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의 마음

                                                                              -오상순-

 

 


흐름 위에

보금자리 친

오 --- 흐름 위에

보금자리 친

나의 혼(魂).

 

바다 없는 곳에서

바다를 연모(戀慕)하는 나머지에

눈을 감고 마음 속에

바다를 그려 보다

가만히 앉아서 때를 잃고.

 

옛 성 위에 발돋움하고

들 너머 산 너머 보이는 듯 마는 듯

어릿거리는 바다를 바라보다

해 지는 줄도 모르고 …….

 

바다를 마음에 불러일으켜

가만히 응시하고 있으면

깊은 바닷소리

나의 피의 조류(潮流)를 통하여 오도다.

 

망망(茫茫)한 푸른 해원(海原) …….

마음 눈에 펴서 열리는 때에

안개 같은 바다와 향기

코에 서리도다.

 

 

 

 

           -<동명>(1923)-

 

해         설

[개관정리]

성격 : 낭만적, 관념적, 명상적, 불교적

표현

     * 자연과 인간의 합일이라는 오랜 동양적 이상 표현

     * 대립에 의한 통합의 구조(역설적 상황 설정(1연) ⇒ 정착과 안식의 추구)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흐름 위에 보금자리 친 → 모순과 역설적인 화자의 영혼(안정과 방황을 함께 지님)

   * 바다 → 모든 것을 포용하고 새로움을 잉태하는 이미지로서, 방랑의 혼이 끝닿는 곳에서 편안히 쉬게 해줄 수 있는 공간(정착과 안식의 공간).  동경의 대상.

   * 때를 잃고 → 바다에의 집착적인 몰입

   * 옛 성 위에 발돋움하고 → 지난 시간을 딛고 선 미래지향적 자세

   * 피의 조류를 통하여 오도다 → 바다가 자아의 내면으로 들어오는 과정.  바다의 내재화

                                                      (영혼으로 소유할 수 있는 대자연)

   * 안개같은 바다의 향기 / 코에 서리도다 → 바다와의 신비적 일체감(합일)을 후각적으로 표현

                                                                      (동양적, 심미적 신비 체험)

 

주제 정착과 안식에의 동경(바다를 향한 동경)

[시상의 흐름]

◆ 1연 : 방랑의 혼

◆ 2연 : 심안(心眼)으로 바라보는 바다

◆ 3연 : 육안(肉眼)으로 바라보는 바다

◆ 4연 : 심안을 통한 바다의 내적 수용

◆ 5연 : 바다와의 내적 합일(정착과 안식의 획득)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두 편으로 된 연작시로서, 1923년 <동명>18호에 실린 작품이다. 이 시를 쓸 무렵, 시인은 금강산 신계사 등 전국 사찰을 전전하며 방랑생활을 시작했으며, 그 때의 심정을 담담하게 노래한 대표작이다. 바다와의 합일을 통해 자유와 생명을 갈구하는 젊은 날의 이상을 노래한 작품으로, 대자연과의 합일이 주관적인 내면세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때때로 한정된 현실로부터 벗어나 어떤 미지의 세계를 동경하게 된다. 그 곳은 실재하는 곳일 수도 있고, 가상의 세계일 수도 있다.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이 힘들고 불안하고 불만족스러울수록 동경의 마음은 더욱 더 커지게 마련이다. 이 시의 자아 또한 그런 동경의 대상으로서 '바다'를 설정해 놓고 있다. 바다는 막힌 데 없이 망망하게 터져 있으며 풍성한 물결이 출렁거리는 곳이기에 현실의 한정된 울타리 속에 살아가는 이들에게 동경의 대상이 되기에는 충분한 곳이다. 바다를 그리워하면서 방랑하는 자아의 영혼은 마침내 바다와의 합일을 이루게 된다. 그래서 마음의 눈을 통해 바다는 다가오고, 그 향기마저 코에 서린다고 한다.

■ 오상순의 작품 세계

1920년대 초의 퇴폐주의 풍조 속에서 허무적이고 어두운 폐허를 그의 시사상의 원천으로 삼았다.  그는 태초, 허무, 폐허, 태고 등의 용어를 많이 사용하여 원초의 상태에 대한 향수를 가졌었다. 공초의 작품 세계에 나타난 허무는 개인을 넘어서 그 시대를 살았던 젊은 지식인들 전체의 아픔으로 와 닿는 것이다.  만년에는 종교적 색채가 가미되면서 허무를 초극하여 생명의 신비를 예찬한 철학적 단상으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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