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의 뜰(1980)

-오정희-  

◆ 소설 읽기  

● 줄거리

나는 일곱 살로 노랑눈이라고 불린다. 아버지가 전쟁터에 강제 징병되어 나가자, 정신없이 마을로 피난을 와서 조그마한 방 한 칸에서 할머니와 어머니, 오빠, 작은오빠, 언니, 동생과 살고 있다. 어머니는 생계 유지를 위해 저녁마다 거울 앞에서 화장을 하고 일하러 간다. 오빠는 작은 방을 꽉 채우듯이 시위라도 하듯 큰소리로 영어책을 읽어 나간다. 동생은 너무나도 마르고 연약해서 언제 곁을 떠날지 모른다.

나는 한밤중에 나와 앉아 부네의 방을 바라보곤 한다. 부네는 외눈박이 목수의 가장 아끼는 딸이었는데, 부네가 집을 나가 살림을 차리자 목수는 부네를 끌고 와 방에 가둬 놓는다. 그래서 부네의 방에는 항상 큰 자물쇠가 채워져 있다. 부네가 언제부터 그 방에 갇혀 있었는지는 확실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적어도 사람들이 볼 때에는 부네의 방은 한번도 열린 적이 없다. 그래서 부네에 대한 사람들의 추측만 무성하다. 폭군인 오빠는 엄마가 외박을 하면 언니를 때려서 코피를 나게 만든다. 언니는 항상 오빠의 그런 폭력에 대항하지 않고 묵묵히 맞고만 있다. 할머니는 가끔 임자 없는 닭을 잡아 온다. 전쟁이 끝나면 아버지가 돌아온다고 할머니는 말했고, 우리는 불안과 두려움 속에 아버지를 기다렸다.

어느 날 가을, 부네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로 이해 사람들은 부네가 정말 그 방에서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전쟁이 끝나가는지 피난민들은 하나 둘씩 마을을 떠난다. 나의 가족도 이사를 한다. 나는 언니가 다니는 학교에 입학을 한다. 여름이 갈 무렵, 학교로 아버지가 찾아오지만 반갑지가 않고, 자꾸 서러움으로 눈물만 난다.

● 인물의 성격

 ◆ ◆

● 구성 단계

발단 : 유년 시절 회상. 저녁만 되면 화장을 하고 나갈 준비를 하는 어머니와 큰오빠 사이에 미묘한 갈등의 기류가 흐름.

전개 : 부재한 아버지를 대신해 은연 중 가장을 자임한 큰오빠는 밤마다 집에 있으라는 말을 남기고 읍내로 나감.

위기 : 어머니와 큰오빠의 갈등이 위태로운 지경이 됨. 큰오빠는 밤이면 부네의 동생 서분과 함께 사라졌다가 마른 풀내를 내며 돌아와 잠.

절정 : 큰오빠는 어머니가 연이틀 외박하자, 언니를 때리고 어머니의 거울을 부순, 어머니가 정육점 주인과 정분이 났다는 소문이 동네에 퍼짐.

결말 :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고 피난민들도 하나둘씩 떠남. 여름이 끝나갈 무렵 전쟁이 끝나고 아버지가 돌아옴.

● 이해와 감상

가족의 와해와 소녀의 상실감

<유년의 뜰>은 읍내 밥집에 나가기 위해 화장을 하는 어머니와 그 옆에서 마치 시위하듯 중2 영어 교과서에 실린 "홧 아 유 두잉?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아임 리딩 어 북, 나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 홧즈 유어 프랜드 두잉? 당신의 친구는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를 읽는 오빠에 대한 묘사로 시작된다. 어머니와 오빠 사이의 이러한 긴장감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전쟁이 터지자 가족 전부가 어디론가 피난을 떠나왔고, 군대에 끌려간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자 읍내 밥집에 일하러 나가기 시작한 어머니의 외박이 점점 잦아지고, 중학교 2학년을 끝으로 더 이상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오빠는 이러한 어머니의 행실에 반발한다. 어머니와 오빠의 긴장 관계는 전쟁 때문이기도 하고, 또 가장인 아버지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머니는 오빠의 시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은연중에 가장의 위치를 떠맡긴 했지만 아직 어린애일 뿐인 오빠는 슬픔이나 분노를 동생들에 대한 폭력의 형태로 표출한다.

