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평역(1983)

-임철우-  

◆ 소설 읽기  

● 줄거리

역장은 30분이 지나도 오지 않는 막차를 기다리며 대합실을 둘러본다. 대합실에는 모두 다섯 명이 기다리고 있다. 농부는 눈 오는 날에 병원에 가자는 아버지에게 짜증이 나다가도 죄스러운 마음이 든다. 중년의 사내는 감방에 있었던 허 씨가 생각난다. 청년은 얼마 전 학교에서 제적 처분을 받았다. 서울말을 하는 뚱뚱한 중년 여자와 화장이 짙은 처녀, 행상을 하는 아낙네 둘이 대합실로 들어왔다. 중년의 사내는 허 씨의 부탁으로 그의 칠순 노모를 찾으러 왔으나 이미 죽은 지 5년이 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뿐이었다. 청년은 집안의 희망이어서 부모와 형제들 앞에서 퇴학당했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춘심이는 청년을 보면서 대학생이란 존재를 부러워한다. 서울에서 음식점을 하는 중년 여자는 주방에서 일하다 없어진 사평댁을 찾으러 왔는데, 사평댁은 남편이 죽어 아이들이 거지 신세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내려왔다고 했다. 중년 여자는 오히려 지니고 있던 돈을 다 주고 온 길이었다. 결국 열차는 두 시간이 지나서야 도착했다.

대합실에 있던 승객들은 반가움보다는 차라리 피곤함과 허탈감에 젖은 모습으로 열차에 올라탔다. 역장은 열차가 출발할 때 아직 들어가지 않고 열차 난간에 위태로운 자세로 기대어 서 있는 오 씨 아들을 보았다. 역 안에는 미친 여자가 난로 옆에서 자고 있었고, 역장은 톱밥을 더 가져다가 난로에 부어 주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사무실로 돌아가고 있었다.

● 인물의 성격

특별한 주인공이 없이 여러 명의 인물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 소설에는 여러 인물들이 등장한다. 미친 여자, 대학생, 노인과 농부, 춘심이라는 술집 여자와 서울 여자, 그리고 대합실을 관리하는 역장 등이다. 이들의 성격은 분명하게 제시되지 않으며 단지 평면적으로 서술될 뿐이다. 중년 사내는 삶이란 감옥과 같은 폐쇄된 공간에서 언제 올 리 모를 희망을 기다리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농부는 일하고 근심하다가 늙고 병들어 죽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서울 여자에게 삶이란 돈이며, 춘심이는 삶에 대해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대학생에게 삶은 세상과 구별할 수 없는 무엇이지만, 그러한 신념도 혼란을 겪고 있다. 행상꾼 아낙네들은 삶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는 것조차 사치일 뿐이다. 작자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모아 놓고, 엄습하는 추위 속에서 자신들의 삶이 주는 의미를 반추해 보는 시간을 그리고 있다.

 

늙은 역장 : 작은 대합실을 지키며 오고 가는 사람들을 따뜻한 눈길로 바라봄.

중년 사내 : 며칠 전 출감하여 무기수인 사상범 허씨의 부탁으로 그의 고향 마을을 찾아온다. 하지만 허씨의 노모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돌아가는 길이다.

30대 중반의 농부와 그의 병든(해소병) 아버지 : 이 시골 마을의 농부 부자는 아버지의 병환이 심해져 병원을 찾아 나선 길이다.

대학에서 제적당한 학생 : 시골 마을에서 많은 기대를 받으며 도시의 대학생이 되었지만 시국 사건으로 인해 대학에서 제적당한다. 고향으로 내려왔지만 차마 부모님께 제적당했다는 말을 못하고 기차를 타려 한다.

몸집이 큰 중년 여자 : 서울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데 자신의 식당에서 일을 하다 돈을 훔쳐 달아난 종업원을 잡으러 이 마을까지 왔다. 그러나 너무나 딱한 형편에 돈을 받기는커녕 자신이 갖고 있던 돈까지 다 털어주고 돌아가고 있다.

