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향(1955)

-이호철-  

◆ 소설 읽기  

● 줄거리

중공군이 밀려온다는 바람에 무턱대고 배 위에 올라탄 나와 하원이, 두찬이, 광석이는 부산 거리에 부려졌다. 하루 저녁에도 몇 번씩 화차를 전전하며 살고 있지만, 이튿날 아침이 되면 어김없이 넷은 가지런히 제3부두를 찾아 나갔다. 조반을 사먹을 때는 꽁치 토막일망정 좋은 반찬은 서로 양보들을 했고, 화차칸 속에서 막걸리 사발이나 받아다 마시면 고향을 떠올리며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자고 약속하고는 했다.

이럭저럭 한 달쯤 무사히 지났으나 고향으로 돌아갈 날은 갈수록 아득했다. 쉽사리 고향으로 못 돌아가리란 생각에 두찬이와 광석이는 나름대로의 배포를 세운다. 둘은 나머지 셋 때문에 얽매여 있는 것처럼 여기게 되고, 자연 넷 사이는 어색해지고 부담감을 가지게 된다.

토박이 반원들과 어울리는 광석이는 차츰 반원들과 왁자지껄하는 데 재미를 느끼며 갈수록 자신만만해졌다. 두찬이는 이런 광석이를 못마땅해 했으며, 이즈음부터는 얌생이를 해도 다만 밥 두 끼 값이나 골고루 나누어 주는 법이 없이, 일판만 나오면 혼자 부두 앞 틈사이 샛길을 허청허청 돌아다녔다. 이런 두찬이는 으레 술이 듬뿍 취해 화차칸으로 돌아오곤 하였다. 취한 두찬이는 광석이에게 욕을 해대며 발길로 화차 벽을 텅텅 내찼다. 하원이는 '부산은 논두 안 온다.'며 애스럽게 지껄이며 엉엉 소리내어 울었다.

화차 문을 열었을 땐, 낮은 바라크 지붕 너머로 제4부두의 환한 불빛이 모로 움직였다. 나는 차 가는 쪽으로 훌쩍 내리뛰었다. 뒤이어 누군가 뛰어내리고, 더 앞에 또 뛰어내렸다. 어느새 기차는 커브를 돌고 있었다. 그러자 분명히 저만큼 훌쩍 뛰어내리고, 더 앞에 누가 또 뛰어내렸다. 어느새 기차는 커브를 돌고 있었다. 그러자 분명히 저만큼 훌쩍 뛰어내리는 소리가 또 났다. 무엇엔가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광석이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나는 후닥닥 그쪽으로 내닫기 시작했다. 두찬이는 나를 부르며 가 봐야 소용없다고 말한다. 두찬이는 그냥 반대쪽으로 저벅저벅 걸어가고 나는 한참을 그 자리에 그냥 서 있었다. 하원이는 나를 광석이 쪽으로 이끌며 흑흑 목을 놓고 흐느꼈다.

나는 이제 우리 넷 사이가 어떻게 돼도 좋다고 생각한다. 다만 하원이의 애처로운 표정을 대할 때마다 섬뜩하게 뒷잔등이 차가웠지만, 번번이 외면을 했다. 사실 나는 광석이 곁으로 갔을 때, 자조와 또 어떤 자랑스러움도 느꼈다. 광석이가 죽고 안 죽고는 내가 알 바 아니라고 생각하며 고향에 가더라도 조금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고 떳떳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나는 왼팔 중동이 무 잘라지듯 동강이 난 광석이를 업고 일단 ㅘ차로 들어왔다. 광석이는 두찬이가 자기를 오해했다는 말을 남기고 이튿날 아침 죽는다. 나는 눈물을 흘리며, 죽은 광석이보다 이런 꼴을 당하고 있는 자신을, 또 울고만 있는 하원이 꼴을 서러워한다.

광석이를 묻고 돌아온 다음날, 이젠 제법 길어진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두찬이는 불현 듯 화차칸으로 돌아왔다. 하원이는 두찬이를 떼어 놓고, 둘만이 어디 다른 데로 가자는 눈치를 주었으나 나는 모르는 체했다.

어느새 봄이었다. 두찬이는 취한 채 막걸리 병과 안주를 들고 밤 늦게야 돌아왔다. 두찬이는 하원이에게 강제로 술을 마시게 하고, 광석이가 죽을 때 자신을 붙들지 않은 것을 원망하며 나에게 욕을 한다. 두찬이는 광석이와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화차 안이 쩌렁쩌렁하도록 어이어이 운다.

