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마음

                                                                              -  김현승  -

                                                       

 

 

 

바쁜 사람들도

굳센 사람들도

바람과 같던 사람들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어린 것들을 위하여

난로에 불을 피우고

그네에 작은 못을 박는 아버지가 된다.

 

저녁 바람에 문을 닫고

낙엽을 줍는 아버지가 된다.

 

세상이 시끄러우면

줄에 앉은 참새의 마음으로

아버지는 어린 것들의 앞날을 생각한다.

어린 것들은 아버지의 나라다   아버지의 동포(同胞)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

아버지는 비록 영웅(英雄)이 될 수도 있지만…….

 

폭탄을 만드는 사람도

감옥을 지키던 사람도

술가게의 문을 닫는 사람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아버지의 때는 항상 씻김을 받는다.

 

 

 

어린 것들이 간직한 그 깨끗한 피로…….

            -<절대 고독>(1970) -

 

해           설

[개관정리]

성격 : 명상적, 고백적, 서정적

◆ 표현 : 담담하고 차분한 어조와 평이한 시어 사용

              반복과 열거

 

◆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1연의 '아버지' → 아버지가 지니는 보편적 이미지(자상하고 인자하고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모습)

    * 줄에 앉은 참새의 마음

           → 세상의 모든 위험과 불안의 요소에 노출되어 있어, 항상 불안하고 염려하는 마음

    * 어린 것들은 아버지의 나라다. 아버지의 동포다

            → 자식은 아버지에게 있어 삶의 가장 소중한 존재이자, 삶의 전부이다.

    *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 → 겉으로는 강하고 꿋꿋하게 보이지만, 나약한 면이 있음을 나타냄.

    * 아버지의 때 → 바깥 생활에서 겪어야만 하는 아버지들의 삶의 고달픔이나 괴로움

    * 씻김 → 위로, 정화의 의미

    * 피 → 존재의 생명 또는 존재 그 자체를 상징하는 말

               예수의 피가 인간의 추악한 죄를 씻겨주듯이, 자식의 피가 아버지의 때를 씻겨주는 것으로 표현

    * 깨끗한 피 → 순수하고 올곧게 성장한 자식의 모습

 

◆ 주제가족을 위한 아버지의 사랑(희생)과 고독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아버지라는 존재(보편적인 부성)

◆ 2연 : 가족을 위해 봉사하는 아버지

◆ 3연 :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아버지

◆ 4연 : 가족(자식)을 염려하는 아버지

◆ 5연 : 아버지로서의  슬픔과 외로움

◆ 6연 : 밖에서의 아버지의 모습들(생업에 종사하는 아버지들)

◆ 7연 : 가족에게 위안 받는 아버지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평범한 시어와 평이한 어조로 가족을 위해 말없이 희생하고 헌신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담담하게 그림으로써 잔잔한 감동을 전해 준다.

이 시에서 묘사된 아버지의 모습이 물론 모든 아버지의 경우에 다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아버지가 지니고 있는, 혹은 지향하는 보편적인 부성(父性)의 모습을 이 시만큼 소박하면서도 진솔하게 표현하고 있는 시도 드물 것이다. 물론 이 시에서 그려진 아버지의 상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상을 그리고 있다는 비판도 가능하다. 가장으로서의 아버지의 모습만이 그려지고 있을 뿐 살아있는 한 인간으로서의 모습은 배제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삶의 모든 짐을 혼자 짊어진 채 묵묵히 가족들의 울타리가 되고 자식들의 버팀목이 되고 있는 많은 아버지들의 모습이 이 시에처럼 선명한 형상을 얻고 있는 예를 찾아보기는 어렵다는 점만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퍼온 글>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은 집과 같이 거룩한 존재이다. 집이 있기에 사람들은 그 곳에 주소를 두고, 이름을 적을 뿐 아니라, 가정이라는 보금자리를 이루어 행복한 삶을 살아간다. 집은 언제나 한 곳에 우뚝 서서 자리를 지킨 채 말이 없다. 집이 비바람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는 것처럼 아버지도 항상 말없이 사랑과 근심으로 자식들을 돌보고 앞날에 대해 걱정한다. 그러기에 아버지는 고독한 존재이다. 식구들을 위한 매일의 수고와 삶이라는 무거운 숙제를 풀어야 하는 외로움으로 인해 아버지는 '보이지 않는 눈물'을 흘린다. 아버지는 가족들 앞에서 겉으로는 태연해 하거나 자신만만한 척하지만, 속으로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허무감과 자식들에 대한 걱정으로 인해 괴로움을 겪는 존재이다. 단순히 아버지로서의 권위 때문에 그러는 게 아니라, 가장으로서 모든 가족들의 버팀목이 되어야 하는 아버지는 잠시도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이렇게 힘겨운 삶의 무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아버지라는 사실 때문에 속으로만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다. 이러한 아버지의 깊은 외로움을 치유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어린 것들이 간직한 그 깨끗한 피', 곧 자식들의 올곧은 성장과 순수뿐이다. 비록 세파에 시달리며 힘든 삶을 사는 아버지이지만, 자신의 소망대로 자식들이 순수하고 올바르게 자라나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그 모든 고독과 노고를 깨끗이 보상받게 되는 것이다. 독실한 기독교 신앙에 뿌리를 두고 작품 활동을 한 지은이의 인생관을 내포하고 있는 이 시에는, 모든 인간들은 끊임없는 자기 성찰을 통해서 인간 본연의 순수함으로 거듭 태어나야 한다는 함축적 의미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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