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1

                                                                              - 이성복 -

                                                       

 

 

 

가건물 신축 공사장 한편에 쌓인 각목더미에서 자기 상체보다 긴 장도리로 각목에 붙은 못을 빼는 여인은 남성, 여성 구분으로서의 여인이다 시커멓게 탄 광대뼈와 퍼질러 앉은 엉덩이는 언제 처녀였을까 싶으잖다 아직 바랜 핏자국이 수국(水菊)꽃더미로 피어오르는 오월, 나는 스무 해 전 고향 뒷산의 키 큰 소나무 너머, 구름 너머로 차올라 가는 그녀를 다시 본다 내가 그네를 높이 차올려 그녀를 따라 잡으려 하면 그녀는 벌써 풀밭 위에 내려앉고 아직도 점심시간이 멀어 힘겹게 힘겹게 장도리로 못을 빼는 여인,

 

어머니,

촛불과 안개꽃 사이로 올라오는 온갖 하소연을 한쪽 귀로 흘리시면서, 오늘도 화장지 행상에 지친 아들의 손발의, 가슴에 깊이 박힌 못을 뽑으시는 어머니…….

 

 

 

 

                                       -시집 <남해금산>(1986)-

 

해           설

[개관 정리]

: 산문적, 회고적, 시각적

표현 : 현재와 과거를 병치하여 의미를 효과적으로 전달함.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남성, 여성 구분으로서의 ~ 싶으잖다

       → 노동과 고생으로 여성미를 상실한 어머니의 희생적인 모습을 인상적인 묘사로 인물의 특성을 포착

           남자가 아닐 뿐, 남자가 하는 힘든 일을 모두 하시는 어머니의 모습

    * 수국꽃 → 어머니의 처녀 시절 아름답고 청신한 모습을 형상화한 소재

    * 구름 너머로 차올라 가는 그녀 → 처녀였을 적 아름답고 활기찼던 어머니에 대한 회상이 담긴 부분

    * 내가 그네를 높이 차올려 그녀를 따라 잡으려 하면

       → 화자가 처녀시절 어머니의 모습과 그 내면을 들여다보려고 하면

    * 아직도 점심 시간이 멀어 힘겹게 힘겹게 장도리로 못을 빼는 여인

       → 어머니는 이미 고통스런 노동의 현장에 있을 뿐이다.

    * 촛불과 안개꽃 사이로 올라오는 온갖 하소연을 한쪽 귀로 흘리시면서

       → 온갖 하소연을 귀담아듣지 않으시는 모습

    * 화장지 행상에 지친 → 세상살이에 상처받고 고통스러워 하는 존재

    * 아들의 손발의, 가슴에 깊이 박힌 못을 뽑으시는 어머니……

       → 아들의 상처와 아픔만 관심을 갖고 치유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형상화함.

 

제재 : 못(아픔과 상처와 고통)

화자 : 희생적 모성애를 관조하는 자

주제어머니의 고통과 희생적 사랑에 대한 연민과 고마움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공사장에서 각목의 못을 뽑는 어머니(한 때는 아름다운 처녀였던, 고통 받는 여인)

◆ 2연 : 노동으로 지친 아들의 가슴속 못을 뽑는 어머니(치유하는 존재)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두 개의 연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에서 어머니는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1연의 어머니는 언제 처녀였을까 싶은 어머니로, 가건물 신축 공사장에서 고된 노동을 하는 어머니이다. 2연의 어머니는 힘든 노동으로 지친 아들의 가슴에서 못을 뽑아 치유하시는 존재로서의 어머니이다. 이러한 두 어머니의 이미지는 '못'이라는 사물을 통해 연결되어 있다. 현실의 고통 속에 있는 어머니와 현실의 상처를 치유하는 어머니는 힘겹게 살아가는 모든 인간의 삶의 안식처이자 상처를 치유하는 존재이다.

 

이성복 시세계의 단면 : '구원과 사랑의 시적 모색'

이성복의 시에서 '정든 유곽'이 상징하는 폐쇄적인 현실의 중력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시적 모색은 생산의 시간을 향한 의지로 표현된다. '유곽'의 공간성이 불임의 시간, 곧 타자와의 소통의 불가능성을 담고 있다면 이러한 시간적 불모성을 뚫고 나가는 것은 타자와의 사랑을 통해서 새로운 시간적 가능서을 모색하는 일이 될 것이다.

이성복의 두 번째 시집 『남해금산』에서는 타자에 대한 사랑을 통해서 닫힌 시간을 열린 시간적 가능성으로 변모시켜 가는 시적 모색이 전면화된다. 『남해 금산』은 『뒹구는 돌』에서의 치욕과 고통이 변주되며, 도착적인 현실을 넘어서려는 시적 모색이 '사랑'의 담론을 통해서 표출되는 과정을 담고 있는 시집이다. 많은 논자들이 지적하였듯이 『남해 금산』에서는 아버지의 세계에서 어머니의 세계로의 변모가 두드러진다.

즉, 파시즘적 권력을 상징하는 아버지와 대립되는 지점에 누이/어머니의 여성성의 세계가 자리잡는다. 아버지의 세계는 치욕과 고통의 세계인데 반해, 대지적 모성으로서의 어머니는 현실의 상처를 치유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또 비가 오면>에서 어머니는 궁극적으로 세계의 폭력성이 침투하지 못하는 절대적 존재로 그려진다. '비가 온다, 잠기다, 적시다' 등의 동적인 서술어들은 '미동도 않는' 어머니의 정지 상태를 중심으로 배치되고 있다. '비가 내리다-젖다-스미다-잠기다'의 시간적 진행은 '미동도 않는' 어머니의 절대적 부동의 시간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어머니의 입김은 현실의 언어를 넘어서는 사랑의 언어를 의미하는 것으로 읽힌다. 이성복은 뜨거운 입김의 초월적 순간을 통해서 불임의 시간을 극복하는 생산의 시간적 가능성을 탐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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