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 너머로 훔쳐 듣는 대숲바람 소리

                                                                                                             -나태주-

                                                       

 

 

 

등 너머로 훔쳐 듣는 남의 집 대숲바람 소리 속에는

밤 사이 내려와 놀던 초록별들의

퍼렇게 멍든 날개쭉지가 떨어져 있다.

어린 날 뒤울안에서

매 맞고 혼자 숨어 울던 눈물의 찌꺼기가

비칠비칠 아직도 거기

남아 빛나고 있다.

 

심청이네집 심청이

빌어먹으러 나가고

심 봉사 혼자 앉아

날무처럼 끄들끄들 졸고 있는 툇마루 끝에

개다리소반 위 비인 상사발에

마음만 부자로 쌓여 주던 그 햇살이

다시 눈트고 있다, 다시 눈트고 있다.

장 승상네 참대밭의 우레 소리도

다시 무너져서 내게로 달려오고 있다.

 

등 너머로 훔쳐 듣는

남의 집 대숲바람 소리 속에는

내 어린 날 여름 냇가에서

손 바닥 벌려 잡다 놓쳐 버린

발가벗은 햇살의 그 반쪽이

앞질러 달려와서 기다리며

 

 

 

저 혼자 심심해 반짝이고 있다.

저 혼자 심심해 물구나무 서 보이고 있다.

 

                   - <대숲 아래서>(1973) -

 

해                설

[개관 정리]

성격 : 서정적, 우화적, 회고적, 애상적

표현 : 회상과 그리움의 목소리

              고전 소설을 문제(갈등) 해결의 실마리로 삼음.

              대숲바람 소리의 청각적 이미지를 시각적 이미지로 형상화함.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대숲바람 소리

      → 회상의 매개체로서 중요한 소재임. 화자가 대숲바람 소리를 등 너머로 훔쳐 듣는다는 것은 화자가 직면하고 싶지 않은 과거가 우연히 환기되었음을 의미하며, 한편 자신의 것이 아닌 어떤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 초록별 → 푸른 댓잎을 비유한 말, 또는 어린 시절의 화자를 비유한 말이기도 하다.

* 퍼렇게 멍든 날개쭉지 → 아픈 상처, 날지도 못하고 떨어진 좌절된 꿈, 어린 시절의 상처

* 눈물의 찌꺼기 → 어린 시절의 아픔과 상처가 아직 남아 있음을 보여 줌.

* 비칠비칠 → 이리저리 비틀거리는 모양을 나타낸 의태어

* 아직도 거기 / 남아 빛나고 있다 → 지난날의 아픔이 쉽게 잊혀지지 않고 뚜렷이 남아 있음을 의미함.

* 날무처럼 끄들끄들 졸고 있는 툇마루 끝에

      → 심 봉사가 마루에서 졸고 있는 모습에서 말리려고 내놓은 무가 햇볕에 꼬들꼬들 말라가는 모습을 연상함.

* 개다리소반 위 비인 상사발에 → 가난하고 초라한 심 봉사의 살림살이를 상징함.

* 상사발 → 품질이 매우 낮은 사발(막사발)

* 햇살 → 가난 속에서도 마음만큼은 부자로 만들어주던 희망 같은 것.

* 다시 눈트고 있다, 다시 눈트고 있다 → 가난하지만 마음만은 부자인 사람들의 희망적인 모습을 드러냄.

* 장승상네 참대밭의 우레 소리 → 심청이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풍요로움과 여유로움의 소리

* 장승상네 ~ 내게로 달려오고 있다.

      → 고전이 삽입된 이유가 암시된 구절

          심청이를 통해 화자는 자신의 어린 시절이 가난과 설움으로 점철된 아픈 시절이었지만, 그 가운데에도 희망이 되었던 그 무엇인가를 떠올리고 있음.

* 발가벗은 햇살의 그 반쪽 → 어린 시절 아름다운 추억의 일부

                                           꾸미지 않아도 그 자체로 아름다운 어린 시절의 순수한 희망

* 저 혼자 심심해 반짝이고 있다. → 오랫동안 그 추억과 희망을 잊고 있었음을 의미함.

* 저 혼자 심심해 물구나무 서 보이고 있다.

      → 어린 시절의 희망이 거꾸로 서 있다는 것은, 어른이 된 지금의 화자가 어린 시절의 희망과 꿈을 이루지 못한 상태에 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제재 : 대숲바람 소리

주제순수한 어린 시절에 대한 회상과 그리움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어린 시절의 아픔 회상

◆ 2연 : 어린 시절의 가난했던 꿈 회상(가난과 설움 속에서 발견하게 되는 희망)

◆ 3연 : 어린 시절 순수하고 아름다운 추억에 대한 그리움 회상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대숲바람'이라는 자연의 소리를 통해서 화자의 유년시절을 회상하는 작품이다. 대숲 바람 소리가 가진 청각적 이미지를 시각적 이미지로 치환시켜 대숲의 아름다움을 부각시키는 한편, 고전 세계의 인물을 등장시켜 대숲이 가진 이미지를 환상적을 치환시키기도 한다. 대숲바람은 회상의 매개체이다.

화자는 등 너머로 들려오는 대숲바람 소리를 통해 유년 시절을 돌이켜보며, 그 가난한 시절의 아픈 기억들과 더불어 그 시절을 환하게 비추고 동무가 되어 주었던 '햇살'을 통해 희망을 떠올리고 있다. 3연의 '햇살'은 2연의 햇살과 이미지가 중첩된다. 심 봉사와 심청에게 '햇살'은 가난함 속에서도 마음의 희망으로 자리잡고, 장 승상네 집의 천둥소리를 통해 나에게 새로운 희망을 떠오르게 하는 역할을 한다. 다소 이질적인 고전의 세계가 왜 삽입되었는지를 설명해 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유년의 기억은 아픈 것이었고, 그래서 대면하기 싫었던 과거라고 생각했지만, 성년이 된 지금 그 아픈 기억도 아름답게 느껴지는 어린 시절을 대숲의 정경과 함께 시각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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