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수 없어요

                                                                              -  한용운  -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垂直)의 파문을 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탑(搭) 위에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근원은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서 돌부리를 울리고, 가늘 게 흐르는 작은 시내는 굽이굽이 누구의 노래입니까?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이 없는 바다를 밟고, 옥 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해를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시(詩)입니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님의 침묵>(1926)-

 

해           설

[개관 정리]

◆ 성격 : 구도적, 역설적, 명상적, 관념적, 신비적

표현

* 산문적 리듬과 경어체의 사용(유원하고 심오한 동경을 표현하기에 적절)

* 의문형 문장의 반복을 통해 주제를 심화하고 시상을 통일함.

* 각운적 요소(∼입니까?),  설의적 표현

* 동일한 통사구조의 반복(A는 누구의 B입니까?)

* 시간의 흐름에 따른 전개(낮→저녁→밤)

* 비유적 대응관계 형성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누구 → 님. 절대자.

    * 1행 → 신비로운 자연을 통해 임의 의지를 드러냄.

                 '수직의 파문'은 심안으로만 볼 수 있는 파장으로, 시인의 직관력이 돋보이는 표현.

    * 2행 → 깨달음의 순간에 임의 신비한 모습을 인식함.

                 '검은구름(세속적 번뇌와 고통)'을 벗어나 '푸른하늘(님의 오묘한 진리와 깨달음)'을 만남.

    * 3행 → 님의 향기를 느낌

                 님의 입김은 너무나 향기로워, 시간적 확대(옛 탑)와 공간적 확대(나무, 이끼)를 가능하게 함

    * 4행 → 불도의 광대무변한 진리에 대한 감동과 인간의 한정된 세계 속으로 들어온 님의 모습.

    * 5행 → 님의 아름다운 모습이 온 천지에 충만함을 노래함.

                 저녁놀은 절대자의 시이며, 더없이 아름답고 정화된 종교적·예술적 경지를 암시.

    * 6행 → 화자의 끝없는 구도정신과 신앙적 고백이 나타남.

    * 타고 남은 재가 기름이 됩니다 → 윤회사상. 부정을 통해 긍정에 이르는 불교적 변증법의 원리

                                                       소멸해 버린 어떤 것의 소생에 대한 신념(소멸→극복→생성)

   * 타고 남은 재 → 비생명, 무(無), 소멸해 버린 것, 상실한 주권,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형이상학적 존재

   * 기름 → 생명의 상태, 유(有), 가치있는 대상

    *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 님을 향한 사랑과 그리움을 잃지 않고 밤을 지켜나가겠다는 의지의 표현

                  밤 : 님이 없는 상황의 어두움, 주권상실의 현실, 절대자가 불신받는 현실

                  약한 등불 : 자신을 무화(無化)시켜서 남을 존재하게 하는 거룩한 존재

                                   경건하고 절대적인 신앙의 등불

                                   조국의 재생을 기다리는 새벽을 위해서 타는 등불

 

주제절대자에 대한 구도적 염원

             감각적 현상의 배후에 있는 절대자의 신비함과 그에 대한 신앙적 고백

             조국의 독립을 위한 저항의지

[시상의 흐름(짜임)]

◆ 1행 : 떨어지는 오동잎 = 님의 발자취

◆ 2행 : 푸른 하늘 = 님의 얼굴

◆ 3행 : 알 수 없는 향기 = 님의 입김

◆ 4행 : 작은 시내 = 님의 노래

◆ 5행 : 저녁놀 = 님의 시

◆ 6행 : 님을 향한 변함없는 정신(끝없는 구도정신과 신앙고백)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작품은 문장 구조가 같은 질문의 반복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질문은 한결같이 "A는 누구의 B입니까?"의 형식을 나타내고 있다. 일견 단순해 보이는 이 질문은 자연 현상에 대한 세밀한 관찰력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이 질문 속에는 '나'의 모습이라곤 전혀 나타나 있지 않다. '나'는 오직 자연 현상을 관찰하는 자일 뿐이다. 이 자연 현상이 '님'의 현신임은 말할 나위 없다. '나'는 자연 현상 속에 드러나 보이는 '님'의 모습을 통해 자기 삶을 되돌아보는 기회를 삼는다.

이렇게 의문형으로 끝나는 몇 개의 행이 계속되다가 마지막 한 행에서는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라는 진술이다. 이것은 이 작품 전체에서 유일하게 의문형으로 끝맺지 않은 문장일 뿐만 아니라 이 시의 주제를 이해하는데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행은 님을 향한 간절한 그리움의 고백이다. '나'는 그 '님'의 밤을 지키기 위하여 자기 스스로를 태우는 등불이다. 여기서 '밤'은 '님'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의 어둠의 시간이며, 모든 아름다운 것들이 사라진 괴로운 시대에 해당한다. 이 어둠의 시대에 '나'는 자기 자신을 태워서 어둠과 싸우며 '님'이 사라진 세상을 조금이나마 밝히고자 한다. 그 불태움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되는 지속적인 것이다.

물론 이 작품의 기본 바탕은 불교의 윤회 사상과 연기설(緣起說), 그리고 색즉시공(色卽是空)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지만, 그 심오한 진리가 작품 속에 완전히 용해된 탓으로 조금도 설법(說法)의 냄새를 풍기지 않고, 도리어 감각적 실체로만 나타나 있어 만해의 뛰어난 시적 능력을 감지(感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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