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생의 솔숲에서

                                                                              -김용택-

                                                       

 

 

 

나도 봄산에서는

나를 버릴 수 있으리.

솔이파리들이 가만히 이 세상에 내리고

상수리나무 묵은 잎은 저만큼 지네.

봄이 오는 이 숲에서는

지난날들을 가만히 내려놓아도 좋으리.

그러면 지나온 날들처럼

남은 생도 벅차리.

봄이 오는 이 솔숲에서

무엇을 내 손에 쥐고

무엇을 내 마음 가장자리에 잡아 두리.

솔숲 끝으로 해맑은 햇살이 찾아오고

박새들은 솔가지에서 골자기로 가벼이 내리네.

삶의 근심과 고단함에서 돌아와 거니는 숲이여 거기 이는 바람이여

찬 서리 내린 실가지 끝에서

눈뜨리.

눈을 뜨리.

그대는 저 수많은 잎사귀들처럼 푸르른 눈을 뜨리.

 

 

 

그대 생의 이 고요한 솔숲에서.

 

          -<그 여자네 집>(1998)-

 

해           설

[개관 정리]

성격 : 자기반성적, 자연친화적

특성

① 영탄적 어조를 활용함.

② 삶의 문제에 대한 깨달음을 자연을 통해 형상화함.

③ 종결 어미 '-리', '-네'의 반복을 통해 운율을 형성함.

④ 하강 이미지에서 상승 이미지로 이동함.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봄산 → 속세와 대립되는 공간으로, 인간의 욕망과 근심과 고단함이 없는 공간

* 나를 버릴 수 있으리. → 과거의 집착에서 벗어남.

* 솔이파리들이 ~ 저만큼 지네 → 하강 이미지를 통해 겨을에서 봄으로 바뀌는 자연의 순리를 묘사함.

* 무엇을 내 손에 쥐고 ~ 가장자리에 잡아 두리 → 화자가 중요하게 여겼지만 현재는 버려도 될 것.

* 솔숲 끝으로 ~ 솔가지로 가벼이 내리네 → '햇살'과 '박새'는 희망을 담은 시어로 새로운 희망을 붙잡은 시적 화자의 심리를 형상화한 것이라 볼 수 있다.

* 삶의 근심과 ~ 실가지 끝에서 → 시적 화자의 과거의 삶이 근심과 고단함으로 가득 차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구절로, '바람'과 '찬 서리'가 그러한 화자의 과거 삶을 씻어내 줌을 드러내고 있다.

* 바람, 찬 서리 →시적 화자의 삶의 근심과 고단함을 깨끗이 씻어내는 기운

* 그대는 저 수많은 ~ 푸르는 눈을 뜨리 → 밝은 희망과 기쁨을 맛볼 수 있는 눈을 뜨길 바라는 시적 화자의 소망을 드러내고 있음.

* 새 잎사귀들 → 자신을 버리고 얻는 마음의 자유

* 푸르른 눈 → 식물의 눈.  삶의 기쁨과 희망을 볼 수 있는 혜안 (중의법)

 

제재 : 봄산

주제봄산 솔숲에서의 자기반성

[시상의 흐름(짜임)]

◆ 1~2행 : 자신을 버릴 수 잇는 공간인 봄산

◆ 3~8행 : 지난날을 내려놓을 수 있는 솔숲

◆ 9~13행 : 새로운 희망을 찾을 수 있는 솔숲

◆ 14~19행 : 새로운 희망의 부활을 깨달음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시에서 '봄산'이나 '솔숲'은 화자의 삶을 형상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소재이다. 화자는 봄날 솔숲에 들어가 묵은 잎들이 떨어지고 새 잎이 돋는 광경을 보면서 자신도 지난날의 짐을 내려놓겠다고 다짐한다. 화자에게 '지난날'이란 '삶의 근심과 고단함에서 돌아와 거니는 숲이여'라는 구절로 비추어 볼 때, '근심과 고단함으로 힘들었던 과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로 비추어 볼 때, '솔숲'은 단순히 '자연의 공간'이 아닌 화자에게 '삶을 성찰하게 해주고 깨달음을 주는 공간'으로 해석할 수 있다.

봄산 솔숲의 자연 묘사와 자신을 버려 삶의 근심과 고단함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화자의 성찰은 시상 전개상 종결 어미의 변화에서 더욱 확연히 확인된다. 즉, 솔숲의  자연 현상을 진술할 때는 '-네'라는 종결 어미를 사용하여 차분하게 묘사하는 반면, 화자의 성찰 및 정서를 표출할 때는 '-리'라는 종결 어미를 사용하여 영탄하는 목소리로 제시하고 있다. 이렇게 자연을 관찰한 내용을 제시하고 화자의 삶에 대한 성찰을 제시한 것은 자연의 모습과 같아지고 싶은 화자의 소망을 나타내기 위함이라 할 수 있다.

 

◆ 화자의 삶에 대한 태도

이 시에서 시적 화자는 성찰의 공간이 '솔숲'에서 상수리나무 묵은 잎들이 떨어지는 것을 보며 지난날들을 가만히 내려놓아도 좋다고 생각한다. 즉, 화자는 과거의 삶을 내려놓고 그로부터 벗어나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다만 여기에서 '지난날들'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들인지는 알 수 없다. 근심과 고단함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라 추측할 수밖에 없다. 그 구체적 양상이 어떠하든 이 작품은 지난날들의 집착과 욕망에서 벗어나고픈 화자의 소망을 형상화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 김용택의 작품 세계

김용택은 자본주의의 경제 논리 때문에 멸실의 운명에 처한 농업 현장에 남아 그 실상을 증언하는 중요한 농민 시인이자 빼어난 서정 시인이다. 김용택 시의 밑자리는 그가 나고 자란 섬진강 언저리 임실 땅 진메 마을이다. 농경 사회의 인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그곳 사람들을 보고 겪는 생활 현장의 풍부한 실감 때문에 시인의 상상력은 뻗어나가지 못하고 오히려 제약된다. 그가 우리 시대의 중요한 시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우뚝 서게 된 것은 피폐한 농촌의 비극적 실상을 리얼리즘의 시각에서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시가 품고 있는, 자연의 섭리와 내면 깊이 교감하며 길어내는 정서의 근원성 때문이다.

-장석주, "20세기 한국문학의 탐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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