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1934)

-박태원-  

◆ 소설 읽기  

● 줄거리

구보는 동경 유학까지 하고 돌아와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글을 쓰는 사람이다. 그의 어머니는 글쟁이보다는 월급쟁이가 몇 갑절 낫다고 생각한다. 직업과 아내를 갖지 않은 스물 여섯 살짜리 아들이 외출을 하면 어머니는 온갖 종류의 근심 걱정을 하며 하루를 보낸다.

구보는 집을 나와서 천변길을 걷다가 한낮의 거리 위에서 두통을 느끼다가 왼편 귀의 기능에 스스로 의혹을 품는다. 전차 선로를 두 번 횡단하여 화신상회 백화점을 들어가다가 아이를 동반한 어떤 부부를 보고 자신은 어디에서 행복을 찾을지를 생각해 본다. 밖으로 나온 그는 동대문행 전차를 타고 가면서 자신이 고독을 지독히 싫어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작년 여름에 맛선을 본 여인이 막 전차에 오르는 것을 본다. 어머니께서 아는 집안의 딸로서 작년 여름에 맛선을 본 여자인데, 맛선 본 이후에 이 여인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을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한다. 그 여자를 아는 체 할까말까 갈등을 느끼는 사이에 그 여인은 청량리행 전차를 타기 위해 내리고 구보는 한숨을 내쉰다. 학창 시절 벗의 누이를 짝사랑했던 예전의 추억을 떠올리는데, 다른 사람과 결혼해서 생활인이 되어 버린 그 누이를 훗일에 보게 되었고, 이것을 계기로 행복이라는 것에 대해 돈과 여자와 연관지으면서 상념에 빠진다.

조선은행 앞에서 전차를 내린 그는 한 잔의 홍차를 즐기기 위해 장곡천장의 다방으로 향한다. 커피를 청해 구석진 등탁자로 가서 쉬던 그는 젊은이들을 바라보며 '욕망과 행복'에 대해 생각하다가 갑자기 '벗'이 그리워짐을 느낀다. 다방을 나와 거리를 걷다가, 취미는 없으나 아는 사람이 하는 골동품 가게에 들러보지만 주인이 없어 그냥 나온다. 여름 땡볕의 거리를 걷다가 건장한 근육질의 장년을 보고는 소년시절의 무리한 독서를 떠올리며 요즘의 게으른 독서생활을 반추해 본다. 목적없이 태평동까지 갔다가 길에서 옛친구를 만난다. 그러나 그의 초라한 행색을 보고 친구는 무색하게도 가 버린다.

구보는 고독을 느끼며 남대문을 지나 경성역으로 향한다. 경성역에서 구보는 노파, 시골 신사, 병자들, 아이 업은 아낙네, 2명의 건장한 사나이 등 다양한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그것을 기록해 본다. 삶의 활력소를 느낄 수 있을 곳이라고 생각했지만 이곳에서 대중들이 서로를 불신하는 것을 보며 더욱 큰 고독(군중 속의 고독)을 느낀다. 또한 중학시절 열등생이었던 벗이 번지르르한 차림새에 애인까지 동반한 것을 확인하고 불쾌감을 느낀다. 다방에 갔다가 다시 동행하자는 것을 뿌리친 구보는 그들이 월미도로 놀러가는 것을 보면서 거리로 나온다.

조선은행 앞으로 다시 가다가 양복점에 들러 전화를 빌려서는 시인인 벗에게 다방으로 나와달라고 전화를 한다. 다방에 앉아 친구를 기다리며 다방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는 강아지에게 관심을 보인다. 강아지에게 '캄 온' '이리 온'이라고 해도 오지 않고, 다가가서 강아지를 쓰다듬으면 '깨갱'하는 소리만 내자 괜한 초조와 분노를 느낀다. 시인이었지만 생계를 위해 사회부 기자가 된 친구가 오고, 벗은 문학에 대한 열정을 한참 쏟아내다가 구보씨의 소설에 대해 평가하고 또한 '율리시즈'를 논하기도 한다. 이러한 말을 듣는 구보는 권태로움을 느끼고, 창 밖 길가에서 나는 어린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은 그는 누가 또 죄악의 자식을 낳았느냐고 반문한다.

