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난이대(1957)

-하근찬-  

◆ 소설 읽기  

● 줄거리

박만도는 삼대 독자인 진수가 살아서 돌아온다는 통지를 받고 마음이 들떠며, 기차는 점심때가 되어서야 온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찍이 정거장으로 나간다. 아들이 병원에서 나온다는 말에 걱정이 되지 않는 바는 아니지만 설마 자기처럼 되지는 않았으리라고 확신을 하며 한쪽 팔이 없는 자신의 모양을 내려다본다. 팔이 없어서 늘 주머니에 한쪽 소맷자락을 꽂고 다니는 만도는 일말의 불안감을 떨쳐 버리고 아들이 온다는 생각에 휩싸여 시간이 빨리 가기를 기다린다. 언젠가 술에 취해서 돌아오다가 외나무 다리를 건너면서 물에 빠져 옷을 둑에 말리고 사람들이 지나가면 물 속으로 들어가 얼구란 내놓던 것을 회상한다. 정거장에 나올 때 읍 들머리에서 망설이다가 장에 들른 만도는 진수에게 주려고 고등어 한 마리를 사며 지금 대합실에서 아들을 기다리며 그동안 자신이 겪은 과거의 일을 하나하나 회상하게 된다.

만도는 지금으로부터 벌써 32,3년이나 지난 옛일을 회상한다. 그때 그는 일제의 강제 징용에 의해 어딘지도 모르고 고향을 떠나서 남양의 어떤 섬에 도착한다. 섬에서는 비행장을 닦는 일에 동원되어, 숨막히는 더위, 강제노동, 잠자리만한 모기떼, 입에 맞지 않는 음식, 돌림병 등으로 고생이 많았으나 어느 정도 적응해 간다. 비행장이 완성되자 이번에는 산허리에 굴을 파는 일이 주어진다. 어느날 굴에 다이나마이트를 장치하여 불을 당겨야 할 때, 연합군의 공습이 시작되는 바람에 당황한 만도는 다이나마이트를 장치했던 굴로 들어가서 엎드렸다가 다이나마이트가 터지는 폭음과 함께 팔을 잃게 되었다.

기차가 정거장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자 만도는 손에 고등어를 들고서 긴장하며 기다린다. 어찌된 영문인지 아들의 모습이 좀처럼 보이지 않자 만도는 초조해져서 사방을 두리번거리게 되었고, 뒤에서 '아부지'하고 부르는 소리에 만도는 뒤로 돌아서게 된다. 만도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 입이 벌어지고 눈이 무섭도록 크게 떠진다. 그의 눈에 비친 아들의 모습은 한쪽 다리가 없어서 지팡이를 끼고 있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두사람은 집으로 향했고, 진수는 자신의 걸음이 뒤지기 시작하면서 눈물을 참느라고 애를 쓴다.

주막집에 이르러 만도는 술을 마시고, 진수에게는 국수를 시켜주고는 , 또다시 진수를 앞세워 집으로 향했다. 술기운이 도는 만도는 진수에게 자초지종을 물어, 수류탄에 그리된 것을 알게 되며, 이런 모습으로 어떻게 살겠느냐는 아들의 하소연에 그를 위로하고 희망을 준다.

외나무다리에 이르자 만도는 머뭇거리는 진수에게 등에 업히라고 하며, 진수는 지팡이와 고등어를 각각 한손에 들고 아버지의 등어리로 가서 슬그머니 업힌다. 만도는 아랫배에 힘을 주고 일어났으나 아랫도리가 후들거리며 외나무다리 위로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디면서 그는 진수의 신세가 똥과 같다고 생각한다. 만도는 아직 술기운이 있었으나 용케 몸을 가누고 외나무다리를 조심조심 건너가고 있으며 눈앞에 우뚝 솟은 용머리재가 이 광경을 가만히 내려다 보고 있다.