바바리를 입은 여자 : 서울 신촌에서 술집 여자 춘심이로 통하는 인물이다. 모처럼 휴가를 받아 고향 마을에 선물을 사가지고 내려와서 환영을 받다가 다시 서울로 돌아가는 길이다.

두 명의 행상 아낙네 : 시골 마을을 돌아다니며 옷가지나 해산물류를 팔고 있다.

미친 여자 : 대합실 의자에 웅크리고 있다. 기차가 와도 타지 않고 추운 대합실을 지키고 있다.

● 구성 단계

◆ 발단 : 간이역 대합실의 풍경 → 눈이 내리는 간이역 대합실과 역장이 바라보는 승객들의 모습이 소개되고, 완행열차를 타려는 사람들이 하나 둘 대합실 난로 곁으로 모여듦.

◆ 전개 : 다양한 삶의 모습 → 평생의 농사 일 끝에 병을 얻은 아버지와 그를 병원에 모시고 가는 농부, 시골의 가난한 농가 출신으로 데모를 주동하다가 제적당한 대학생, 십이 년 동안 수감생활을 하다가 출소한 사내, 돈을 떼먹고 달아난 여자를 찾아온 서울 여자, 가난한 시골집에 삼 년만에 다녀가는 술집 여자 춘심이, 아이들을 집에 남겨두고 행상을 다니는 아낙네들

◆ 절정 : 대합실 안의 분위기 → 그들은 각자의 인생을 회상하며, 대합실 안에는 평화롭고 아늑한 분위기가 흐름.

◆ 결말 : 승객들은 두 시간 늦게 도착한 완행 열차를 타고 각자의 삶의 자리로 흩어짐.

● 이해와 감상

 이 소설은 곽재구의 시 '사평역에서'를 읽은 작자가 그 시를 토대로 하여 쓴 작품이다. 사평역에서 막차를 기다리는 인물은 해소병자인 노인과 그의 아들인 농부, 12년 만에 감옥에서 출감한 중년 사내, 데모로 제적당한 청년과 대합실 의자에 누워 있는 미친 여자, 대학가에서 술집 작부로 있는 춘심이와 해산물과 옷 행상을 하는 아낙네 둘 등, 저마다 아픔과 상처를 안고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인물들로, 그러한 인물들의 어둡고 우울한 삶의 양상들은 하얗게 쏟아지는 눈발과 함께 이 소설의 암울한 배경을 잘 형상화하고 있다. 언제 올지 모를 막차를 기다린다는 설정 역시 인물들의 허무한 인생살이를 드러내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인물을 설명하는 방식은 객관적인 묘사와 작자의 주관적인 설명이 함께 어우러진다. 이 소설은 동일한 제재의 시와 비교해 보기에 좋다.

이 소설에서의 기차역은 이중의 의미를 띤다. 즉, 어디론가 가기 위한 역이지만 동시에 그것은 사람들마다 지나쳐 온 과거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장소인 것이다. 이 작고 퇴락한 역을 덮치는 추위 속에서 웅크리며 옹송그리는 사람들에게 고향으로 가기 위한 막차는 편안한 휴식을 위한 마지막 바람과도 같은 것이다. 밤이 깊어가면서 기다림은 지쳐간다. 사람들은 저마다 과거의 삶에 대한 회한에 젖어든다. 각자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은 난로의 불꽃과 창 밖에 내리는 눈으로 인해 깊은 내면성을 얻는다. 이 고단한 삶들을 위해 이들은 작은 불꽃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은 이 가난함을 위로하는 듯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이 소설의 마지막에서 기차는 이들에게 너무 늦게 온다.

