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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거센 밤이면 몇 번이고 꺼지는 네모난 장명등을 궤짝 밟고 서서 몇 번이고 새로 밝힐 때 누나는 별 많은 밤이 되어 무섭다고 했다.
국숫집 찾어가는 다리 우에서 문득 그리워지는 누나도 나도 어려선 국숫집 아히
단오도 설도 아닌 풀벌레 우는 가을철 단 하루 아버지의 제삿날만 일을 쉬고 어른처럼 곡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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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캐꽃>(19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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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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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관 정리] ◆ 성격 : 고백적, 회상적 ◆ 특성 ① '과거-현재-과거'의 순으로 시상이 전개됨.
◆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바람이 거센 밤 → 화자와 누나가 처해 있는 현실적인 어려움 * 몇 번이고 꺼지는 네모난 장명등 →고달프고 힘겹게 살아야 했던 유년시절을 암시 * 국숫집 찾아가는 다리 위 → 과거와 현재를 매개하는 공간, * 국숫집 → 화자의 유년의 삶과 기억의 공간 * 누나도 나도 어려선 국숫집 아히 → 생계 유지를 위해 국숫집을 했었던 유년 시절 * 단오도 설도 아닌 풀벌레 우는 가을철 → 화자의 쓸쓸한 정서적 분위기 * 어른처럼 곡을 했다. → 제삿날의 상황 제시(과거)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현실의 어려움이 교차했을 화자의 정서를 짐작할 수 있음.
◆ 주제 : 남매의 고단한 삶과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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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어린 시절 누이에 대한 회상(과거) ◆ 2연 : 국숫집을 찾아가는 다리 위(현재) ◆ 3연 : 가난했던 어린 시절에 대한 회상(과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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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시의 화자는 둘째 연이 보여주듯이, 현재 '국숫집 찾어가는 다리 우에' 있다. 그는 국수가 갑자기 먹고 싶어 국수집을 찾아가는 길일 것이다. 그 길 위에서 화자는 누나를 먼저 그리워한다. 그 그리움은 그를 '국숫집 아히'로 지내던 과거로 돌려보낸다. 오래 전 화자가 어렸을 때를, 즉 누나마저 '장명등을 / 궤짝 밟고 서서' 밝힐 정도로 어렸을 때를, 그는 추억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때 화자의 어머니는 국숫집을 하였던 것이다. 화자의 아버지는 무슨 사연 탓인지 알 수 없으나 일찍 죽었고, 그래서 어머니는 남매를 키우기 위해 국숫집을 한 것이리라. 그 국숫집에는 네모난 장명등이 있었다. 이 등은 밤에 국숫집을 찾는 손님을 위해 달아놓은 것일 게다. 물론 그 등의 의미는 그 이상이다. 가령, 그 등은 나그네에게 길을 안내하는 가로등 역할도 하고 있을 터이다. 다시 말해 그 등은 어두운 길을 가는 이에게 길을 밝혀 주는, 또는 길 잃은 이에게 길을 안내하는 희망의 등이기도 하였을 것이다. 어쨌든 그 등은 배가 고파서 국숫집을 찾는 이에게 보내는 '구조'의 등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그 등이 꺼져서는 아니 된다. 그 등은 등대처럼 항상 켜져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남매는 그 등이 거센 바람 때문에 꺼지면 '몇 번이고' 그 등을 켜는 것이다. 