그는 벗과 헤어져 종로 네거리로 와서는 황혼과 황혼을 타서 거리로 나온 계집의 무리들을 보면서 그들의 발걸음이 '위태롭다'는 생각을 해본다. 주변에 친구가 하는 다료에 들린다. 주인인 벗이 없자 그는 기다리며 고독과 권태 이상의 애처로움을 느낀다. 동경 유학시절을 생각(동경 유학시절 '찻집'에서 '윤리학' 책을 주워 책주인을 찾아 주었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데이트를 하게 되었는데, 여자가 약혼남과의 문제를 말하면서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구보는 그 여자를 약혼남에게 돌려보냈다. 약혼남은 구보씨가 아는 이로 매우 성실하고 선한 사람이었다. 여자가 약혼남에게 돌아갔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가지 않은 듯했고, 그 여자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한동안 매우 자책하며 괴로워함)하다 벗이 돌아오자 거리로 나와 걷다가 잠시 뒤에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벗은 볼 일을 보러 갔다.

구보는 광화문 거리를 걸으며, 그녀와 애처롭게 이별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마음 아파하면서 자신이 위선자가 아니었는가를 생각하고, 다료를 운영하던 벗을 만나러 가는 도중에 가엾은 어느 벗의 조카 아이들을 만나게 된다. 아이들을 좋아하는 구보는 자주 찾지 못했음을 미안해 하며 '수박'을 사서 아이들에게 들려서 어머니에게 보낸다. 전보 배달 자전거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는 전보나 우편물을 받아 뜯지 않은 채로 감동에 젖고 싶은 느낌을 상상해본다.

다방에서 친구를 기다리다가 '구보'를 항상 '구포'라고 부르는 중학 선배인 생명보험의 외교원을 만난다. 구보의 독자라며 추켜 세워주는 것에 씁쓸함을 느끼다가 친구가 와서 함께 나온 그는 거리를 걸으면서 친구의 가난한 다료 운영자로서의 설움을 듣기도 하고, 애인이 갖고 싶지 않냐는 벗의 질문에 '애인, 아내, 딸'에 대해 생각해 보기도 한다.

친구와 함께 낙원정이라는 까페에 들러서는 여급들과 함께 이야기를 하다가 세상의 모든 사람을 '정신병자'로 관찰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리고 자신은 '다변증'이라고 여급들에게 말하기도 한다. 그가 속주머니에서 만년필을 꺼내 관찰한 바를 초하자 벗이 그것을 소리내어 읽는다. 그는 창밖 어둠을 응시하면서 소복입은 여인이 '여급 구함'이란 설명을 듣고 도망간 기억을 떠올리면서, 그 여인과 까페 여급을 비교하며 누가 더 행복한지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새벽 두 시의 비오는 밤길을 걸으며 늦게까지 자지 않고 기다릴 어머니를 생각하고, 어머니의 혼인 이야기가 다시 나온다면 다시는 물리치지 않기로 작정한 그는 벗에게 좋은 소설을 쓰겠다면서 헤어져서는 집으로 향한다.

● 인물의 성격

◆ 구보 → 무명작가로 무위도식하면서 서울의 이곳 저곳을 전전하는 식민지 지식인이다. 타락한 세상에서 행복을 찾기 위해 노력하다가 병적 현상까지 보이는 그는 소설 마지막 부분에서 어머니의 소망을 만족시켜 드리기 위해 결혼을 하고 소설을 써서 조그만 행복을 찾기로 작정한다.

◆ 어머니 → 무위도식하며 살아가는 자식이 동경 유학까지 하고도 일정한 직장을 잡지 못한 현상을 이해하지 못한다. 또한 그녀는 아들이 결혼해서 자식 낳고 원만하게 살아가기를 소망하는 한국의 전형적인 어머니상을 보여줌. 

● 구성 단계

이 소설은 일반적인 소설의 구성단계를 취하기 보다, 오전에 집을 나와 새벽 2시 경에 귀가하기까지의 그 여정(여로)에 의해 내용이 구성되어 있다.

< 집(외출) → 천변길 → 종로 네거리 → 화신상회 → 전차 안 → 조선은행 앞 → 다방 → 거리 → 경성역(대합실) → 조선은행 앞 → 다방 → 거리 → 술집 → 카페 → 종로 네거리 → 집(귀가) >

●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소설가 구보 씨의 매일같이 반복되는 하루의 일과를 통해, 당대의 타락한 현실에 대항하지 못하고 맹목적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한 지식인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구보씨는 시력장애, 신경쇠약, 두통, 중이질환 등의 증세를 지닌 신체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인물이며, 일정한 보수를 받는 직업도 없고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불건전한 독신자이다. 그는 늘 일상적 행복을 갈구한다. 그가 틈만 나면 외출을 하는 것은 바로 행복의 길찾기에 다름 아니다.

