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마(1948)

-김동리-  

◆ 소설 읽기  

● 줄거리

젊은 시절 잠시 화개장터를 들러간 체장수 영감이 호리호리한 소녀와 함게 저녁놀에 은어가 번득이는 여름철 석양 무렵, 화개장터에서 혼자 주막을 하며 살고 있는 마음 착하고 인심좋은 옥화네를 찾는다. 이때는 벌써 옥화의 어머니는 죽고 아들 성기와 옥화가 단둘이 살면서 술집을 하고 있다. 영감은 옥화에게 인사를 청한다. 소녀에 대해 묻는 옥화에게 영감은 딸이라고 한다. 그는 화갯골로 들어갔다가 하동쪽으로 가볼 생각이라면서 갈 때 데리고 가겠으니 딸을 맡아 달라고 한다.

옥화의 아들 성기는 외할아버지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역마살을 지니고 있어, 결혼에는 관심이 없고 어디론가 떠돌아 다니고 싶어한다. 이를 안 어머니 옥화는 색시들을 두고 접근하게 하기도 하지만 소용이 없다. 그녀는 생각다 못해 그를 쌍계사 절에 보내고 장날만 집에 와 있으면서 장터에서 책을 팔게 한다. 그런 성기 앞에 노인의 딸인 계연이 나타나자 성기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여자들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던 성기가 계연에게 관심을 보이자 옥화 역시 즐거운 얼굴이 된다. 옥화는 계연을 아들과 결혼시켜 정착시킴으로써 아들의 역마살을 풀게 하려고 계연으로 하여금 성기의 시중을 들게 하거나 함께 나들이도 보내고 한다. 그리하여 성기와 계연을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화갯골로 들어간지 보름이 넘어도 영감은 돌아오지 않는다. 옥화는 산중에서 아주 여름을 지내는 모양이라고 생각한다. 어느날 옥화는 계연의 머리를 빗어주다가 왼쪽 귓바퀴 위의 조그만 사마귀를 발견하고는 놀란다. 체장수 영감이 36년 전에 한 번 들른 적이 있다던 이야기를 상기시켜 본다.  이튿날 옥화는 악양에 볼일이 있다면서 아침 일찍 떠난다. 옥화가 없는 집에서 술손님들의 치다꺼리를 하던 계연은 성기에게 혼이 난다. 옥화는 악양 명도에게 갔다 소나기에 젖어 돌아온 뒤부터 성기와 계연의 사이를 경계한다. 성기는 그것이 싫어서 절에서 눌러 있던 참이었다. 절에서 내려온 성기는 이웃 주막의 놈팡이 하나와 참외를 먹고 있는 계연을 보고 화를 낸다. 이튿날 아침 계연을 찾으려는 듯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다가 성기는 절로 올라간다. 그가 절로 올라간 날 저녁 때 영감이 돌아온다.

다음날 떠나려는 것을 옥화가 하루 더 쉬어서 가라고 만류한다. 다음날 성기가 절에서 내려왔을 때 체장수 영감과 계연은 떠날 준비를 한다. 이제 떠난다는 말에 성기는 충격을 받는다. 옥화는 계연의 조그만 보따리에다 돈이 든 꽃주머니를 정표로 넣어준다. 옥화는 영감에게 살기 여의치 않거든 여기 와서 함께 살자고 한다. 계연이 울음과 같은 목소리를 남기고 떠난 뒤, 성기는 자리에 누워 회춘을 단념한 상태가 된다. 옥화는 마음이나 알라고 일의 전말을 이야기 한다. 36년 전 체장수가 옥화 어머니와 하룻밤을 관계하여 낳은 딸이 옥화라는 것, 결국 계연은 성기의 이복 이모가 되므로 천류에 의해 결혼할 수 없는 사이가 되는 것이다. 이 말에 힘을 얻고 자리에서 일어난 성기는 엿판 하나를 구해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정처없이 떠난다.

● 인물의 성격

◆ 옥화 : 체장수 영감이 36년전 화개장터에 남사당패로 들렀을 때 술집 주인과 관계를 가져서 생긴 딸로, 떠돌이 중과 인연을 맺어 낳은 아들 성기를 데리고 주막을 하면서 살아가는 여인

◆ 성기 : 옥화의 아들로 역마살을 이기지 못해 절에서 지내고 있으나 계연에게 사랑을 느끼면서 정착을 생각해 보기도 하지만, 계연이가 자신의 이모임을 알고는 정처없이 떠나는 인물

◆ 체장수 영감 : 역마살이 들어 떠돌아 다니던 소리꾼이었으나, 화개장터에 찾아와서 36년 전의 일을 회상하고 딸을 찾지만 다시 떠난다.

