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

                                                                              -나희덕-

                                                       

 

 

 

더 들어가요. 같이 좀 탑시다.

병원 엘리베이터 타기가 이렇게 어려워서야 ……

육중한 몸집을 들이밀며 한 아주머니가 타고 나자

엘리베이터 안은 빽빽한 모판이 되어 버렸다

11층, 9층, 7층, 5층 …… 문이 열릴 때마다 조금씩 헐거워지는 모판,

갑자기 짝수 층 엘리베이터에서 울음소리 들려온다

누구일까, 어젯밤 중환자실 앞에서 울던 그 가족일까,

모판 위의 삶을 실은 홀수 층 엘리베이터와

칠성판 위의 죽음을 실은 짝수 층 엘리베이터는

1층에서 만난다, 울며 떨어지지 않으려는 가족들과

짝수 층 엘리베이터에 실린 죽음을

홀수 층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바라보는 사람들 앞에서

흰 헝겊으로 들씌워진 한 사람만

짝수 층 엘리베이터에 남고, 문이 닫히고,

잠시 후 B1에 불이 들어온다, 그새에

홀수 층 엘리베이터 안에는 다시 사람들이 채워진다.

더 들어가요, 같이 좀 탑시다 …… 아우성이 채워지고, 문이 닫히고,

빽빽해진 모판은 비워지기 위해 올라가기 시작한다

1층, 3층, 5층, 7층, 9층, 11층 ……

삶과 죽음을 오르내리는 사다리는 잠시도 쉬지 않는다

 

엘리베이터는 나른다, 병든 입으로 들어갈 밥과 국을

엘리베이터는 나른다, 더 이상 밥과 국을 삼키지 못하는 육체를

엘리베이터는 나른다, 병든 손을 잡으려는 수많은 손들을

 

 

 

엘리베이터는 나른다, 더 이상 병든 손조차 잡을 수 없는 손들을

 

                -시집 <사라진 손바닥>(2004)-

 

해           설

[개관 정리]

성격 : 상징적, 서사적

특성

① 삶과 죽음에 대해 담담한 어조로 서술함.

② 유사한 문장 구조를 반복함.(2연)

③ 대립적 시어를 사용하여 삶과 죽음을 표현함.(모판↔칠성판, 아우성↔울음소리, 홀수↔짝수)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모판 → 엘리베이터에 빽빽하게 들어찬 살아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비유함.

* 칠성판 → 죽은 이를 비유함.(원래 칠성판은 관의 바닥에 깔거나 시신 위에 덮는 얇은 널조각으로, 북두칠성을 본떠서 일곱 구멍을 뚫은 데서 붙은 이름이다.)

* 울음소리 → 죽은 이에 대해 슬퍼하는 소리

* 아우성 → 살아 있는 사람들의 소리

* 1층에서 만난다 → 삶과 죽음의 경계가 엷어지는 공간, 삶과 죽음은 완전히 돌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뜻

* 엘리베이터 → 삶과 죽음을 오르내리는 사다리로 비유되며, 이처럼 삶과 죽음은 서로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공존하고 반복되는 것이다.

* 2연 → 유사한 문장 구조의 반복으로 다양한 대상들을 싣고 오르내리는 엘리베이터를 통하여 화자는 삶과 죽음의 공존을 담담한 어조로 진술하고 있다.

* 병든 입으로 들어갈 밥과 국 → 환자들이 먹을 식사

* 더 이상 밥과 국을 삼키지 못하는 육체 → 죽은 자

* 병든 손을 잡으려는 수많은 손들 → 병문안을 온 사람들

* 더 이상 병든 손조차 잡을 수 없는 손들 → 죽은 이를 조문하러 온 조문객

 

제재 : 병원 엘리베이터

주제 : 삶과 죽음의 의미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공간인 '엘리베이터'

◆ 2연 :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공간인 '엘리베이터'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시에서 화자는 같은 공간이 삶의 공간이 되기도 하고 죽음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는 점에 착안하여, 삶과 죽음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공존한다는 사실을 담담한 어조로 서술하고 있다. 1연에서는 '홀수 층 엘리베이터'를 살아 있는 사람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모판'으로, '짝수 층 엘리베이터'를 죽은 이를 실은 '칠성판'으로 비유하여 대조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 두 '엘리베이터'가 1층에서 만난다고 말함으로써, 삶과 죽음이 별개의 것이 아님을 보여 준다. 또한 '홀수 층 엘리베이터'가 사람들로 차고 비워짐을 반복하는 '삶과 죽음을 오르내리는 사다리'와 같다고 표현하고, 2연에서 유사한 문장 구조를 반복하여 다양한 대상을 싣고 오르내리는 '엘리베이터'의 모습을 제시함으로써 삶과 죽음은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서로 공존하며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 나희덕의 시 세계

나희덕 시인의 시편들은 언제나 일정한 구조적 긴장과 특유의 어법을 견고하게 지탱하고 있다는 점이 미덕이다. 엘리베이터, 밥상, 젓가락, 맨밥, 현관문, 신발, 호미 같은 사소한 일상의 소도구들이나 거미줄, 기러기 떼, 월식, 새, 나비, 나무, 비 같은 가시적 대상이나 현상들로부터 존재와 무(無), 죽음 같은 근원적 문제로 태연하게 건너뛰어 직행하는 그 속도와 고즈넉해서 더욱 섬뜩해지는 시선이 여운과 우울한 감동을 길게 남긴다. (제12회 김달진 문학상 시 부문 심사평)

◆ 시적 화자의 어조

병원은 다양한 삶의 모습이 존재하는 공간, 즉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이 시의 화자는 병원에서 나란히 오르내리는 두 대의 '엘리베이터'를 통하여 삶과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결코 호들갑스럽지 않고 덤덤한 목소리로, 살아 있는 사람들의 아우성과 죽은 이를 위한 무거운 침묵을 담아내고 있다. 화자는 '엘리베이터'라는 하나의 공간이 삶의 공간이 되기도 하고 죽음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는 점을 보여주면서, 삶과 죽음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는 사실을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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