이 작품의 '산책'이라는 배회의 형식은 '관찰'과 '의식의 흐름'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장치이다. 관찰되고 있는 것은 당시 경성의 여러 풍물, 경성역을 중심으로 한 지게꾼, 유랑민, 시골노파, 바세도우씨 병에 걸린 노동자 등 암울한 풍경과, 다른 한편으로 종로통의 카페를 중심으로 한 휘황한 풍경을 보여주면서 근대화의 양면성을 드러내 주고 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내면 의식의 흐름이다. 그것은 여러 풍경에서 발견하고 있는 그러나 자신에게는 결여된 '일상적인 행복'과 '지식인의 고독'이 두 축을 이루고 있다.

구보의 내면세계는 단적으로 회의에 젖어 있다. 만사를 회의적으로, 상반된 의식으로 받아들인다. 그것은 자의식의 과잉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지나치게 자신을 들여다보며 스스로 고통에 빠지는 것이다. 현상적 자아와 반성적 자아의 대면에서 그 둘의 간극이 클 때 자의식의 크기는 커지고, 그로 인하여 내적 번민은 심화되는 것이다.  이 소설은 구보의 이런 심리 추이를 서술하는 심리소설인 것이다.

작품의 끝부분에 이르게 되면 번민과 방황의 긴 수렁에서 스스로 벗어나 새로운 길을 찾는 자기 극복의 모습이 구체화된다. 좀 더 빠른 걸음으로 집을 향하는 구보는 이제 새롭게 자신을 정리하고 갈 곳을 찾았다. 갈 곳을 몰라 방황하는 것에서 시작된 이 작품은, 이어 그 방황의 도정이 전개되고, 마지막에는 갈 곳을 찾는 것으로 끝나는 구조를 속으로 품은 소설이 된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 구보 씨는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친구들을 우연히 만나기도 하고, 거리를 지나다가 여러 장면과 사건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러나 그 속에는 인과적인 서사성이 전혀 없이 그때 그때 연상되는 단편들이다. 이러한 특성은 모더니즘에서 말하는 동시성이고 몽타주 기법이다. 현재와 과거, 현실과 환상이 교차되는 형식을 통해 주인공의 복합적인 내면 의식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즉 인물의 연상 작용에 따른 시선을 쫓아가며 외부 사물을 묘사하는 것이나, 현재의 시간에서 과거를 회상하고 다시 현실로 되돌아오는 장면을 통해 인물의 내면 의식을 효과적으로 묘사하였다.

◆ 소설가 구보 씨의 '고독의 의미

소설가 구보는 세속적 일상과 거리를 두기 위해 고독을 선택하고, 세계와의 화해를 거부하는 고독한 삶은 그 증후로 모든 신경 조직의 불편을 호소하기에 이른다. 소설가 구보는 정신과 육체, 모든 면에서 일상적 욕망으로 가득 찬 자본주의적 현실과 어울리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구보는 그러면서 또 한편으로 의식적 · 무의식적으로 세계와의 불편한 관계를 거부하며 화해를 꿈꾸기도 한다. 이것은 고독 때문에 억압된 욕망들이 무의식 저편에 꿈틀거리고 있는 것의 한 양상이다. 구보의 갈등은 이런 이중적인 태도를 뚫고 억압된 욕망들이 구보의 의식 속에 들어오면서 시작된다. 집을 나오면서 어머니에게 대답을 못해 드린 것을 자책하는 구조는 바로 무의식 저편에 삶에의 욕망을 꿈꾸는 고독한 소설가의 뒷모습이라 할 수 있다.

