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쟁이

                                                                              - 도종환 -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다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당신은 누구십니까>(1993)-

 

해           설

[개관 정리]

성격 : 의지적, 관조적, 점층적

표현 : '담쟁이'가 벽을 넘는 과정을 유사한 통사 구조의 반복을 통해 점층적으로 제시함.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벽 → 시련과 절망의 상황, 삶의 한계 상징

* 담쟁이 → 절망적 상황과 한계를 극복하려는 의지적 존재

*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 극한의 상황, 한계상황

*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 화합(공동체 의식, 연대의식)을 통해 절망의 상황을 극복함.

*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 벽을 푸른 담쟁이로 다 덮어 버린 모습이 연상

                                                   절망을 극복하고 이겨낼 때까지

* 바로 그 절망을 다잡고 놓지 않는다. → 절망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절망을 외면하면 안 된다.

* 담쟁이 잎 하나 → 선구자적 자세를 지닌 자

* 담쟁이 잎 수천 개 → 다수의 민중

* 결국 → 절망감의 극복, 의지의 승리

 

제재 : 담쟁이(시적 대상) → 어떤 상황에서도 절망하지 않는 의지와 생명력의 주체

화자 : 시련과 절망의 상황에 빠져 있는 중에 벽을 타고 올라가는 담쟁이를 바라보며 깨달음을 얻는 우리

주제현실의 고난(절망)을 극복하는 담쟁이의 의지와 생명력

[시상의 흐름(짜임)]

◆ 1 ~ 4행 : 우리가 벽을 느낄 때 담쟁이는 벽을 오른다.

◆ 5 ~ 10행 : 우리가 절망의 벽이라고 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여럿이 손을 잡고 절망을 놓지 않는다.

◆ 11 ~ 13행 : 우리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절망할 때 담쟁이는 결국에는 넘는다.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전교조 활동으로 인해 해직되고 난 후 막막해하던 당시의 상황,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해 그 방도를 구하고 논의하는 자리에서 아무리 얘기해도 뾰족한 생각이 나지 않던 중, 창 밖을 바라보다 벽의 담쟁이를 발견하고 시를 쓰셨다고 한다. 흙 한 톨 없고 물 한 방울 없는 벽을 타고 올라가는, 자신보다 더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원망 않고 조급해 하지 않고 주변의 줄기들을 이끌고 함께 한 발짝씩 나아가는 담쟁이를 바라보며 자신의 처지를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하는 시인의 모습. 능히 상상이 가고도 남는다. 그의 진솔한 감정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시이기에 그 감동 역시 진솔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그는 담쟁이를 보면서 '나는 지금 너무 조급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고 성찰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도종환 시인의 이 시는 1993년 창비시선의 하나인 『당신은 누구십니까』에 실린 것이다. 이제 15년도 넘은  시이건만 바로 지금의 나와 우리에게 주는 시로 여겨져서 여전히 만인에게 사랑받는다.

<담쟁이>는 올해 6월 24일 전교조가 19번째로 개최한 '교육시장화 저지와 교육복지 확대를 위한 저지한 전국교사대회'에서도 민중의례를 하면서 울려퍼졌고, 정당 공천제를 폐지하자고 하는 토론회의 자료집에도 실렸다. 이 시를 블로그에 옮긴 것도 이 토론회 자료집을 보다가 생각나서이다.

도종환 시인에 따르면 지금은 민주당 국회의원인 이용섭 씨가 국세청장 시절, 내부 개혁을 추진하며 '담쟁이'를 읊어 직원들의 심금을 울렸고, 이후 그는 개혁에 성공한 후 청사 직원들에게 앞으로 죽 '담쟁이 청장'으로 불러 달라고 했더란다. 그 얘기를 듣고 도종환 시인은 "자기만이 아닌 남에게 주는 시를 쓰는 것도 필요하다."고 깨달았으며, 자신의 시를 사용함에 있어 저작권을 주장하지 않고, 누구든 필요하다면 시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나라면 어떨까. 내가 지은 시가 내가 시를 쓸 때의 의도와는 달리 사용된다면 기분이 나쁘지 않을까. 담쟁이가 벽을 넘는다는 사실은 참 감동적이지만, 담쟁이가 누구를 지칭하고, 벽이 무엇을 형상화하는지에 따라 느낌이 다륵 다가오지 않을까 싶다.

교사일 때 전교조 활동을 하다가 해고되었던 도종환 시인(그는 전교조 충북지부장을 역임하였다)은 가끔씩 '나 혼자 살길을 찾을까' 고민하기도 했지만, 벽돌담을 기어오르는 담쟁이를 보고 생각이 바뀌었단다. "척박한 벽 위에 뿌리 내리고 살아간다는 것이 '내 처지'보다 힘들었을 것이다. 또한 살아남기 위해 시간이 오래 걸렸을 것이다. 조급함과 초조함을 딛고 일어나서 벽을 기어오르는 담쟁이처럼 서두르지 않고 나가야 한다."

그래서 그는 어려운 사람과 함께 절망을 헤쳐나가야 한다는 결심이 생겼다고 한다. 헌데 그 벽을 전교조로 상정하고 이를 박살내기 위해 담쟁이와 같이 나선다면 어떻게 봐야 하나. 이런 엉뚱한 생각을 하는 걸 보면 나는 여전히 시나 노래의 당파성 논리를 깨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이것이 바람직한지 여부를 떠나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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