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부원(多富院)에서

                                                                              - 조지훈 -

                                                       

 

 

 

한 달 농성 끝에 나와 보는 다부원은

얇은 가을 구름이 산마루에 뿌려져 있다.

 

피아(彼我) 공방의 화포가

한 달을 내리 울부짖던 곳

 

아아 다부원은 이렇게도

대구에서 가까운 자리에 있었고나.

 

조그만 마을 하나를

자유의 국토 안에 살리기 위해서는

한해살이 푸나무도 온전히

제 목숨을 다 마치지 못했거니

 

사람들아 묻지를 말아라

이 황폐한 풍경이

무엇 때문의 희생인가를…….

 

고개 들어 하늘에 외치던 그 자세대로

머리만 남아 있는 군마의 시체

 

스스로 뉘우침에 흐느껴 우는 듯

길 옆에 쓰러진 괴뢰군 전사

 

일찍이 한 하늘 아래 목숨 받아

움직이던 생령(生靈)들이 이제

 

싸늘한 가을 바람에 오히려

간고등어 냄새로 썩고 있는 다부원

 

진실로 운명의 말미암음이 없고

그것을 또한 믿을 수가 없다면

이 가련한 주검에 무슨 안식이 있느냐.

 

살아서 다시 보는 다부원은

죽은 자도 산 자도 다 함께

 

 

 

안주(安住)의 집이 없고 바람만 분다.

 

        -<역사 앞에서>(1959)-

 

해                설

[개관 정리]

성격 : 사실적, 비판적, 비극적, 격정적, 고발적

표현

* 자조의 어조

* 인간사와 자연사를 대조하여 주제를 형상화함.

* 전쟁에 대한 사실적 묘사와 비판적인 인식이 돋보임.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다부원 → 몇 십 년 전에는 이곳을 '다부리'라 하지 않고, '다부원'이라고 했는데,  현재는 '다부리'라고 불려진다. 조선 전기까지만 해도 이곳은 관원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국가 관할의 소야원이 있었고, 후기에는 역으로 기능이 확대됐었다. 그러나 역과 원터는 개간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그 대신 한국 전쟁 당시 최대 격전지 중의 하나였던 이곳엔 다부동 전적 기념관이 들어서 있다.

* 농성 → 적에게 둘러싸여 성문을 굳게 닫고 성을 지킴.

* 피아 → 이편과 저편, 아군과 적군

* 피아 공방의 화포가 / 한 달을 내리 울부짖던 곳

      → '다부원'은 한국 전쟁 때 9번의 탈환전이 일어났던 곳으로, 처음으로 유엔군과의 연합 작전으로 승리한 곳으로 그만큼 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졌던 곳이다.

* 푸나무 → 풀과 나무

* 사람들아 묻지를 말아라. → 인간들 스스로가 야기한 비인간적인 참혹함이 너무도 안타깝기 때문에.

* 무엇 때문의 → 무엇을 위한

* 고개들어 하늘에 외치던 그 자세대로 / 머리만 남아 있는 군마의 시체 → 전쟁의 참혹함

* 한 하늘 아래 → 하나의 조국 아래

* 싸늘한 가을 바람 → 죽음의 이미지,  촉각적 이미지

* 간고등어 냄새 → 전쟁의 참상과 죽음의 이미지, 후각적 이미지

* 운명의 말미암음 → 운명의 원인(이유, 연유)

* 이 가련한 주검에 ~ 끝

     → 전쟁으로 인하여 무참히 짓밟힌 모든 것들은 죽음으로도 안식에 이르지 못하고 다만 무심한 바람만이 그들의 존재를 기억한다. 작가는 전쟁에서 희생된 생명이 무의미하고 허무하다고 인식하고 있다.

* 바람 → 전쟁의 참혹한 결과가 무의미하고 허망함을 상징적으로 나타냄.

 

제재 : 한국 전쟁 다부동 전투

◆ 창작 : 1950. 09. 26

주제전쟁의 참혹성과 무의미함

[시상의 흐름(짜임)]

◆ 1~3연 : 치열했던 다부원 전투의 현장을 다시 찾은 감회

◆ 4~7연 : 전쟁이 남긴 참혹하고 잔인한 풍경

◆ 8~9연 : 전쟁이 남긴 비인간적인 상처

◆ 10~11연 : 전쟁에서의 무의미한 희생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한국 전쟁 기간에 종군 문인단에 소속되어 있던 작가가 다부원에서의 전쟁의 참상을 보고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창작한 작품이다.  전쟁이 할퀴고 지나간 아픈 상처들이 남아 있는 다부원을 본 시인의 감회가 사실적으로 전달되고 있는 작품이다.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고 이를 통해 애국심을 고취시키고자 하면서도 휴머니즘적 시각을 놓치지 않고 전장의 참혹함을 그려 나가고 있다.  