● 인물의 성격

◆ 박만도 → 일제시대때 강제 징용되어 끌려갔다가 외팔이 신세가 되지만, 일제에 대한 분노나 원망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자신의 운명을 체념적으로 받아들이는 인물.  아들의 부상에 화가 치밀지만 이내 체념하고 현실에 순응하고 마는 정적 인물임. 비극적 운명의 주인공

◆ 박진수 → 6.25전쟁으로 한쪽 다리를 잃고 돌아온 상이군인으로,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현실에 순응하면서 살아가는 정적인물임.

◆ 주막집 여편네 → 쾌활하고 스스럼없는 성격의 소유자. 작중 보조 인물로서, 만도와 진수의 심리 상태를 표면으로 드러나게 하며, 두 사람 사이의 침울한 분위기를 완화시키는 역할을 함.

● 구성 단계

발단 : 만도는 6 · 25 전쟁에 나간 아들이 고향에 돌아온다는 통지를 받고 역으로 마중을 나감.

◆ 전개 : 만도는 일제의 강제 징용에 끌려갔다가 방공호 작업장에서 한 팔을 잃은 자신의 과거를 회상함. 아들의 귀향을 축하하는 마음에서 도착 시간보다 이르게 나가 장에서 고등어를 사들기까지 함.

◆ 위기 : 기차에서 내린 아들이 다리를 하나 잃은 채 목발을 짚고 있는 것을 본 만도는 분노하여 뒤도 안보고 걸어감.

◆ 절정 : 외나무다리에서 팔이 없는 아버지가 다리 없는 아들을 업고 건너며 서로를 위로함.

◆ 결말 : 용머리재가 부자를 내려다 봄.

 

◆ 구성 단계의 문학적 의미

① 박만도가 전쟁이 끝난 후 귀향하는 아들을 만나러 가는 기쁨에 들뜬 국면

⇒ 설레임, 초조함, 긴장감의 교차

② 박만도의 징용 체험, 즉 10년 전의 비극적 체험

⇒ 박만도 운명의 불행( = 민족사적 불행이자 역사의 비극임).  

    비극성 고조.  

    sub plot 역할(작품의 핵심이 역사의 폭력성에 대한 고발 내지는 항거에 바탕을 두고 있음)

③ 아들과의 상봉

⇒ 비극적 반전(희망에서 절망으로 추락,  공포에 대한 본능저 자각과 충격적인 놀라움의 발생)

    갈등 및 딜레마 발생

④ 술을 마시고 소변을 보는 장면

⇒ 공포와 연민의 카타르시스 유발, 부자 사이의 운명적인 공감대 형성

⑤ 외나무 다리를 건너는 순간

⇒ 딜레마의 결정적 해소,  갈등에서 화해로의 전환

    절망과 방황을 딛고 이겨나가는 이 민족의 굳센 극복의지("한"의 초극)

● 이해와 감상

<수난이대>는 일제시대와 6.25를 거치면서 아버지와 아들이 겪은 가족사적 비극을 통해 우리 민족의 수난사를 고발하고 있는 작품이다. 아버지는 일제 강점기에 징용으로 끌려가 팔 하나를 잃고 불구의 삶을 살아간다. 아들 진수는 한국전쟁으로 다리를 잃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가계를 이어가는 뿌리들이 이렇게 불구자가 된다면 그 가계의 삶이란 간난 신고의 연속이 될 것임이 분명하다. 더구나 그들의 고통이 자신들이 책임질 문제에서 연유한 것이 아니라 사회로부터 일방적으로 부여된 고통이기에 그들의 절망은 헤어날 길이 없는 아득한 것이 되고 만다. 또한 이 부자(父子)는 어디에서고 만날 수 있는, 질곡의 현대사를 살아온 우리 이웃들의 모습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부자의 아픔을 집중적으로 그림으로써 수난의 시대를 살았던 민족의 아픔을 극화하는 작품이 된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의 아름다움은, 그러한 수난이나 비극을 그리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 절망을 딛고 일어서려는 몸짓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불구를 딛고 살아갈 의욕을 다지게 된다.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장면은 뭉클한 감동을 주기에 충분할 정도로, 서로의 결손을 채워가며 힘들지만 외나무다리의 위태로운 현실을 조심스럽게 건너가는 것이다. 이 장면은 앞으로 이 부자가 살아가게 될 삶의 모습을 미리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용머릿재라는 높고도 험난한 고개가 버티고 있는 것이, 그들의 앞으로의 삶이 결코 쉽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힘들지만 둘은 힘을 합하여 고난을 개척해 나갈 지 모른다.

