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곁에서

                                                                              - 조태일 -

                                                       

 

 

 

온갖 것이 남편을 닮은

둘쨋놈이 보고파서

호남선 삼등 열차로

육십 고개 오르듯 숨가쁘게 오셨다.

 

아들놈의 출판 기념회 때는

푸짐한 며느리와 나란히 앉아

아직 안 가라앉은 숨소리 끝에다가

방울방울 맺히는 눈물을

내게만 사알짝 사알짝 보이시더니

 

타고난 시골 솜씨 한철 만나셨나

산 1번지에 오셔서

이불 빨고 양말 빨고 콧수건 빨고

김치, 동치미, 고추장, 청국장 담그신다.

양념보다 맛있는 사투리로 담그신다.

 

- 엄니, 엄니, 내려가실 때는요

   비행기 태워 드릴게.

- 안 탈란다, 안 탈란다, 값도 비싸고

   이북으로 끌고 가면 어쩔게야?

 

 

 

 

옆에서 며느리는 웃어쌓지만

나는 허전하여 눈물만 나오네.

 

             -<한국일보>(1971)-

 

해           설

[개관 정리]

: 산문적, 극적, 사실적

표현

* 잔잔하고 서정적인 어조

* 생활 속의 경험을 소재로 함.

* 시적 진술보다 산문적 진술을 많이 활용하여 친근감을 줌.

* 대화와 과거 일화를 삽입해 상황을 구체적으로 나타냄.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호남선 ~ 오셨다.

   → 아들이 보고 싶어 기차를 타고 성급하게 달려온 어머니의 마음엔 기쁨이 묻어 있다. 그러나 어머니의 인생 육십 고개는 힘겨웠음을 알 수 있다.

* 3연 → 대개의 어머니가 그러하시듯 어머니는 자식 집에 오면 자식네를 위해 온갖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주시고 싶어 하신다. 이런 행위에는 어머니의 사랑이 듬뿍 배어난다.

* 5연 → 비행기를 타고 내려가라는 아들의 말에 어머니는 끝내 거부한다. 이를 지켜보는 아들의 마음에는 안쓰러움과 헤어짐의 서운함이 내재해 있다.

 

제재 : 어머니

화자 : 시적 화자는 시인의 허구적 대리인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수필처럼 작가와 화자가 거의 일치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주제어머니의 삶을 바라보는 자식의 마음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아들이 보고 싶어 상경한 어머니

◆ 2연 : 출판 기념회 때 보이신 어머니의 눈물(과거)

◆ 3연 : 자식을 위해 음식을 장만하시는 어머니

◆ 4연 : 어머니와 아들의 대화(대화 삽입)

◆ 5연 : 어머니를 보내는 아들의 마음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작품은 제목이 말해 주는 것처럼 자식이 보고 싶어 상경한 어머니 곁에서 자식이 어머니의 삶을 바라보는 시선을 취하고 있다. 산문적 진술에 가까워 수필과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에 시적인 응축의 맛은 다소 떨어지지만 산문 같은 시를 쓰고자 한 작가의 의도는 잘 드러난다.

조태일은 출판사 '창작과 비평사'에서 시집 <국토(國土)>를 출간하면서, 민중 시인의 칭호를 받고, '창비' 계열의 시인으로 분류된다. 즉 시인 조태일은 1970년대의 시단에서 '발산하는' 시인으로 자리를 굳힌 것이다. 그러나 이 시는 위와 같이 시인이 추구하고 있는 기존 관념에서 조금 벗어나는 시이다. 그렇다고 이 시가 다른 보통의 서정시와 동일하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이 시는 나름대로 몇 가지 특징이 담겨 있다.

첫째, 이 시는 사적인 생활의 파편을 그대로 끌어다 내놓고 있다. 이 말은 결국 이 시는 허구적이 아니라체험적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극단적인 표현론자들은 이것은 시가 아니라 수필이라는 장르론을 펼칠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원칙적으로 긍정되어야 할 것은 시도 구체적인 나날의 현실과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이다. 더욱 1970년대의 시인들이 리얼리즘의 정신에 깊숙이 발을 들여놓았던 것을 보면, 시의 수필적 성격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이 시는 시적 표현과 산문적 표현이 뒤어켜 있다. 즉, 시어의 다소 지나친 범속화가 보인다. 이 점도 시인의 정신적 궤적을 지켜온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노래하다보니 너절한 기교가 필요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 표현된 것이라는 점이 이해된다.

둘째, 이 시에는 4연에 보이는 대화의 형태가 삽입되어 있다. 대화는 극적 요소이다. 대화는 작중 인물의 시점에 의하여 전개되기 때문에 서술자의 주관이 개입될 수 없다. 그러면 이런 극적 요소를 지니고 있는 대화를 서정 양식에 끌어들인 것은 무엇인가. 이 작품은 3연까지는 산문 형태의 진술로 일관되고 있다. 이 양식은 시인이 가지고 있는 개인적 경험을 환기하거나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것으로 제시했을 뿐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결점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으로 구체적 장면 제시를 할 수 있는 대화의 방식을 채택한 것이 4연이다. 흔히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의 표상은 안이한 센티멘탈리즘에의 추락이라는 위험을 야기할 수 있는데, 이 시는 대화의 삽입이나 장르 해체에 가까운 산문적 진술 등이 이를 극복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끝으로, 그는 1975년 시집  <국토>를 출간하면서 개인과 역사, 통일문제, 민중의 삶에 대해서 노래한다. 이 시의 4연도 언뜻 보면 사소한 개인 생할의 노래 같지만, 어머님의 말씀은 개인성을 벗어난다. 그것은 어머님의 답변 속에 분단 의식이 해학적으로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에 의하면 시는 시대의 산물로 인식된다. 이 시의 어머님의 말씀도 당시 분단 상황에 대한 문제를 자기 시의 중심적 주제로 끌어들이기 위해서 장치된 것이다.

- 윤재열 외 <즐거운 시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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