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예(猶預)(1955)

-오상원-  

◆ 소설 읽기  

● 줄거리

그는 수색대의 소대장이다. 그는 부하들을 이끌고 북으로 진격한다. 여러 차례의 전투 끝에 적의 배후에 깊숙이 들어가게 된 부대는, 본대와의 연락은 끊어지기 시작했고, 후퇴 또한 용이치 않았다. 기아와 피로에 점점 낙오자는 늘어가고, 눈보라 속을 헤매다가 어느 마을에 들어가 얼어 빠진 감자로 허기를 달랬다. '소대장님'하고 부르며 눈속에 쓰러지는 부하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그들을 남겨놓고 후퇴를 하는 도중에, 일발의 총성이 울리고, 선임하사가 쓰러졌다. 그를 끌고 산속으로 들어가 정신을 차리니 새벽이었다. 전투가 재미있다고 하던 선임하사는 서서히 의식을 잃어가면서, 사람은 서로 죽이게 되어 있고, 이제 자기 차례가 되었다고 담담히 말하였다.

눈 속을 헤치고 피로와 추위에 허덕이며 남으로 남으로 걸어오며 험한 준령을 정복했다.  이튿날 산아래 마을이 눈에 들어왔고, 황량하게 버려진 마을이었으나, 그곳에서 한 청년의 총살 직전의 광경을 목격한다. 청년은 잠시 후 총살될 것이고, 그는 마치 청년이 그 자신인 것 같았기에, 총을 그자들에게 겨누어 난사했다.  상대방에게서 응수가 오고 그는 피를 흘리며 의식을 잃었다. 포로가 된 것이다.

포로가 된 후, 적의 회유, 포박, 심문이 있었고, 이제 모든 것은 끝나는 것이다. 준비완료와 집행 명령이 떨어지고, 그는 눈덮인 둑길을 걸어간다. 끝나는 일초일각까지 나를 잃어서는 안 된다고 그는 다짐한다. 걸음은 의지처럼 정확했고, 뒤 허리에 충격을 느끼며, 흰 눈이 회색으로 흩어지다가 어두워지며 모든 것은 끝나 버린다. 햇빛이 따스히 눈 위에 부서진다.

● 인물의 성격

◆ 소대장(그→나) : 포로가 되어 결국 총살당함. 전쟁 속에서 삶에 대한 회의를 느끼며, 현실적인 삶을 무의미하게 여겨 결국 죽음을 선택하는 인물.  스스로가 처한 상황과 입장을 누구보다도 명징하게 인식하고 있으며,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한 시간이라는 삶의 유예기간 동안 자신의 의지를 시허하고 확인하는 정적 인물.     

◆ 선임하사 : 2차대전 때 일본군으로 남양 전투에 참여한 바 있고, 일본의 패망으로 포로 생활을 하다가 팔로군 국부군을 거쳐 국군으로 전쟁에 참여한 군인이다. 역사란 싸움의 연속이고 싸움은 역사에 참여하는 진정한 길이라는 생각을 가진 정적 인물

● 구성 단계

◆ 발단 : 인민군에게 잡혀 총살당하게 된 그의 심리적 갈등이 제시됨.

◆ 전개 : 북으로 계속 진격하였으나 너무 적의 배후 깊숙히 들어가 몇 차례 전투 끝에 6명만 남음.

◆ 위기 : 마을에서 인민군들에 의해 처형되는 병사를 보며 그의 죽음이 자신의 죽음이라 생각한 그는 적을 향해 난사했으나 적의 응사로 부상당함.

◆ 절정 : 적의 회유. 전쟁에 헛되이 죽어 가는 인간 존재의 비극성이 눈 덮인 들판의 배경과 함께 주제로서 암시됨.

◆ 결말 : 죽음 직전의 마지막 의식이 전쟁의 비인간성을 고조시킴

●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포로로 잡힌 국군 소대장을 주인공으로 설정하여 그에게 주어진 한 시간이라는 삶의 유예기간 동안 피살자인 그가 느끼는 여러 상념들을 의식의 흐름 이라는 수법으로 처리하여,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의 인간의 심리상태를 조명하였으며, 전쟁의 비극성이나 무의미함을 표출하고 있다. 전쟁 자체의 비극성보다는 그런 전쟁 속에서의 인간의 심리를 탐구한 작품이다.