이 작품은 곽재구의 시 <사평역에서>와 동일한 공간에 여러 인물들을 등장시키고 있다. 기다려도 오지 않는 막차를 기다리고 있는 이들의 모습은 어둡고 우울하기 짝이 없다. 이 시골 간이역에 모여든 인물들은 1970, 80년대 우리 나라의 산업화, 민주화의 과정에서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인물들의 우울한 삶의 양상들은 하얀 눈발과 함께 소설의 암울한 배경을 잘 형상화하고 있다. 원작인 시가 그렇듯이 소설에서도 독자로 하여금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하게 한다. 시에서 여백으로 남아 있는 부분은 소설적 상상력을 통해 적절히 채워 넣고 있으며, 소설에서는 간이역을 즐겨 이용하는 서민들의 삶을 따뜻한 시선으로 감싸 안아 준다. 시 원문의 서정성을 훼손시키지 않은 채 풍부한 서사성을 가미한 소설이다.

● 핵심사항 정리

◆ 갈래 : 단편소설, 현실 반영적 소설

◆ 성격 : 서정적, 회상적, 성찰적, 현실적

◆ 배경

* 시간적 - 산업화가 이루어지던 시기(1970년대부터 1980년대의 어느 시기)

* 공간적 - 눈 내리는 어느 시골 간이역(사평역)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구성 : 액자식 구성(이 소설은 일종의 액자식 구성을 지닌다. 소설의 사건은 비교적 간단하다. 그것은 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며 불을 쬐던 사람들이 역사 안팎의 사물들에 관심을 두다가 기차가 도착하자 그 기차를 타고 떠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간단한 서사적 사건 속에 등장인물들의 회상이 중첩되어 나타난다. 그들의 회상 속에서 과정의 일들이 이야기된다.)

◆ 표현상 특징

* 중심 인물을 따로 설정하지 않고 인물군을 통해 내면 풍경 제시

* 각 인물들의 시선과 회상을 통해 인물의 형상 제시

* 시에 서사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서사적으로 구성함.

* 시골 간이역이라는 배경이 분위기와 주제 암시

◆ 소재의 상징성

* '사평역(간이역)'은 인물들이 과거를 회상하고 연대의식을 갖는 장소임.

* '톱밥 난로'는 과거를 회상하고 성찰하는 매개체이자 평화와 위안을 주는 도구임.

* '기차(막차)'는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기다리는 대상으로, '삶의 행복'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가진다. 이 기차는 쉽게 도착하지 않는데, 이것은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행복은 쉽게 오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 출전 : '아버지의 땅'(1984)

◆ 주제

* 서민들의 가난한 삶의 애환과 교감

* 서로 다른 삶을 찾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서 본 산업화 시대의 다양한 현실

* 산업화 시대의 다양한 인간 군상과 삶의 현실, 그리고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삶과 회한

● 생각해 볼 문제

1. 이 작품의 등장 인물은 춘심이를 빼고는 모두 이름이 붙여져 있지 않다. 이러한 무명(無名)의 호칭이 거두는 효과가 무엇인지 이야기해 보자.

⇒ 이 작품은 다른 소설들과는 달리 특별히 주인공이라 할 인물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등장하는 10여 명의 인물이 모두 대등한 비중으로 서술되고 있다. 그리고 그 인물들은 직업이나 삶의 이력에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인물들의 모습을 전형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즉 이름 없는 가난한 인물들, 사회의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소외된 인간들, 상처받은 인간들의 전형을 보여 주고 있다. 따라서 특별한 명명이 필요없이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낙, 뚱뚱이 여자, 청년, 중년 남자 등으로 호칭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무명의 호칭은 인물의 개성보다는 전형성을 두드러지게 나타내는 데 기여하고 있다.

 

2. 이 작품에서 작가가 미친 여자를 등장시킨 의도는 무엇인가?

⇒ 삶이란 모두들 일정한 지향 아래 결국 어디론가 가는 여정이라고 한다면, 미친 여자에게는 어딘가를 향해서 떠나는 것조차 의미가 없는 것이다. 역이란 공간은 새로운 곳으로 출발하기 위하여 잠시 머무는 곳이지만, 그들이 최종적으로 도착하여 돌아갈 곳은 결국 일상인 것이다. 작가는 바로 이러한 의미를 나타내고자 미친 여자를 나머지 인물들과 의도적으로 대비시켜 놓았다고 볼 수 있다.