◆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

1930년대는 일제가 만주 사변을 일으키면서 우리 민족에 대한 탄압을 더욱 심하게 하던 시기로 우리 민족은 일제에 의해 우리말과 글을 사용하는 것까지 감시를 받았다.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은 당시 경성을 중심으로 형성되던 도시 문명의 영향 아래 탄생하게 된다. 그 당시의 경성은 대한 제국의 멸망과 함께 독립국의 수도로서의 통치 기능을 완전히 상실하고 일부 지역의 관리를 맡는 지방적 수도로 격하됨과 동시에 그 규모도 1/8로 축소되고 말았다. 그러나 일제가 조선을 지배하는 발판으로서의 경성의 역할이 있었기에 그들은 조선 총독부의 정책에 따라 대대적인 조선 시가지 계획령을 발표한다. 이 영에 의거 서울 시내 기간 도로들을 따라 한국인의 이익과는 상관없이 공간의 재조직이 이루어지게 된다. 그러한 탓에 우리 민족의 일반적인 생활 방식에 맞지 않는 도시 계획은 기존의 농경생활이 갖는 연대감과 상호 협력적인 관계가 쉽게 단절되고 개인주의가 만연하는 병폐를 가져오게 되었다. 이뿐만 아니라 도시의 구성원 개개인 간에 불신의 감정이 스며들어 서로 간의 고독과 소외 현상이 일어나고, 이러한 문명을 누릴 수 있는 계층에 비해 누리지 못하는 계층이 느끼는 상대적인 빈곤감과 이로 인한 타락의 양상이 더욱 두드러지게 된다. 이러한 도시는 이제까지와는 다른 생활 양상을 보여 줌으로써 도시를 공간적 배경으로 하는 소설들을 낳기도 했다. 이들 소설들은 가난, 범죄, 쾌락과 매춘, 개인주의로 치닫는 인간관계, 그로 인한 고독 등을 다룸으로써 당시 식민지 사회가 가지는 모순의 축소판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였다. 그중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은 지식인 인텔리 소설가가 소설의 소재를 찾아 경성을 배회하는 하루를 적은 소설로, 그 당시 경성의 문물과 세태가 카메라에 담긴 장면처럼 다양하고 생생하게 나타나 있다.

-김명숙,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을 통한 소설 쓰기의 의미 연구', 경희대학교 석사논문, 2000

● 핵심사항 정리

◆ 갈래 : 중편소설, 심리소설, 세태소설, 모더니즘 소설, 사색적 · 자전적 성격의 소설

◆ 배경 : 1930년대 타락한 식민지 시대 서울(남대문, 경성역, 종로…)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실질적으론 1인칭 주인공 시점이나 다름없다.)

◆ 표현상 특징

* 1일 동안의 여로 형식을 취함(원점 회귀의 여로 구조)

* 전통적인 서사 구조(플롯 중심)는 약화되고, 과거에 대한 회상이나 의식의 흐름에 따른 회상의 구조가 강화되어 있음.

* 무기력한 지식인의 일상 묘사

* 심리 묘사와 관찰의 조화(의식의 흐름)

* 만연체 문장

* 모더니즘 기법의 응용(외출(산책)의 모티프, 몽타주와 오버랩 기법)

◆ 갈등 구조 : 뚜렷한 사건을 가지지 않으며 인물들도 구보와 구보 이외의 관찰 대상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갈등 구조가 뚜렷하게 나타나 있지는 않다. 그러나 여기에서 가장 큰 갈등의 축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은 소설가와 생활인, 곧 '예술과 생활의 대립'이다. 구보가 직업을 가지고 생활인이 되기를 바라는 어머니, 황금을 좇는 친구들, 이 모두가 구보에게는 갈등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그는 이들과 달리 생활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끊임없이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해 자문한다. 이러한 내면의 갈등은 결국 생활과 창작을 함께 해 나가겠다는 결심으로 끝을 맺는다.

◆ 출전 : 조선중앙일보(1934. 08. 01. ~ 09. 19.)에 연재됨.

◆ 주제

* 일상성의 회복을 꿈꾸는 지식인의 고독

* 1930년대 무기력한 한 소설가의 눈에 비친 일상과 세태

* 식민지 현실에 살아가는 무기력한 소설가의 일상사와 자의식

● 생각해 볼 문제

1. 작가가 그리려고 한 세계는 결국 무엇이었는지 말해 보자.

⇒ 지식인 소설가의 내적 방황과 그것의 극복 태도

2. 이 작품의 형식상 두드러진 특징을 찾고 그것의 효과를 말해 보자.

