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力士)(1964)

-김승옥-  

◆ 소설 읽기  

● 줄거리

나(밖)는 언젠가 어느 공원의 벤치에 앉았다가 우연히 한 젊은이의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된다. 허풍도 섞이고 이야기의 본론과 결론이 어긋나 있지만 상징적인 부분도 있어 다음과 같이 그대로 옮겨 본다.

 

나(안)는 새로 이사한 깨끗하고 정리된 방에서 아침에 잠을 깨자 어리둥절해 한다. 바로 얼마 전까지 빈민가인 창신동에서 하숙을 하다 이곳으로 왔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지저분하고 무질서한 창신동과 다른 이곳의 모습에 당황하지만 곧 깨끗하고 규칙적인 생활에 점점 익숙해져 간다.

나는 병실처럼 깨끗한 방에서 기거하며 마치 시계처럼 정확한 주인집의 생활을 관찰하게 된다. 이 집의 식구는 영감과 노파, 대학 강사인 아들과 며느리, 아들의 여동생인 여고생, 아들 부부의 세 살 난 딸, 그리고 식모로 구성되어 있다. 그들은 매일 정확한 시간에 깨어 밥을 먹고 일을 나가며 노파와 며느리는 미싱을 돌리고, 오후에는 며느리가 피아노를 치고 저녁에는 함께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고는 각자 방에 들어가 공부하는 시간을 가진다. 이사오던 첫 날 이 집의 할아버지는 내게 오셔서 일종의 오리엔테이션을 하셨다. 신변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본 후에, 단호하고 험악한 말투로 할아버지의 관(주의)을 들어야만 했다. 할아버지 말씀의 결론은 이것이다. "가풍이 없는 가정은 인간들의 모임이 아니다. 가풍이란 질서정신에 의해 확립되는 것이다. 규칙과 질서를 지키는 생활이어야 한다." 이러한 규칙적이고 질서 있는 세계를 접하게 된 나는 창신동 빈민가를 떠올리게 된다.

창신동의 판자로 엮어서 만든 작은 집에서 영자라는 창녀와 깡마르고 절름발이인 사내와 그의 열 살 난 딸, 사십대 막벌이 노동자 서씨가 살았다. 얼굴이 동글동글하고 눈이 가느다란 영자는 한때 죽기 위해 손목을 긋기도 했다며 그 흉터를 보여주기도 하고, 나에게 광화문의 유명한 성명철학자에게 함께 가 보자고 조르기도 하고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때에는 마당에서 한복을 입고 자칭 미스코리아가 되기도 하는 창녀다. 절름발이 사내는 매일 밤 딸을 꿇어 앉힌 채로 무언가를 교육하며 구타를 일삼는다. 깡마른 딸아이는 머리 위로 쏟아지는 매를 소리없이 고스란히 받아들이고만 있는다. 그리고 막벌이 노동자 서씨는 매일 밤 나와 함께 술을 마시는 술친구다. 그러던 어느 날 서씨는 술을 마시고 들어와 누운 나를 깨워 동대문으로 끌고 간다. 새벽 두세 시쯤 된 통금 시간에 그는 동대문 맞은 편 골목에 나를 숨겨둔 채, 동대문을 둘러싸고 있는 성벽을 날렵한 동작으로 올라가서는, 조명이 비치는 그 위에서 금고만한 돌덩이를 양손에 하나씩 번쩍 들어올리는 놀라운 모습을 나에게 보여 준다. 나는 마치 신비한 나라에 와서 거대한 무대 위의 장엄한 연극을 보는 듯한 감동을 느낀다. 그러면서 그 서씨를 무어라 이름붙여야 할지를 몰랐다.

나는 서씨로부터 그가 중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 난 혼혈아로 가문 대대로 중국에서는 이름있는 역사라는 사실을 전해 듣게 된다. 과거에는 그들이 가졌던 그 힘이라는 것이 그들의 존재 이유이자 유일한 유물이었고 가보로서 후손에게 전해지는 영광이요 자랑이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그 '힘'은 서씨로 하여금 공사장에서 남보다 약간 더 많은 보수를 받게 하는 기능밖에 못하게 되었고, 그래서 서씨는 약간 더 많은 보수를 거절하고는 남들과 똑같이 일을 하기로 하고, 그대신 밤마다 그 기운을 동대문의 돌들을 옮기는 데 쓰는 것이었다. 또한 그렇게 함으로써 그 힘이 유지되고 있음을 선조들에게 알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서씨가 간직하고 있는 '자기'였고, 나는 그러한 서씨와 접촉하면 할수록 끊임없이 빨려들어 갔었다.