 

* 의식의 흐름에 의한 작품 ⇒ 명멸하는 의식의 흐름에 따라 소설이 진행되어, 오로지 의식에 부상한 순서만 있을 뿐 사건의 전후 상황을 파악하기 곤란할 정도로 사건의 시간적 질서는 뒤죽박죽되어있음.

* 실존주의로부터의 영향 ⇒ 극한상황(한계상황)에 던져져 있는 고립된 존재의 실존 문제 추구

* <유예>의 상황 ⇒ 주인공에게 주어진 한 시간이라는 삶의 시간

                             주인공의 어설픈 추억이나 가족적 상황은 모두 지워진 상태

                             죽음을 맞는 피해자 주인공과 가해자 적군의 극한적 대립 상황

* 마지막 장면 '백설'의 상징성 ⇒ 총살 직전의 냉혹하고 비극적인 상황을 제시하면서 인간 생명에 대한 무관심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하얗고 차가운 눈의 이미지를 통해 전쟁의 비인간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 형식적 특성과 난해성 ⇒시간의 무질서함, 문장의 빠른 전개를 통한 사건의 속도감, 시점의 뒤섞임, 시제의 불일치 등으로 인해 작품의 난해성은 커지기만 함.

* 전쟁의 의미 ⇒ 주인공과 선임하사의 말 "아무 것도 아니다".

                         전쟁이나 죽음이나 모두 무의미하고 맹목적인 열정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 내면에 도사린 광기의 발현일 뿐이다. 그것은 인류와 민족의 불행을 자아낸 근본 원인이다. 그러므로 전쟁 자체에 절망할 이유가 없다. 인간이 그런 것이라면, 전쟁의 부정성 앞에 고개를 숙일 이유는 없다. 그 거대한 부정에 맞서 올곧게 사는 것이 진정한 승리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의연해야 하며, 죽음 자체도 아무것도 아니라고 의식해야 한다.

 

이 작품은 전쟁터에 내몰린 한 인간이 인민군의 포로가 되어 총살을 앞두고, 한 시간이라는 삶의 '유예' 기간 동안에 느낀, 존재의 고뇌와 실존적 불안 의식을 의식의 흐름 수법을 통하여 생생하게 그려 낸 소설이다. 주인공이 포로가 되어 되어 적군의 회유를 거부하고 처형당하기까지 그의 의식 속에 명멸하는, 전쟁의 무의미성, 가치를 상실한 인간 생명에 대한 생각의 단편들이 줄지어 나타나는 것이 작품의 주된 내용이다. 주인공이 처한 현재적 상황과 그와 관련된 주인공의 의식의 흐름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긴박감과 함께 의미를 상실한 인간 생명에 대한 안타까움을 느끼게 한다. 이 작품은 주인공의 의식을 통해 전쟁의 비인간성, 즉 인간 생명이 무의미하게 내팽개쳐지는 비극적 현실을 형상화하고 있다.

● 핵심사항 정리

◆ 갈래 : 현대소설, 단편소설, 상황소설, 심리소설, 전후소설

◆ 배경

* 시간적 : 6.25 전쟁.  한 시간이라는 삶의 유예기간인 현재

* 공간적 : 전쟁으로 폐허가 된 어떤 마을의 움막과 눈 덮인 대지

* 사상적 : 전후의 실존의 문제와 휴머니즘

◆ 시점 : 독백 형식의 "1인칭 주인공 시점"을 중심으로 시점이 혼용됨.

                              (3인칭 관찰자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표현상 특징

* 간결한 문체

* 1인칭 화자의 독백 형식, 현재형 서술

* '의식의 흐름'에 의한 기법

◆ 갈등구조 : 인물의 내면적 갈등

◆ 주제전쟁의 극한 상황과 실존의 문제. 전쟁과 죽음이 무의미하다는 실존적 인식

◆ 출전 : <한국일보> 신춘 문예 당선작(1955)

● 생각해 볼 문제

1. 이 작품의 배경과 주제의 관련성을 생각해 보자.

