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깨를 털면서

                                                                              - 김준태 -

                                                       

 

 

 

산그늘 내린 밭귀퉁이에서 할머니와 참깨를 턴다.

보아하니 할머니는 슬슬 막대기질을 하지만

어두워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젊은 나는

한 번을 내리치는 데도 힘을 더한다.

세상사에는 흔히 맛보기가 어려운 쾌감이

참깨를 털어대는 일엔 희한하게 있는 것 같다.

한 번을 내리쳐도 셀 수 없이

솨아솨아 쏟아지는 무수한 흰 알맹이들

도시에서 십 년을 가차이 살아본 나로선

기가막히게 신나는 일인지라

휘파람을 불어가며 몇 다발이고 연이어 털어댄다.

사람도 아무 곳에나 한 번만 기분 좋게 내리치면

참깨처럼 솨아솨아 쏟아지는 것들이

얼마든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정신없이 털다가

"아가, 모가지까지 털어져선 안 되느니라."

 

 

 

할머니의 가엾어하는 꾸중을 듣기도 했다.

 

           -<참깨를 털면서>(1997)-

 

해                설

[개관 정리]

성격 : 체험적, 교훈적, 반성적

표현

* '노동'의 행위를 통해 화자와 할머니의 대조적 태도를 그려내면서 바람직한 삶의 가치와 지혜를 제시

* 일상어를 통해 시골 체험을 형상화함으로써 구체성을 획득함.

* 음성상징어를 통해 인물의 행위를 대비함(슬슬 - 솨아솨아).

* '참깨' → 세상살이의 진리는 평범한 사물에서 찾아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소박한 소재

   '모가지' → 순리를 벗어나는 과도함의 표상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세상사에는 흔히 맛보기가 어려운 쾌감이 / 참깨를 털어대는 일엔 희한하게 있는 것 같다.

   → 각박하고 빠듯한 도시 생활에 시달린 화자가 참깨를 털며 느끼는 기쁨을 표현함.

       도시 생활 속에서 맛보지 못한 기쁨을 자연 속 농사일에서 느낌.

       화자의 세속적 욕망을 나타냄.

* 한 번을 내리쳐도 셀 수 없이 / 솨아솨아 쏟아지는 무수한 흰 알맹이들  

   → 일확천금, 한탕주의의 이미지

* 솨아솨아 → 화자가 참깨를 털며 느끼는 쾌감을 표현한 의성어

* 기가 막히게 신나는 일인지라 → 자신이 조종하는 대로 결과를 얻을 수 있어 신이 남.

* 모가지까지 털어져선 안 되느니라.

   → 손자의 생명 경시 태도에 대한 할머니의 책망

       작은 생명이라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할머니의 마음이 잘 드러남.

       욕망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노력, 기다림과 인내심이 필요함을 의미함.

       과유불급(過猶不及)의 교훈이 담긴 말

* 할머니의 가엾어하는 꾸중 → 사정없이 털려나가는 참깨에 대한 할머니의 안타까운 심정

* 할머니의 꾸중 → 화자를 포함한 경박한 현대인들 모두에게 향하는 꾸중임.

* 나와 할머니의 참깨 터는 방식의 차이

   ♠ 나 → 도시적 생활 방식(힘을 더해 내리침, 연이어 턺, 정신없이 턺, 조급하고 충동적인 인물, 농작물

              수확을 단순히 신나는 일로 생각하고 참깨를 자신이 조종할 수 있는 물건으로 취급하는 태도)

   ♠ 할머니 → 농촌적 생활 방식(슬슬 막대기질을 함, 모가지까지 털어서는 안 된다고 충고함, 여유롭고 느긋한 인물. 모든 일은 차근차근 순리대로 해야 하며,  작은 생명이라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경륜이 묻어나는 태도)

 

제재 : 참깨털기(삶에 대한 깨달음을 얻게 되는 계기)

주제 : 시골에서 얻게 된 깨달음(순리에 따르는 삶에 대한 깨달음)