이 작품의 진정한 가치는 바로 이러한 주제의식에 있다. 이대에 걸친 가족의 수난, 그리고 앞으로 험난한 길이 버티고 있는 고통의 현실, 오로지 의지 하나로 헤쳐 나가야 하는 처지, 이런 것들을 모두 극복하고 마침내 수난의 시대를 끝내게 될 것이다.

◆ 공간 이동을 통한 갈등 해소의 과정

기차역(기다림과 만남) → 신작로(거리감) → 주막(거리감 해소) → 논두렁길(대화) → 외나무다리(갈등 해소) → 용머리재(수난 극복)

● 핵심사항 정리

◆ 갈래 : 단편소설, 가족사 소설, 전후소설

◆ 배경

* 시간적 : 일제 강점하에서 6 · 25 직후까지

* 공간적 : 현실적 공간 - 전쟁의 상흔이 남아 있는농촌

               허구적 공간 - 일제 암흑기의 남양의 어떤 섬과 6 · 25의 전쟁터.

* 사상적 : 전후의 허무주의, 반제국주의, 반전주의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에 작가 관찰자 시점이 다소 혼용된 형태

◆ 표현상 특징

① 과거와 현재의 교차를 통해 회상 또는 연상의 기법을 적절히 구사함.

② 사실적 묘사, 토착어의 구사 등을 통해 인물의 성격과 상황, 분위기를 제시함.

③ 오전에서 오후로의 이동을 통해, 희망에서 절망으로, 상승에서 하강으로의  분위기 변화를 자연스럽게 끌고 감.

◆ 주제

* 민족의 수난과 그 극복 의지

* 한국 현대사의 비극적 단면과 극복 의지

* 비극을 통한 인간정신의 고양(휴머니즘)

◆ 출전 : 「한국일보」(1957) 신춘 문예 당선작

● 생각해 볼 문제

1. 박만도가 하룻동안 걸었던 길의 상징성은 무엇인가 ?

→ 가는길(기쁨과 설렘의 길), 오는길(설움의 길)

2. '주막'과 '술'과 '외나무 다리'의 상징성에 대해 말해 보자.

→ * 주막(낭만적 환상과 실제적 현실이 부딪치는 장소. 만도와 진수의 마음이 합일하는 공간)

    * 술(절망에서 긍정으로 나아가게 하는 촉매 역할.  역사의 어려움 혹은 삶의 어둠을 카타르시스 시켜주는 피와 눈물의 객관적 상관물)

    * 외나무 다리(위태롭고 힘겨운 삶의 상징. 힘든 삶을 딛고 일어서는 부자의 의지)

3. 만도가 불구가 된 아들을 처음 만났을 때, '에라이 이놈아!'라고 화를 낸 것은 어떤 심정이었겠는가 추리해 보자.

→ 충격과 놀라움과 아득한 절망의 표현이지, 결코 아들 진수가 제 몸을 건사하지 못했다는 책망의 표현은 아니다. 엄청난 운명의 비극 앞에 참담해진 마음이 진수에 대한 모진 소리로 드러난 것임.

4. 아버지는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아들은 6 · 25로 불구가 된다. 이러한 비극적 설정을 통하여 작품이 의도하는 주제가 무엇인지 알아보자.

→ 이 소설은 한 가족사의 비극이면서 동시에 우리 민족사의 비극을 보여 주면서 수난을 극복하는 삶의 의지, 역사적 시련 극복의 한 모습을 나타낸다.

● 더 읽을거리

◆ 마지막 장면(부자가 외나무 다리 건너는 장면)의 의미에 대해서 말해 보자.

