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일서정

                                                                              -  김광균  -

                                                       

 

 


낙엽(落葉)은 폴란드 망명정부(亡命政府)의 지폐(紙幣)

포화(砲火)에 이지러진

도룬 시(市)의 가을 하늘을 생각게 한다.

길은 한 줄기 구겨진 넥타이처럼 풀어져

일광(日光)의 폭포(瀑布) 속으로 사라지고

조그만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새로 두 시의 급행열차가 들을 달린다.

포플라 나무의 근골(筋骨) 사이로

공장의 지붕은 흰 이빨을 드러내인 채

한 가닥 구부러진 철책(鐵柵)이 바람에 나부끼고

그 위에 셀로판지로 만든 구름이 하나.

자욱한 풀벌레 소리 발길로 차며

호올로 황량(荒凉)한 생각 버릴 곳 없어

허공에 띄우는 돌팔매 하나

 

 

 

기울어진 풍경의 장막(帳幕) 저쪽에

고독한 반원(半圓)을 긋고 잠기어 간다.

 

                       -<인문평론>(1940)-

 

해              설

[개관 정리]

성격 : 주지적, 서경적, 애수적, 회화적(시각적), 허무적

표현

* 시각적, 공감각적 이미지

* 생경하고 과격한 비유의 연속으로 딱딱한 느낌을 줌.

* 현대적 감각의 시어 구사

* 은유와 직유

 

◆ 중요 시어 및 시구풀이

* 낙엽은 폴란드 망명 정부의 지폐

      → 계사은유

          낙엽이 주는 쓸쓸한 이미지와 함께, 가치없고 초라하고 어수선하고 공허한 모습을 연상케 함.

* 포화에 이즈러진 도시의 하늘 → 허무함(공허함)을 연상케 해주는 모습

* 길은 한 줄기 구겨진 넥타이처럼 풀어져 → 작고 구불구불한 길의 모습

* 일광의 폭포 속으로 사라지고

      → '소멸의 슬픔'을 나타냄.(고독감과 허무감)

           눈부시게 쏟아지는 가을 햇살에 어려 아득히 이어져 있는 시골길의 모습

* 담배연기 → 급행열차의 연기

* 급행열차의 달림 → 사라짐의 이미지를 줌.

* 근골 → 근육과 뼈대(나뭇가지)

* 흰 이빨, 구부러진 철책 → 차갑고 폭력적이며 비정한 이미지(도시문명의 비인간적인 성격)

* 포플라 나무의 근골 사이로 / 공장의 지붕은 흰 이빨을 드러내인 채 / 한가닥 구부러진 철책이 바람에 나부끼고 → 낙엽이 져서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공장 지대의 삭막하고 황량한 풍경 묘사

* 셀로판지로 만든 구름이 하나

      → 이국적이고 근대적 감수성을 자아내는 시어를 사용하였으며, 얇고 가벼운 구름의 모습을 그리고자 하였으며, 합성수지와 자연의 결합을 시도한 시인의 인식은 다분히 부정적임을 알게 해 줌.

* 황량한 생각 → 서정적 자아의 정서가 직접적으로 표출됨.

* 돌팔매질하는 자아의 모습 → 쓸쓸한 가을 풍경을 대하는 서정적 자아의 심정을 드러낸 행동

                                             문명 속에서 고독을 느끼며 방황하며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자아의 모습

* 돌팔매 → 지배적 정서(고독과 적막)에 벗어나고자 하는 시적 화자의 구체적 행위

                 문명의 황폐함을 향해 던지는 돌팔매일 수도 있음.

 

주제 가을의 애수어린 풍경과 고독감

◆ 서정적 자아 : 쓸쓸한 가을날의 풍경 속에 외로이 방황하는 인물

[시상의 흐름(짜임)]

◆ 1 ∼ 3행 : 낙엽 - 가을의 애상감, 허무감, 절망감

◆ 4 ∼ 7행 : 길, 들 - 가을의 소멸과 조락

◆ 8∼11행 : 도시의 정경과 구름 - 고독과 황량감

◆ 12∼16행 : 돌팔매 띄우는 자아 - 고독감, 황량감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사실적 서경의 표현보다는 일상적 관념을 깨뜨리는 낯선 비유를 사용하고 있는 점에서 상상력의 비약과 지적인 인식을 요구한다. '폴란드 망명 정부의 지폐', '구겨진 넥타이', '담배연기'와 같은 비유는 근대화된 서구 도시 문명에 대한 관심의 표명이며, '나무'와 '공장'을 '근골'과 '흰이빨'과 같은 기계적, 물질적 이미지로 비유한 것은 사회의 근대적 변화에 대한 감수성을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시는 가을의 황량함이 앞부분에 나타나 있는데 낙엽과 길, 나목 사이의 공장 굴뚝과 구름 등이 묘사의 대상으로 등장한다. 그들은 하나같이 무가치하며 적막하거나 쓸쓸한 모습으로 등장하는데 이러한 성격은 가을을 바라보는 서정적 자아의 심정과 무관하지 않는 것 같다.

황량한 가을 풍경 속에서 후반부에 이르게 되면 자아의 무기력하고 무료한 모습이 묘사된다. 허공에 돌팔매를 던지며 황량한 상황을 벗어나려 하지만 벗어날 수 없는 자신, 그래서 저무는 가을 속으로 잠기어 갈 수밖에 없다. 이렇게 볼 때 이 시는 어떤 정경을 단순히 회화적으로 포착한 것이라기보다는, 화자의 의식과 대상이 특수한 관계로 만나고 있는, 그 접촉의 순간이 회화적으로 그려지고 있는 시라고 할 수 있다.

  이 시는 한마디로 이미지즘 계열의 시다. 모더니즘, 이미지즘, 주지주의 등은 서로 교차하면서 동질의 의미를 갖기도 하는 사조로, 시각 이미지의 부각, 회화성, 관념의 배제, 도시 문명적 소재 등은 이들 유파의 시 정신과 관련된 것이다. 1930년대 새로운 사조로 국내에 소개된 이 유파는 김광균에 의해 대표적으로 실천되었다. 그러나 그의 시는 서구의 이미지즘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의 시에 나직하게 깔려 있는 애수의 정서는 특히 서구 이미지즘과는 거리가 멀어 주지적인 성격에서 멀어져 있음은 분명하다. 김광균의 시는 서구의 이미지즘의 본질을 받아들였다기보다는 표현의 기법을 받아들였다고 하는 편이 훨씬 사실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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