⇒ 장, 절 구분을 함에 있어 소제목을 달아주고, 긴 문장에 적절한 쉼표를 부여하여 문법성을 가지게 함과 동시에 장면의 전환, 사건의 전이를 꾀한다. 그리고 특이한 시점 선택을 통해서 내면의식을 표출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3. 구보는 어떤 대상을 파악할 때 일정한 패턴의 의식을 보인다. 그 점을 말해 보자.

⇒ 구보는 한 가지 사태에서 양면을 보고 상반된 판단을 내린다. 예컨대 행복하다고 생각하다 행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깨닫는 진실은 없다. 그저 그런 회의에 빠질 뿐이다. 이런 것은 모든 사태에 똑같이 일어나고 있다. 구보의 사고는 이런 단순한 패턴에 의한 것이다.

4. 구보가 방황을 끝내고 귀가하게 되는 것은, 구보가 무엇을 발견했기 때문인가?

⇒ 많은 사람들이 자신처럼 피로와 슬픈 기다림에 시달리고 있음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즉 삶의 진실이란 애환과 연민의 그것으로 구체화되어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에 자신도 자신을 긍정하는 것이다.

● 교과서 활동 다지기

1. 주인공이 관찰하는 대상은 무엇이며, 주인공은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말해 보자.

공간

관찰대상

느낀 점

남대문~경성역

서너 명의 지게꾼

기운 없어 보인다. 처량해 보인다 등.

대합실

노파, 시골 신사, 노동자 등.

노파는 가난하고 불쌍하며 시골 신사는 노파에게 우월감을 느끼는 속물이다. 노동자는 분명 바세도우씨병을 앓고 있을 것이다 등.

끽다점

중학교 동창과 그의 애인

자신의 물질적 부를 과시하는 속물형 인간도 연애를 하는 시대가 왔다는 사실이 씁쓸하다 등.

 

2. 다음 활동을 통해 이 소설의 시점과 서술상 특징을 파악해 보자.

(1) 소설의 시점을 4가지로 나누어 설명해 보자.

* 1인칭 주인공 시점 → 서술자가 '나'이며 주로 자신의 이야기를 서술해 나간다.

* 1인칭 관찰자 시점 → 작품 안의 서술자 '나'가 주로 다른 중심인물의 이야기를 서술해 나간다.

* 3인칭 작가 관찰자 시점 → 작품 밖의 서술자가 관찰자의 위치에서 눈에 보이는 사실만을 관찰하고 진술한다.

*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 → 서술자는 작품 속에 직접 드러나지 않으며, 등장인물의 행동뿐만 아니라 내면 심리까지 모두 알고 있는 전지적인 존재이다.

 

(2) 작가가 다음과 같은 서술 방식을 선택한 이유를 생각해 보자.

일반적으로 3인칭 시점으로 소설을 전개하는 경우 인물의 말과 서술자의 말은 확연하게 구분된다. 그러나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은 3인칭 서술자가 이야기를 전달하지만 그의 말은 구보의 말과 구분하기가 애매하다. 그런 이유로 소설 속에서 구보를 지칭하는 말을 모두 '나'로 바꾸어도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읽힌다.

→ 이 작품은 전지적 작가 시점을 택하면서도 주로 구보의 입장에서 서술함으로써 구보의 내면을 충실히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서술 방식은 인물의 내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소설의 주제 의식과 잘 맞아 떨어진다. 한편 1인칭 시점의 경우 인물의 시선에 한정되어 외부 세계에 대한 서술이 제한적일 수 있다는 한계가 있는데, 이 작품은 3인칭 서술자의 입장에서 대상과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고 객관적으로 서술함으로써 구보와 구보를 둘러싼 외부 세계에 대한 이해를 더욱 깊이 있게 하고 있다.

 

(3) 이 소설에 드러난 또 다른 서술 방법을 찾아 보자.

이 소설은 인물의 의식 세계에 대해 서술할 때 인과적 관계보다 우연히 부딪히게 되는 단편적 사실로 촉발된 인물의 사유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심리 소설적 특징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3. 구보가 오늘날의 서울 거리를 걷는다고 상상해 보고, 다음 활동을 해 보자.

(1) 남대문과 서울역 근처를 배회하면서 구보가 어떤 생각을 할지 말해 보자.

→ 예전 서울역과 마주하여 휘황찬란한 건물의 KTX 역이 서 있는 모습이 다소 부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외래어로 된 간판들이 너무 많아 혼란스럽다 등.

