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의 마음

                                                                              -나희덕-

                                                       

 

 

 

배추에게도 마음이 있나 보다.

씨앗 뿌리고 농약 없이 키우려니

하도 자라지 않아

가을이 되어도 헛일일 것 같더니

여름내 밭둑 지나며 잊지 않았던 말

―― 나는 너희로 하여 기쁠 것 같아

―― 잘 자라 기쁠 것 같아.

 

늦가을 배추 포기 묶어 주며 보니

그래도 튼실하게 자라 속이 꽤 찼다.

―― 혹시 배추벌레 한 마리

이 속에 갇혀 나오지 못하면 어떡하지?

꼭 동여매지도 못하는 사람 마음이나

배추벌레에게 반 넘어 먹히고도

속은 점점 순결한 잎으로 차오르는

배추의 마음이 뭐가 다를까.

 

 

 

배추 풀물이 사람 소매에도 들었나 보다.

 

해           설

[개관 정리]

성격 : 생태적, 자기성찰적, 자연친화적, 비유적

특성

① 일상적 소재를 통해 생명의 가치에 대한 깨달음을 표현함.

② 배추를 의인화하여 자연과 인간의 정서적 교감을 표현함.

③ 시간의 흐름(여름에서 가을로)에 따른 시상 전개 방식을 보여줌.

④ 대화체와 독백체를 섞어가면서 화자의 내면 심리를 적절히 드러냄.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배추 → 애정과 교감의 대상

* 나는 너희로 하여 ~ 기쁠 것 같아. → 배추에 대한 애정이 담긴 말

* 속이 꽤 찼다. → 충실함의 결과

* 혹시 배추벌레 ~ 어떡하지? → 생명에 대한 사랑

* 배추벌레에게 반 넘어 먹히고도 → 희생과 헌신

* 순결한 잎 → 희생을 통해 차오르는 생명의 신비로움

* 뭐가 다를까 → 자연과 인간의 동질성

* 배추 풀물이 사람 소매에도 들었나 보다 → 자연과의 합일

 

제재 : 배추(화자에게 정신적 깨달음을 주는 대상)

주제자연물과 교감을 통해 깨달은 생명에 대한 사랑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배추에 대한 '나'의 사랑

◆ 2연 : 배추벌레에 대한 배추의 사랑과 '나'의 깨달음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시의 화자는 들판에서 자라나는 배추를 보면서 교감을 나누고 그로부터 삶의 의미를 깨닫고 있다. 화자는 1연에서 자라고 있는 배추에게 다정한 사랑의 말을 건네고 있으며, 이 사랑의 말이 그들을 자라게 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삶에 대해 낙천적이며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2연에서 화자는 배추와 교감을 나누고 있는데, 이를 통해 배추가 보여 주는 희생의 참다운 의미를 깨닫는다. 즉, 배추는 화자에게 정신적 깨달음을 주고 있는 것이다.

 

◆ 더 읽을거리 : 생태시 연구 / 이재식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칭찬이 효과적이다."라는 말이 있다. 상대의 장점을 파악하여 추켜주면 그는 자신이 인정받는 생각 때문에 기분이 좋아진다. 이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시작하는 일은 대개 능률도 높고 결과도 좋기 마련이다. 환경과 생태계를 보호하려는 충정도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시각과 자세보다는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방향에서 시도되어야 할 것 같다. 절반 정도 남긴 술병의 술을 보고 '이제 반밖에 남지 않았다.'와 '아직 반이나 남았다.'는 생각의 차이는 크기 때문이다.

고재종의 <날랜 사랑>은 봄날 냇물에 뛰어오르는 피라미 떼를 노래한 것이다. 세찬 물줄기를 박차 오르는 피라미 떼의 역동적인 힘에서 시인은 생명의 힘과 아름다움을 본 것이다. 그런데 그 시선은 방관자적이 아니라 대상과 혼연일체가 된 동화의 상태에 있다. 자연을 자신과 동일한 맥락에서 바라보며 자신의 삶의 영역으로 수용하고 있다. 이렇게 철학적 사유에 기초한 동일시가 물아일체의 논지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와 같이 물아일체의 자연관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을 인간과 동일한 선상에서 인식한다. 그 대상이 동물이든 식물이든 생명이 있는 것들의 무게는 같다는 인식이다.

나희덕의 <배추의 마음>도 식물과 인간 사이에 오가는 마음의 교류가 의미 중심을 이루고 있다. 곧, 배추를 인간과 같은 위치에 두고 있다는 인식이다. 배추에게는 잘 자라서 자신에게 기쁨을 달라는 소망을 전했고 배추는 마치 그 마음을 알아차린 듯 가을에 튼실한 성장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배추의 성장을 지켜보는 시인의 눈길은 생명 사랑의 정신으로 가득 차 있다. 그는 배추를 묶으면서도 배추벌레가 그 속에 갇혀 나오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하고 있다. 이런 심경과 행태인 그녀의 모습이 시인 아닌 누구에게서 볼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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