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

                                                                              -김춘수-

                                                       

 

 

 

조금 전까지는 거기 있었는데

어디로 갔나,

밥상은 차려놓고 어디로 갔나,

넙치지지미 맵싸한 냄새가

코를 맵싸하게 하는데

어디로 갔나,

이 사람이 갑자기 왜 말이 없나,

내 목소리는 메아리가 되어

되돌아온다.

내 목소리만 내 귀에 들린다.

이 사람이 어디 가서 잠시 누웠나,

옆구리 담괴가 다시 도졌나, 아니 아니

이번에는 그게 아닌가 보다.

한 뼘 두 뼘 어둠을 적시며 비가 온다.

혹시나 하고 나는 밖을 기웃거린다.

나는 풀이 죽는다.

빗발은 한 치 앞을 못 보게 한다.

왠지 느닷없이 그렇게 퍼붓는다.

 

 

 

지금은 어쩔 수가 없다고.

 

         -<거울 속의 천사>(2001)-

 

해           설

[개관 정리]

성격 : 애상적, 감상적

특성

① 감각적 심상을 통해 화자의 현재 상황을 나타냄.

② 현재 시제를 사용하여 현장감을 살림.

③ 독백적 어조로 화자의 내면을 드러냄.

④ 절망감과 체념을 드러내는 어조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어디로 갔나 → 반복을 통해 안타까움의 정서를 강조함.

* 맵싸한 → 맵고 쌉싸름한,  후각적 심상

* 내 목소리만 내 귀에 들린다. → 아내의 부재로 인한 공허함.

* 담괴 → 몸의 분비액이 큰 열을 받아서 생기는 병인 담(痰)이 살가죽 속에 뭉쳐서 생긴 멍울

* 이 사람이 어디 가서 잠시 누웠나 / 옆구리 담괴가 다시 도졌나

    → 아내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화자의 모습

* 이번에는 그게 아닌가 보다 → 아내의 죽음을 인정하기 시작하는 화자의 모습

* 나는 풀이 죽는다 → 아내의 죽음을 현실로 받아들임. 솔직함과 감정의 발가벗음.

* 어둠, 비 → 화자의 슬픔, 비통함을 심화시키는 소재

* 빗발 → 부정적 시어, 비이면서 동시에 화자의 눈물임.

* 지금은 어쩔 수가 없다고 → 체념의 정서

 

주제아내를 잃은 슬픔과 절망감

[시상의 흐름(짜임)]

◆ 1 ~ 10행 : 밥상을 대하며 아내를 찾지만 내 목소리만 들림.

◆ 11~19행 : 아내의 부재를 인식하며, 퍼붓는 비를 보며 체념하는 화자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아내 '숙경의 영전에 바친다'라는 헌사가 쓰인 시집 <거울 속의 천사>에 실린 작품으로, 평생을 함께 해 온 아내의 죽음이라는 절망적인 상황을 차마 현실로 받아들일 수 없는 시인의 안타까운 마음이 잘 표현된 시이다. 이 시에서 가장 감동적인 것은 '나는 풀이 죽는다'라는 표현이다. 80세가 다 된 인생의 대선배가, 시단의 원로로 만인의 존경을 받는 대시인이 그 모든 가면을 벗어 버리고 마치 순하고 착한 소년처럼 속마음을 고스란히 드러냈을 때 우리는 그의 아픔을 함께 위로해 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인공의 시', '가면의 시', '무의미의 시'를 쓰겠다고 긴장의 끈을 늦춘 적이 없던 시인도, 수십 년을 함께 살다가 먼저 떠난 아내의 죽음 앞에서는 이런 고집을 계속 부리지 못하고 그만 '맨얼굴의 시'를 쓸 수밖에 없었다.

이 시는 아내의 죽음으로 인한 허전함과 슬픔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아내의 부재가 화자에게는 여전히 인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에, 화자는 일상의 곳곳에서 아내를 찾는다. 그러나 아내는 그의 곁에 없으므로, 현실은 오히려 아내의 부재를 여기저기서 알려준다. 밥상을 봐도 아내 생각이 떠오르고, 아내가 자리에 없어도 잠시 자리를 비운 것이라 생각하는 화자는 아내의 부재가 삶의 곳곳에서 드러나는 상황에 절망하며 풀이 죽는다. 그리고 그런 화자의 어두운 마음처럼 어둠을 적시며 비가 오는 것이다. 일상의 공간에서 일어날 법한 장면을 통해 아내를 잃은 상실감을 잘 표현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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