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그마니네

                                                                              -고은-

                                                       

 

 

 

갈뫼 딸그마니네집

딸 셋 낳고

덕순이

복순이

길순이 셋 낳고

이번에도 숯덩이만 달린 딸이라

이놈 이름은 딸그마니가 되었구나

딸그마니 아버지 홧술 먹고 와서

딸만 낳는 년 내쫓아야 한다고

산후조리도 못한 마누라 머리끄덩이 휘어잡고 나가다가

삭은 울바자 다 쓰러뜨리고 나서야

엉엉엉 우는구나 장관이구나

그러나 딸그마니네 집 고추장맛 하나

어찌 그리 기막히게 단지

남원 순창에서도 고추장 담그는 법 배우러 온다지

그 집 알뜰살뜰 장독대

고추장독 뚜껑에

늦가을 하늘 채우던 고추잠자리

그 중의 두서너 마리 따로 와서 앉아 있네

그 집 고추장은 고추잠자리하고

딸그마니네 어머니하고 함께 담근다고

동네 아낙들 물 길러 와서 입맛 다시며 주고받네

그러던 어느날 뒤안 대밭으로 순철이 어머니 몰래 들어가

그 집 고추장 한 대접 떠가다가

목물하는 그 집 딸 덕순이 육덕에 탄복하여

아이고 순철아 너 동네장가로 덕순이 데려다 살아라

 

 

 

세상에는 그런 년 흐벅진 년 처음 보았구나

 

       -<만인보 1>, 창작과 비평사(1986) -

 

해           설

[개관 정리]

성격 : 서사적, 민중적, 해학적, 비판적

특성

① 검은색(숯덩이)과 붉은색(고추장)의 색채의 대조

② 대화의 직접 인용과 설명이 적절히 융합됨.

③ 전반부(비극적 상황)와 후반부(긍정적 평가)의 대립적 구조

④ 해학과 비애를 뒤섞인 표현의 묘미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그러나 → 시적 전환이 이루어짐.

 

: 슬픔과 한을 뛰어넘은 민중들의 해학과 여유로움

           봉건시대 아낙네들의 삶의 아픔과 그것을 이겨내는 넉넉한 힘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시가 실린 시집 <만인보>는 주로 시인을 함께 길러온 어린 시절의 마을사람들에 얽힌 이야기이다. 시인은 고향마을 사람들이 겪는 삶의 기쁨과 슬픔, 아쉬움과 그리움을 기억 속에서 다시 건져올려 지금 현재의 이 땅에다 올올이 풀어놓는 작업을 벌여나가고 있다. 그러나 그의 시로 다시 살아나는 삶은 유독 시인의 고향마을 사람들에 그치지 않는다. 이 산천의 곳곳에서 땀과 눈물을 흘리며 살다 마침내 바람부는 들녘에 목숨을 누이는 모든 이들의 이야기인 것이다.

이 시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 또한 '딸그마니네'의 특수한 이야기일 수는 없다. 사내 중심의 가부장제 사회에서 단지 딸을 낳았다는 사실만으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살아야 했던 봉건시대 모든 아낙의 아픔이 배어져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이들의 아픔을 노래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고추장맛'을 고리로 하여 시인은 억압받는 아낙의 삶이 너끈한 힘으로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러 순철 어머니의 목소리로 터져나오는 감탄은 뭍으로 갓 잡아올린 물고기의 퍼득거림에 비길 만한 싱싱함을 여지없이 건져올리고 있다. 더욱이 이 시 전체  감싸는 빨간 색감은 '딸그마니네'가 암시하는 숯덩이의 이미지와는 정반대의 빠알간 고추, 고추잠자리, 고추장, 덕순의 허벅진 육덕으로 이어지며 탄탄한 시적 아름다움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러나 정작 여타의 시인과 다른 고은 시의 아름다움은 그 아름다움이 짐짓 지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넉넉한 민중 정서의 핵을 꿰뚫어 보고 있음에랴.

 

◆ 더 읽을거리

고은의 <만인보>는 흔히 인물시의 가능성을 보여주면서 민중들의 진솔하면서도 싱싱한 삶의 세목들을 형상화 해내고 있다는 점에서 민중문학이 이룩한 값진 성과로 논의된다. 이 작품은 이러한 기존의 평가에 걸맞게 '딸그마니네'로 불리는 한 일가의 이야기를 질펀하게 풀어내고 있다.

딸만 줄줄이 일곱. 오죽했으면 막둥이 이름이 '딸그마니'랴. 억장이 무너지는 가장의 횡포에도 산모는 말 한마디 하지를 못한다. 이 작품은 얼핏 보면 봉건적 가치관과 남존여비 사상을 비판하고 있는 것 같지만, 오히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등과 설움을 녹여내며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정겹게 그려내고 있다. 아들 못 낳는 설움만큼 지독한 큰 설움도 없다 하는데, 그러기에 딸그마니네 '고추'장만큼은 일품이다. 그뿐인가. '흐벅지'게 '육덕' 좋은 덕순이까지.  복잡하고도 신난한 사람살이가 그래도 살아볼 만한 것은 이런 적절한 보상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또 하나, 이 작품의 장점은 판소리 장단에 어우러지듯 질척하면서도 육화된 표현들이다. 노련한 이야기꾼의 이야기를 듣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조는 작품의 재미를 배가시키면서 독자의 탄복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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