 

3. 이 소설의 마지막 부분은 드디어 완행 열차가 도착하여 사람들이 열차를 타고 떠나는 장면이다. 그런데 재 너머 오씨 큰아들은 열차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난간에 위태롭게 기대어 서 있고, 미친 여자는 기차를 타지 않고 대합실에 남아 있다. 이러한 마지막 장면을 통해 예상할 수 있는 결론은 무엇인지 기차역의 의미와 연관지어 말해 보자.

⇒ 기차역은 어디론가 가기 위해 잠시 머물러 있는 곳이다. 사람들은 기차를 타고 자신들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대학에서 제적당한 대학생은 돌아갈 곳이 없다. 대학에서 쫓겨나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고행에도 있을 수가 없어서 다시 서울행 기차를 탄다. 그러나 서울도 자신이 돌아갈 곳이 아니기에 열차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난간에 위태롭게 기대어 서 있는 것이다. 돌아갈 곳이 없는 청년은 어쩌면 기차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하거나 뭔가 안 좋은 쪽으로 결론이 날 것 같다. 미친 여자 또한 돌아갈 곳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그녀는 대합실에 남아 있는 것인데, 기차를 타고 자신들의 일상적인 삶으로 떠난 사람들과 대비된다.

 

◆ 교과서 학습 활동

1. 소설 '사평역'의 서두는 시 '사평역에서'와 같이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라는 구절로 시작된다. 그러나 이어지는 대목에서는 여러 가지 다른 특징들이 나타난다. 이 소설에서 대합실 안팎의 모습은 시 '사평역'과 비교하여 어떻게 다르게 묘사되어 있는지 구체적인 인물이나 사건 혹은 소재로 예로 들어 말해 보자.

→ 시에서는 구체적으로 묘사되지 않은 역 대합실 안팎의 풍경을 소설에서는 상세히 묘사하고 있다. 그것은 주로 역장의 눈으로 관찰된 것인데, 대합실 밖은 눈 내리는 풍경 속에서 기차 레일이 뻗어나간 산모퉁이까지 묘사하고 있다. 또한 대합실 안도 그 크기와 시설물, 실내 풍경 하나하나를 마치 눈으로 본 것처럼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2. 이 소설의 배경 제시 방식을 참조하여 다음 창작 활동을 해 보자.

→ 시장 한켠에 자리잡은 김밤집에 푸짐하게 생긴 아줌마 한 분이 김밥을 말고 계신다. 우리 동네에서 가장 싸고 맛있는 김밥을 말고 계신 이 아줌마는 가판대 앞에 서서 하루 종일 김밥을 만다. / 짧게 퍼머한 머리는 서로 엉켜 있어 머릿수건을 쓰지 않아도 절대 김밥 안으로 머리카락이 떨어지는 일이 없다. 겨울에도 소매를 있는 대로 걷어 붙이고 김밥을 말고 계신 아줌마의 앞치마 주머니는 아줌마의 손때묻은 금고이다. 아줌마의 굵은 팔뚝에는 김밥을 말며 살아온 그간의 고단한 세월이 녹아 있다. / 아줌마는 손님이 보는 앞에서 직접 김밥을 말아 주시는데 아줌마가 김밥을 마는 모습을 보면 벌써부터 입 안에 군침이 돈다. 우선 김을 펴고 그 위에 밥을 깐다. 그리고 김밥 속을 넣는데 아줌마의 손이 여간 큰 게 아니다. 시금치도 뭉턱, 계란 부침도 뭉턱, 당근도 뭉턱 넣어 김 위의 재료들이 산처럼 쌓인다. 아줌마는 굵은 팔뚝으로 힘을 주어서 자기 팔뚝만큼 굵게 김밥을 만든다. / 김밥을 만들면서 아줌마는 쉴 새 없이 입을 놀린다. 어제는 어느 교회에서 몇 백 줄의 김밥을 만들어 주었다는 둥, 김밥 속에 넣을 시금치 가격이 너무 올라 본전도 못 건진다는 중(그래도 시금치는 뭉턱 잡아 넣어 준다.), 김밥에 들어갈 밥은 조금 되게 지어야 한다는 둥, 하루 종일 김밥을 만들다 보니 꿈도 김밥마는 꿈을 꾼단다. / 김밥을 마는 아줌마는 열심히 일해 힘줄이 불끈불끈 솟아오른 팔을 내밀어 김밥값을 받는다. 김밥값을 낼 때면 괜히 송구해진다. 내는 돈보다 훨씬 푸짐하게 얻어먹은 미안함 때문일 것이다. 돈을 받기 전에 아줌마는 앞치마에 손을 쓱쓱 문지른다. 그러다가 다른 손님이 오면 돈 받은 손으로 다시 김밥을 만다. 아줌마의 김밥에는 돈 냄새, 사람 냄새, 그리고 아줌마의 푸짐한 사랑까지 덤으로 들어 있는 셈이다.

