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집
- 겨울 版畵1

                                                                              - 기형도 -

                                                       

 

 

 

내 유년 시절 바람이 문풍지를 더듬던 동지의 밤이면 어머니는 내 머리를 당신 무릎에 뉘고 무딘 칼끝으로 시퍼런 무우를 깎아 주시곤 하였다. 어머니 무서워요 저 울음소리, 어머니조차 무서워요. 얘야, 그것은 네 속에서 울리는 소리란다. 네가 크면 너는 이 겨울을 그리워하기 위해 더 큰 소리로 울어야 한다. 자정 지나 앞마당에 은빛 금속처럼 서리가 깔릴 때까지 어머니는 마른 손으로 종잇장 같은 내 배를 자꾸만 쓸어내렸다. 처마 밑 시래기 한 줌 부스러짐으로 천천히 등을 돌리던 바람의 한숨. 사위어 가는 호롱불 주위로 방 안 가득 풀풀 수십 장 입김이 날리던 밤, 그 작은 소년과 어머니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할까?

 

 

 

 

                                     -<입 속의 검은 잎>(1989)-

 

해           설

[개관 정리]

성격 : 묘사적, 감각적, 산문적, 회고적

표현

* 산문적 운율

* 과거의 기억을 환기하여 정서를 드러냄.

* 촉각, 시각, 청각 등의 이미지를 통해 감각적으로 표현함.

차갑고 어두운 느낌의 시어를 주로 구사함(바람, 동지, 밤, 은빛 금속, 사위어가는 호롱불 등.)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바람이 문풍지를 더듬던 동지의 밤 → 동지의 추운 날씨와 가난으로 인한 화자의 가정의 어려움

* 시퍼런 무우 → 감각어를 통해 동짓날의 추위를 강조함.

* 어머니 무서워요 저 울음소리, 어머니조차 무서워요.

     → 가난 때문에 어머니조차 잘못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드러나 있음.

* 얘야, 그것은 네 속에서 울리는 소리란다. → 화자 내면의 불안과 공포

* 네가 크면 너는 이 겨울을 그리워하기 위해 더 큰 소리로 울어야 한다.

    → 더 무섭고 힘든 일을 겪으면서 성장해야 한다는 의미

* 은빛 금속 → 비생명성, 차가움, 가난의 이미지

* 종잇장 같은 내 배 → 굶주림으로 인해 홀쭉해진 화자의 배

* 시래기 한 줌 부스러짐 → 먹을 것이 넉넉하지 못한 화자의 처지

* 사위어 가는 호롱불 → 암울하고 어둡던 유년 시절을 상징

* 수십 장 입김 → 추위에 떨고 있는 화자의 처지

* 그 작은 소년 → 1인칭 화자를 객관화한 표현

 

부제 : 겨울 판화 → 유년시절이 화자의 머릿속에 각인된 과거임을 나타냄.

화자 : 마치 한 장의 판화처럼 시인의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는 가난했던 유년 시절의 상처를 어둡게 떠올림.

주제불우했던 유년 시절의 기억 회상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바람 부는 어느 겨울밤의 '나'와 '어머니'를 회상함.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작자의 가난하고 암울했던 유년 시절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작품으로, 시적 화자가 어느 겨울밤 무심게 듣던 '바람' 소리를 모티프로 하여 암울했던 그의 과거를 촉각, 시각, 청각의 이미지를 통해 형상화하였다. 마치 화자의 마음속에 각인되어 있던 추억을 묘사해 놓은 듯한 느낌을 준다.

이 시는 시인의 다른 작품인 '엄마 걱정'과 마찬가지로 어린 시절 가난했던 추억을 떠올리며 쓴 시로, 마치 한 장의 판화처럼 화자의 머릿속에 각인되어 남아 있던 가난과 추위로 인해 떨며 지낸 어릴 적 겨울밤의 추억을 묘사해 놓은 시라는 느낌을 준다.

 

◆ 더 읽을거리 : 「시의 길을 여는 새벽별 하나」-김상욱 저-

이 시의 주조를 이루는 정서는 무서움이 아니라 그리움이다. 지금은 사라져 버린 '작은 소년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이 그리움은 가장 고통스러웠던 한 순간에 대한 최종적인 평가이다. 이 최종적 평가와 생활 속에 구체적으로 각인되었던 고통, 그 사이의 거리야말로 시가, 문학이 우리에게 되돌려주는 힘이다. 그저 감정의 폭발적인 토로가 아닌, 그것의 의미를 새삼 실어 올리는 노력이야말로 예술이 삶과 달라지는 지점이며, 삶을 조금 떨어져 응시함으로써 비로소 획득하게 되는 진정성인 것이다.

이 시는 바람, 겨울의 이미지, 차고 바스라지는 이미지가 강요하는 무서움으로 충만해 있다. 심지어는 가장 풍부한 모성의 온기조차 그 냉혹한 바람의 이미지 안에 뒤섞여 버리고 만다. 그러나 어머니는 알고 있다. 공포란 바람의 소리만큼이나 분명하나, 그것은 고작 지금 여기에서의 느낌일 뿐, 많은 시간이 지난 다음 깊이 새겨져야 할 그림은 '당신 무릎에' 머리를 뉘고 있는 풍경임을. 그리고 이 혹독한 겨울, 그 겨울을 함께 이겨내던 사랑이 그리워 마침내 '더 큰 소리로 울'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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