그만큼 그것은 이들에게 중요한 생존의 등이요, 동시에 국수로 허기를 면하려는 이들에게는 참으로 고마운 등인 것이다. 그런 국숫집에서 화자의 어머니는 하루도 빠짐없이 부지런히 일하였다. 이는 남들이 다 노는 때인 단오나 설날에도 장사를 하였다는 사실에서 잘 드러난다. 어머니는 일년에 하루만, 아버지의 제삿날에만 국숫집 문을 닫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아버지가 죽은 어느 가을날에만 이들 가족은 '일을 쉬고' 제사를 올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 반가운 휴일에, 아니 슬픈 기일에, 어머닌 말할 것도 없고 어린 남매도 '어른처럼 곡을' 하였다. 그 '풀벌레 우는' 계절에 이들도 그 벌레처럼 슬프게 울었다는 것이다. 일찍 남편을 잃은 미망인이나, 일찍 아버지를 여읜 남매 모두 깊은 슬픔과 상실감에 젖어 있었을 것인즉, 이들은 그렇게 통곡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몹시 가난한 데다가 아버지마저 없어 더욱 서러웠을 화자의 유년기 삶의 실상이 이 대목에 특히 잘 농축되어 있는 셈이다. 물론 이 시의 화자는 시인 이용악을 닮았다. 시인은 일찍 아버지를 여의었고 그 바람에 시인의 어머니는 국수장사 등을 하면서 시인의 5남매를 키웠다. 이런 시인의 유년기가 바로 위의 시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일제 치하에서 이 시의 주인공들이 겪은 고통 못지 않은 고통을 오늘날 겪고 있는 이들에게 이 시가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이 시의 인물들처럼 우리 시대의 가난한 사람들도 '희망'이라는 이름의 '장명등' 하나를 꼭 달아두기를 간절히 바란다.
◆ 더 읽을거리 시집『오랑캐꽃』에 수록되어 있는 <다리 위에서>는 그의 유년의 곤궁했던 삶을 회고하는 작품이다. 제2연의 1, 2행만 현재의 정황이고 나머지는 다 과거에 대한 기술이다. 성인이 된 화자가 문득 국수가 먹고 싶은 생각이 나서 국숫집을 찾아간다. 국숫집을 찾아가는 다리 위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과거를 회상한다. '누나도 나도 어렸을 땐 국숫집 아이였다.'고. 이용악의 집안은 조부때로부터 상업에 종사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조부는 소달구지에 소금을 싣고 러시아 영토를 넘나들며 금(金)으로 바꾸어 오는 일을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의 아버지 역시 조부의 뒤를 이어 이런 일을 하다가 객사한 것으로 추측된다. 갑자기 가장을 잃은 그의 어머니는 국수장사, 떡장사, 계란장사 등을 하면서 어렵게 5남매를 길렀던 것 같다. 날이 어두워지면 처마 끝에 장명등(長明燈)을 밝혔던가 보다. 이는 찾아오는 손님들의 발걸음을 비추어 주는 외등이면서 또한 국숫집임을 알리는 시그널이기도 했으리라. 그 등(燈)이 거센 바람 때문에 하룻밤에도 몇 번이고 꺼진다. 화자는 당시의 혹독했던 시대적 배경을 '겨울밤 거센 바람'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물론 연약한 그 등불은 위태롭게 살아가는 가족들의 상징물로 읽을 수 있다. 자주 꺼진 불을 다시 붙이기 위해 남매가 궤짝을 밟고 올라선 것으로 보아 그들은 10살 미만의 어린이였던 것 같다. 불을 붙이려고 고개를 쳐든 누나의 시야에 밤하늘의 별들이 벌떼처럼 쏟아져 내린다. 아마 깊은 호수 위에 거꾸로 매달린 듯 현기증이 일었으리라. '어머니의 국숫집'은 연중 무휴로 영업을 했던 것 같다. 단오나 설 같은 명절에도 쉬지 않고 문을 열었다. 그러니 명절이라고 해도 화자는 밖에 나가 친구들과 어울려 놀지도 못하고 집에서 어머니의 시중을 들어야만 했으리라. 그런데 일년에 꼭 하루 국숫집이 쉬는 날이 있다. 그날이 곧 아버지의 제삿날이다. 그날은 풀벌레도 쓸쓸히 울어대는 가을철이다. 어린 자식들은 어머니를 따라 어른처럼 곡을 했다. 그날은 어쩌면 온 가족들이 한데 어우러져 통곡으로 슬픔을 달래는 공인된 '울음의 날'이었을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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