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반

                                                                              - 정지용 -

                                                       

 

 

 

내 무엇이라 이름하리 그를?

나의 영혼 안의 고운 불,

공손한 이마에 비추는 달,

나의 눈보다 값진 이,

바다에서 솟아 올라 나래 떠는 금성(金星),

쪽빛 하늘에 흰꽃을 달은 고산식물(高山植物),

나의 가지에 머물지 않고,

나의 나라에서도 멀다.

홀로 어여삐 스스로 한가로워 ― 항상 머언 이,

나는 사랑을 모르노라, 오로지 수그릴 뿐.

때없이 가슴에 두 손이 여미어지며

 

 

 

굽이굽이 돌아 나간 시름의 황혼(黃昏) 길 위 ―

나 ― 바다 이편에 남긴

그의 반임을 고이 지니고 걷노라.

 

            -<시문학 3호>(1931. 10)-

 

해                설

[개관 정리]

성격 : 관념적, 독백적, 시각적

표현 : 무조건적이고 순응적인 어조

              절대적 존재인 신을 고귀하고 접근하기 어려운 존재로 형상화함.

              은유, 열거, 도치법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내 무엇이라 이름하리 그를? → 도치법을 통해 '그'는 절대적 존재이고 나는 미미한 존재임을 강조함.

* 영혼 안의 고운 불, 비추는 달, 나의 눈보다 값진 이, 금성, 고산식물

   → '그'에 대한 보조관념들

       지고지순한 존재이며 가까이하기 힘든 고귀한 존재임을 나타냄.

* 나는 사랑을 모르노라. 오로지 수그릴 뿐.

   → '그'는 순결하고 높으며, 가까이하기 힘든 고귀한 존재이므로 감히 대등한 사랑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해서 겸허하게 순종하고 경배하는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음을 뜻한다.

* 바다 → 화자와 대상(그) 간의 거리를 가시적으로 드러냄.

* 그의 반임을 고이 지니고 걷노라. → 그와 화자의 관계를 제시함.  

                                                       그가 없이는 화자가 존재할 수 없음을 나타냄.

 

제목 : '그의 반'이라는 제목은, 그가 없이는 자신도 없다는 것으로 '그'의 존재가 자신의 존재에 꼭 필요한 것임을 강조한 표현임

주제절대적 존재에 대한 경배와 묵도

[시상의 흐름(짜임)]

◆       1행 : 그의 존재

◆ 2 ~ 6행 : 순수하고 고귀하면서도 접근하기 어려운 존재

◆ 7 ~11행 : 그에 대한 경배의 자세

◆ 12~14행 : 그와 나의 관계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정지용이 추구했던 서구적 모더니즘과 고향에의 지향은 이국 정서와 향토적 정서로 표출되었으나, 그 어느 곳에도 안주하지 못했던 그는 카톨릭이라는 종교의 세계에서 새로운 거처를 찾으려 했다. 첫 시집인 <정지용시집> 4부에 수록된 9편의 시는 모두 신앙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작품으로, 편의상 종교시 또는 신앙시라는 용어를 분류하고 있다. 두 아들을 신부로 만들기 위해 수도원으로 보낼 정도로 신앙이 독실했던 정지용은 <시의 옹호>라는 시론을 통해서 신앙의 정신적 가치를 표명한 바 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최상의 정신적인 것이 신앙이며, 이 신앙을 이루는 것은 '사랑, 기도, 감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앙을 갖지 않은 시인은 높은 정신적 가치를 마련할 수 없다고 하였다. 정지용이 가톨릭에 귀의한 것이 언제인지 명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 시가 나오기 이전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이 시는 그와 같은 종교시(신앙시) 중 첫 번째 작품으로, 발표 당시에는 <무제(無題)>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으나 후에 시집에 수록되는 과정에서 제목이 이렇게 바뀌어진 것 같다. 정지용은 그의 종교시에서 신의 절대성과 인간의 한계성을 주로 드러내는 데 중점을 두었다. 다시 말해 우리 인간이 상대적이고 불완전한 존재라는 입장을 견지한 채, 완전하고 절대적인 존재인 신에 대한 경배와 묵도의 의지를 드러내었다. 이 시도 그러한 시작 태도를 잘 드러내고 있다.

1행에서 화자는 목적어를 도치시킨 수사적 의문문을 통해서 '그'를 감히 '무엇이라 이름할 수 없'다며 신의 절대성을 확인하고 있으며, 자신은 미미한 존재임을 스스로에게 인식시키고 있다.  2행부터 6행까지는 '그'를 '불, 달, 값진 이, 금성, 고산식물' 등에 비유하여 절대적 존재인 '그'에게 근접하기 어려움을 강조하고 있다. 7행부터 11행까지는 '그'에 대한 경배의 자세를 보여주는 것으로 화자의 자세는 '오로지 수그리'는 무조건적이고 순종적인 것으로 드러낸다. 12행부터 마지막행까지는 '그'와 화자의 관계를 제시하고 있다. '때없이 가슴에 두 손이 여미어지'는 보잘것없는 화자가 '굽이굽이 돌아나간 시름의 황혼 길 위'에서 방황할 때마다 바다 저 편에 위치한 '그'는 '바다 이편'에 위한 화자에게 끊임없이 '그의 반임을 고이 지니고 걷'게 함으로써 '그'와 화자 간에 놓인 끝없는 거리감과 함께 '그'에 대해 화자가 갖는 경외감을 드러내고 있다. '나 ― 그의 반'이라는 표현은 '그' 없이는 내가 존재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이 시에서는 불완전한 화자가 도저히 근접할 수 없는 절대적 존재인 '그'를 경배하며 '그'를 통해 삶의 구원을 얻으려는 마음이 잘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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