→ 이 작품의 주제는 전쟁에서의 인간의 본질에 대한 도구화, 비인간성을 고발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소설에서는 전쟁의 원인이나 이데올로기적 성격의 동족 상잔이라는 한국 전쟁의 특수성이 강조되지 않은 채 비인간적 상황이라는, 어느 나라의 전쟁에서도 있을 수 있는 전쟁의 일반적 성격이 묘사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전쟁의 비인간성은 동족상잔의 전쟁이라는 한국의 특수한 상황으로 인해 읽는 독자에게는 더욱 비극적으로 느껴지게 된다.

 

2. 주인공이 죽음을 맞이하는 태도에 대해 생각해 보자.

→ 주인공이 아무런 갈등 없이 죽음을 선택하는 것은 인간적인 자세를 잃지 않겠다는 태도에서 기인한다. 그에게는 산다는 것이 '무엇을 위한 것'이나 '무엇을 얻는 것'이 아닌, 단지 인간으로 살아있다는 것 자체일 뿐이며, 따라서 인간으로서 죽어가기 위해 이데올로기에 얽매임 없이 인간적인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다.

 

3. 이 작품에는 시점의 변화가 있다. 그에 대해 말해 보자.

인물의 내면 심리를 드러내는 부분은 1인칭 주인공 시점을 사용하여 개인의 자의식을 중심으로 소설을 전개하고 있으며,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여 줄 때는 3인칭 시점을 사용하고 있다.

 

◆ 교과서 학습 활동

1. 이 소설이 내용과 관련하여 다음 활동을 해 보자.

(1) 주인공의 적들의 회유를 거부한 이유를 생각해 보자.

 → 주인공이 포로가 되어 적군의 회유를 거부하고 처형당하기까지 그의 의식 속에는 명멸하는 전쟁의 무의미성, 가치를 상실한 인간 존재의 비극성 등에 대한 생각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적들의 회유가 있은 후, 적들은 남쪽으로 뻗은 길을 걸어가라고 하고 뒤에서 총을 겨눈다. 주인공은 이를 모두 알고 있지만 전쟁의 의미에 대해 이미 절망해 버린 상태이기 때문에, 눈 쌓인 둑길을 걸어가면서 스스로 선택한 죽음을 맞게 되는 것이다.

(2) 이 소설에서는 '그것뿐이다.'라는 말이 자주 반복되어 쓰이고 있다. 이러한 표현에는 어떤 뜻이 담겨 있는지 말해 보자.

 → '그것뿐이다.'라는 말에는 주인공이 처한 상황에 대해 더 이상의 다른 선택을 할 여지가 없다는 내면 의식이 담겨 있다. 이러한 문장을 반복적으로 제시함으로써 작자는 비극적인 현실, 즉 전쟁의 잔인함과 참혹함에 절망한 주인공의 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2. 이 소설의 기법과 관련하여 다음 활동을 해 보자.

(1) 이 소설은 시간의 순서에 따라 서술되지 않았다. 그 이유를 말해 보자.

→ 이 작품의 제목인 '유예'는 인민군에게 총살을 당하기까지 미루어진 주인공의 죽음의 시간, 곧 '한 시간'의 유보된 시간을 의미한다. 작품의 서사적 공간은 전적으로 그 한 시간에 집중되어 그때 느낀 주인공의 심리적 갈등과 과거의 회상으로 채워진다. 작자는 이 작품에서 시간의 순서에 따른 전개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의식의 흐름에 따라 이야기를 전개시키고 있다. 즉 작자는 주인공이 행하는 행위나 그가 겪는 사건을 그리기보다는 주인공의 의식 속에 흐르고 있는 여러 가지 생각의 파편들을 그림으로써, 사건을 암시하고 있다. 이러한 기법을 사용함으로써, 작품 속에서 작중 인물 스스로의 생각이나 타인에 대한 생각, 과거의 상황 등은 객관적으로 서술되는 것이 아니라 작중 인물의 주관 속에서 철저히 용해되어 주관화된 채로 드러난게 된다.

(2) 이 소설에서 시점의 변화가 나타나는 부분을 찾아보자. 그리고 이렇게 시점을 바꿈으로써 생겨나는 효과에 대해 말해 보자.

