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후의 가을

                                                                              -곽재구-

                                                       

 

 

 

내 어릴 적 산골 학교 미술 시간에

나는 푸른 크레용으로 옥토끼 모양 우리나라

지도를 그려 놓고 그 안에 울긋불긋 우거진

단풍잎과 맑은 시내를 그렸었다.

산머루 향이 교실까지 날아들던 오후

사범 학교를 갓 졸업한 처녀 선생님은

내 그림을 보고 울으셨다.

가을 산꽃이 피고 해으름이 일고

그 가을내 나는 선생님의 눈물 방울과 같은

단풍잎과 맑은 시냇물 속에 뛰놀았지만

돌아서서 눈물을 훔치던 선생님의 뒷모습과

나를 쳐다보던 충혈된 눈동자를 잊을 수 없었다.

그래 단풍잎은 지고 세월은 가고

이제는 선생이 된 내 앞에서

아이들이 땀을 흘리며 그림을 그린다.

똑같은 얼굴 똑같은 슬픔의 푸른 크레용으로

둘러친 동강 난 내 땅 내 그리운 하늘

아이들은 평상의 얼굴로

반쪽의 땅 위에 단풍잎을 채우고

나는 충혈된 눈으로 아이들을 보았다.

눈을 뜨고 모른다며 살아온 날들이 가슴 후비는 날

가만히 손가락으로 그려 보는 내 땅 내 그리운

하늘 아래 나는 이제 무엇을 채울 것인가

내 손으로 그린 내 땅 안에 허름하게 시든

단풍잎 하나 떨구는 것을 거부하면서

끝내는 잊혀진 옛 선생님의 눈물마저 되살아나

동강 난 눈물 방울들이 산과 바다와

 

 

 

아이들의 웃는 얼굴을 뒤덮었다.

 

 

해           설

[개관 정리]

성격 : 회상적, 대비적, 현실 비판적

특성

① 과거와 현재의 대비를 통해 시상을 전개함.

② 비유와 상징을 통해 시대 상황을 효과적으로 나타냄.

③ 일상생활과 연관된 쉽고 편한 소재를 활용하여 사실성을 높임.

④ 이념적 접근보다 정서적으로 접근함으로써 공감을 확대함.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내 어릴 적 → 과거 회상

* 나를 쳐다보던 충혈된 눈동자들 → 분단 상황에 대한 선생님의 현실 인식

* 그림 → 화거 회상의 매개체, 분단의 비극성 환기

* 동강 난 내 땅 → 분단 현실

* 눈을 뜨고 모른다며 살아온 날들이 가슴 후비는 날 → 자기성찰적 태도

* 나는 이제 무엇을 채울 것인가 → 분단 현실 앞에서 느끼는 '나'의 무력감

* 잊혀진 옛 선생님의 눈물마저 되살아나 → 과거와 현재의 상황이 변하지 않았음.

* 동강 난 눈물 방울 → 중의법(분단 현실에서 흘리는 눈물, 눈물이 떨어지는 모습)

 

주제분단 현실에 대한 슬픔과 자기 반성

[시상의 흐름(짜임)]

◆ 1 ~ 4행 : 20년 전 '나'가 그린 우리나라 그림

◆ 5 ~ 12행 : 아이들이 그림 그리는 것을 보고 우셨던 선생님

◆ 13 ~ 20행 : 반쪽의 땅만 우리나라라고  생각하는 요즘 아이들

◆ 21 ~ 28행 : 분단 상황을 당연시하는 아이들에 대한 안타까움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20년 전에 선생님이 느꼈을 심정과 오늘날 교사가 된 화자가 느끼는 심정을 대응시켜 분단 상황에 대한 슬픔과 안타까움을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다. 일상의 행위를 통해 딱딱한 주제를 부드럽고 상징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이 작품은 그림을 매개로 유년 시절에 대한 회상과 현재 사회 현실에 대한 화자의 생각을 겹쳐 표현하고 있다. 산골 학교 선생님인 화자는 미술 시간에 아이들이 그림을 그리는 광경을 보면서 자신의 유년 시절을 회상한다. 그때 자신의 그림을 보고 슬픈 표정을 지었던 선생님을 이해하지 못하였는데 이제는 이해한다. 반공 이데올로기 체제 앞에서 동강난 한반도의 그림은 선생님을 슬프게 했을 것이다. 지금 그때의 선생님과 같은 위치에 서서 아이들을 보는 화자의 눈앞에 펼쳐진 상황도 예외가 아니다. 한반도 전체가 아름다운 우리 국토여야 하는데, 아이들은 반공 이데올로기 속에서 남쪽만 아름답게 그리고 있다. 화자는 계속되는 분단 현실 앞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을 생각하며 답답해하고 슬퍼한다.

