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에게

                                                                              - 유치환 -

                                                       

 

 

     

    바람아, 나는 알겠다.

    네 말을 나는 알겠다.

     

    한사코 풀잎을 흔들고,

    또 나의 얼굴을 스쳐 가

    하늘 끝에 우는

    네 말을 나는 알겠다.

     

    눈 감고 이렇게 등성이에 누우면

    나의 영혼의 깊은 데까지 닿은 너.

    이 호호(浩浩)한 천지를 배경하고,

    나의 모나리자!

    어디에 어찌 안아 볼 길 없는 너.

     

    바람아, 나는 알겠다.

    한 오리 풀잎마다 부여잡고 흐느끼는

    네 말을 나는 정녕 알겠다.

 

 

 

 

                 - <청마시집>(1954)-

 

해                설

[개관 정리]

성격 : 낭만적, 애상적, 허무적, 의지적

표현 : 바람을 청자로 한 대화투의 문장

              화자와 교감하는 대상으로서의 바람을 의인화함.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1연 → 느닷없는 깨달음으로 시작함.

    * 네 말 → 바람이 던져주는 의미

    * 2연에서 형상화되는 바람의 의미

          → 우주 만물과 함께 호흡하는 영원한 방랑자

              삶의 본질인 '허무'의 실체

    * 우는 → 바람을 통해 '허무'를 인식한 화자의 슬픔이 반영된 시어

    * 3연에서 형상화된 바람의 의미

          → 화자의 영혼이 지향하는 애정과 흠모의 대상

              화자에게 허무와 고독으로 다가오는 대상

    * 부여잡고 흐느끼는 → 허무를 극복하고자 하는 화자의 처절함이 반영된 표현

 

주제바람을 통한 '나'의 인식(허무에 대한 인식과 극복 의지)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바람에 대한 '나'의 인식(바람과 나의 교감)

◆ 2연 : 바람의 구체적 행위를 통한 나의 깨달음

◆ 3연 : 바람에 대한 구체적 인식

◆ 4연 : 바람에 대한 '나'의 재인식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바람'과 '나'의 교감을 통해 자연의 오묘한 섭리를 드러내고 있다. '바람'은 우주 만물의 존재에 대한 깨달음을 새롭게 보여 주는 힘이며, 그것은 '나'와의 교감을 위해 의인화되어 나타난다. 바람은 정형화된 모습이 없고 실체가 없는 존재이다. 이 바람의 정처 없음에서 화자는 삶의 본질을 문득 깨닫는다. 인생도 바람과 마찬가지라는 인식이 그것이다. 인생의 본질은 허무라는 깨달음과 그 허무를 통해 본질적 허무를 극복하려는 안타까운 인식이 이 작품에 엿보인다. 유치환의 다른 시들이 그러하듯이 이 시도 허무를 초극하기 위해 고통스런 몸짓으로 허무에 부딪치는 처절하고 아픈 의지를 읊고 있는 것이다. 의지적이면서도 애상을 띠고 있는 청마의 시는, 허무 초극의 의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시에 흐르는 미감은 비장미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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