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열

                                                                              - 정지용 -

                                                       

 

 

 

처마 끝에 서린 연기 따러

포도(葡萄) 순이 기어 나가는 밤, 소리 없이,

가믈음 땅에 스며든 더운 김이

등에 서리나니, 훈훈히,

아아, 이 애 몸이 또 달아 오르노나.

가쁜 숨결을 드내 쉬노니, 박나비처럼,

가녀린 머리, 주사 찍은 자리에, 입술을 붙이고

나는 중얼거리다, 나는 중얼거리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다신교도(多神敎徒)와 같이.

아아, 이 애가 애자지게 보채노나!

불도 약도 달도 없는 밤,

 

 

 

아득한 하늘에는

별들이 참벌 날으듯 하여라.

 

                 - <조선지광(1927) -

 

해           설

[개관 정리]

성격 : 서정적, 영탄적, 감상적

표현

       * 어순의 도치를 통해 시적 화자의 애타는 심정과 시적 긴장감을 드러냄.

       * 동일 어구의 반복과 영탄형의 문장 구조를 사용하여 화자의 안타까운 정서를 강조함.

       * 쉼표를 자주 사용하여 화자의 애타는 심정과 숨가쁨을 극대화함.

       * 대상(아이)이 처한 현재 상황을 부각하여 시적 정서를 직접적으로 노출함.

       * 촉각적 심상과 시각적 심상을 중심으로 하여 안타까운 심정을 이미지화하여 드러냄.

       * '배경 묘사 → 상황과 정서 진술 → 배경 묘사'의 순서로 시상이 전개됨.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포도순이 기어나가는 밤, 소리없이 → 적막하고 습한 여름밤의 분위기 제시

                                                             어순의 도치를 통해 시적 긴장감 제시

    * 가믈음 땅에 스며든 더운 김 → 아이의 고열을 극대화한 표현

    * 등에 서리나니, 훈훈히 → 어순의 도치가 반복적으로 일어남.

    * 아아, 이 애 몸이 또 달아 오르노나.

           → 아이의 고통을 안타까워하는 화자의 정서가 직접적으로 표출됨.

    * 가쁜 숨결을 드내 쉬노니, 박나비처럼

           → 고통스러워하는 아이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함.

    * 박나비 → 흰제비불나방, 몸은 흰색이며 배에는 붉은 색 줄무늬가 있음.

    * 주사(朱砂) → 짙은 붉은색의 광물질로, 한방에서 열을 내리는 데에 사용되었음.

    * 나는 중얼거리다, 나는 중얼거리다 → 반복을 통한 안타까운 심정의 강조

    * 아아, 이 애가 애자지게 보채노나!

           → 영탄적인 문장을 통해 부모로서의 안타까움과 절망감을 직접적으로 표현함.

    * 애자지게 → 애타게, 창자가 끊어지도록

    * 불도 약도 달도 없는 밤 → 아이의 고통에 대해 어찌해 볼 수 없는 화자의 절망적인 상황

                                            화자가 처한 상황과 정서로 '밤'이라는 배경으로 강조함.

    * 아득한 하늘에는 / 별들이 참벌 날으듯 하여라.

          → 아득한 하늘에 별들이 흩어지는 듯한 모습을 벌들이 나는 것으로 표현함.

              영탄적 종결어미의 반복적 사용으로, 안타까움의 정서를 고조시키고 있다.

 

제재 : 아이의 발열

화자 : 아이가 겪는 고통 앞에서 절망적이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무기력하게 지켜보는 부모의 모습

주제 : 자식의 고통을 바라보는 부모의 안타까운 마음

[시상의 흐름(짜임)]

◆ 1 ~ 5행 : 적막하고 습한 여름밤

◆ 6 ~ 10행 : 고열에 시달리는 아이의 모습을 보는 안타까움

◆ 11 ~ 13행 : 절망적 상황 인식과 안타까움의 심화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고열(高熱)로 인해 신음하는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안타까운 마음을 노래하고 있다. 촉각적 심상과 시각적 심상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동일 어구의 반복과 영탄형의 문장 구조를 사용하여 화자의 정서를 강조하고 있다.

자식의 고통을 바라보는 부모의 애타는 심정을 표현하면서도 쉼표를 자주 사용하여 숨가쁨을 극대화하고 있는데, 애타는 심정이 대자연의 신비, 아름다움과 조화를 이루어 아이와 부모의 고통의 순간이 저절로 한 폭의 그림과도 같은 기도 의식으로 승화되고 있다.

정지용의 시적 경향은 이미지즘 계열의 사물시로, 능란한 시어 구사를 통해 선명한 이미지를 살린 모더니즘적 요소가 두드러진다. 그는 추상적 · 관념적 대상까지도 시각을 중심으로 한 감각적 이미지로 형상화하여 이미지즘 시인으로 평가받는다.

일반적으로 그의 시는 3기로 나눌 수 있다. 제1기는 향토색 짙은 순수 서정의 세계가 비관적 현실 인식에 대한 비애의 정조로 표현되었고, 제2기는 바다의 이미지와 도시의 이미지를 추구한 모더니즘적 경향이 두드러진다. 제3기는 대자연에 침잠해서 일제 말기의 시대적 고뇌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시대적 몸짓이 담겨 있다. 그는 능란한 시어 구사를 통해 선명한 이미지를 살린 감각적 이미지즘 시인으로 1930년대 전후의 한국 현대시의 새로운국면을 개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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