전체가 11연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내용상 크게 4단락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 번째 단락(1~3)에서는 치열했던 다부원 전투의 현장을 다시 찾은 감회를, 두 번째 단락(4~7)에서는 전쟁이 남긴 잔혹하고 잔인한 풍경을, 세 번째 단락(8~9)에서는 그 전쟁이 남긴 비인간적인 상처를 그리고 있다. 그리고 네 번째 단락(10~11)은 이 시의 주제연이라 할 수 있는데, 전쟁이 패배한 쪽에게는 물론이고 승리한 쪽에게도 아무런 '안식'도 '안주'도 되지 못함을 이야기함으로써 전쟁에서의 희생이 무의미한 것임을 말하고 있다.

피아(彼我)를 구분하고 서로의 잘잘못을 따지기 이전에 전쟁이 주는 참혹함과 생명 말살의 현장을 바라보는 화자의 안타까운 시선에서 전후 문학의 일반적인 특징인 휴머니즘의 태도를 발견할 수 있다. 전쟁을 바라보는 작가의 이러한 휴머니즘적 태도는 5연의 '무엇 때문의 희생인가'라는 질문과 11연의 '무슨 안식이 있느냐', 12연의 '안주의 집이 없고'라는 표현에 짙게 배어 있다.

한국 전쟁은 극단적인 절망감을 가져왔고, 그 결과 존재에 대한 끊임없는 물음에 대해 '죽음'이라는 답밖에는 제시할 수 없었으며 인간성은 황폐화되었다. 한국 전쟁 직후의 전쟁을 주제로 한 시들이 충격적인 전쟁의 참상을 객관적으로 직시하거나 전쟁의 비극성을 보편적인 인간 내면의 문제로 끌어올릴 만한 여유를 갖지 못한 채, 전쟁이 남긴 상처에 대한 비탄이나 자조와 넋두리로 표출되고 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는데, 이 작품에서도 그러한 한국 전후 문학의 특징이 나타나고 있다.

 

■ 더 읽을거리(퍼온 글)

유월이라면 아마도 6 · 25를 떠올리는 게 많은 분들의 인지상정일 것이다. 그만큼 이 땅 현대사에서 6 · 25는 처참한 상처로 민족의 가슴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6 · 25란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표면적으로 볼 때 한국의 영토 안에서 한국이 동족 간의 사상 전쟁의 형태로 전개되었다. 그렇지만 실상에 있어서는 미국과 소련으로 대표되는 양대 세력 간의 접경 지대에서 전후 일본 제국주의의 패망과 중국 대륙의 공산화에 따른 동북아시아의 국제 정치 질서가 정착되지 못한 데서 파생된 군사적 마찰이라는 성격을 지닌다고들 한다. 말하자면 미소의 양극 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한, 강대국들의 세계정책의 일환으로 강요된 군사적 시행착오 현상이자 2차 대전의 마무리 전쟁의 성격을 지닌다는 뜻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 결과 전쟁은 민족사 최대의 대대적인 동족상잔의 비극으로서 이 땅을 송두리째 유린하고 민중을 무참히 짓밟았으며, 마침내는 통일도 강대국들의 세력 균형의 변동 여하에 따라 영향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고 만 것이다. 전국토의 초토화와 수백 만에 달하는 전사상자 및 천만이 넘는 이산가족은 전쟁으로 인한 손실 그 자체보다도 한 민족을 완전히 양단함으로써 민족의 이질화 내지는 민족 문화의 파행화를 부채질하게 된 데서 그 비극성이 더욱 두드러진다고 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전쟁으로 인한 분단은 이 땅에 정치적 소용돌이를 겪게 하는 직접적인 역기능으로 지속적으로 작용하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라 하겠다.

