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 · 7

                                                                              -조병화-

                                                       

 

 

 

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이 의자를 비워 드리지요.

 

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이 의자를 비워 드리겠어요.

 

먼 옛날 어느 분이

내게 물려주듯이.

 

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이 의자를 비워 드리겠습니다.

 

    -<시간의 숙소를 더듬어서>(1964)-

 

해           설

[개관 정리]

성격 : 낭만적,  상징적, 주지적

특성

① 어린 세대에게 존칭을 사용하여 자기 겸허와 새로운 세대에 대한 기대감을 표현함.

② 의자라는 객관적 상관물을 통하여 세대교체라는 경건하고 숙연한 분위기를 형상화함.

③ 평이한 시어의 사용과 유사한 통사구조의 반복

④ 점층과 반복으로 시적 중량감과 여운을 남김.

⑤ 특히, 점층(비워 드리지요. → 비워 드리겠어요. → 비워 드리겠습니다.)은 화자의 세대 교체에 대한 신념과 결의를 잘 드러냄.

⑥ 수미상관식 구성을 취함.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아침 → 새로운 시대, 시간성의 시어

* 의자 → 사회적 지위나 직책 또는 역할, 공간성의 시어

* 어린 분 → 새로운 세대

* 먼 옛날 어느 분 → 조상

* 내게 물려 주듯이 → 과거형인 '물려 주었듯이'보다 현재형으로 표현함으로써 박진감이 느껴짐.

* 3연 → 세대 교체와 문화 전승에 대한 사명감을 느끼는 동기에 해당함.

 

제재 : 의자

주제역사 인식과 세대 교체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역사 인식과 세대 교체 ―― 세대 교체의 역사적 필요성

◆ 2연 : 역사 인식과 세대 교체 ―― 1연의 반복, 시상의 심화

◆ 3연 : 역사적 존재 계승의 당위성 ―― 주제연

◆ 4연 : 역사 인식과 세대 교체 ―― 시상의 정리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연작시 '의자'는 시간 또는 역사의 흐름 위에 내가 차지하고 있던 공간(자리)을 교차시키면서, 시간 속에서의 공간 인식 또는 공간을 둘러싼 시간 인식을 개진한 작품이다. 그러나 1에서 10까지의 각 시편들은 이 큰 주제의 범위 안에서 그 소주제가 조금씩 다르게 되어 있다.

이 시는 세월의 흐름이 만상(萬象)의 변모를 있게 하는 자연의 섭리 앞에 선 인간 존재의 양식과 이러한 섭리를 경건하게 받아들이는 달관의 경지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다시 말해, 새로운 것의 등장과 낡은 것의 퇴장으로 반복되는 인간의 역사를 세대 교체를 뜻하는 '의자'라는 평범한 소재를 통해 상징적 수법으로 그려냄으로써 인간 생활의 순리적 변모의 당위성을 시화하고 있다.

이 시는 세대 교체라는 주제를 둘러싸고 같은 내용의 연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조병화의 많은 시들이 대체로 '동어반복적인 단순 구문에 의한 단조로운 형식에 의존한다.'라는 평을 받고 있는데, 이 시도 그 전형적인 한 예가 된다. 제1연, 제2연, 제4연은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으며, 한두 글자를 덧붙이거나 변화시키면서 정서적인 농도를 심화시키는 효과를 얻고 있다.

점층과 반복으로 시적 중량감과 여운을 담고 있으며, 생활과 역사성에 대한 경건함과 진지함을 경어체로 표현하여 그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또한, 각 연의 종결 어미를 '드리지요', '드리겠어요', '드리겠습니다.'로 변조하여 세대 교체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점차 증폭시켜 나아간 점도 이 시를 효과적 표현으로 만들어 주는 데 기여하고 있다. 따라서 '먼 옛날 어느 분이 ' 내게 물려주듯이' 물려 받은 이 의자를 이제는 '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에게 물려 주겠다는 화자의 말은 인간 존재의 변화 과정을 결코 절망적인 것이 아닌 희망의 눈으로 바라본 기대감의 표현이요, 생의 긍정적 인식에서 나온 시인의 깊은 지성적 윤리 의식의 반영인 것이다.

이 시에서 '의자'는 일상적이며 기능적인 의자가 아니다. 그것은 삶의 무대이며 터전이다. 인가은 유한한 생명을 지닌 존재이기 때문에 삶의 터전은 특정한 사람에 의해 점유될 수 없으며 계속해서 주인이 바뀌게 된다. 시인은 이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이제 그는 자신이 물러날 시간임을 알고, 겸허한 마음으로 새로운 세대에게 의자를 비워줄 채비를 한다. 새로운 세대를 '어린 분'으로 존칭하며, '옵니다', '~지요.' 등의 존칭 어미를 사용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지금 어드메쯤 / 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이 계시옵니다.'에서 '아침'은 새로운 시대를 상징하는 것이고, '어린 분'은 새로운 세대를 지칭한다. '그 분을 위하여 / 묵은 이 의자를 비워 드리지요.'에서 '의자'는 사회적 지위, 직책, 위치 등을 표상하는 상징물이다. '그 분', '어린 분'이라고 어린 세대에게 존칭을 쓰는 것에서 우리는 화자의 자기 겸허와 함께 새로운 세대에 대한 기대감을 느낄 수 있으며, '비워 드리지요.', '비워 드리겠어요.', '비워 드리겠습니다.'라고 점층적으로 변형 · 발전시킨 표현에서 우리는 세대 교체 또는 문화 전승의 신념과 결의를 엿볼 수 있다.

4연으로 된 이 시는 전체적으로 볼 대 AABA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1연과 2연, 4연은 '어린'이란 시어의 사용 여부와 끝에 오는 서술어 '비워 드리지요, 비워 드리겠어요, 비워 드리겠습니다.' 등의 종결어미의 차이만이 있을 뿐 동일한 양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같은 내용을 세 번 반복함으로써 의미를 강조하는 효과를 낸다. 그러나 우리는 동일한 내용 속에 깃들어 있는 미묘한 의미 차이를 감지해낼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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