이튿날 아침 두찬이는 떠나고 나와 하원이만 남게 된다. 하원이는 함께 고향에 가자는 말을 하고 나는 무엇인가 못 견디게 그리운 것처럼 애탔다. 그러나 나는 마음속으로 하원이를 버리고 있었다.

● 인물의 성격

◆ 광석 → 두찬과 동갑. 그러나 두찬과는 달리 사리판단이 민첩하고 사교성이 있으며 말이 많고 타향에 대한 적극적인 적응 행동을 보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함. 여러 모로 두찬과 대비되는 성격을 가지고 있음.

◆ 두찬 → 스물넷의 나이에 걸맞지 않게 조숙해 보이며, 사교성이 없고 말이 없는 성격. 진득한 성격을 가지고 있으나 융통성이 없고 무뚝뚝하다. 고향에 대한 말없는 집착을 가지고 있으며, 속없이 타향에 적응하려는 행동은 쓸데없다고 생각함.

◆ 하원 → 열여덟의 어린 나이로 여리고 순수하며 의타적인 인물. 그의 순수성은 주변 인물로 하여금 연민을 일으키게도 하나 한편으로는 모두가 극단적인 삶속에 던져진 상황이라 짐스럽게 여기기도 함.

◆ 나 → 하원이보다 한 살 많은 나이. 광석이의 죽음과 두찬이의 떠남을 계기로 자신이 처한 현실에 대해 인식하게 되고, 하원이로 대표되는 돌아갈 기약조차 없는 고향에 대한 감상주의적 태도와 결별함.

● 구성 단계

◆ 발단 : 우러남하여 부산의 화차칸을 전전하며 함께 고향에 돌아가기를 결심함.

◆ 전개 : 고향으로 돌아갈 날이 아득해지자 현실적 삶을 찾는 광석이와 이를 못마땅해하는 두찬이

◆ 위기 : 화차에서 뛰어내리다 사고를 당해 죽고 마는 광석이와 이를 외면하는 두찬이

◆ 절정 : 두찬의 절망과 떠남.

◆ 결말 : 하원이를 떠나려는 나

●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작가 이호철이 1955년 스물넷의 나이에 발표한 등단작이다. 전쟁의 와중에 홀홀 단신으로 월남한 그의 체험적 사실이 묻어나는 이 작품은, 전쟁을 감상적인 탄식이나 전쟁 비극의 고발 등의 단순한 내용을 넘어 홀로 고향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그가 실제로 굳어져가는 분단의 현실 속에서 '참으로 살아나가야 하는' 방법을 궁리하는, 그럼으로써 고향이라는 이미지에서 '실존적으로 탈출해야만 하는' 절박한 인식의 차원을 다루고 있는 문제작이었다.

등장 인물들은 고향을 생각하는 동안만큼은 행복하다. 하얗게 함박눈이 내리던 고향, 잘 웃던 이웃집 형수의 웃음이 기억 속에서 환하게 밝혀져 있는 고향을 그들은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이처럼 고향으로 돌아가는 꿈을 꾸고 있지만, 이들이 살고 있는 현실은 꿈과는 다르게 참혹하다. 같은 고향이라는 공동체 의식만으로는 어찌해 볼 수 없는 현실의 이해관계가 그들을 갈라놓은 것이다.

이 작품의 탐구 대상은 전쟁이라는, 개인적으로 접근 불가능한 추상적인 범주가 아니라, 바로 전쟁의 후유증이라는 구체적인 현실과 남한이라는 분명한 공간 속에서 어떻게든 그것을 인정하고 새롭게 살아나가야 한다는 절박한 실존과의 대결이라 하겠다. 무엇이 달라졌으며 무엇을 포기하고, 또 무엇을 극복해내야 하는가는 막연한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일어나 화차 밖으로 나서면 짊어져야 하는 막중한 현실인 것이다. 이렇듯 달라진 현실 조건을 인식하는 구체적인 체험들은 스스로 자초한 것이 아니라 주어져 버렸고, 그것의 뒤에는 전쟁이 놓여 있으며, 개개인의 잃어 버린 고향의 그림이 말라붙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 '탈향'은 막상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주어진 수동적인 '실향'과는 달리 고향을 떨쳐내야 하는 적극적이고 실존적인 명령이다.  그러나 너무나 힘겹고 고단한 '지금, 여기'에의 척박한 현실감 속에 '이제는 마음대로 갈 수 없는 고향'은 오히려 더욱 '모든 것이 있었던 것만 같은' 환상태로 바꾸어 놓았다. 나아가 가장 나이 어린 하원의 독백은 이러한 현실적 체감과 환상적 고향의 반비례 관계를 극명하게 보여 준다.