 

(2) 소설의 시점 중 하나를  선택하여 '21세기 소설가 구보 씨의 하루'를 써 보자.

이(1인칭 주인공 시점) 나는 아침 일찍 눈을 떴다. 전화기의 알람 소리가 계속 울려 댄다. 도대체 언제 취직할 거냐는 엄마의 잔소리를 뒤로 하고, 노트북 한 대와 전화기만 들고 길을 나선다. 동네 골목을 돌아 나오자 새로 생긴 커피숍이 보인다. 투명 유리창 안으로 한가롭게 수다를 떨고 있는 일군의 사람들이 보인다. 카페를 지나쳐 버스 정류장으로 간다. 버스 정류장 위 전광판에는 747 버스 번호가 반짝거린다. 1분 안에 도착할 버스. 나는 그 버스가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다. 명동을 거쳐 서울역을 지나 용산을 지나가는 버스. 아마도 나는 그 버스를 타게 될 것이다.

● 더 읽을거리

'고현학(考現學)'의 방법론

박태원은 자신의 창작 방법을 '고현학'이라 이름 붙였다. 고현학이란 현대인의 생활을 조직적으로 조사, 연구하여 현대의 풍속을 분석 해설하는 학문을 일컫는데, 박태원이 자기가 쓰는 소설을 고현학이라고 했다면, 응당 거기에는 합당한 방법론이 있을 것이다.

그의 작품에서 고현학은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하나는 공적인 인간의 사생활을 소설화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소설작법을 겉으로 직접 드러내는 것이다. 전자는 이 작품이 이상과 김기림이라는 실제 인물의 사생활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후자는 대학 노트를 끼고 경성을 배회하면서 관찰 기록하고 있음을 작품상으로 드러내고 있음에서 확인된다.

'고현학'은 고고학과 대립되는 개념이다. 1920년대 일본의 곤와지로 박사가 제창한 '고현학'은 변동이 극심한 현대의 풍속 세태를 조사 · 기록하고 분석하여 장래의 발전을 위한 자료를 제공하는 학문이다. 박태원은 자신의 창작 방법을 '고현학'이라 이름 붙이고, 인간의 사생활을 조새로 하여 소설 작품을 쓰거나 소설 작법을 겉으로 직접 드러내는 것을 그 방법론으로 하였다.

이 '고현학'의 방식에서는 어떠한 현실에 대해서도 장담하거나 단정짓지 않으며 결론은 항상 유보된다. 이미 모든 현실 속의 문제에 대하여 신념을 잃어 버린 사회의 허무적 냄새가 깊이 배어 있는 것이다.

 몽타주 기법

몽타주를 흔히 범죄자 인상을 그린 것으로도 많이 알고 있습니다. 몽타주란 말은 프랑스어로 '조립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 면에서 피해자들의 진술로 범인의 얼굴을 조립하는 것도 몽타주라고 하는 것입니다.그렇다면 이 논리를 적용시켜보면 영화는 촬영되는 것이 아니라 조립되는 것, 다시 말해서 원래 따로따로 촬영된 필름의 단편을 창조적으로 접합해서 현실과는 다른 영화적 시간과 영화적 공간을 만들어 거기에 새로운 현실을 구축하여 시각적 리듬과 심리적 감동을 자아내게 하는 데서 영화의 예술성이 성립된다고 보고 그 방법을 명확하게 하려는 이론이 몽타주이론입니다. 그럼 몽타주 기법이란, A장면 뒤에 B장면이 배치됨으로써 보다 함축적인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는 데서 출발하는 것인데, 이런 기법이 도입되면 관객들은 단순히 수동적으로 감독이 전달하는 메시지를 받아들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장면과 장면의 관계 속에 숨겨진 의미를 발견하는 보다 능동적인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영화에서 몽타주 기법의 도입은 가히 혁명적인 사건인 것입니다. 몽타주 체계로부터 소외 효과의 원칙으로 발전되었는데, 이것은 낯선 맥락에 사물이나 인물들을 배치함으로써서 관객을 소외시켜 이미지의 의미를 관객이 곰곰이 생각하게 만드는 효과를 말합니다.

