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편제(1976)

-이청준-  

◆ 소설 읽기  

● 줄거리

전라도 보성땅 소릿재 주막의 주인은 남도소리 솜씨가 예사롭지 않은 소리꾼 여인이다. 어느 날 이 주막에 북장단을 치는 사내가 소릿재 여인 이야기를 듣고 손님으로 찾아든다. 손님의 재촉에 의해 소리를 뽑아대는 그 여인은, 춘향가, 수궁가 등을 열창하면서 소리에 빠져든다 그리고 그 여인은 자기보다 앞서 소리를 하다가 죽은 소리꾼 아비의 사연을 하나씩 하나씩 털어놓는다.

어느 해 가을, 소리를 하는 쉰 살이 넘은 아비와 열다섯 정도의 어린 딸아이가 이곳에 이주하여 소리를 하며 살았는데, 소리꾼 아비는 병들어 죽는다. 그 소리꾼 아비의 소리는 어린 딸에게 전승되었는데, 그 딸의 소리를 들은 마을 사람들은 소리꾼 아비의 소리를 듣는 것 같다고 했다. 주막집 여인은 그 딸한테서 다시 소리를 이어받았다는 것이다.

한편 이야기의 진행은 애당초 소릿재 주막으로 돌아간다. 그 주막에 들른 손님이 소리꾼 아비의 의붓아들이고, 어린 딸 역시 의붓동생임이 밝혀진다. 그런데 친어미를 소리꾼 아비가 죽였다고 오인하는 데서 그 의붓아들의 증오감이 싹튼다. 사실 친어미는 딸을 낳다가 심한 복통 끝에 죽은 것이다. 그 사실을 모르는 그는 어미의 원수를 갚기 위해 의붓아비와 그 소리를 죽이고자 하는 살의를 갖게 된다. 그것은 언제나 뜨겁게 이글거리는 햇덩어리로 상징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살의는 현실적으로 무력하게 되어, 그 자신은 끝내 의붓아비한테서 떠나고 만다. 그가 떠난 후, 의붓아비는 딸의 눈을 멀게 한다. 그런데 딸의 눈을 멀게 한 것은 좋은 소리를 가꾸기 위해 가슴에 말 못할 한을 심어 줘야 했을 거라는 보다 큰 가능성을 암시하며 소설은 끝을 맺는다.

● 인물의 성격

◆ 여인 → 서른살 쯤 된 소릿재 주막의 여인.  혼자서 주막을 지키고 살아가는 소리꾼 여인이며 정적인 인물이다.

◆ 사내 → 소릿재 주막에 들러 북장단을 치는 손님.  원래 소리꾼 아비의 의붓아들이며 어린 딸은 그의 의붓동생이다. 어미의 원수를 갚기 위해 의붓 아비를 떠난 동적 인물임.

◆ 아비 → 쉰 살이 넘은 소리꾼이며 어린 딸에게 소리를 전승하고 병들어 죽은 정적 인물임.

◆ 딸 → 열다섯 살 정도의 계집아이로, 그의 실명이 비극의 정점을 이루는데 원한과 한이라는 두 가지 세계를 대비적으로 나타내 준 정적 인물임.

● 이해와 감상

<서편제>는 기구한 운명을 타고난 소리꾼 남매의 가슴 아픈 한과 여기에서 피어나는 소리의 예술을 그린 작품이다. 일정한 직업없이 떠돌이 하는 소리꾼과 그의 딸의 이야기에서 소리에만 미쳐 살아가는 소리꾼이 그 딸 또한 소리장이로 만들기 위해 딸이 잠자는 사이 두 눈에 청강수를 넣어 두 눈을 멀게 한다. 이렇게 하면 눈으로 뻗칠 사람의 영기가 귀와 목청으로 옮겨가 소리가 비상해진다는 것이다. 즉 좋은 소리를 위해 딸의 눈을 멀게 한 것이다. 이 작품은 소리꾼 아비의 죽음과 그 딸의 실명이 비극의 정점을 이루는데, 실명의 원인에서 야기되는 두 가지 대비적 관계는 '원한'과 '한'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그 딸이 아비를 용서함으로써 원한은 한으로 승화된다. 이러한 한(恨)에 대한 의식은 소리와 어우러져 작품 <서편제> 특유의 분위기를 연출해내며, 주제에 직결되는 요소가 되고 있다.

<서편제>는 작가 이청준이 즐겨 다룬 전통적 장인(匠人)의 토속적 애정에 관심을 가진 소설이다. 장인들이란 오늘날 같은 사회에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개념으로, 가부장적 질서에 의해 움직이는 규범 사회의 산물이었다. 이를 테면 <매잡이>에서 '매잡이', <줄>에서의 '줄광대', 그리고 <서편제>에서 '판소리 속에 사는 소리꾼' 등이 그들이다. 이러한 작품들에서 이청준은 문명 속에서 사라져가는 전통적인 우리 것에 대한 애정어린 향수와 수호의식을 바탕으로 삶의 다양한 탐구를 시도하고 있다.