한편 '우리 넷이 헤어지는 날은 죽는 날이다.' 로 대표되는 대화는, 이방인으로서의 불안감을 오히려 이방인으로서 자신을 더욱 옥죄어 붙들어 두려는 욕망으로 나타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 인식이 점점 실제적인 삶의 문제와 부닥치고, 귀향의 가능성에 대한 확신이 옅어지면서 새로운 삶의 방식을 요구한다. 그러나 네 사람 사이에는 이에 대한 미묘한 견해 차이가 생기고, 그것은 모두 언젠가 돌아갈 고향에 대한 배반이 아닌가하는 의구심 속에서 이루어진다. 결국 이 작품은 전후 실향민의 황폐화된 삶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 속에서의 실존적 대응 방법을 모색했다고 할 수 있겠다.

● 핵심사항 정리

◆ 갈래 : 전후 소설, 분단소설, 단편소설, 사실주의, 실존주의 소설

◆ 배경

* 시간적 → 1· 4 후퇴 직후

* 공간적 → 피난지 부산 항만

◆ 시점 : 1인칭 관찰자 시점(1인칭 주인공 시점이 약간 혼용됨.)

◆ 특징

* 전후 실향민의 실존적 문제를 다룸.

* 네 명의 동향 출신의 인물들이 지니고 있는 성격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남.

* 눈(雪) : 인물들이 고향을 떠올리며 향수에 젖게 하는 회상의 매개체

* 간결한 문체로 사건을 속도감 있게 표현했으며, 사투리를 통해 현실감을 고조시킴.

◆ 구성

* 순차적 구성에 과거를 회상하는 시간의 역전이 약간 이루어짐.

* 친밀하던 네 사람의 관계가 점점 멀어지면서 갈등이 고조되는 단순 구성을 취함.

◆ 인물의 심리 변화 : 서로 믿고 의지하면서 귀향할 것을 믿음. ⇒ 귀향에 대한 확신이 서지를 않음. ⇒ 새로운 현실에 적응할 필요성을 느낌. ⇒ 서로 다른 사람 때문에 제 갈 길을 찾지 못한다고 생각함. ⇒ 서로를 귀찮아 하기도 오해하기도 함. ⇒ 광석의 죽음을 통해 각자의 길을 가게 됨.

◆ 주제 전후 월남 실향민의 황량한 삶과 그 적응의 방식

◆ 출전 : 『문학예술』(1955. 7.)

● 생각해 볼 문제

1. 이 소설은 작가의 자전적 체험을 소설화한 작품으로, 작품 속의 '나'를 작가 자신으로 보아도 되는가?

⇒ 작가 이호철은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에 동원되었다가 1950년 12월 9일 부산으로 월남한 실향민이다. 인민군으로 복역했던 체험 및 분단으로 인해 실향민 신세가 되었던 경험은 이후 그의 소설에서 여러 번 반복되어 나타난다. 그만큼 이호철 소설에서 '실향'과 '분단'은 갈등의 중심 요인이다. 따라서 <탈향>에서의 '나'의 의식과 '나'가 처한 상황은 작가의 자전적 체험과 깊은 연관이 있다. 다만 소설까는 자신의 체험을 그대로 드러내기보다는 주제 의식에 따라 재창조되므로, <탈향>에서도 분단 문제가 직접적인 주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2. 이 작품의 제목이 '실향'이 아니라 '탈향'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 만약 이 소설의 제목이 '실향'이라면, 타의에 의해 고향을 잃고 그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고통으로 힘겨워하는 두찬이나 하원이가 중심이었다. 그리고 그 내용도 분단이 비인간성을 고발하고 민족적이고 참여적인 색채가 짙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의 제목이 '스스로 고향을 벗어난다'는 어감을 주는 '탈향'이라는 점, 그리고 '나'가 귀향을 포기하지 않는 하원을 내심 버리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은 안온하고 평화로우나 비현실적인 고향의 세계, 즉 과거의 세계로부터 벗어나야 함을 의미한다. 이것은 구체적 현실을 직시하고 그 현실을 극보해 내는 새로운 결단이 필요하다는 작가의 생각을 암시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소설은 전쟁이 준 상처를 그리거나, 인간성 회복을 부르짖는 다른 전후 소설과는 큰 차이가 있다. 따라서 <탈향>은 '고향'으로 상징되는 근대적인 삶, 소박하고 인정어린 과거의 공동체적 삶으로부터 벗어나 독자적인 개인으로 서서 현실을 탐구해야 한다는 근대적 각성을 그린 소설이라 할 수 있다. 그렇게 본다면, 이 소설은 일종의 성장소설에 해당한다.