이런 상처투성이의 가족 안에서 멍청이에 뚱보인 '나(노랑눈이)'는 "멍청하고 걸귀가 들렸는지 노상 먹을 생각밖엔 없"는 이상한 아이가 되어 간다. '나'의 걸귀 들린 듯한 식탐은 단지 음식에 대한 것만이 아니라 그 또래의 아이가 받아야 하는 가족들의 애정과 보호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다른 가족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어린 '나'가 이러한 복합적인 상실감을 부재하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으로 표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나'는 이발사의 머릿기름 냄새를 계기로 아버지에 대한 감각을 떠올린다.

꼭 잡아, 아버지의 말에 따라 아버지의 머리를 잡으면 손에서는 찐득찐득한 머릿기름이 묻어났다. 아버지는 내게 연약한 넓적다리, 혹은 발목을 잡던 악력(握力), 막연히 따스하고 부드러운 것, 보다 커다란 것, 땀으로 젖어 있던 등허리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기억 역시 내 상상이 꾸며낸 더 먼 꿈속의 일은 아니었을까.

전쟁이 끝나면 아버지가 돌아온다. 두 해가 지나도록 소식이 없었지만 할머니는 끈기있게 기다렸다. 그러나 아버지에 대한 정다운 기억, 희망 없는 기다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가 돌아온다는 사실에 우리는 모두 얼마쯤의 불안과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매일 술 취해 돌아오는 어머니를 향해, 다만, 아버지가 돌아오시면 뭐라고 하실까요, 차갑게 협박하는 오빠까지도.

우리가 임자 없는 닭의 맛에 길들여지듯, 어머니의 지갑을 더듬는 손길이 점차 담대해지고 빼내는 돈의 액수가 많아지듯, 할머니가 단말마의 비명도 없이 도살의 비기(秘技)를 익혀가듯, 그리고 종내는 눈의 정기만으로도 닭들이 스스로 죽지 밑에 고개를 묻고 너부러지듯 아버지 역시 달라져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아버지에 대한 '나'의 기억은 사실일까? '나'는 다만 상실감을 메우기 위해 아버지와의 추억을 미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게 아니라 해도 아버지가 돌아오면 '나'의 상실감은 해소되는 것일까? 가족들도 모두 예전의 평화롭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이런 의문들이 이어질수록 아버지의 귀환은 기다림의 대상인 동시에 불안과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아마도 '나'와 가족들이 전쟁을 겪으면서 "임자 없는 닭의 맛에 길들여지듯, 어머니의 지갑을 더듬는 손길이 점차 담대해지고 빼내는 돈의 액수가 많아지듯, 할머니가 단말마의 비명도 없이 도살의 비기를 익혀 가듯" 아버지 역시 전쟁 때문에 상처입고 낯선 사람으로 변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버지가 돌아와도 예전의 삶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변소의 창으로 거위처럼 두 팔을 휘저으며 운동장을 가로질러 뛰어가는 언니의 모습이 보였다. 사내애들은 손가락 사이에 면도날을 끼워 계집애들이 팽팽히 마주 잡고 있는 고무줄을 끊고 계집애들은 욕설을 퍼부으며 흙을 집어 뿌렸다. 그 애들을 헤집으며 언니는 달려가고 있었다. 교문 밖에서는 아버지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탱자나무 울타리 위로 솜사탕이 구름송이처럼 둥실 떠올랐다.

나는 이러한 광경을 보며 주머니 속의 케이크를 꺼내 베어 물었다. 그것을 다 먹고 났을 때 갑자기 욕지기가 치밀었다.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꾸역꾸역 토해냈다. 단 케이크는 한없이 한없이 목을 타고 넘어왔다. 까닭모를 서러움으로 눈물이 자꾸 흘러 내렸다.