           참깨를 털며 할머니에게서 배운 삶의 지혜(과유불급의 지혜)

[시상의 흐름(짜임)]

◆   1~  4행 : 참깨를 터는 할머니와 '나'

◆   5~11행 : 참깨를 털며 느끼는 '나'만의 기쁨

◆ 12~16행 : 참깨를 터는 모습에 대한 꾸중과 반성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작품은 할머니와 함께 참깨를 털었던 일을 회상하며 참깨를 터는 할머니와 '나'의 태도의 차이에서 생명체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는 시이다. 참깨 알맹이 하나라도 소중히 여기는 할머니의 모습을 통하여 진정한 삶의 모습을 성찰할 수 있다.

'젊은 나'와 '할머니'가 함께 참깨를 털고 있다. '젊은 나'와 '할머니'는 여러모로 대비되는 존재다. 늙으신 할머니는 매사 여유롭지만 '젊은 나'는 젊은이 특유의 조급함에 사로잡혀 있다. 그러다 나는 참깨를 터는 일에 특이한 재미를 느끼게 된다. '한 번을 내리쳐도 셀 수 없이 솨아솨아 쏟아지는 무수한 흰 알맹이들'을 보며 도시 생활에서 맛보기 힘들었던 시원시원한 노동의 재미를 느끼게 된 것이다. 아마도 하루하루가 답보 상태였을 법한 도시에서의 모든 일도 이처럼 단번에 큰 성과를 가져다 준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는 공상에 빠진다. 물론 이는 순리를 따르고 과정을 중시하는 건강한 상념은 아니지만 그만큼 화자의 팍팍한 일상이 고단하였기 때문에 품어 보게 되는 인간적인 공상이다. 그 순간 할머니가 문득, 서둘러서 일을 그르치지 말고 차근차근 처리하라는 요지의 말씀을 한다. 할머니의 마지막 말에서 화자는 뜨끔함을 느꼈겠거니와 이 과유불급의 메시지는 모든 독자들에게도 경청할 만한 삶의 지혜가 되어 주고 있다.

 

 소설가 김 훈의 감상 

할머니와 젊은 손자가 함께 참깨를 턴다. 할머니는 슬슬 막대기질을 하지만 손자는 있는 힘을 다해 내리친다. 참깨는 마르지 않은 부분은 털리지 않는다. 바람에 말려 가면서 털리는 부분만을 털어야 한다. 마르지 않은 부분을 두들겨 패면 참깨는 모가지가 부러져 버린다. 모가지가 부러져 버리면 참깨는 알맹이를 거둘 수가 없다. <아가, 모가지까지 털어져선 안되느니라>라고, 그 할머니는 쏟아지는 깨 알맹이에 정신이 팔린 젊은 손자를 나무란다.

그 할머니의 노동은 자연에 순응하기만 하는 것도 아니고 저항하기만 하는 것도 아니다. 할머니의 노동은 그 둘을 한 데 합치고 넘어서서 어떤 새로운 의미의 행동을 창조해 내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노동은 인격화되고, 그 인격화된 노동이 도덕성과 지혜에 도달하고 있다. 김준태의 시들은 그 '밭'의 도덕성 위에 인간의 폭력과 허위를 썩혀 버리려는 열정이다. 그러므로 그의 '밭'은 순수한 자연이 아니다. 그의 '밭'은 인간의 생애와 인간의 기쁨이나 슬픔, 고난과 노동 속으로 편입된 부분의 자연이다. 그의 시가 그 '밭'의 도덕성을 다른 많은 진실들이 세워질 수 있는 바탕으로 삼고 있을 때, 그의 시 속의 고향은 떠나 버린 사람들의 비탄의 고향이나 남은 사람들의 악에 받친 소외의 자리가 아니라, 그 위에서 인간이 미래에 있을 갱생과 쇄신을 감히 말해도 좋을 새로운 고향으로 다시 태어난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