 중립, 흙가슴, 쇠붙이' 등은 신비롭거나 원시적이며 상고 시대의 동양적 유토피아를 연상시키는 것들이다. 그의 시는 이러한 공간을 설정함으로써 시적인 즐거움과 함께 이념을 보다 순수하게 승화시키고 있다.

6. 신동엽 시의 문학사적 위치

신동엽이 문단에 등단한 1950년대 말은 자유당 독재 정부에 의해 반공 이념만이 허용되던 시기이다. 이 시기에 그는 '진달래 산천'이라는 작품을 통해 전쟁의 아픔과 분단이라는 상황을 형상화하고 있다. 또한, 4 · 19와 5 · 16을 겪으면서 문학의 현실 참여에 대한 생각을 적극적으로 표현한다. 그 예가 장편 서사시 <금강>과 <껍데기는 가라>와 같은 단시이다. 이러한 시를 통하여 민족 정신을 일깨우는 한편, 민중의 정서에 따른 시적 형상을 창조한다. 즉, 그는 민족의 현실이 여러 불합리한 상황들에 의하여 왜곡되고 있음을 직시하고, 이를 극복하여야 한다는 생각을 굳히기에 이른다. 이런 측면에서 1960년대는 김수영의 시와 더불어 참여시의 세계를 펼쳐 보였다고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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