⇒ 전후소설이 거둔 비극적 미학의 절정으로 평가받는 장면이다. 외나무 다리는 '위태하게 살아온 두 사람의 삶(=민족의 삶)'을 상징하는 배경으로, 다리 하나를 잃은 진수의 삶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황혼의 이 외나무 다리를 아버지가 아들을 업고 건너는 장면은 실로 장엄한 비극이요, 만일 두 사람이 건너지 못하고 추락하는 것으로 상황을 설정했다면, 그 비극성은 치열해질 것이고, 전쟁이 두 사람에게 남긴 상처의 고통이 독자의 심상에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와 감당하기가 힘들 것이다. 그들이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 그 자체만으로도 비극은 충분한 것이 되고, 그러기에 무사히 외나무다리를 건너게 했던 것이 조화스럽게 여겨짐.

 

◆ '수난이대'에 나타난 역사적 비극에 대한 작가의 인식

하근찬이 겪은 기차 안에서 상이군인을 본 경험은 '수난이대'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이대에 걸친 비극으로 형상화되고, 이 비극은 그 부자만의 비극이 아니라 우리 민족적인 비극으로 확장된다. 그리고 그의 작품 속에서 보편적인 비극으로 제시된다. 하근찬은 '만도'와 '진수'를 자신과는 아무 상관없는 전쟁의 소모적인 부품과도 같은 역할을 하기 위해 전쟁에 끌려가서, 자신의 소중한 한 부분을 잃어 버리고 마는 인물로 설정하였다. 이는 무엇보다 전쟁이 인간에게 있어서 끔찍하고 잔인한 것이라는 작가의 인식을 드러내는 것이다. 작가는 이 부자의 비참한 상황을 직접적으로 이야기한다거나 인물의 극한의 감정을 표출시키지 않고 최대한 억제시킨다. 이러한 작가의 표현 방법이 오히려 전쟁이라는 민족의 비극적 상황을 역설적으로 강화시키는 것이다.

 

◆ 하근찬의 작품 세계

하근찬의 작품 세계는 처음에는 농촌을 소재로 형성되었다. 그의 농촌은 폐쇄된 자연이 아니고, 한국의 역사적 상황이 연관된 현실이라는 점에서 문단의 인정을 받기 시작하였다. 실존주의의 영향과 전후파적 취향이 영향을 미치던 1950년대 후반기에 소설 영역에도 지적 허영과 관념적 난삽함이 적지 않게 성행하였다. 이러한 시대에 가난한 시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고 나왔다는 사실 자체가 획기적이었다.

그가 그려내고 있는 농촌은 사회적 변화에서 유리된 자연공간은 아니다. 오히려 역사적 수난과 고통을 가장 절실하게 축적해온 삶의 현장이다. 농촌의 삶과 현실이 역사적 상황의식에 대응되어 문제성을 드러내고 있는 그의 작품 가운데 가장 주목되는 것이 「수난 이대」이다. 전체적인 내용이 생활 속의 절실한 인정과 역사적 수난의 아픔이며, 그 아픔을 이기고 일어서는, 삶에 대한 강한 집념인 점에서 창작의 당연하고도 새로운 본령을 일깨웠다. 또 「흰 종이 수염」(1959)이나 「왕릉과 주둔군」(1963)은 주체적인 민족의식이 토착적인 세계 속에서 외래적인 것과 갈등하는 양상을 보여주는 작품들로서, 이처럼 농민 생활과 농촌 현실에 대한 그의 꾸준한 관심은 1950년대를 넘어서면서 농민 문학의 새로운 경지를 구축하게 되었다. 이외에도 자기 아들을 징용에서 빼주지 않는다고 면사무소에서 대변을 보는 아낙네를 그린「분(糞)」(1961), 전사통지서를 배달하지 않고 물에 띄었다는 죄로 해고당하고 웃는 「미소」등에서는 역사적 현실 속에 드러난 사회의 모순에 대해 강한 고발의 자세를 견지하였다.

하근찬은 현실의 어두움을 그리면서도 해학미를 잃지 않고 있는데, 이는 농촌을 배경으로 이루어지는 농민들의 삶과 그 애환을 작품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연유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당시 대부분의 전후작가들이 전쟁의 상처로 황폐해진 도시 소시민의 내면세계와 메커니즘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던 것과는 달리, 그는 인정과 향토성이 짙은 농촌을 배경으로 그들이 겪는 민족적 수난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일에 주력하였다.