이러한 6 · 25 체험이 문학적으로 수용된 것은 아마도 종군작가들을 중심으로 해서였을 것이다. 조지훈 시인도 공군 종군 작가단의 일원으로 참여한 것은 물론이다. 대부분의 종군 작가들은 전쟁의 참상과 폐허를 노래하면서 승전의식을 고취하고 반공의식을 앙양하는 데에 힘을 기울인 것이 사실이다. 지훈의 경우도 크게 예외는 아니다. 그렇지만 조지훈의 시 <다부원에서>는 단순한 전쟁시가 아니라 차원높은 휴머니즘을 노래하고 있어서 관심을 끈다. 실제로 이 시는 단순히 승전의식이나 반공 이데올로기를 강조하는 일반적인 종군시와는 다른 면을 지니고 있다. "피아 공방의 포화가 / 한 달을 내리 울부짖던 곳"과 같이 격렬한 전투 장면이 제시돼 있으면서도, "조그만 마을 하나를 / 자유의 국토 안에 살리기 위해서는 / 한해살이 푸나무도 온전히 / 제 목숨을 다 마차지 못했거니"처럼 자유와 생명에 대한 응시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괴뢰군 전사'의 시체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은 그것이 죽음 앞에서는 피아가 없는 것이며, 모든 인간은 하나같이 목숨이 소중하다는 휴머니즘을 담고 있는 것으로 풀이되어 주목을 환기하는 듯 싶다. "살아서 다시 보는 다부원은 / 죽은 자도 산 자도 다 함께 / 안주의 집이 없고 바람만 분다."라는 결구 속에는 죽은 자와 산 자의 대비를 통해서 전쟁이 얼마나 허망한 것이며, 동시에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에 대한 뼈아픈 깨달음이 담겨 있다고 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역사 속에서 전쟁이란 영원한 승자도 없고 패자도 없는, 불행하고 허망한 인간 상실 내지 인간성 파멸 행위에 불과하다는 날카로운 비판과 그에 대한 저항을 펼치고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볼 때 시 <다부원에서>는 이 땅 전쟁시의 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단순한 반공 애국사상이나 적개심 고취에 목표를 둔 것이 아니라 전쟁의 참상을 통해서 인간의 생명과 자유의 소중함을 강조하고 전쟁 테러리즘을 고발한 데서 의미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실상 이런 류의 목적시가 빠지기 쉬운 구호성이나 영탄성 및 도식성을 절제하고 생명사상, 자유사상, 평화사상을 시다운 시로 고양시킨 점은 지훈다운 생명적 휴머니즘의 반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시 <고사(古寺)> 등에서 보듯이 서정적인 선(禪) 감각과 상자연(賞自然), 고전적 민족의식에 다소 경사돼 있던 지훈의 시정신이 6 · 25라는 민족의 참극과 부딪치면서 능동적인 역사의식의 차원으로 열려가는 계기가 된 것은 또 무슨 아이러니라고 해야 할지 ··….

 

 ■ 다부동 전투

다부동 전투에 대한 내용을 사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낙동강 방어선 가운데 대구 북방 22km에 위치한 다부동은 대구 방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전술적 요충지로서, 만일 다부동이 적진에 떨어지면 대구가 지상포의 사정권내에 들어가 전쟁의 승패를 결정지을 수 있었다. 따라서 북한군은 다부동 일대에 증강된 3개 사단, 약 21,500명의 병력을 배치하였다. 초기에는 북한군이 T-34전차 약 20대를 투입하였으나, 나중에 14대를 증원하는 정도로 치열하게 맞섰다. 또한 각종 화기 약 670문으로 필사적인 공격을 해왔다. 이에 반해 국군 제1사단은 보충 받은 학도병 500여 명을 포함하여 총 7,600여 명의 병력과 172문의 화포 등 열세의 전투력으로 대항하였다. 국군은 이러한 여건을 극복하면서 이른 바 8월의 총공세를 저지하여 대구를 고수하는 데 일조하였다. 이후 국군은 미군 제1기병사단과 임무를 교대하였으나, 미군은 9월의 총력전에서 다부동의 주저항선을 빼앗기고 말았다. 그러나 인천상륙작전과 더불어 개시된 총반격으로 다부동을 탈화하였다. 당시의 치열했던 전투를 상기시키고, 죽음으로 지켜냈던 국군의 기상을 드높이는 의미로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 다부리 유학산 기슭에 국군 제1사단의 전공을 기리는 다부동지구전적비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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