 

◆ 곽재구의 작품 세계

분단과 통일에 대한 시 역시 통일의 당위성과 소망을 관념적이고 추상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서정적인 목소리로 감성에 호소하는 형식을 취한다. 한편 그의 시의 주된 관심의 영역은 일상 서민들의 삶의 애환이다. 여기에는 서민들의 삶의 양상과 심정이 구체적이며 직접적으로 이야기 형식을 통해 서술되고 있다. 그 서민들은 농어민, 여공, 장꾼, 대장장이, 촌부, 택시 기사, 버스 차장, 복싱 선수, 창녀 등으로 현실에 적응하거나 안주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들의 삶에 대응하는 양상은 가혹한 현실에 패배하고 좌절하는 모습이 아니라 도전적이며 극복하려는 자세를 지닌 것으로 드러난다.

또한 시인은 자신이 파악한 왜곡되고 불완전한 현실의 모습만을 토로하거나 그려 내는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바람직하고 건강한 사회와 역사에 대한 희구까지도 드러낸다. 그가 바라는 시대와 현실은 남북한 간의 화해와 통일이 이루어진 상태이며, 노동의 정당한 가치가 인정되는 사회이며, 계층 간의 갈등이 존재하지 않는 현실이다. 나아가 일상 서민들이 화해롭고 평화로운 삶을 이루는 시대 현실을 꿈꾸고 있다. 시인은 직접 체험을 통하여 자신이 희구하는 이상적 현실을 노래하기 때문에 그의 시는 공소하거나 추상적이지 않고 구체적이며 진솔하다는 느낌을 준다.

이처럼 당대 현실에 깊은 관심을 드러내는 그의 시들은 우선 맑고 투명한 서정성의 획득으로 인해 관념의 육화에 성공하고 있다. 곽재구의 시는 사회와 현실에 대한 고통과 절망을 노래하면서도 서정성을 확보함으로써 형해가 드러난 관념시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 곽재구 시의 서정성은 그의 시에 빈번히 등장하는 꽃, 바다, 별, 산, 새, 풀, 강 등의 자연 이미지에 힘입은 바가 크다. 시인에게 자연은 그 속에서 살아온 서민의 생활과 정서와 함께 현실의 고통을 포용하고 승화하는 순수한 서정성의 한 원천으로 기능한다. 그 정서는 현실이나 사회의 부정적인 측면에 대응하는 시인의 낙관적이고 차분하게 가라앉은 시선 때문에 생성된다. 시인은 사회와 현실의 부정과 부패에 대해 과격한 분노나 격렬한 비판을 노출하지 않고 내면화시켜 잔잔한 어조로 이야기한다. 시인은 자신의 분노를 결코 직접적이거나 관념적으로 토로하지 않고 내면에서 용해하여 서정적으로 발화한다. 따라서 그는 증오의 시인이 아니라 사랑의 시인이다. 그리하여 곽재구 시의 주된 정서는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그리움, 허약하고 소외된 대상들에 대한 사랑, 아련한 슬픔, 미래에의 긍정적인 희망, 아름다운 과거의 추억 등으로 드러난다.

[교과서 활동 다지기]

1. '처녀 선생님'과 '선생이 된 나'가 느끼는 슬픔을 비교해 보자.

 

처녀 선생님

선생이 된 나

공통점

조국이 분단된 현실에 대해 슬픔과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다.

차이점

조국 분단의 현실을 인식하지 못한 채 토끼 모양의 국토에 아름다운 단풍잎과 시내를 그려 넣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을 보며 분단의 현실에 대한 슬픔을 더욱 크게 느끼고 있다.

아이들이 토끼 모양의 국토 중 절반 부분에만 예쁜 단풍잎을 그리는 것을 보고 분단의 슬픔은 물론 분단 현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아이들에 대해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다.

 

2. 문학이 인간과 세계가 소통하여 하나의 공동체로 나아가는 데 일정한 역할을 한다는 관점에서 이 시를 이해해 보자.

(1) 시인이 우리나라의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말해 보자.

→ 남북이 각자의 체제를 고수하며 분단이 당연시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2)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을 돌아보고, 시인의 생각과 자신의 생각을 비교해 보자.

→ 현재 우리나라는 과거보다 활발하게 남북 교류가 이루어지는 편이기는 하지만 통일을 이루기에는 아직도 많은 장애가 존재하고 있다. 시인은 이런 분단 앞에서 무기력함을 느꼈는데, 나는 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3. 통일을 맞은 시인이 그 기쁨을 드러내기 위해 새로운 시를 쓴다고 가정하고, 다음 활동을 해 보자.

(1) 시 제목이 다음과 같다고 할 때, 빈칸을 채워 보고 그 이유를 말해 보자.

또 ( 10 )년 후의 가을

→ 지금은 분단된 상태지만 10년 뒤에는 통일될 것 같다. 그래서 10년 뒤의 이 시인은 10년 전에 분단을 안타까워하며 시를 쓰던 때를 떠올리며 다시 통일의 기쁨을 노래하는 시를 쓰고 있을 것 같다.

 

(2) 다음 조건에 따라 모둠별로 공동 창작 시를 써 보자.

<조건>

* '20년 후의 가을'과 내용이 연결되도록 구상한다.

* 통일을 맞은 화자의 정서가 드러나도록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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