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밝은 날에

                                                                              - 서정주 -

                                                       

 

 

 

신령님,

처음 내 마음은 수천 만 마리

노고지리 우는 날의 아지랑이 같았습니다.

번쩍이는 비늘을 단 고기들이 헤엄치는

초록의 강 물결

어우러져 날으는 아기구름 같았습니다.

 

신령님,

그러나 그의 모습으로 어느 날 당신이 내게 오셨을 때

나는 미친 회오리바람이 되었습니다.

쏟아져 내리는 벼랑의 폭포,

쏟아져 내리는 소나기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신령님,

바닷물이 작은 여울을 마시듯

당신이 다시 그를 데려가시고

그 훠 ― ㄴ한 내 마음에

마지막 타는 저녁노을을 두셨습니다.

 

신령님,

그리하여 또 한 번 내 위에 밝는 날

이제

 

 

 

산골에 피어나는 도라지꽃 같은

내 마음의 빛깔은 당신의 사랑입니다.

 

            -<서정주 시선>(1956)-

 

해                설

[개관 정리]

성격 : 전통적 , 독백적, 기구적, 희망적, 불교적, 낭만적

표현 : 기구적인 어조, 사랑을 굳게 지키겠다는 의지적 어조

              높임법 사용으로 여성적이고 섬세한 분위기를 자아냄.

              현재의 관점에서 과거, 현재, 미래를 시간 순서대로 서술함.

              익숙한 고전에서 화자의 상황을 차용해 옴.

              이도령에 대한 사랑을 신령님에 대한 기도를 통해 절대화함.

              고전적 소재에 대한 현대적 의미 부여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신령님 → 청자로, 운명론적 사고가 반영된 시어임.

* 아지랑이, 애기 구름 → 순수함과 평온함의 이미지

* 회오리 바람, 폭포, 소나기 비 → 격정적인 사랑의 상징

* 당신은 다시 그를 데려가고 → 임과의 이별이 운명적인 것임을 의미함.

* 그 훠-ㄴ한 내 마음 → 이별 후의 상태, 상실감과 허전함.

* 저녁 노을 → 이별 후의 상태로, 불 타는 듯한 그리움을 의미

* 기인 밤 → 이별 후의 상태로, 기다림의 고통을 나타냄.

* 또 한 번 내 위에 밝는 날 → 임과의 재회

* 도라지꽃 →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을 상징, 화자의 내적 성숙을 형상화

 

제재 : 임과 이별한 춘향

: 춘향의 말 · 2

주제춘향의 재회에 대한 간절한 기다림

           재회를 기다리면서 자신의 사랑을 지키겠다는 굳은 의지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당신을 만나기 전(순수) - 기다림

◆ 2연 : 당신과 만났을 때(열정) - 만남

◆ 3연 : 당신과 헤어진 후(허무) - 헤어짐

◆ 4연 : 다시 밝는 날(영원한 사랑) - 재회 소망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고대소설의 하나인 <춘향전>에 나오는 '춘향'을 소재로 한 시로는, 서정주의 <추천사>, <춘향유문>, <다시 밝은 날에>, 강은교의 <춘향이의 꿈 노래>, 박재삼의 <자연>, 김영랑의 <춘향> 등이 널리 알려져 있다. 그 중 한 편인 이 시는, 춘향이 사랑하는 임과 이별하고 재회의 날을 간절히 소망하며 자신의 사랑을 굳게 지키겠다는 의지를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1연은 춘향이가 '그'를 만나기 이전의 심리 상태를 보여주고 있으며, 사랑의 격정에 휩싸이기 이전의 평화롭던 마음을 보여 주고 있다.

2연은 '그'를 만난 이후, '미친 회오리바람'과 '벼랑의 폭포'와 '소나기비'와 같은 열정에 빠진 자신의 심리를 나타내고 있다.

3연은 이별의 아픔을 겪은 후의 심리를 표현한 것으로, '그 훠―ㄴ한 내 마음에'는 아직 '마지막 타는 노을'같이 뜨거운 사랑이 타오르고 있지만, 재회를 기다리는 그 하루하루는 마치 '기인 밤'과 같다는 화자의 애절한 고백을 통해 이별을 겪은 후의 아픔을 잘 보여 주고 있다. '그'가 떠나간 것은 단순히 '그'의 의지 때문이 아니라, '바닷물이 작은 여울을 마시듯' 신령님께서 데리고 간 것이라는 구절은, 화자가 운명론적 인생관을 가진 존재임을 알게 해 준다.

4연은 화자가 '도라지꽃 같은 사랑'을 지키며 '또 한 번 내 위에 밝는 날'로 표상된 재회의 날을 기다리겠다는 화자의 굳은 결의를 보여 주고 있다. 물론 이 결의는 '정절'이나 '열녀불경이부'와 같은 봉건적 윤리관의 반영이 아닌, 순수한 애정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시공을 초월해 존재하는 춘향의 사랑을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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