소설의 결말에 이르러 그토록 기다리던 아버지가 돌아온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가 돌아왔다는 소식보다 교장실의 탁자에 놓인 케이크에 더 관심이 간다. 아버지를 향해 달려가는 언니를 보며 케이크를 집어삼키던 '나'는 갑자기 먹었던 것을 토하기 시작한다. 이 장면은 아버지가 돌아왔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상실감이 사라지지 않으며 나아가 이제는 식탐으로도 메울 수 없는 더 깊은 상실감을 갖게 되었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여성적 정체성에 대한 묘사

어린 나이에 가장의 자리를 떠맡은 오빠는 어머니가 어머니이기 이전에 여성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이러한 태도는 읍내 저잣거리로의 밤 외출을 즐기는 언니에 대한 무서운 매질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오빠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괜히 들뜬 얼굴로 엉덩이를 들썩이며 방과 부엌, 텃밭께를 들락거리던 언니는, 오빠가 개울을 건너가리라는 시간쯤을 두고 밖으로 나"가고 '나' 역시 "비실비실 언니의 눈치를 보녀 따라 나"선다.

밤의 저잣거리는 늘 재미있었다. 나는 밤이 되어도 식지 않는 더위에 치마를 걷고 언니 또래 틈에 쥐새끼처럼 끼여 앉아 밤거리에 음험하게 끓어오르는 알 수 없는 열기, 끈끈한 정념으로 가득 찬 달착지근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 언니도 머지 않아 나이 찬 처녀들처럼 엉덩이를 흔들며 이 거리를 지나게 될 것이다. 오빠가 아무리 무섭게 단속을 한다 해도, 그 무엇으로도 언니의 밤 외출을 막을 수는 없게 될 것이다. 나도 자라면 역시 그럴 것이다. 굵은 벨트로 배꼽이 튀어나올 때까지 허리를 죄고 천천히 이 거리를 배회하게 되리라.

"밤거리에 음험하게 끓어오르는 알 수 없는 열기, 끈끈한 정념"의 정체는 말 그대로 잘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니와 '나'는 그 열기와 정념에 끌린다. 그리하여 오빠의 단속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아버지가 단속한다 해도 언니와 '나'는 밤 외출을 통해 여성이 되어갈 것이다. <유년의 뜰>에서 그 여성적 정체성은 쉽게 파악되지 않는다. 이는 아마도 예닐곱 살 소녀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계의 한계일 것이다. '나'를 통해 얼핏얼핏 드러나는 부네에 대한 묘사도 그러하다.

오정희의 <유년의 뜰>은 가혹하다. 전쟁이 남긴 상처는 애, 어른 할 것 없이 자꾸만 짓물러 간다. 어른들은 점점 더 적나라하게 속물 근성과 폭력성을 드러내고, 아이들은 징그럽고 영악해져서 누가 아이고 어른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고 만다. 오정희에게 있어 '유년'은 결코 편안한 안식처가 아닌 것이다.

이제 '유년'에 대한 기대감은 버리고 오정희 식의, '유년의 뜰'로의 짧은 여행을 시작해 보기로 한다. 전쟁은 그동안 가지고 있던 가치관과 윤리의식의 붕괴는 물론이고 모든 환경의 변화를 야기시켰다. 아이들에게 전쟁은 '산등성이 너머의 대포소리'에 지나지 않았고, 사회적 · 역사적인 사건이라기보다는 가정의 분열로 그 모습을 드러내며 자기 자신도 자각하지 못한 사이 영혼 깊숙한 곳에 상처를 입기 마련이다. 그로 인해 혼돈스럽고 황폐한 삶의 세계는 상대적으로 기괴하고 절대적이며 알지도 이해할 수도 없는 것으로 귀착되고 만다. 그래서 아이들이 갖는 감정은 '알 수 없는 부끄러움과 서러움'이고 '까닭 모를 서러움'이며 '알 수 없는 두려움과 호기심'이다.

