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굽다

                                                                              -김혜순-

                                                       

 

 

 

사당역 4호선에서 2호선으로 갈아타려고

에스컬레이터에 실려 올라가서

뒤돌아보다 마주친 저 수많은 얼굴들

모두 붉은 흙 가면 같다

얼마나 많은 불가마들이 저 얼굴들을 구워 냈을까

 

무표정한 저 얼굴 속 어디에

아침마다 두 눈을 번쩍 뜨게 하는 힘 숨어 있었을까

밖에서는 기척도 들리지 않을 이 깊은 땅속을

밀물져 가게 하는 힘 숨어 있었을까

 

하늘 한구석 별자리마다 쪼그리고 앉아

별들을 가마에서 구워 내는 분 계시겠지만

그분이 점지하는 운명의 별빛 지상에 내리겠지만

물이 쏟아진 듯 몰려가는

땅속은 너무나 깊어

그 별빛 여기까지 닿기나 할는지

 

수많은 저 사람들 몸속마다에는

밖에선 볼 수 없는 뜨거움이 일렁거리나 보다

저마다 진흙으로 돌아가려는 몸을 일으켜 세우는

불가마 하나씩 깃들어 있나 보다

 

저렇듯 십 년 이십 년 오십 년 얼굴을 구워 내고 있었으니

 

 

 

모든 얼굴은 뜨거운 심장이 굽는 붉은 흙 가면인가 보다

 

              -시집<당신의 첫>(2008)-

 

해           설

[개관 정리]

성격 : 상징적, 철학적, 성찰적

특성

① 현대인들의 무표정한 얼굴을 '흙 가면'에 비유함.

② 설의적 표현을 통해 대상에 대한 느낌을 강조함.

③ '지하철 환승역'이라는 공간을 통해 현대의 도시적 삶을 상징적으로 나타냄.(삶의 여유 없이 무표정한 얼굴로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의 모습)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에스컬레이터에 실려 올라가서 → 피곤에 지친 사람들의 모습

* 붉은 흙 가면 → 사람들의 무표정한 얼굴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

* 붉은 → 가면의 색상이 붉은 것은 그 안에 숨겨져 있는 삶의 에너지가 겉으로 드러나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임.(삶의 열정과 의지)

* 밖에서는 기척도 들리지 않을 이 깊은 땅속

     → 깊은 수렁처럼 사람들을 옭아매는 현대 사회의 도시적 삶의 공간

* 밀물져 가게 하는 힘 → 학교나 일터를 향해 나아가게 만드는 힘

* 별들을 가마에서 구워내는 분 → 인간을 탄생시킨 조물주 또는 신(神)

* 그분이 점지하는 운명의 별빛 → 신이 인간에게 부여하는 운명

* 땅속 → 지하철 환승역, 현대 도시인들의 삶의 공간

* 그 별빛 여기까지 닿기나 할는지 → 신이 부여하는 운명의 힘이 현대인에게는 닿지 않음.

* 밖에선 볼 수 없는 뜨거움 → 열심히 살아가고자 하는 현대인들의 욕망

* 진흙 → 사람으로 살아가기 이전의 무(無)의 상태

* 몸을 일으켜 세우는 →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

* 불가마 → 무의 상태로 돌아가려는 사람을 일깨워 살아가게 만드는 힘의 근원(뜨거운 심장)

* 모든 얼굴은 뜨거운 심장이 굽는 붉은 흙 가면인가 보다

     → 삶을 이끌어 가는 힘의 근원이 사람들 몸속에 내재되어 있음을 나타낸 부분이다. 뜨거운 심장이 불가마 역할을 하며, 끊임없이 별 같은 사람들의 붉은 흙 가면을 구워내고 있는 것이다.

 

제재 : 지하철 환승역에서 마주친 사람들

주제현대인의 몸속에 내재되어 있는 생(生)의 힘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지하철 환승역에서 만난 붉은 흙 가면의 사람들

◆ 2연 : 무표정한 얼굴 속에 있는, 생을 이끌어 가는 힘

◆ 3연 : 신(神)이 내리는 운명과 무관한 사람들의 삶

◆ 4연 : 사람들 몸속에 하나씩 있는 뜨거운 불가마

◆ 5연 : 뜨거운 심장이 평생 구워 온 붉은 흙 가면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지하철 환승역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던 화자가 문득 뒤돌아본 무표정의 사람들에게서 시적 발상을 얻어 쓴 작품이다. 작가는 지하철 환승역에서 만난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현대인의 고단한 일상과 그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으려는 소시민의 삶을 표현하고 있다.

화자는 가면을 쓴 것처럼 무표정한 사람들이 아침마다 눈을 뜨고 일어나서 지하철 환승역을 꽉 채우며 바쁘게 움직이는 것을 신기해 한다. 그래서 하늘의 조물주가 이들의 삶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지만, 하늘과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땅속 지하철에는 그런 힘이 닿지 않는다는 걸 깨닫는다. 결국 화자는 4연에서 각각의 사람들 몸속에 불가마가 하나씩 들어 있어 그것이 평생 동안 사람들의 생(생)을 이끌어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시의 화자는 신(神)이 인간을 구워 내거나 또는 인간을 구워 내는 불가마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인간 스스로가 자신의 심장을 통해 삶을 구워 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우리 인간이야말로 능동적이고 힘차게 자신의 삶을 개척해 가는, 별처럼 빛나는 존재라는 뜻이다.

◆ 제목 '별을 굽다'의 의미

별은 내부에서 발생된 에너지를 복사하여 스스로 빛을 내는 가스 덩어리로 된 천체를 말한다. 별의 내부는 매우 뜨거우며 스스로 빛을 낸다는 속성을 갖고 있다. 이 시의 제목은 '별을 굽다'인데, 이때 굽게 되는 별의 속성은 이와 같이 내부에 뜨거움을 간직한 채 스스로 빛을 내는 존재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별은 무엇을 의미하며 누가 굽는 것인가? 그건 바로 인간이다. 인간이 별이며, 인간이 별을 구워 내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과 별 모두 내부의 뜨거움과 스스로 빛을 낸다는 두 가지 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인간은 내부의 불가마(심장)로 붉은 흙 가면을 구워 내며 평생을 살아가고, 또한 별을 구워 내어 또 다른 인간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삶에 대한 열정과 의지로 스스로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인간 자신을 상징한다.

◆ 시의 구조

가면으로 가려진 무표정한 얼굴에는 내부의 뜨거움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화자는 붉은 가면을 통해 사람들 가슴속에 불가마 하나씩 있을 거라고 추측한다. 평생 동안 자신을 구워 온 뜨거운 심장이 그 불가마인 것이다. 인간은 꿈을 꾸며 살아간다. 힘들고 어려운 현실 속에서 그 꿈은 내부로 숨겨지고 일상의 생활을 영위해 가지만, 사실 마음속에는 평생 꺼지지 않는 불길이 존재한다. 시인은 그러한 삶의 에너지를 불가마라고 본다. 불가마는 그냥 가마가 아니라 불로 달구어진 가마로 항상 뜨거운 열기를 간직한 가마이다. 그 불가마로 진흙을 구워 일상을 살아갈 가면을 만들고, 스스로 빛을 내는 별을 굽는 것이다. 그렇게 인간은 평생 자신의 몸을 일으켜 세우며 살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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