나는 창신동의 모습과 서씨의 모습을 떠올리며 점차 이곳에 대한 견딜 수 없는 권태와 혐오를 느끼게 된다. 곧 나는 어떤 중대한 결정을 내리고 약국에서 흥분제를 구입해 와 주인집 식구들이 먹는 음료수에 탄다. 여느 때처럼 식구들은 같은 시각에 잠이 든다. 나는 흥분제에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고 있을 식구들을 생각하며 피아노 앞에 앉아 건반을 거칠게 두드린다.

 

그 후 주인집 영감이 나와서 그를 억세게 끌고 갔다며, '어느 쪽이 틀렸을까요?'라고 묻는 젊은이의 질문에 나(밖)는 대답을 하지 못한다. '나'는 아무도 틀려 있는 사람은 없고, 다만 그 두 가지 생활이 내 곁에 공존한다면 나 역시도 조금 멍청해질 것 같다고 느낄 뿐이었다.

● 인물의 성격

◆ 나(밖) → 액자 속 이야기의 주인공인 '나'의 이야기를 듣고 전해주는 인물

◆ 나(안) → 빈민가와 양옥을 오가면서 두 삶의 형태를 소개하는 대학생. 양옥의 규칙적인 생활을 혐오하고 창신동 빈민가의 인간관계에 대해 긍정하는 인물. 양옥의 형식적인 질서를 깨뜨리려 음료수에 흥분제를 타지만 실패하고 만다. 생명력 넘치는 삶을 동경하면서도 현실적 안락 또한 저버리지 못하는 모순된 모습을 보여 주며, 전근대적 질서로 돌아갈 수도 없고 근대적 가치를 받아들일 수도 없는 갈등 상황에 놓인 인물.

◆ 서씨 → 돌을 옮기는 비능률적인 행위를 통해 생명력을 발산하는 인물. 모든 것이 돈으로 환산되는 산업화 시대에 제거되어 가는 인간의 원초적 생명력이라는 가치를 보여주는 상징적 인물임.

◆ 할아버지 → 양옥집의 가장으로서 가풍 있는 가정을 만들기 위해 가족들에게 질서의식과 규칙을 엄격히 강조하는 인물로, 형식적인 가족 관계에 집착한다는 점에서 부정적으로 평가되는 인물임.

● 구성 단계

◆ 발단 : '나(밖)'가 그의 이야기를 옮기고자 함.

◆ 전개 : '나(안)'가 깨끗한 양옥집의 생활에 적응하지 못함.

◆ 위기 : '나(안)'가 창신동 빈민가에서의 생활을 그리워 함.

◆ 절정 : 서씨가 동대문의 돌을 옮기는 것을 보고, 그가 역사임을 알게 됨.

◆ 결말 : '나(밖)'가 그의 이야기를 듣고, 같은 상황이라면 자신도 멍청해 질 것이라고 생각함.

 

○ 밖 이야기 - '나(밖 이야기의 서술자)'는 우연히 공원에서 젊은이를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듣게 됨.

○ 안 이야기 - '나(안 이야기의 서술자)'가 자신이 겪은 사건(새 하숙집에서의 생활, 창신동 빈민가 생활에 대 한 회상, 서씨의 놀라운 행동)을 이야기함.

○ 밖 이야기 - 어느 쪽이 틀렸는가를 묻는 '나(안)'의 질문에 나(밖)는 대답 대신에 자신도 멍청해질 것이라고 생각함.

●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1960년대 도시화된 삶의 양상에 대해 다양하게 접근한 김승옥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현대인의 꽉 짜인 기계적인 일상생활을 풍자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러한 일상생활은 능률과 효율을 중시하는 현대 사회의 일반적 성격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는 새 하숙집의 빈틈없는 생활 질서로 제시된다. 그러나 새 하숙집의 질서는 행복, 더 나은 삶이라는 본래의 목적을 상실한 기계적 질서라는 데 문제가 있다. '나'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활기찬 생명력을 찾을 수 있는 창신동 빈민가의 무질서하고 비능률적인 생활을 그리워하게 된다. 이 작품에서 생명력은 역사인 서씨의 비능률적인 행위 속에서 극적으로 표현되는데, 동대문의 무거운 돌을 밤에 몰래 옮겨 놓는 그의 행위에는 살아 있음을 확인하고자 하는 생명력이 발현되고 있다.