(출처 : 두산세계대백과) 

◆「수난 이대」인물의 상처 극복

한국 전쟁을 소재한 소설들, 가령 최인훈의 <광장>, 황순원의 <나무들 비탈에 서다>, 박경리의 <시장과 전장>에 나오는 주인공들이 전쟁이란 무엇이고, 왜 있어야 하고 역사는 무엇인가를 질문하며 실존의 몸부림을 치는 반면 「수난이대」의 두 부자는 '소극적'인 대응법을 취한다. 이들은 기껏해야 운명론의 무드에 빠지거나 아니면 팔자타령을 하고 있을 뿐이다. 역사와 전쟁이 남기고 간 상처를 생존 본능의 확인을 통해서 잊으려 하거나 뛰어 넘으려 하는 것이다.

 

◆ 외나무 다리와 고등어

두 소재는 만도 부자가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모색하게 하는 매개체 역할을 하면서 주제 표출과 작품의 유기적 구조에 이바지한다. '고등어'는 부자 화해의 계기, 분위기의 전환, 부자 간의 온정 확인이라는 의미를 내포하면서 부자 협동에 의한 수난 극복의 소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외나무 다리'는 앞에서는 아들이 한쪽 다리를 잃고 나타나리라는 것을 암시하고, 뒤에서는 '협동'이 수난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라는 의미를 내포하면서, 부자간 협동에 의한 수난 극복의 현장으로 활용된다.

 

◆ 외나무 다리의 상징성

이 작품에서 외나무다리는 두 번 등장한다. 첫 번째는 아들을 만나기 위해 읍내로 나갈 때이며, 두 번째는 아들을 업고 다리를 건너 집으로 돌아올 때이다. 첫째 장면에서 아버지는 아들을 만나게 된다는 기대감으로 기쁨에 가득 차 있다. 둘째 장면에서는 한쪽 다리를 잃은 아들로 인해 슬픔과 절망감으로 가득차 있다. 그러나 외나무 다리를 건너 집으로 돌아오는 아버지와 아들은 이러한 절망감을 딛고 일어선다. 한 다리를 잃은 아들이 한 팔을 잃은 아버지의 도움으로 외나무다리를 건넘으로써 위기 상황을 극복하고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 수난이대 작자 후기 : ‘상이군인에서 얻은 영감과 외나무다리의 결함’

'수난이대'는 1957년에 "한국일보"의 신춘문예에 당선된 작품으로, 나의 처녀작인 셈이다.

이 작품의 착상이 머리에 떠오른 것은 1956년 가을 어느 날 동해남부선의 삼등열차 속에서였다. 그 무렵 부산에서 대학에 다니고 있던 터이라, 나는 부산과 고향인 영천 사이를 기차로 자주 왕래했었다.

그 무렵(1956년)의 기차 타기란 한마디로 이만저만한 고역이 아니었다. 연발 연착(정하여진 시간보다 늦게 출발하거나 늦게 도착함)은 다반사고, 차중에서 으레 두어 차례 증명서 조사를 받아야 하며, 또 끊임없이 잡상인들에게 시달려야만 했다. 안 사면 그만이지 잡상인에게 시달리다니, 얼른 납득이 안 가는 얘기겠지만, 사실 그 무렵은 그랬다(전쟁 이후의 사회상이 드러남).

잡상인들 중 일부 상이군인들이 있었다. 팔이 하나 없거나 다리가 하나 덜어져 나갔거나 혹은 얼굴이 뭉개진 상이군인들이 둘 또는 셋씩 다니며 물품을 팔고는 했다. 손 대신 쇠갈고리가 박힌 의수(손이 없는 사람에게 인공으로 만들어 붙이는 손)로 협박하듯 물건을 불쑥 내밀며 사라는 데는 질리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사 주면 그만이지만, 그렇다고 한두 번도 아닌데 번번이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학생 신분인데 무슨 돈이 그렇게 있겠는가. 그러나 안 산다고 그냥 고개만 내저었다가는 야단이다.