● 핵심사항 정리

갈래 : 현대 소설, 중편 소설, 전후 소설, 성장 소설

배경 : 6 · 25 전쟁 발발 직후에서 전쟁이 끝난 직후까지, 대략 삼 년 동안의 시간.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

표현상 특징

* 시간의 역전적 배치(회상형)

* 삶에 대한 비극적 전망이 드러남.

* 피난민으로서의 삶의 애환이 그려짐.

* 상징성이 강한 소재와 장면을 통해 주제를 형상화함.

* 회상의 형식으로, 어린 여자 아이의 시선을 통해 서술함.

* 감각적인 문체를 통해 주인공의 예민하고도 섬세한 감각을 느낄 수 있음.

* 서술자인 '나'에 의해 관찰된 한 가족의 일 년 간의 삶이 서정적으로 펼쳐짐.

* 여성적 욕망의 깊이, 삶과 죽음, 기대와 파멸을 경험하면서 성 정체성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줌.

* 일곱 살 소녀가 겪었던 상처와 왜곡된 성장을 통해 전쟁의 상처를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성장소설임.

* 대화나 독백 등이 화자의 서술과 형식적으로 구부노디지 않은 채 사용됨.(화자와 독자의 거리가 가깝게 느껴짐.)

주제전쟁으로 인한 가난과 가족의 화해, 유년시절의 고통과 상처

             한 소녀의 성장의 고통, 정신적인 성장의 고통과 그 형상화

● 더 읽을거리

◆ 감상을 위한 더 읽을거리

1968년 <완구점 여인>으로 등단하여 7, 80년대 한국의 여성문학을 대표해 왔던 오정희의 소설은 여러 가지 면에서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양상을 띤다.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그 양상이 매우 여성적이라는 점이다. 흡사 수많은 인상들과 흔적들이 모여 소설을 이루는 듯, 그의 소설은 삶과 존재의 진실에 관해 나지막한 목소리들을 마치 모자이크처럼 엮어 놓는다.

저자는 많은 부분 '기억'과 '회상'에 의지하여, 과거의 흔적들과 편린들을 짜기운 이미지들의 배경을 만들어내며, 그 과거는 현재와 교차하면서도 개별적 시간으로 존재한다. 끊임없는 연상에 의해 풀어져 나오는, 결코 전체화하지 않는 끊임없는 환유들이 현재의 진행 속에서 과거를 소생시키는 것이다.

또 한 특징은, '감각'으로 타인과 소통하고자 하는 점인데, 그리하여 오정희 소설에서는 "뚜렷한 이유 없이", "명확히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하게", "이유를 알 수 없는" 등의 표현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이성적 사유보다는 주체를 비우고 주체의 감각만을 서술하는 방식, 볼 수 있는 것을 신뢰하기보다는 볼 수 없는 것으로 향해 있는 시선, 설명이나 해석보다는 암시와 여운이 주요한 점 등이 오정희의 소설을 더욱 여성스럽게 만든다. 그리하여 오정희의 소설은 삶이란 결코 전체화할 수 없는, 수많은 결들의 얽힘과 짜임이라고 말한다. 억압적인 세계에서 존재의 진실에 보다 가까이 갈 수 있는 방법은 파편화된 개개인의 내면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이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갖은 성적 규범과 억압을 뒤흔들어 놓은 전쟁

그의 초기 대표작인 <유년의 뜰>은 전쟁 중 가장이 부재하는 한 가정의 모습을 고스란히 복원한다. 전쟁은 한 가족의 구조를 파탄시키기에 이르는데, 이 작품에도 오정희의 많은 초기작들에서 볼 수 있는 '나쁜 어머니'가 등장한다. 초기의 오정희에게 모성은 미화되어야 할 가치이기보다는 넘어서야 할 '신화'였다. 가부장제의 현실을 살아가며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억압되어야 했던 여러 성적 억압을 오정희는 많은 소설에서 반복한다.

전쟁터에 나간 아버지를 제외하고, 화자인 나 '노랑눈이'의 가족은 할머니, 어머니, 큰오빠, 언니, 작은오빠, 젖먹이인 남동생으로 이루어진다. 전쟁은 이 가정에 엄청난 혼란과 고난을 던져주게 되는데, 피난촌에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어머니는 읍내 밥집에서 일하게 된다. 그러나 어머니는 여타 소설에서처럼 자식들을 위해 무조건 희생하는, 모성의 신화를 살아가는 여성이 아니다.

