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향유문

                                                                              -  서정주  -

                                                       

 

 

 

안녕히 계세요

도련님.

 

지난 오월 단옷날, 처음 만나던 날

우리 둘이서, 그늘 밑에 서 있던

그 무성하고 푸르던 나무같이

늘 안녕히 안녕히 계세요.

 

저승이 어딘지는 똑똑히 모르지만

춘향의 사랑보단 오히려 더 먼

딴 나라는 아마 아닐 것입니다.

 

천 길 땅 밑을 검은 물로 흐르거나

도솔천의 하늘을 구름으로 날더라도

그건 결국 도련님 곁 아니어요?

 

 

 

 

더구나 그 구름이 소나기 되어 퍼부을 때

춘향은 틀림없이 거기 있을 거여요.

 

        -<서정주 시선>(1956) -

 

해        설

[개관 정리]

성격 : 전통적, 고전적, 낭만적, 이상적, 초월적, 불교적

◆ 표현

* 여성적이고 섬세한 어투

* 독백 형식의 문체

* 4음보의 안정된 율격

* 대조법, 대구법

 

◆ 중요 시어 및 시구풀이

* 무성하고 푸르던 나무같이 / 늘 안녕히 계세요.

      → ① 푸르른 생명감의 표상

          ② 둘의 사랑이 이루어진 공간의 상징물

          ③ 임으로 하여금 생생한 사랑의 기억을 영원히 가져주기를 바라는 마음

          ④ 첫만남의 설렘 - 임의 안녕과 함께 사랑의 추억이 지속되기를 바람

          ⑤ 소나기가 되어 돌아올 것을 전제함-그들의 사랑이 늘 풍성하고 싱싱한 것이 되기를 바람

* 춘향의 사랑보단 오히려 더 먼 / 딴 나라는 아마 아닐 것입니다

      → 영원한 사랑이 '길이'로 표현

          죽음의 세계조차도 춘향의 사랑 안에 있음을 말함.

* 천 길 땅 밑 → 지옥

* 도솔천의 하늘 → 극락세계

* 그건 결국 도련님 곁 아니어요? → 영혼만은 항상 도련님과 함께 있음을 나타냄.

* 검은 물 → 구름 → 소나기 : 윤회사상, 인과론적 사상에 의거한 춘향의 변신

* 소나기 → 도련님에게 퍼부어질 춘향의 격렬한 사랑

* 거기 → 도련님이 비를 맞는 곳

              임과의 정신적 합일의 경지

              이도령을 완전히 점령하는 사랑의 공간

 

주제시공을 초월한 여인의 불변불멸의 사랑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체념적인 인사

◆ 2연 : 과거의 사랑 회상과 작별의 말(1연에 대한 부연)

◆ 3연 : 죽음을 초월한 사랑

◆ 4연 : 생사와 시공을 초월한 사랑

◆ 5연 : 죽어도 끊어지지 않는 사랑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춘향이 그처럼 많은 시인들에 의해 시화(詩化)될 수 있었던 것은, 사랑이 인간의 영원한 시적 주제라는 보편적인 이유 외에도 춘향의 영상이 한국인에게는 친숙한 것이라는 특수성에 기인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시인들에게 있어서 춘향은 시대적 제약 속에 있는 한 인간의 모습으로서보다는 시대를 초월한 사랑의 화신으로서 더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우리가 감상할 <춘향 유문>도 시대적인 특수성이 희석된 사랑의 노래다. 유언(遺言) 형식으로 쓰여진 이 시는, 현실 속에서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음을 깨달은 한 여인의 독백을 통해 '저승'을 비춰 준다. '안녕히 계세요.'라는 말은 제3연의 '저승'이라는 시어와 만나서, 그것이 예사로운 인사말이 아님을 알게 한다. 그러나 죽음 앞에서도 오히려 초연할 수 있는 것은, 저승이 자신의 사랑보다 먼 '딴 나라'가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다. 죽음의 세계조차도 그의 사랑 안에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춘향의 이 도령에 대한 사랑이 생사와 시공(時空)을 초월하여 극대화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이러한 시적 전개를 가능케 하는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불교적으로 윤색되어 있는 이 시의 상상력은 윤회 사상(輪廻思想)에 의존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는 그것이 '물→구름→소나기'로 연결되는 자연스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나타난다. 그는 죽어서 지옥(천 길 땅 밑)에 떨어져 썩은 '물'로 흐르거나, 수증기로 증발하여 극락(도솔천의 하늘)에 올라가 '구름'으로 날더라도, 언젠가는 '소나기'가 되어 이승으로 다시 돌아올 것을 믿는다. 시인의 이러한 윤회관이 전혀 공허하게 느껴지지 않고 설득력을 지니게 되는 것은, 그것이 움직일 수 없는 자연 현상에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다. 시 <국화 옆에서>가 하나의 생명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일견 무관한 것으로 보이는 자연이나 우주의 현상 ―소쩍새 울음, 천둥, 무서리― 이 관여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 주듯이, <춘향 유문>의 자연 현상도 그와 마찬가지로 이해될 수 있다. 춘향은 도련님에게 '그 무성하고 푸르던 나무같이 / 늘 안녕히 계세요'라고 인사한다. 왜 하필이면 '나무'같이 있으라고 했을까? 그것은 춘향이 불교적 전생(轉生) 끝에 '소나기'가 되어 이승으로 돌아올 것을 전제로 한 표현이다. '소나기'가 '나무'를 적셔 늘 푸르게 만들어 주듯이, 이 시에는 그들의 사랑이 늘 풍성하고 싱싱한 것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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