"우리가 누굴 위해 이렇게 됐는지 모르갔수?"(상이군인의 협박하는 듯한 말투)

아무튼 그런 분위기의 기차 안에서 나는 '수난이대'의 모티프(작품을 표현하는 동기가 된 작가의 중심 사상)를 얻었던 것이다.

당장 눈앞에 대하면 불쾌하고 저항을 느끼게 하는 상이군인들이지만,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게 아니었다. 그것은 어떤 전율과 분노를 자아내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러한 상이군인들의 모습에서 전쟁이라는 괴물의 수법을 볼 수 있었고, 그 잔인하고 거대한 괴물(전쟁)의 그림자 속에서 발버둥치는 무고한 민중의 모습을 실감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나아가서는 이 땅과 이 겨레의 운명 같은 것을 느낄 수도 있는 것 같았다.

이 땅과 이 겨레의 암담한 운명을 상징하고 있는 것 같은 상이군인들의 모습 ―― 무엇이 하나 될 것 같았다.

그런데 한번은 그런 기차 안에서 나는 어떤 문예지에 실린 기행문 하나를 읽고 있었다. 누가 쓴 것인지는 기억에 남아 있지 않으나, 아무튼 국내외 이름 있는 분이 유럽을 다녀 보고 와서 쓴 글이었다. 그 글을 읽어 내려가던 나는 속으로 '옳지, 됐어, 됐어.' 하고 쾌재를 불렀다. 머리에 번쩍 와 닿는 것이 있었다.

어떤 도시의 뒷골목에서 신기료장수(헌 신을 꿰매어 고치는 일을 작업으로 하는 사람)를 발견한 그 필자는 매우 호기심이 동했다. 앉아서 구두를 고치고 있는 모습이 우리나라의 신기료장수와 별로 다를 게 없었던 것이다. 유럽도 별수 없구나 싶었고, 그러면서도 어쩐지 친밀감  같은 것이 느껴져 필자는 그 신기료장수에게 다가가서 구두를 벗었다. 그리고 징을 몇 개 박으면서 말을 걸었다. 그 신기료장수는 매우 명랑한 사람이었다. 이쪽 한마디 말에 벌서 호의를 눈치챈 듯 서슴없이 자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 신기료장수는 다리 한쪽이 무릎 밑으로는 잘려 나간 불구자였다. 하나밖에 없던 아들은 이번 2차 대전에 죽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는 1차 대전 때 이렇게 다리 하나를 잘려 버렸다면서, 그 무릎 위로만 남은 다리 토막을 끄떡 들어 보이며 허허허 웃더라는 것이다.(문예지에 실린 유럽 기행문에서 인상 깊었던 내용)

아들은 2차 대전에 죽고, 아버지는 1차 대전에 다리가 하나 잘려 나가고(설상가상) ―― 옳지, 바로 이것이로구나 싶었다. 이것이야말로 바로 우리의 경우(일제 강점과 6 · 25 전쟁을 겪은 역사)에도 딱 들어맞는 이야기가 아닌가. 이대에 걸친 수난 ―― 그것은 유럽의 경우보다도 어쩌면 우리의 경우에 더 절실하게 들어맞는 이야기인 것 같았다. 이 땅과 이 겨레의 암담한 운명을 상징할 수 있는 주제였다.

구상은 곧 이루어졌다.

이대에 걸친 수난이니 곧 '수난이대' ―― 이렇게 제목부터 먼저 왔고(소설의 제목이 주제를 상징적으로 드러냄을 알 수 있음.), 아들이 6 · 25 전쟁에 당했다면, 아버지는 태평양 전쟁에 당한 것으로 해야 한다. 뻔한 노릇이다. 그리고 사실 또 그랬던 것이다.

아들이 6 · 25 전쟁에 당하고, 아버지는 태평양 전쟁에 당하고 ―― 그렇다면 이건 능히 장편 소설 감이다. 이대에 걸친 전쟁 피해담 ―― 이 거창한 놈을 어떻게 단편소설이라는 조그만 궤짝 속으로 집어넣을 것인지, 문제는 거기에 있었다(단편 소설과 장편 소설의 분량 및 구성 방법의 차이로 인한 고민). 약간 무리가 가더라도 구상을 잘하면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 같았다.