 모더니즘 기법과 실험 정신

이 작품은 인물의 시각에서 서술을 전개시키고 있는 서술자가 인물과의 거리를 조정해 감으로써 일인칭과 삼인칭, 주관과 객관이 공존하는 서술상의 특징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 소설이 다양한 현실 세계를 수렴하면서도 구보의 내면 의식을 통한 객관화를 견지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서술 특성에서 비롯된다. 모더니즘 문학으로서의 또 다른 특질 중의 하나는 언어에 대한 새로운 자각이다. 박태원의 언어에 대한 새로운 인식은 소설 언어에 대한 본격적인 탐구라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이 작품은 뚜렷한 플롯이 없는 대신 인물의 내면 의식에 의한 구성 방식에 의해, 지각하고 사유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특징을 보인다. 또한 관념화된 문체, 문체적 장치인 쉼표와 연결 어미, 그리고 추측과 가정의 문장 등을 통해 의식의 추이를 드러내고 있다.

-오상석,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연구', 단국대학교 석사논문, 2002

 황금광 시대

황금광 시대. 이 말은 애초 찰리 채플린이 제작, 감독, 각본, 주연, 1인 4역을 맡은 영화 "The Gold Rush(1925)'의 번안 제목으로 만들어진 고유 명사였지만, 1930년대 이후에는 한 시대를 대변하는 보통 명사로 폭넓게 사용되었다. 1930년대에 한반도를 엄습한 금광 열풍은 특정한 사람들, 특정한 지역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었고, 삼천리 방방곡곡이 금광꾼들의 삽질에 성한 곳이 없을 만큼 전국적이고 전국민적이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한반도의 금광 열풍은 무슨 이유에서 그토록 거세게 불어닥쳤던 것일까? 그것은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의 위기와 균열이 만들어 낸 해프닝이었다. 그 당시 조선 총독부가 체제의 사활을 걸고 식민지 조선의 금광 개발에 매진한 것은 당시 통화 제도의 근간이었던 금본위제의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함이었다. 금본위제하에서 금은 국내 화폐이기 이전에 국제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유일한 외화였다. 일본 정부는 통화 가치의 안정을 위해 엄청난 양의 금이 필요했는데, 당시 자본주의 열강들은 금(외환)의 보호를 위해 금 수출을 막고 있었기 때문에 필요한 금을 스스로 조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현실적 필요성에서 조선 총독부는 법규를 정비하고, 엄청난 예산을 쏟아 부어 식민지 조선의 금광 개발에 사력을 다하게 된다. 그 결과 1931년 금광업은 100%에 가까운 성장률을 보인다. 그리고 매년 50% 이상씩 초고속으로 성장하는 전도유망한 산업이었다. 그 당시 조선 총독부 광무과의 공무원들은 연일 계속되는 금광 관련 업무로 야근을 밥 먹듯이 하면서도, 업무 처리가 늦다는 민원인들의 질책과 원성에 시달려야 할 정도였다는 사실만 봐도 그 열기를 짐작할 수 있다. 1939년 한반도에서 생산된 금은 31톤이었는데, 식민지 조선 덕택에 그해 일본은 남아프리카 공화국, 미국, 소련, 호주에 이어 세계 5대 금 생산 국가가 되었다.

-전봉관, "황금광 시대-출판사 서평", 살림, 2005

 작자 후기 - 안 하여도 좋은 말들

차라리, 나는, 이 조그만 작품집의 이름을 '딱한 사람들'이라 하는 것이 옳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이 책자 속에, 같은 이름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기 때문이 아니다. 실로, 이곳에 모은 모든 작품이, 하나의 예외도 없이, '딱한 사람들'의 기록인 까닭이다. 지극히 우열(愚劣)하였던 한 시절, 나는 진심으로 즐겨, 한 편, 한 편이 '딱한 사람들'의 기록을 초(草)하였었다.   <중략>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을 발표하였던 인연으로 하여, 이래 십여 년, '구보'가 나의 아호 행세를 하고 있다는 것을 여기서 밝힌다. 지금도 '구(仇)' 자를 불쾌히 생각하여 '구보(仇甫)'로 대하려는 이가 있거니와, 내 자신도 결코 이 아호 아닌 아호에 조금이나 애착을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당자의 의사나 감정은 털끝만치도 존중할 줄 모르는 문우제군이, 기어코 일을 그렇게 꾸며 버리고 만 것이다. 이제부터 나는 단연 '구보(丘甫)'인 것을 선언한다.

-박태원,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깊은샘,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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