늘 술에 취해 들어오는 그녀는 집을 나갈 때마다 곱게 화장을 하고 가짜 점까지 그리는, 오히려 전쟁으로 인해 해방된 성적 정체성을 누리는 여성이다. 그런 어머니에 대한 반감에 불타는, 전쟁으로 학업을 중단해야 했던 큰오빠는 자신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을 폭력(언니를 심하게 구타하는)으로 푼다. 한때 기생이기도 했고, 아이를 낳은 적이 없어 "꽃잎 같다는 인상"과 고운 자태를 지녔던 할머니는 작정을 하고 동네에서 돌아다니는 닭을 훔쳐다 "임자 없는 닭"이라고 우기며 우리들을 먹인다.

언니는 밤마다 읍내 저잣거리를 돌아다니며, "밤거리의 음험하게 끓어오르는 알 수 없는 열기, 끈끈한 정념으로 가득 찬 달착지근한 공기를 들이마시고", 아직 젖먹이인 막내는 병약해서 곧 죽게 될 것만 같다. "걸귀가 들렸는지 노상 먹을 생각밖엔 없는" 나는 강박적인 식탐과 도벽에 시달린다.

"늙은 갈보"가 된 어머니와 "억눌려져 자라지 못하는 욕망"을 "엉뚱한 잔인성이나 폭력"으로 풀어내는 오빠. 한 장면을 보자. 저녁 무렵 어머니는 화장을 하고, 오빠는 "등 뒤의 작은 시위"로 "끝없이 반복되는 단조롭고 긴 소절의 노래"를 부르는 듯이 소리 높여 영어책을 읽는다. 두 사람 사이에는 "은밀히 조성되어 가는 팽팽한 공기"가 감돈다. "나날이 새롭게 번쩍이며 한구석에 버티고 있는" "이물감"을 불러일으키는 "등신대 거울"이 그 좁은 방안을 비추고 있다.

"어머니가 돌아오지 않는 밤이면" 언니를 때리는 오빠는, 어머니의 "수상쩍은 외박이 잦아지자" "암암리에 아버지 위치를 ~ 공공연히 자행되는 매질로 나타났다." 그러나 "오빠는 자신이 가장임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있어 언제나 침울하고 긴장으로 부자연스럽게 굳어 있었다. 그 긴장으로 억눌려져 자라지 못한 욕망, 자라지 못하는 슬픔, 분노 따위는 엉뚱한 잔인성이나 폭력의 형태로 나타났던" 것이다.

어머니는 급기야 사람들에게 "늙은 갈보"라는 말까지 듣지만 태연하고, "읍내 정육점 사내와 정분"이 나 "그 사내의 마누라에게 머리채를 잡혀 읍내를 몇 바퀴 돌기"까지 한다. "어머니와 오빠 사이의 긴장은 베일 듯 날로 위태롭게 팽팽해졌다." 그러다 언니를 때리던 오빠는 급기야 한 가족의 삶을 고스란히 비추던, 저녁마다 화장을 하는 어머니가 들여다보던 등신대 거울을 깨뜨리고야 만다.

이런 가족의 이야기에, 바람이 나 "읍의 미장원에서 머리를 지져붙이고 올망졸망한 다섯 아이를 버려둔 채 도회지로 달아나 버린" 순자 엄마의 이야기, 결혼도 하지 않고 남자와 살림을 차렸다가 아버지에게 끌려들어와 자물쇠 잠긴 골방에 갇혀 버린 부네의 이야기가 파편적으로 소설 중간에 배치된다.

특히, 주인집 맏딸 부네를 생각하면 나는 "이상한 두려움과 가슴 한 귀퉁이가 무너져 내리는 듯한 슬픔에 잠기곤 했고", "물에 잠기듯 잦아드는 부네의 방을 보면서 이유를 알 수 없는 서러움이 가슴에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한 번도 방 밖으로 나오지 못한 부네는 어느 날 혀를 깨물어 자살을 하고 만다. 성적인 방종에 대한 대가가 그녀에게는 죽음이었던 것이다.

