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도 둔덕골

                                                                              -유치환-

                                                       

 

 

 

거제도 둔덕골은

팔대(八代)로 내려 나의 부조(父祖)의 살으신 곳

적은 골 안 다가솟은 산방(山芳)산 비탈 알로

몇백 두락 조약돌 박토를 지켜

마을은 언제나 생겨난 그 외로운 앉음새로

할아버지 살던 집에 손주가 살고

아버지 갈던 밭을 아들네 갈고

베 짜서 옷 입고

조약(造藥) 써서 병 고치고

그리하여 세상은

허구한 세월과 세대가 바뀌고 흘러갔건만

사시장천 벗고 섰는 뒷산 산비탈모양

두고두고 행복된 바람이 한 번이나 불어왔던가

시방도 신농(神農) 적 베틀에 질쌈하고

바가지에 밥 먹고

갓난것 데불고 톡톡 털며 사는 칠촌 조카 젊은 과수며느리며

비록 갓망건은 벗었을망정

호연(浩然)한 기풍 속에 새끼 꼬며

시서(詩書)와 천하를 논하는 왕고못댁 왕고모부며

가난뱅이 살림살이 견디다간 뿌리치고

만주로 일본으로 뛰었던 큰집 젊은 종손이며

 

그러나 끝내 이들은 손발이 장기처럼 닳도록 여기 살아

마지막 누에가 고치 되듯 애석도 모르고

살아 생전 날세고 다니던 밭머리

부조의 묏가에 부조처럼 한결같이 묻히리니

 

아아 나도 나이 불혹(不惑)에 가까웠거늘

슬플 줄도 모르는 이 골짜기 부조의 하늘로 돌아와

일출이경(日出而耕) 하고 어질게 살다 죽으리.

 

 

 

 

               -시집 <울릉도>(1947)-

 

해           설

[개관 정리]

성격 : 서사적,

특성

① 직유법을 활용함으로써 심상을 구체화함.

② 영탄적 표현을 통해 화자의 깨달음을 부각함.

③ 향토적 시어를 활용하여 시적 공간의 분위기를 구체화함.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팔대(八代)로 내려 나의 부조(父祖)의 살으신 곳

   → 둔덕골이 화자에게는 근원적 공간임을 알게 해줌.

* 알로 → '아래로'의 사투리

* 두락 → 논과 밭의 넓이를 나타내는 단위. 보통 마지기라고 함.

* 마을은 언제나 생겨난 그 외로운 앉음새로

   → 마을의 위치가 외따로 떨어진 두메산골임을 의미함.

* 조약 → 민간요법에서 쓰는 약

* 베 짜서 옷 입고 / 조약 써서 병 고치고, 시방도 신농적 베틀에 질쌈하고 / 바가지에 밥 먹고, 호연한 기풍 속에 새끼 꼬며, 시서와 천하를 논하는 왕고못댁 왕고모부며

   → 문명의 힘이 미치지 못한, 전통적이고 순수한 삶의 공간임을 의미함.

* 신농 → 중국 고대 전설상의 제왕. 삼황의 한 사람으로, 농업 · 의료 · 악사(樂師)의 신, 주조(鑄造)와 양조(釀造)의 신이며, 또 역(易)의 신, 상업의 신이라고도 함.

* 질쌈 → '길쌈'의 사투리

* 데불고 → '데리고'의 사투리

* 두고두고 행복된 바람이 한 번이나 불어왔던가

   → 물질적 풍요를 누려본 적이 없는 둔덕골 사람들의 삶을 형상화함.

* 시방도 신농(神農) 적 베틀에 질쌈하고

   → 둔덕골 사람들이 아직도 옛날 방식대로 살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음.

* 만주로 일본으로 뛰었던 큰집 젊은 종손이며

   → 둔덕골의 척박한 조건(가난)을 벗어나고자 애써 보았던 인물임을 알 수 있음.

* 부조의 묏가에 부조처럼 한결같이 묻히리니

   → 성실하게 살아도 가난을 벗어날 수 없는 둔덕골 사람들의 역사가 계속 반복된다는 깨달음을 표현함.

* 아아 나도 나이 불혹(不惑)에 가까웠거늘

   → 시적 화자가 시인이라면, 30대 후반의 유치환을 떠올리게 함. 유치환은 광복 후 고향에 돌아와 교편을 잡으며 시작 활동을 했다고 하니, 창작 시기를 그 무렵으로 보면 정확할 듯함.

* 슬플 줄도 모르는 이 골짜기 부조의 하늘로 돌아와

   → 시적 화자는 타향살이를 하다가 나이 마흔에 가까워서야 고향에 돌아온 것이거나 아니면 돌아갈 결심을 하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음.

* 일출이경 → 해가 뜨면 나가서 밭을 간다는 뜻.

* 일출이경하고 어질게 살다 죽으리

   → 문명을 거부한 채 전통적인 삶을 살아가는, 고향에서의 순수하고 소박한 삶을 지향하고 있음.

 

주제고향인 둔덕골에서 가난하지만 어질게 살고자 하는 의지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둔덕골에서 여러 대에 걸쳐 지속되어 온 가난한 삶

◆ 2연 : 미래에도 계속될 둔덕골에서의 삶

◆ 3연 : 둔덕골에서 순리를 따라 살겠다는 의지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고향 땅인 거제도 둔덕골에서 자연과 역사의 이치에 순응하며 살아가고 싶다는 의지를 표현한 작품이다. 화자의 집안이 조상 대대로 살아온 둔덕골은 '조약돌 박토'이며 '외로운 앉음새'를 지닌 땅이라서, '사시장천 벗고 섰는 뒷산 산비탈'처럼 '행복된 바람'이 한 번도 불어온 적 없을 만큼 물질적 풍요와는 거리가 먼 가난한 마을이다. 그곳에 사는 일가친척 중에는 '큰집 젊은 종손'처럼 가난을 견디다 못해 뿌리치고 나섰던 이도 있고, '왕고못댁 왕고모부'처럼 '호연한 기풍 속에 새끼 꼬며 / 시서와 천하를 논하는' 이도 있지만, 그들 모두는 한결같이 고단하고 누추한 삶을 살다가, 자신의 조상들처럼 바로 그 땅에 묻히는 것이다. 불혹, 즉 마흔 살이 가까운 화자는 자신도 고향 땅에 돌아와서 해 뜨는 나가서 밭을 가는, 자연의 순리에 따르는 소박한 삶을 살고 싶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청마의 약력 소개의 대부분이 고향을 통영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거제시 둔덕면 방하리 507의 5번지에서 출생하고 3세 때 통영으로 이주했다. 그래서 다들 그의 고향이 통영인 것으로 안다. 엄격히 따진다면 그의 고향은 거제 둔덕면 방하리인 것이다. 둔덕천 중상류 지점을 가로지르는 방산교를 건너면 우람한 팽나무 하나가 길손을 맞이한다. 이 팽나무 아래에서 어린 시절 형인 동랑이 어린 동생 청마와 함께 해지는 줄 모르고 즐겁게 놀았으리라. 4백년은 될 법한 이 팽나무 밑뿌리 부분은 승천을 앞둔 용의 발톱같이 힘차 보인다. 그 바로 앞에 동랑, 청마 선생의 생가가 자리하고 있다. 생가 아래채 작은 방에서 동랑, 청마가 태어나 동랑이 다섯 살 청마가 세 살 때, 한의사였던 부친 유준수가 가솔을 거느리고 통영으로 이주하면서 이 곳을 떠나 통영에 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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