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망록

                                                                              -문정희-

                                                       

 

 

 

남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남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가난한 식사 앞에서

기도를 하고

밤이면 고요히

일기를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구겨진 속옷을 내보이듯

매양 허물만 내보이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사랑하는 사람아

너는 내 가슴에 아직도

눈에 익은 별처럼 박혀 있고

 

나는 박힌 별이 돌처럼 아파서

 

 

 

이렇게 한 생애를 허둥거린다.

 

-<제 몸속에 살고 있는 새를 꺼내 주세요>(1990)-

 

해           설

[개관 정리]

성격 : 자기반성적, 고백적

특성

① 유사한 문장 구조를 활용하여 시상을 전개함.

② 담담한 어조를 통해 자신의 삶에 대한 반성을 드러냄.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비망록 → 잊지 않으려고 중요한 골자를 적어 둔 것, 또는 그런 책자.

* 1연 →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자신을 더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 버린 것에 대한 자기 반성이 담겨 있다. 화자 자신의 현실에 대한 회한의 심정이 담김.

* 가난한 식사 앞에서 / 기도를 하고 / 밤이면 고요히 / 일기를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 소박하고 겸허하게 자신의 삶을 반성하며 살아가고픈 시적 화자의 소망이 나타나 있다.

* 기도, 일기 → 반성하는 삶, 화자가 추구하고자 했던 자기 성찰적 삶

* 구겨진 속옷을 내보이듯 / 매양 허물만 내보이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 소박하고 겸허하게 살고 싶었던 시적 화자의 소망과는 달리, 빈번이 다른 사람들에게 창피한 실수를 보이는 화자의 현실을 표현하고 있다.

* 구겨진 속옷 → 화자의 소망과는 다르게 전개된 현실을 비유적으로 나타낸 표현

* 너는 내 가슴에 아직도 / 눈에 익은 별처럼 박혀 있고

    → 시적 화자에게 사랑하는 사람인 '너'는 '별'처럼 아름답고 소중한 존재임을 알 수 있다.

* 별 → 아름답고 소중한 존재, 사랑하는 사람

* 나는 박힌 별이 돌처럼 아파서 / 이렇게 한 생애를 허둥거린다

    → 시적 화자가 사랑하는 사람보다 자신을 더 사랑했기에 '돌'처럼 아픈 응어리를 가지고 허둥거리는 삶을 살아왔음을 고백적으로 드러낸 부분이다.

* 돌 → 후회와 가슴속 응어리

 

제재 : 화자의 자기 반성

주제나보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픈 소망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남을 사랑하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은 소망

◆ 2연 : 허물만 내보이는 사람이 된 화자의 현실

◆ 3연 : '별'처럼 소중하게 여겨지는 사랑하는 사람

◆ 4연 : '돌'처럼 응어리진 삶을 살아온 화자의 모습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남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남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가난한 식사 앞에서 기도'를 하고 '밤이면 고요히 일기를 쓰는 사람'이 되기를 희망하였으나 '매양 허물만 내보이는 사람'이 된 화자의 고백과 자기반성이 담겨 있는 작품이다. 심지어 화자는 '별'처럼 소중하고 아름다운 사람보다 자신을 더 사랑했기에 그로 인한 후회가 '돌'처럼 가슴에 아프게 박혀 있다고 말한다. 화자가 그러한 삶을 살아 왔기에 '허둥거리는 삶'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이 시의 제목이 '비망록'인 것도 자신의 삶에 대한 반성을 기록하며 다시는 그러한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화자의 다짐을 반영한 것이라 볼 수 있다.

 

◆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화자의 인식

시적 화자는 다른 사람보다 자신을 더 먼저 생각하고, 자신의 허물을 돌아보지 못하고 살아온 삶에 대해 반성하고 있다. 무엇보다 다른 사람 중에서도 화자가 사랑하는 사람보다 자신을 더 사랑했기에 화자에게는 '돌'처럼 아픈 가슴속 응어리가 생겼다고 볼 수 있다. 즉, 이 시는 '별'처럼 아름답고 소중한 존재인 사랑하는 사람은 물론,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태도에 대한 반성인 것이다.

 

◆ 유사한 통사 구조의 반복과 의미 강조

이 시의 전개상 특징 중 하나는 1, 2연에서 '~이 되고 싶었는데, ~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라는 통사 구조를 반복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화자의 소망과 현실을 동시에 나타낸 구절이라 할 수 있는데, 이를 통해 화자의 회한과 반성이 더욱 강조된다고 볼 수 있다. 즉, 1연에서는 "남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남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라는 진술을 통해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한 화자의 회한을 강조하였고, 2연에서는 '가난한 식사 앞에서 기도를 하고, 밤이면 고요히 일기를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구겨진 속옷을 내보이듯 매양 허물만 내보이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라는 진술을 통해 반성하는 삶을 살지 못한 화자의 현실을 드러내고 있다.

 

◆ 문정희의 시 세계

내적 독백과 욕망의 언어를 통해 내면의 자아를 발견하고 확인하는 그의 시에는 동물과 식물과 인간이 다양하게 소통하고, 자연과 여성에게 잔존하는 폭력과 대립 구조를 감각적인 시어로 지적한다. 또한 남성중심주의 비판에서 한발 더 나아가 시인이 연구하고 있는 여성주의적 인식을 시에 담았다. 문정희의 여성주의적 사유는 타자로 물러난 여성의 권리를 존중하고 보호하고 도전하여 여성성을 재발견하려는 인식이다. 이러한 여성성의 재발견은 주로 자연에서 인식되었다. 즉, 문정희의 시에는 자연과 인간, 즉 생태와 몸과 언어의 다양성을 파악하고 극복하고 이해하려는 태도가 전반적으로 드러난다. 그의 태도는 여성의 상생 의식과 모성과 다산성을 통한 실천 방향으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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