◆ 계연 : 체장수 영감이 50이 되어 낳은 딸.  옥화의 집에 정착하려 했으나 기구한 운명에 의해 정처없이 아버지를 따라 떠나고 마는 인물

●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역마살로 표상되는 한국인의 운명관이 인간의 삶의 질서를 어떻게 형성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를 형상화하였다. 등장인물은 자신의 사주와 운명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끝내 그 운명을 극복하지 못하고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의 일방적인 패배라기보다는 팔자소관이라는 한국적 운명관에 순종함으로써 도리어 생명의 리듬을 얻고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인간이 자신의 운명에 따라 살아갈 때 행복을 느낀다는 인식, 이것이 작가가 생각한 '구경적(究竟的) 생'에 대한 인식이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장터(화개장터)'와  '역마살'의 관련성을 이해하는 것도 소설 이해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장터란 역마살이 낀 장돌뱅이들의 집결지로서, 그들의 삶을 영위해 가는 장소이다. 이 작품의 공간적 배경인 화개 장터에서 주막을 하며 장돌뱅이들의 근거지를 제공하는 옥화, 그의 아들 성기가 역마살을 지니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지도 모르겠다. 물론 성기의 역마살은 외조부 및 부로부터의 내림이기도 하지만.

역마살이 낀 사람들로 인해 본인과 주변사람들의 기구한 운명을 만날 수 있다. 할머니는 남사당패와 단 한 번의 만남으로 어머니 옥화를 낳고, 어머니 옥화는 떠돌이 중과 인연을 맺어 성기를 낳는다. 성기는 역마살이 끼어 운명적으로 떠돌아다닐 팔자는 타고 났다. 여기서 보면, 모든 남자들은 원심적으로 밖을 향하며, 여자들은 붙박여 있다. 이것은 사회적 관계라기보다는 운명이라는 필연성과 관계가 있다. 역마살이 끼면 떠돌 게 마련이고, 그런 중에 여자와의 인연으로 자식을 떨구게 되며, 그 자식과 남은 여자들은 마냥 기다림으로 평생을 보내야 하는 숙명적인 삶의 모습을 보인다.

길을 떠나는 성기 앞에 놓인 세 갈래의 길은 변증법적 사고의 구조를 공간화하여 보여주는 것이다. 변증법에서는 정(正)과 반(反)의 대립에서 합(合)으로 지양되는 발전의 개념을 중시한다. 여기서 구례로 난 길은 계연이가 떠나간 길이며, 쌍계사로 향한 길은 기존의 성기 자신이 간 길이다. 계연을 쫓아가거나 자신의 원래의 삶으로 복귀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길 하동으로 향한다. 그러므로 성기는 슬픔을 극복하고 거기서 새로운 삶을 싹틔우는 것이다.

이 작품은 거스를 수 없는 인간의 운명과 근친상간의 문제를 토속적이고 향토적인 색채로 그려내고 있다. 작가가 일관되게 추구했던 전통 세계의 한 모습이 사주팔자라는 운명관을 소재로 하여 구현되고 있으며, 한국인의 정서의 축을 이루는 한의 세계를 극화함으로써 치열한 삶의 현장을 제시하고 있다.

● 핵심사항 정리

◆ 갈래 : 단편소설, 순수소설  (무속적, 운명론적)

◆ 배경

* 공간적 - 역마살이 낀 장돌뱅이들의 집결지인 화개장터

* 사상적 - 토속적이고 운명론적인 샤머니즘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갈등구조 : 인간과 운명간의 갈등(역마살을 극복하려는 인간의 노력과 운명적인 역마살과의 대결)

◆ 주제떠돌이 인간들의 삶과 역마살

             한국적 운명관(역마살)에의 순종과 그에 따른 인간성의 구현

◆ 출전 : 『백민』(1948)

● 생각해 볼 문제

1. 이 작품의 무대는 화개장터이다. 한국 소설에서 '장'은 주요 배경이 되는데, 이 작품을 통해 볼 때, '장'은 어떤 상징성을 지닌 공간이라 할 수 있는지 말해 보자.

⇒ 전통사회는 폐쇄성을 띠고 있는데 반해, '장'은 그 폐쇄성에서 정기적인 개방성을 띠는 공간이다. 따라서 '장'은 만남의 공간이며, 열린 공간이 되는데, 인생의 애환이 교차되고 온갖 인연이 맺어진다. 그리고 만남과 함께 헤어짐이 예비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것은 인생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서는 남녀가 인연을 맺고 헤어지며 그 헤어짐의 아픈 한이 고스란히 스며있는 공간으로 의미화되고 있다.