 

3. 이 소설에 쓰인 소재인 '눈'과 '난로'를 중심으로 다음 활동을 해 보자.

(1) 눈 내리는 장면은 여러 가지로 묘사되고 있다. 그 구절들을 찾아 적어 보고, 그러한 장면들은 이 소설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생각해 보자.

→ "건널목 옆 외눈박이 수은등이 껑충하게 서서 홀로 눈을 맞으며 희뿌연 얼굴로 땅바닥을 내려다보고 있다. 송이눈이다. 갓난아이의 주먹만한 눈송이들은 어둠 저편에 까맣게 숨어 있다가 느닷없이 수은등의 불빛 속에 뛰어들어 오면서 뚱그렇게 놀란 표정을 채 지우지 못한 채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치고 있다."

대합실 밖의 눈 내리는 풍경에 대한 묘사는 그것을 바라보는 대합실 안의 사람들에게 안과 밖에 대한 공간적 거리감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그것은 동시에 어둠과 빛의 대조를 선명히 해 주면서 공간의 깊이를 드러내준다. 또한 눈에 대한 묘사는  시간의 흐름을 보여 주기도 한다. 눈이 쌓여가는 것은 동시에 시간의 경과를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2) 막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난로'는 어떠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시 '사평역에서'의 경우와 비교할 때 서로 어떻게 다르게 묘사되고 있는지 말해 보자.

→ 막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난로'는 피난처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묘사되는 난로는 양철통 두 개를 맞붙여 놓은 형편없는 것으로, 충분한 피난처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이들에게 난로는 지난 세월의 여러 기억들을 더듬게 하는 회상의 매개물이기도 하다. 그들은 지난날을 회상하면서 자신의 삶을 반추한다. 작자는 여러 인물들을 난로 주위로 모여들게 함으로써 이들의 서로 다른 인생 역정을 비교해 보도록 하고 있다. 소설의 경우와 달리 시에서는 난로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가 없고, 서로 다른 인물들의 삶을 소통시키는 장치가 없다.

 

4. 이 소설의 서술자가 대상을 묘사하는 방식은 감각적이면서도 주관적이다. 열차가 달려오는 지하철 선로에 어떤 노인이 떨어졌을 때, 거기에 있는 여러 사람들의 감정과 태도를 통해 그 사건과 상황을 보여 줄 수  있도록 주관적으로 묘사해 보자.

→ 선로에 노인이 떨어졌다. 자기가 열차에 치인 것도 아닌데 여학생 하나가 떠나가라 비명을 지르며 내 가슴팍을 밀치고 달아난다. 사람들은 무슨 구경거리나  생긴 듯이 노인이 떨어진 곳에 모여 있다. 노인은 자살을 한 것일까, 발을 잘못 디뎌 떨어진 것일까. 저 노인과 나는 어떤 인연이기에 내가 저 노인의 죽음의 현장에 서 있는 것일까. 그나저나 회사에 늦겠는데 큰일이다. 전화를 해서 회사에 상황을 알려야겠다. 빨리 지하철이 정상적으로 운행되어야 할 텐데 ……. 왜 하필 붐비는 출근 시간에 이런 일이 일어나 이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건지 짜증스럽지만, 어찌보면 한 사람의 죽음이 다른 사람에게는 일상의 짜증스러운 일 정도로밖에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슬프기도 하다.