화자인 나는 너무 어리기 때문에 어머니와 부네의 삶에 대해 적극적으로 사고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어머니에 대해 반감은 갖지 않는 내 모습과, 부네에 대해서는 상당 부분 연민과 공감을 느끼는 나를 그려낸 것은, 작가가 가진 여성이라는 육체에 갇힌 억압적인 삶에 대한 비판의식을 보여준다. 이런 가부장제에 대한 거부의식의 기저에는 여성의 의미와 조건이 사회 · 역사적인 제도, 조건, 이데올로기와 맞물려서 규정된다는 사실이 있다.

'불안과 두려움'으로 '돌아오지 않을 사람으로 치부'되는 아버지

그러면 아버지는 어떠한가. 나는 이발사의 머릿기름 냄새를 맡고 그것이 "친숙한 냄새"임을 인식하면서 아버지를 기억해 내지만, "그러나 이 모든 기억 역시 내 상상이 꾸며낸 더 먼 꿈속의 일은 아니었을까"라고 반문한다. 전쟁이 끝나면 돌아온다는 아버지, "그러나 아버지에 대한 정다운 기억, 기다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가 돌아온다는 사실에 우리는 모두 얼마쯤의 불안과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우리가 임자 없는 닭의 맛에 길들여지듯, 어머니의 지갑을 더듬는 내 손길이 점차 담대해지고 빼내는 돈의 액수가 많아지듯, 할머니가 단말마의 비명도 없는 도살의 비기를 익혀가듯 (…) 아버지 역시 달라져 있을 것이다.

아버지가 우리를 떠나 있던 그 긴 시간의 갈피 짬마다 연기처럼 모호하게 서린 낯섦은 새로운 전쟁으로 우리 사이에 재연될 것이기에 차라리 그립고 정답게 아버지를 추억하며 희망 없는 기다림으로 우리 모두 아버지가 영영 돌아오지 않기를 바라거나 돌아오지 않을 사람으로 치부하고 있음을 변명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나 아니었는지." 이처럼, 이제 아버지는 그의 돌아옴이 "불안과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차라리 영영 돌아오지 않아야만 '그리움'의 자리에서 온전할 존재, 희망이 없어야 온전히 기다릴 수 있는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아버지를 포함해서 가족 개개인 모두는 외면적 변화만이 아니라 내면적 변화를 겪었고, 그 가족의 구조는 파탄에 이르렀으며, 그것은 회복하거나 복원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침내 전쟁은 끝나고 아버지가 돌아왔다. 그런데 나는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교장실에서도 케이크를 훔쳐먹기에 급급하다. 하지만 이내 케이크를 꾸역꾸역 토해내며 "까닭 모를 서러움으로 눈물이 자꾸자꾸 흘러내렸다." "어두운 똥통 속으로 어디선가 한 줄기 햇빛이 스며들고 눈물이 어려 어룽어룽 퍼져 보이는 눈길에 부옇게 끓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무엇인가 빛 속에서 소리치며 일제히 끓어오르고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왔다는 소식 앞에서 나는 기쁘기보다는 서럽고, 그 거부 반응으로 구역질까지 한다. 아버지가 부재하는 동안 가족에게 일어난 외적 · 내적 변화들은 아버지의 현존을 받아들이기에 결코 수울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새로운 전쟁으로 우리 사이에서 재연될", 이미 변화된 성 정체성을 갖고 있을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에 일어날 일들을 생각하면 그것은 공포에 가깝다. 아버지가 부재했던 내 유년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유년의 뜰>은 아버지가 귀가하는 지점, 그 폭풍 전야에서 이렇게 마감이 된다. 물론 그 다음은 독자의 몫이리라. 그러나 분명한 것이 있다면, 변화된 가치는 다른 변화, 새로운 현실을 원한다는 점일 터이다.

* 출처 : 권민정 자유기고가 eunsae7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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