이 소설의 배경을 분석해 보면,  근대화의 열풍에 따라 빈민가의 삶이 부정되고, 중산층에의 욕망이 중심적인 가치로 부상되던 1960년대의 전형적인 두 가지 삶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근대적인 가치와 전근대적인 가치가 공존하던 1960년대를 양옥과 빈민가로 간략히 제시한 작품이다.

규칙적인 질서에 따라 움직이는 양옥집의 생활과 가난하고 소외받은 사람들의 창신동 빈민가의 생활이 대비적으로 제시되어 있다. 교양 있는 중산층 가정의 인간관계가 형식적이라면, 밑바닥 인생들이 모인 창신동 빈민가는 투박하고 거칠지만 인간적인 정이 흐른다. 근대화 과정에서 사라져가는 인간의 소중한 관계를 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다.

결국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하여 도시 생활을 하게 되면서 겪는 소외감과 어려움을 말하고 있으며, 그러면서도 어쩔 수 없이 거기에 편입하여 살아가야 하는 삶을 소설로 형상화한 것이다. 작품을 읽으면서 산업화와 도시화가 인간 생활이나 의식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를 진지하게 모색해 볼 수 있다. 또한 현대 문명을 비판하면서 그 반대항으로 설정한 '역사'라는 존재의 의의를 생각함으로써 작가가 모색하고 있는 대안적인 인간형도 발견할 수 있다.

● 핵심사항 정리

◆ 갈래 : 단편소설, 액자소설, 풍자소설

◆ 배경

* 시간적 → 1960년대

* 공간적 → 서울 (창신동 빈민가와 깨끗한 양옥집)

◆ 시점

* 액자 밖 이야기 - 1인칭 관찰자 시점

* 액자 속 이야기 - 1인칭 주인공 시점

◆ 특징 : 액자식 구성, 역전적 구성

◆ 출전 : 『문예춘추』(1964)

◆ 주제

* 현대인의 기계적인 삶에 대한 풍자

* 근대적 질서에 대한 욕망과 그로 인해 상실되어 가는 인간 관계의 진정성

● 생각해 볼 문제

1. 이 작품에서 '서씨'가 한밤중에 동대문의 돌들을 옮기는 행위가 상징하는 바는 무엇인가?

⇒ 한밤중에 동대문의 돌을 옮겨 놓는 서씨의 행위는 파격적이고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것이다. 이는 이층 양옥에서의 새 하숙 생활이 가지고 있는 형식적인 질서와 규격화된 도시 생활에서 원시적인 생명력을 확인하고자 하는 욕망의 발현으로 나타난다.

⇒ 양옥집의 삶과 대조적인 행위,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며 스스로 생명력을 확인하려는 슬픈 몸부림,  신화와 꿈을 잃은 채 맹목적으로 틀에 갇혀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에 대한 우회적 비판

2. 이 소설에 나오는 두 개의 공간적 배경이 각각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 창신동 빈민가는 지저분하고 비능률적이지만 원초적인 건강성과 개인의 자유의지가 있으며 생명력이 넘치는 공간이다. 병원처럼 깨끗한 양옥집은 질서의식을 강조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강조함으로써 원초적인 삶과 자유의지를 억압하는 현대인의 기계적인 일상생활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3. 액자 속 이야기의 주인공인 '나'의 이중적인 태도에 대해 말해 보자.

⇒ 주인공은 새로 이사 온 양옥집에 대해 정신적인 불편함을 느끼면서 소외와 거부감을 강하게 가진다. 상대적으로 창신동의 그 지저분한 빈민가에 살아 있던 활기찬 생명력을 그리워하게 된다. 그렇지만 주인공은 양옥집에 대해서는 미약하지만 동경과 편입 욕망이 드러나기도 한다. 다시금 창신동으로 이사할 생각은 없는 것이다. 이것은 양옥집의 가족들이 마시는 음료수에 흥분제를 타는 행위에서 보인다. 즉 그는 이러한 태도를 통해서라도 그들과 같은 생활을 더 하고 싶었던 것이다.

● 더 읽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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