→ 이 작품은 3인칭 시점과 1인칭 시점이 교차되면서 주인공의 의식 세계와 독백을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되고 있다. 주인공의 내면 세계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에 시간의 순차성은 거의 무시되고 있다. 이 소설에서 3인칭 시점이 사용된 곳은 '나'가 총살당하는 부분으로 주인공이 처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해 주는 효과가 있다. 반면 1인칭 주인공 시점이 사용된 곳은 주인공의 자의식이 깊어져 독백하는 부분으로 인물의 내면 심리를 드러내는 데 효과적으로 쓰였다.

 

3. 이 소설에서 죽음을 대하는 주인공의 태도와 관련하여 다음 활동을 해 보자.

(1) 주인공은 어떤 태도로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가를 말해 보자.

→ 이 작품에서 '나'는 전쟁의 참혹함에 대하여 절망하고 회의를 느끼는 인물이다. 동료들의 죽음을 뒤로 하고 계속 남하하다가 아군이 처형당하는 현장을 목격한 '나'는 그의 죽음과 자신의 죽음을 동일시하게 된다. '나'는 적과의 전투에서 잡힌 후 처형 당하기 한 시간 전까지의 유예 시간을 거치면서, 전쟁이 지니는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삶의 의미를 상실한 인간 생명에 대해 안타까움을 느끼게 된다. '나'는 결국 죽음을 적극적으로 선택함으로써 전쟁이 가져 온 비극성보다는 자신의 '실존 의지'를 강조한다. 결말 부분에서 죽음을 평범하게 받아들이는 태도는, 삶이 지니는 마지막 의지의 신념이 죽음을 앞서 있다고 생각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러한 존재의 고뇌와 실존적 불안 의식은 전후 세대의 공통된 인식이며 심리적 갈등이다.

(2) 자신이 죽게 되는 상황을 상상해 보자. 그리고 어떤 태도로 죽음을 맞이할 것인지 친구들과 의견을 나누어 보자.

→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이가 하는 문제는 삶을 어떻게 정리하고 마무리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무조건 죽음의 상황을 부정하고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기정 사실로 받아들이면서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마무리하고 주변 사람들을 배려할 것인가를 중심으로 논의한다.

(3) '죽음을 맞이하기까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주제로 하여 이 소설의 주인공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 보자.

 → 소설 '유예'의 주인공에게    <생략>

● 더 읽을거리

상황소설 → 소설의 시 · 공간적 배경이 인간의 실존주의적 한계 상황으로 설정되어 있으며, 주제 의식이 존재의 탐구에 있는 소설

         예) 카프카의 <성(城)>, 카뮈의 <이방인>, 사르트르의 <구토>, 장용학의 <요한시집> 등

한계 상황 → 인간이 현실에서 부딪칠 수 있는 극한 상황들.  예를 들면, 죽음, 고통, 투쟁, 전쟁 등 인간이 지니고 있는 정신적, 육체적 조건과 현실적 욕구 등을 총동원하여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

실존 → 한계 상황을 올바르게 인식하며 존재하는 양식  

의식의 흐름(Stream of consciousness) → 소설이 사건이나 인물의 행위를 형상화하는 데 중심을 두지 않고 주인공의 의식에서 이루어지는 회상, 기억, 반성, 상념 등을 그리는 데 중심을 두는 형식으로, 주인공의 심리를 표현하는 심리 소설에서 많이 사용되는 형식이다.  작중 인물의 정신을 스치는 인상의 무계획적이고 비논리적인 흐름을 기록하려는 기술 방법으로, 소설의 외적인 줄거리의 발전보다 인물의 내적 독백에 중심을 두고 인간의 복잡한 의식을 보여 준다.

 이러한 의식의 흐름 기법은 인물의 심리적 독백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외적 사건을 그리는 기교인 내적 독백과 함께 쓰이는 것이 보통인데 이 작품에서도 두 기법이 혼합되어 쓰이고 있다. 이러한 기법들을 쓰는 소설에서는 작중 인물 스스로에 대한 생각이나 타인에 대한 생각, 그리고 과거의 상황 등이 객관적으로 서술되는 것이 아니라 작중 인물의 주관 속에 철저히 용해되어 주관화된 채로 드러나게 된다. 주인공의 내면 세계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시간의 순차성은 거의 무시되며, 특별한 줄거리가 거의 없이, 주인공의 의식의 흐름만이 부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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