<서편제>는 1993년 영화로 제작되어 제31회 대종상 시상식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 한국 영화사상 관람객 100만이 넘는 미증유의 흥행 기록을 세움으로써 '서편제'와 판소리에 대한 관심을 한층 고조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작가 이청준은 1970년대 폭력과 억압으로 표상되는 세계에서 인간이 인간으로서 총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잃어 버린 말을 찾는' 집요한 탐구를 시도했다. 그리하여 그의 소설 속에서 직접 말과 소리로 전하는 것이야말로 주제에 접근시키기 위한 작가의 독특한 문학 세계라 할 수 있다.

'서편제'는 판소리 유파의 하나로, 지리산을 중심으로 서쪽을 서편제, 동쪽을 동편제라고 한다. 서편제는 주로 광주, 나주, 보성, 강진, 해남 등지에서 성행하였으며, 부드러우면서도 애절하고 기교가 세련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여리고 애절한 느낌의 계면조 가락으로 박자, 소리의 높낮이, 장단이 멋스럽다.

이 작품의 속편은 <소리의 빛>이다. 연작소설집 『남도사람』에 수록된 <서편제>와 <소리의 빛>에 공통으로 등장하는 것은 '햇덩이'다. '햇덩이'는 희망적, 긍정적 표상이라기보다 더 이상 억누를 수 없는 한의 표출과 같은 뜨거운 이미지로 나타난다. 이처럼 소리의 빛을 햇덩이에 연관시키고 있는 것은, 소리란 것이 바로 도덕적 인습적인 한의 표출이며, 서러움과 원한에서 승화된 한의 표출이기 때문이다.

● 핵심사항 정리

◆ 갈래 : 단편소설, 액자소설, 연작소설

◆ 성격 : 회상적, 예술적 서정적

◆ 배경

* 시간적 → 1950년대 말 ~ 1970년대

* 공간적 → 판소리의 풍속을 이어가는 전라도 보성땅 한적한 소릿재 주막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구성 : 복합적 액자 소설적 구성

◆ 주제 인간으로서 더 이상 억누를 수 없는 한의 표출과 그 승화

◆ 출전 : 『뿌리깊은 나무』2호(1976. 4.)

● 생각해 볼 문제

1. 판소리 가운데 '서편제'의 개념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보자.

2. 이 작품에 나타난 '딸의 실명'은 궁극적으로 무엇을 상징하는가?  주제와 연관시켜 토론해 보자

3. 오늘날 진정한 의미의 장인 정신이란 어떤 것인지 이야기해 보자.

● 더 읽을거리

◆ 액자 소설로서의 '서편제'

'서편제'는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에 벌어진 사건들을 회상하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 발단(바깥 이야기, 현재) : 사내가 소릿재의 한 주막 여인에게 소릿재의 내력을 물음.

* 전개(안 이야기, 과거) : 주막 여인의 회상1 - 소리꾼 사내와 계집 아이의 사연을 들려줌.

* 위기(안 이야기, 과거) : 사내의 회상 - 어머니와 소리꾼에 대한 기억을 회상함.

* 절정(안 이야기, 과거) : 주막 여인의 회상2 - 계집아이가 장님이 된 사연을 들려줌.

* 결말(바깥 이야기, 현재) : 계집아이의 오라비임이 밝혀진 사내가 누이동생을 찾고 싶다는 소망을 전함.

 

◆ '서편제'의 구성상의 특징 / 여로형 구조

이 작품은 여로형 구조를 취하고 있다. 여로는 '여행길'을 의미하므로, 여로형 작품 구조는 등장 인물의 여행길을 중심으로 사건이나 내용이 전개되는 것이다. 소리꾼 사내의 의붓아들이 가출한 이후 소리를 찾는 여행길을 끊임없이 계속해 오다 이 소릿재 주막에까지 이르게 된 것임을 생각해 보면 된다. 그런데 그 여행은 회귀의 과정이 보이지 않고 끝없이 떠도는 여행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모두 이곳 저곳 방랑하며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는 모습은 끝없이 떠도는 여행의 성격을 보여 준다.

한편 이 글에 등장하는 사내는 의붓여동생을 찾아 헤매는데 그의 여행은 표면적으로 여동생을 찾아다니는 과정으로 보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소리를 찾아다니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사내가 찾는 소리 역시 무한히 떠도는 성격을 지니고 있는데 소리는 세상을 떠돌면서 덧없고 허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한을 풀어 주고 달래는 역할을 한다. 이렇게 볼 때, 사내의 여로는 용서와 사랑을 찾아 떠도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 '서편제'의 주제의식

이 소설에서 소리꾼 노인은 딸의 눈을 멀게 하여 끝내 득음의 경지에 이르게 한다. 우리의 전통 문화를 고수하기 위해 피눈물 나는 노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삶의 가치를 물질적인 충족을 누리는 데서 찾기보다는 예술을 위해, 자신의 이상을 위해 살아가는 가운데서 찾고 있는 이 작품은 한을 초월하여 집념을 승화시킨 고귀한 예술인의 정신을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그의 다른 작품들('줄', '매잡이' 등)에서도 그렇듯이, 이 작품에서도 우리의 전통을 계승하고 그 정신을 형상화시키는 데에 주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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