그런데 그들간의 인간적 관계는 항구적이기보다는 임시적, 일시적일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사정은 '역마'의 주요 인물들에게서 그대로 확인된다. 성기가 역마살이 끼어 떠돌아 다니고 싶어하는 점이나, 체장수 영감과 계연이 스쳐지나가듯 왔다가 가는 것, 체장수 영감이 옥화의 아버지이고 계연은 이복 동생이라는 사실 등 모두가 역마살 낀 인물들의 불안정한 삶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렇게 역마는 그 배경을 화개장터로 설정함으로써 주제의 개연성을 강화하고 있다.

2. 마지막 대목에서 성기가 콧노래를 부른 까닭은 무엇인가?

⇒ 역마살이라는 자신의 운명에 저항하지 않고 그에 순응하기로 결심한 성기에게 있어, 엿 장수가 되어 길을 떠나는 것은 차라리 홀까분한 일이며, 일종의 구원이라고도 볼 수 있다. 즉, 비극의 극점에서 드디어 자신의 삶을 새롭게 정립해 가고자 하는 희망의 소리이다. 마음의 아픈 상처는 모두 아물어지고 평온한 상태의 마음가짐에서 우러나오는 소리이다.

3. 이 작품에서 성기와 계연이 결합할 수 없는 결정적인 요인이 된 사물을 찾아본다면?

⇒ 사마귀

● 더 읽을거리

◆「역마」의 구조적 형식과 상징

'역마'에서는 서두에 화개장터와 세 갈래 냇물, 길을 통해 작품의 주제를 암시하고 있다. '역마'에서 나타나는 배경묘사는 준액자적인 형태이다. 이는 '성기'의 조모, '옥화', '계연', '성기'의 혈연관계가 밝혀짐으로써 인물관계가 원의 모양을 갖는다. 또한 내부 구조에 있어 '계연' 부녀의 도착과 떠남이라는 구조를 지니고 있는데, 이 역시 작품의 구조가 순환구조임을 말한다. 이런 구조적 형식으로 인해 '역마'는 운명의 상징적 의미를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

 

◆ 동명왕 신화와 「역마」의 비교

주몽의 출생에 관한 신화의 인물, 플롯, 배경, 테마는 「역마」를 성립시키고 있는 구조적 요소와 일치하고 있다. 대응적 관게를 이루는 인물과 배경을 도해하면 아래와 같다.

  • 하백과 할머니 : 주인공의 탄생과 관계 있는 모계의 혈통
  • 유화와 옥화 : 아들 하나를 의지하고, 언제 돌아올 줄 모르는님을 기다리며 외롭게 살아가는 여인.
  • 주몽과 성기 : 아버지가 없는 자식으로 성장, 어머니와 이별하여 남행함.
  • 해모수와 남사당 : 후손의 씨를 뿌리고 돌아오지 않음. 가 버린 님.
  • 웅신산하 압록강산과 푸른산을 감싸고 흐르는 물 : 강과 산의 지리적 결구로서 생명탄생의 근원지
  • 집과 주막 : 정을 통한 곳

◆「역마」와 「메밀꽃 필 무렵」

표면적으로만 보면 「역마」는 장터이야기이다. 장터란 길따라 사람이 모이고 흩어지는 장소. 그래서 사연이 생기고 인연이 얽혀드는 곳이다. 봉평장에 장돌뱅이 허생원의 사랑 얘기가 생겨났듯 화개장엔 떠돌이 체장수 영감의 사랑 얘기가 담긴다. 두 사랑 이야기에는 한결같이 그 배후에 장차 인간의 삶을 알 수 없이 끌고 가 버리고마는 그 어떤 초월적 힘이 도사리고 있다. 「역마」에는 배다른 이모 '계연'을 사랑한 내성적 청년 '성기'가 그같은 역마살과 당사주 같은 초월적 힘에 의해 이리 저리 끌려다니는 모습이 나온다.

-김병준, '김동리와 하동'-

◆「역마」의 소멸과 생성

'성기'는 자신을 소멸하거나 소중한 존재를 상실해야 할 운명을 타고 났다. 계연을 잃는 이유도 그런 까닭이다. 그러나 성기에게 있어 소멸의 순간은 생성으로 연결되는 접합점이 되고 있다. 이는 실연의 상처에서 흔연히 일어나 엿판을 둘러메고 육자배기 가락으로 제법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집을 떠나는 것에서 나타난다. 이는 자연의 섭리에 대한 굴종이나 순응이 아니라 그것에 맞서는 주체적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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