그해의 신춘문예에 응모하리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터이라 구상에 골몰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비교적 쉽게 그것을 해결할 수가 있다. '외나무다리'가 계기였다(장편 소설 감의 이야기를 단편 소설로 쓸 수 있었던 계기). 우리 고향의 냇물에는 그 무렵만 해도 외나무다리가 흔히 눈에 띄었는데, 그 외나무다리의 아슬아슬한 역할을 생각하자 번쩍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수난의 두 부자로 하여금 그 외나무다리를 건너게 해 보자는 생각이었다. 말하자면 그 아슬아슬한 외나무다리 위에 이대의 수난을 집약시키는 것이다.

그렇다면 두 부자가 다 다리가 성해서는 의미가 없다. 아무리 아슬아슬한 외나무다리라 할지라도 다리가 성하면 능히 건널 수가 있을 터이니 말이다. 어느 한쪽이 다리가 불구여서 혼자서는 외나무다리를 건널 수가 없도록 해야만 이야기가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아들 쪽을 전장에서 다리 하나가 잘려 나간 상이군인으로 설정했고, 아버지는 징용으로 남양 군도에 끌려가서 팔을 하나 잃어 버린 불구자로 설정했다.(사건의 필연성을 위한 설정)

이쯤 되니 문제는 이제 다 해결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다리를 하나 잃은 상이군인이 되어 돌아오는 아들을 팔이 하나 없는 아버지가 마중을 나가게 한다. 그리고 외나무다리에 이르자 아버지가 아들을 업고 다리 위에 오르도록 하는 것이다.(외나무다리를 힘겹게 건널 수밖에 없는 상황을 설정하여 이대의 수난을 집약적으로 드러내고 이를 통해 민족의 수난과 극복 의지라는 주제를 드러내고 있음)

그런데 잠시 망설이게 된 것은 그 다음이었다. 그렇게 외나무다리 위에 오른 두 불구 부자가 무사히 다리를 건너가게 하느냐, 아니면 중도에 냇물에 떨어지게 하느냐 하는 문제였다. 즉 결론인 셈이었다.

무사히 건너가게 하는 것도 중도에 떨어지게 하는 것도 다 일리가 있는 것 같았다. 중도에 떨어지게 하는 것은 수난을 강조하는 의미가 되어 주제를 더욱 짙게 하는 효과를 이루는 것 같았고, 무사히 건너가게 하는 것은 그런 수난 속에서도 삶에의 의지라 할까 집념이라 할까 그런 것을 잃지 않게 하는 것 같았다. 다시 말하면 떨어지게 하는 것은 절망을 상징하는 것이었고, 건너가게 하는 것은 절망의 극복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문제는 간단했다. 나는 결코 절망에 그치는 쪽을 택하고 싶지는 않았다. 절망을 디디고 넘어서려는 의지, 그 강인한 삶에의 집념 쪽을 택하고 싶었다. 이 땅과 이 겨레의 암담한 운명의 극복을 희망하고 싶었다.

그리고 또 한편 아무리 허구이기는 하지만 그 수난의 불구 부자를 다시 냇물에 밀어 넣어 버릴 수는 도저히 없는 노릇이었다.

이 결말 부분에 대해서는 신춘문예의 시상식 때 잠시 담소거리(웃고 즐기면서 이야기할 내용이 될 만한 재료)가 되었었다. 소설 부문이 아닌 다른 부문의 심사위원 한 분이 웃으시면서,

"그 두 부자가 외나무다리에서 떨어지게 했다면 더 재미있었을 텐데……."

이런 말쓰을 하셨다. 극적 효과를 앞세우는 말씀인 것 같았다.

그 말씀에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그저 속으로, '모르시는 말씀.'하고 웃기만 했었다.

* 갈래 : 수필(평론)

* 성격 : 해설적

* 주제 : '수난이대'의 집필 과정

* 특징 ① 작가가 직접 자신이 쓴 소설의 창작과정을 설명함.

          ②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 의식을 독자에게 정확하게 알려주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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