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랑  -

                                                       

 

 

 

자네 소리하게 내 북을 잡지

 

진양조 중머리 중중머리

엇머리 자진머리 휘몰아 보아

 

이렇게 숨결이 꼭 맞어사만 이룬 일이란

인생에 흔치 않아 어려운 일 시원한 일

 

소리를 떠나서야 북은 오직 가죽일 뿐

헛 때리면 만갑(萬甲)이도 숨을 고쳐 쉴밖에

 

장단을 친다는 말이 모자라오

연창(演唱)을 살리는 반주쯤은 지나고

북은 오히려 컨덕터―요

 

떠받는 명고(名鼓)인데 잔가락을 온통 잊으오

떡 궁! 동중정(動中靜)이요 소란 속에 고요 있어

인생이 가을같이 익어가오

 

 

 

 

자네 소리하게 내 북을 치지.

 

          - <영랑시선>(1949) -

 

해             설

[개관정리]

성격 : 전통적, 역동적, 심미적

    * 수미상관의 구성 방식

    * 남성적 어조와 대화체 형식을 사용하여 주제를 형상화함.

    * 각 행과 연의 끝에 부드러운 음의 사용으로 음악성을 획득함.

    * 3음보와 4음보의 적절한 조화와 변화

 

◆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소리와 북 →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관계

    * 진양조 중머리 중중머리 / 엇머리 자진머리 휘몰아 보아

        → 판소리 장단의 느린 박자에서 빠른 박자 순으로 나열해 놓음.

    * 숨결이 꼭 맞어서만 이룬 일 → 고수와 창자의 호흡이 일치하여 조화를 이룬다는 것

    * 소리를 떠나서야 북은 오직 가죽일 뿐

        → '소리'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북'은 무용지물일 뿐임.

            북의 존재 의미는 소리(창)와의 조화임을 나타냄.

    * 헛 때리면 만갑이도 숨을 고쳐 쉴밖에

        → 장단이 틀리면 만갑이(당대 최고 명창으로 판소리(동편제)의 대가)도 호흡이 깨질 수밖에 없음.

              즉, 아무리 이름난 고수라 할지라도 소리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음을 나타냄.

    * 연창(演唱)을 살리는 반주쯤은 지나고 / 북은 오히려 컨닥타(conductor, 지휘자)요

        → 북의 역할의 중요성, "일고수 이명창(一鼓手 二名唱)"이라는 말이 연상됨.

            판소리에 있어서 북은 소리(연창)를 위한 소도구로서 종속적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판소리를 이끌어가는 주체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판소리에서 차지하는 북의 중요성)

    * 잔가락을 온통 잊으오 → 초월의 상태(무아지경), 완전한 몰입의 상태

    * 동중정 = 소란 속의 고요 → 조화의 경지에 이름.

    * 인생이 가을같이 익어 가오

        → 북과 소리의 조화로 이루어진 예술과 삶의 일체감 속에서, 인생은 계절의 완성인 가을처럼 성숙해

                     가는 것이다.

 

주제 북(장단)과 소리(창)의 조화

              판소리를 통해 나타난 예술과 인생의 조화

              완전한 조화에 의해 도달할 수 있는 완성의 경지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호흡의 일치

◆ 2연 : 판소리 장단의 열거

◆ 3연 : 호흡이 일치되는 조화로움

◆ 4연 : 소리와 북의 관계(일치, 조화)

◆ 5연 : 판소리에 있어 북의 역할

◆ 6연 : 예술과 인생의 조화

◆ 7연 : 호흡의 일치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시의 서정적 자아는 고수(鼓手), 즉 북 치는 사람이다. 고수는 판소리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창자(唱者) 즉 소리하는 사람과 고수가 어울려야만 비로소 하나의 조화로운 세계가 이루어진다. 세상의 거의 모든 일이 이처럼 남들과 조화를 이룰 때에라야 비로소 완성된 형태를 나타내게 되기 마련이지만, 행위의 주체가 고수와 창자뿐인 경우는 이런 특성이 가장 강하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숨결이 꼭 마저사만' 이룰 수 있는 일이고, 이런 일이란 '인생에 흔치 않는' 법이다.

그러므로 소리와 북은 어느 것일지라도 '숨결(호흡)'이 맞지 않는 날엔 그것은 본래의 기능을 잃어 버리고 한낱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당대의 최고 명창인 송만갑이도 장단이 틀리면 숨을 고쳐 쉴 수밖에 없다는 표현은 이런 의미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북은 장단과 반주를 떠나 오직 창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그런 경지에 도달했을 때 고수는 잔가락을 온통 잊은, 초월의 상태가 된다. 움직임 속에 고요함이 있고 소란함 속에 조용함이 있게 되는 것이며, 그런 상태는 곧 '인생이 가을같이 익어가는' 과정을 가리킨다. 그리고 가을같이 성숙해 가는 인생을 시인은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고수와 창자가 완벽한 조화를 이루듯이, 자아와 타자 사이의 완전한 조화에 의해서만 도달할 수 있는 초월의 경지를, 전통적인 예술행위를 소재로 하여 표현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 더 읽을거리 : 양승준, 양승국 공저 <한국현대시 400선 - 이해와 감상>

이 시는 판소리의 연창과 북의 관계를 형상화한 작품으로 판소리에 대한 영랑의 남다른 조예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영랑의 고향 강진은 판소리의 고장이고, 영랑을 비롯한 '시문학파'가 음악성을 중시했다는 점에서도 이 작품은 의미가 깊다. 전통 문화에 대한 영랑의 애정이 3, 4음보의 전통 가락과, 장단 · 완급의 다양한 변화, 북소리를 연상케 하는 의성어 등과 잘 어울려 나타나 있다.

일반적으로 판소리에서 북을 반주를 위한 소도구 정도로 생각하기 쉬우나, 북 없이는 소리가 이루어질 수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소리를 이끌어 가는 '컨덕터'가 될 정도로 북의 역할은 지대하다. '일 고수 이 명창'이란 말도 결국은 북의 역할이 매우 중요함을 이르는 말이다. 물론 북도 소리가 없이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소리를 떠나서 북은 오직 가죽일 뿐'이며, 명창 송만갑도 북 없이는 그의 소리 예술을 이룰 수 없었다. 따라서 북은 소리에 종속되지 않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북으로써 소리는 예술로 승화되는 것이다.

이 작품은 이와 같은 판소리에 있어 북의 지대한 역할을 보여주는 한편, 소리와 북의 일치에서 예술과 인생이 조화를 이룰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북과 소리의 조화 속에서 소리가 완성되고, 명창이 탄생되듯이 인생에 있어서 '이렇게 숨결이 꼭 맞아서만 이룬 일이란 / 흔치 않'음을 인식한 영랑은 마침내 북과 소리의 조화로 이루어진 소리 예술과 삶의 일체감 속에서 '인생이 가을같이 익어가'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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