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毒)을 차고

                                                                             
 -김영랑-
                                                       

 

 

 

내 가슴에 독(毒)을 찬 지 오래다.

아직 아무도 해(害)한 일 없는 새로 뽑은 독

벗은 그 무서운 독 그만 흩어 버리라 한다.

나는 그 독이 선뜻 벗도 해할지 모른다 위협하고

 

독 안 차고 살아도 머지 않아 너 나 마주 가 버리면

억만 세대가 그 뒤로 잠자코 흘러가고

나중에 땅덩이 모지라져 모래알이 될 것임을

'허무한디!' 독은 차서 무엇하느냐고?

 

아!  내 세상에 태어났음을 원망 않고 보낸

어느 하루가 있었던가. '허무한디!', 허나

앞뒤로 덤비는 이리 승냥이 바야흐로 내 마음을 노리매

내 산 채 짐승의 밥이 되어 찢기우고 할퀴우라 내맡긴 신세임을

 

 

 

 

나는 독을 차고 선선히 가리라.

막음 날 내 외로운 혼(魂) 건지기 위하여.

 

                          -<문장>(1939)-

 

해           설

[개관정리]

성격 : 의지적, 직설적, 참여적, 저항적, 상징적

표현

* 결연한 남성적 어조

* 부분적인 대화체(2연의 목소리가 이질적임)

* 상징에 의한 심상,  두 삶의 자세의 대조(벗과 나)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독 → 순수한 내면에 간직한 치열한 삶의 대결의지, 자기 방어의 의지

           험난하고 궁핍한 현실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려는 대항의식이면서 순결의 의지임.

           시의 순수성만을 고집했던 시인에게조차 변화하게 만든 '참을 수 없는 현실'을 짐작케 함.

* 독을 차는 행위 → 억압적인 현실에 맞서 영혼의 순수함을 잃지 않고 살아가고자 하는 화자의 의지

* 아직 아무도 해한 일 없는 새로 뽑은 독

      → 다른 사람을 해치는 데 사용될 독이 아니라, 스스로를 혹독하게 할 결심과 의지를 말함.

* 2연(벗의 충고) 

      → 허무한 세상에 이럭저럭 살다 가면 그만인 것을, 굳이 독을 차서 무엇하느냐는 내용임.

         '벗'은 허무주의에 빠져 현실에 적당히 타협 적응하려는 삶의 태도를 보이는 사람임.

* 앞뒤로 덤벼든 이리 승냥이 → 잔혹한 일제를 표상함.

* 이리 승냥이 바야흐로 내 마음을 노리매 → 마음에 독을 차게 된 이유

* 막음 날 → 삶이 끝나는 날

* 아! 내 세상에 태어났음을 원망 않고 보낸 / 어느 하루가 있었던가

      → 허무한 세상임을 인정하는 탄식

          그동안의 순수 지향이 현실에 순응하는 적당주의의 삶이 아님을 강하게 재인식함.

* 나는 독을 차고 선선히 가리라 → 주저함이나 망설임이 없는 결의에 찬 행동

                                                   자신의 결단의 의연함과 확고함을 천명함.

* 외로운 혼 → 불의와 타협하지 않은, 그래서 외로운 화자의 진정한 자아

 

제재 : 독(毒) → 부정적 현실에 대한 화자의 내면적 저항 및 결연한 대결 의지를 상징함.

◆ 주제부정한 현실에 대한 저항 정신과 순결한 삶의 의지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벗과의 대화(가슴에 찬 독)

◆ 2연 : 벗의 충고와 회유

◆ 3연 : 독을 찰 수밖에 없는 현실

◆ 4연 : 현실에 대한 대결 의지와 다짐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김영랑의 주된 시적 경향과는 다른 면을 보이고 있다. 순수 서정의 세계만을 그려냈던 영랑에게조차도 일제 강점기 말은 견디기 힘든 시기였음을 짐작할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시에서 시적 화자는 허무한 세상을 독을 차서 무엇하느냐는 벗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독(독한 마음)을 차고 살아가겠노라고 다짐하고 있다. 이것은 죽는 날 외로운 혼을 건지기 위해서라고 말하고 있다. 이 시에서 '독'은 험난하고 궁핍한 현실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려는 시적 화자의 대항 의식이며 순결 의지의 표현이다.

한편 이 시를 일제 말의 험난하고 궁핍한 현실과 그 속에서 부질없이 살아가는 자신의 삶에 대한 비탄과 울분을 독을 차는 행위로 표현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이리'와 '승냥이'들이 판치는 일제 말의 참담한 현실에 대한 적개심이 담겨져 있는 시로 '독을 차는' 행위는 일제에 대한 적극적인 저항 의지를 표상하는 동시에 고통스런 현실을 이겨나가고자 하는 순결 의지와 자기 초극의 정신을 반영한 것으로 이해하는 관점이다.

 

◆ 더 읽을거리 : <김태형,정희성 엮음 [현대시의 이해와 감상]-문원각>

현실 세계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언표(言表)하기를 그토록 꺼려 왔던 영랑으로서도 참을 수 없게 만든 일제말기의 발악적인 분위기가 어떤 것이었던가를 짐작케 해 주는 작품이다.

'앞뒤로 덤비는 이리 승냥이 바야흐로 내 마음을 노리매 / 내 산 채 짐승의 밥이 되어 찢기우고 할퀴우라 내맡긴 신세임을' 깨닫고 화자는 마음에 '독'을 품는다. 물정 모르는 사람처럼 마음의 평화를 갈구해 오던 영랑이기에 그의 속 어디에 이런 독기가 숨어 있었나 싶게 충격을 준다.

'벗'은 '땅덩이 모지라져 모래알이 될' 이 허무한 세상에서 '머지 않아 너 나마저 가 버리면' 그만인데 독을 차고 살아서 무엇하느냐고 충고를 한다. 그러나 '나'는 나를 노리는 식민지 현실 속에서 태어난 사실마저 저주하며 '선선히 독을 차고 가리라'고 다짐한다.

이 원망스러운 세상에서 단지 육신의 안일만을 추구하며 산다는 일이, 맑고 평화로운 '마음'의 세계를 지향해 온 영랑으로서는 견딜 수 없는 것이었으리라. 그래서 현실 순응주의를 버리고 그는 끝내 '외로운 혼 건지기 위하여' 현실에 맞서 저항할 것을 결의한다.

프란츠 파농의 말을 빌면, 식민지 시대의 민중들은 '제 땅에서 유배당한 자들'이다. 앉아서 '짐승의 밥'이 되기보다는 저항함으로써 '혼'을 건지겠다는 영랑의 결의는 그가 살았던 한 시대를 넘어서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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