3. '나'는 하원을 버리겠다고 생각하면서 눈물을 흘리는데,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 이 작품에 등장하는 네 명의 인물은 서로 친척과 동향인으로 엮여져 있다. 이런 관계는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별거 아닌 관계이지만, 전통적인 사고방식으로 보면 서로가 서로를 책임지고 챙겨 주어야 하는 운명 공동체적 관계이다. 그러므로 그들을 벗어나 독자적인 개인으로 서고자 하는 '나'의 욕망과 책임감 사이의 갈등을 보여주는 것이 '나'의 눈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윤리 의식일까 자존심이랄까 하는 것이 남아 있음은 이호철 문학의 섬세함이고 가치이다.

● 더 읽을거리

이호철의 초기 소설에 대한 평가

이호철의 초기 소설들은 분단 상황에 대한 실존적인 삶의 문제, 적응의 문제, 분단 상황의 인식과 과거 기억과의 결별 등을 다루고 있으나, 초기 소설 이후부터는 소시민적 삶, 한국 현대 사회와 도시 속에서의 인간 삶의 양상 등으로 초점을 바꾸어 나간다.

그런 의미에서 이호철의 초기 소설은, 중 후반 소설과의 연계성을 강조하는 입장에서 살펴보기 위해 근대적 삶으로의 이행 단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즉, <탈향>의 경우도 네 사람의 이해 관계에 의한 결집 와해 현상을 대개 분단의 현실과 전쟁이라는 상황이 낳은 인간 관계의 황폐화 등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농촌이라는 공간에서 집단으로 결속된 인간 관계가 산업사회로 가면서 개개인으로 와해되는 순간이며, 새로운 도시 사회로서의 진입 모색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호철의 초기 작품들은, 그의 월남 경험이 너무나도 극단적인 바, 분단의 체험적 경험에 의한 형상화이며, 실존적 독존의 위기 속에서 삶의 방향에 대한 모색, 적응의 노력 등으로 전쟁과 결부시켜 이해하는 것은 온전한 이해로 보인다.

 

실향민과 <탈향>의 등장인물

실향민은 고향을 떠난 뒤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다시 돌아갈 수 없게 된 사람이다. 이 말은 남북 분단으로 북한의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남한에 그대로 정착한 북한 출신 사람들과 6 · 25 전쟁 때 공산주의 사회체제를 반대하고 자유를 찾아 월남한 사람을 총칭한다. 이들 중에는 일가족이 모두 남하하거나 남한에 정착한 경우도 있으나, 분단이나 피난을 일시적인 것으로 생각하여 가족을 고향에 두고 혼자 온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가족이 뿔뿔이 헤어져 있게 된 수많은 이산가족이 생겼다. 그에 따라 한국의 실향민은 고향을 다시 찾는 일 못지 않게 떨어져 있는 가족을 다시 만나는 일이 무엇보다 간절한 소원이다.

이 작품에서는 1950년 12월 별안간에 월남해 온 네 사람이 부산의 제3부두에서 부두노동을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작가는 실제로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이 소설을 썼는데, 화자인 '나'를 포함해 광석, 두찬, 하원은 모두 고향 마을에서 같이 피난 나온 사람들이며, 함께 부두 노동을 한 일이 있다고 한다. 다만 화차살이를 한 일은 없는데, 그 당시 방을 못 얻은 피난민이던 일부가 더러 화차살이를 하는 것을 보고, 들은 이야기에 작가의 상상력을 보태 등장인물이 겪은 일로 형상화한 것이라 한다.

 green37_up.gif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