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규-

                                                       

 

 

 

남녘 들판에 곡식이 뜨겁게 익고

장대 같은 빗줄기 오랫동안 쏟아진 다음

남지나해의 회오리바람 세차게 불어와

여름내 흘린 땀과 곳곳에 쌓인 먼지

말끔히 씻어갈 때

앞산의 검푸는 숲이 짙은 숨결 뿜어내고

대추나무 우듬지에 한두 개

누르스름한 이파리 생겨날 때

광복절이 어느새 지나가고

며칠 안 남은 여름방학을

아이들이 아쉬워할 때

한낮의 여치 노래 소리보다

저녁의 귀뚜라미 울음소리 더욱 커질 때

가을은 이미 곁에 와 있다

여름이라고 생각지 말자

아직도 늦여름이라고 고집하지 말자

이제는 무엇인가 거두어들일 때.

 

 

 

 

 

해           설

[개관 정리]

성격 : 성찰적, 사실적, 자연순응적

특성

① 활유법을 구사하여 대상을 생동감 있게 묘사함.

② 불완전한 문장으로 시상을 마무리하여 시적 여운을 줌.

③ '~때'를 반복적으로 제시하여 시적 상황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함.

④ '~말자'와 같은 종결형을 사용하여 화자의 생각을 직접적으로 드러냄.

⑤ 동일한 시어의 반복으로 인한 율격의 형성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여름내 흘린 땀 → 결실을 얻기 위한 노력

* 누르스름한 이파리, 저녁의 귀뚜라미 울음소리 → 자연적 소재로 계절적 배경을 드러냄.

* 광복절, 며칠 안 남은 여름방학 → 일상적 소재로 시적 구체성을 획득함.

* 늦여름이라고 고집하지 말자 → 스스로에 대한 성찰을 통해 바람직한 삶의 자세를 노래함.

* 남지나해 → '지나'는 중국을 뜻함. 남지나해는 남중국해로 필리핀과 인도차이나 반도가 있는 바다임.

* 우듬지 → 나무의 꼭대기 줄기

 

주제 : 자연에 순응하는 삶과 성찰

[시상의 흐름(짜임)]

◆ 1~5행 : 한여름의 장마와 땡볕과 태풍

◆ 6~8행 : 숲 색깔의 변화와 대추나무 잎의 변화

◆ 9~11행 : 날짜로 가을이 왔음을 앎.

◆ 12~13행 : 곤충 소리로 가을이 왔음을 앎.

◆ 14~17행 : 가을은 놀 때가 아니고 거두어 들일 때임.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작품은 시간과 계절의 변화와 그 의미를 깨달아 그에 맞는 삶의 자세의 필요성을 노래한 시이다. 이 시는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3행까지는 시간의 흐름을 절감하게 되는 시기를 말하는 부분이고, 14행부터는 비로소 다가온 시기에 대한 깨달음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화자는 여름내 흘린 땀의 흔적을 시원한 바람이 씻어가고 나뭇가지에 한두 개의 잎사귀가 빛바랠 즈음이 되면, 그때는 치열하게 삶에 부대낄 때가 아니라 한 해의 결실을 준비할 시점임을, 잔잔하고도 사색적인 어조로 이야기하고 있다. 이 시의 화자는 지혜가 있어 여름 속에서 가을이 시작되는 기미를 포착하여 '거두어들일' 준비를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가을을 확실히 느낄 때에나 '거두어들일 때'임을 생각한다. 설혹 느낀다 하여도 '며칠 안 남은 여름방학을 / 아이들이 아쉬워' 하듯이 '아직도 늦여름이라 고집하'고 놀리려 한다. 이러한 청자들에게 화자는 '가을은 이미 곁에 와 있다 / 여름이라고 생각지 말자'고 권유하며 놀기보다는 '무엇인가 거두어들일' 때임을 알라고 당부하고 있다.

김광규는 일상적 언어와 자연적인 소재를 사용하여 구체적인 삶의 모습을 형상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스스로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며 성찰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시에서도 시인은 인생의 흐름을 계절의 변화에 대응시키고 이를 통해 성찰의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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