 

5. 이 소설에서 전개된 사건을 중심으로 다음 활동을 해 보자.

(1) 사건들을 시간의 순서대로 제시해 보자.

→ ① 중년 사내는 난리 후 사상범으로 잡혔다. ② 대학생 청년은 유치장을 나왔으며 퇴학을 당했다. ③ 농부는 병이 나서 읍내 병원에 가기 위해 역사로 왔다. ④ 막차는 오지 않고 송이눈만 내리고 있다. ⑤ 톱밥 난로를 지피며 막차를 기다리고 있다. ⑥ 특급열차가 지나간다. ⑦ 두 시간 연착한 막차가 도착하고 사람들은 피곤한 몸으로 열차에 올라탄다.

 

(2) 작자가 이 사건들을 어떠한 방식으로 배열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그렇게 배열한 의도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 작자가 사건을 배열하는 방식은 시간 순서에 따르지 않는다. 그는 막차가 오기 전까지의 몇 시간 동안 일어난 사건들을 순서대로 배치하지만, 회상 속 사건들은 그러한 순서를 무시하고 진행된다. 인물의 추억 속에서 과거의 시간들은 인과론적인 성격을 잃어 버리는 것이다. 즉 작자는 등장인물에게 깊이 각인된 사건들을 불러 옴으로써 막차를 기다리는 시간 속에서 그 의미를 되새겨 보도록 한 것이다.

 

6. 이 소설에서 인물들은 모두 자신들의 생각 속에 잠겨 있어서 행동이 극도로 억제되어 있다. 모둠을 지어 이 인물들의 성격을 발전시켜 갈등을 일으킬 수 있는 장면들을 만들어 보자.

→ <예시> 늙은 역장은 식어가는 톱밥난로에 톱밥을 다시 붓는다. 그는 마치 소중한 것을 집어넣듯이 난로 속에 그것을 털어넣는다. 식어 버린 열기 때문에 난로 주위에 웅크려 앉은 사람들이 더욱 몸을 움츠리고 난로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가려고 한다. 그때 조금 떨어진 곳의 미친 여자 하나가 추위를 못 견딘 듯  걸레자락 같은 더러운 옷을 흔들면서 노인이 앉은 의자 옆으로 끼어든다. 쿨룩거리면서 의자에 간신히 기대 앉은 노인이 비칠 쓰러지려고 한다. 노인의 아들은 우람한 팔뚝으로 노인을 부축하면서 그 여인을 냅다 밀쳐 버린다. 여인은 나둥그러지면서 비명을 지르고, 난로 주위의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비명에 놀라 모두들 추위를 잊고 그 여자를 바라본다. 역장이 사무실 문을 열고 뛰쳐나온다. 노인은 쿨룩거리며 기침을 심하게 하면서도 아들을 꾸짖는 듯 뭐라고 주의를 준다. 그러나 아들은 참고 있던 짜증이 폭발했는지 여인을 향해 욕설을 퍼붓는다. 그때까지 잠자코 있던 중년의 사내가 자리를 벌떡 차고 일어나며 노인의 훈계를 이어받아 아들에게 뭐라고 조용히, 그러나 엄중하게 타이른다. 아들은 참고 있던 성질이 점점 솟구쳐 오르고, 중년의 남자에게 반말로 맞받아친다. 조용하던 대합실 안이 갑자기 시끄러워진다.

● 더 읽을거리

서사적 상상력

서사적 상상력은 시적 상상력처럼 즉각적인 감각에 호소하기보다는 이야기를 하는 능력,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호기심에 호소한다. 또 시적 상상력이 시간이 멈추어 있는 공간(무시간적 공간)에서 작동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서사적 상상력에서는 시간의 경과가 필수적인 요건이다. 시간이 흐르고, 생활이 놓이고, 거기서 인물들의 갈등이 발생하는 식의 진행 과정이 서사의 중심축을 이룬다. 따라서 유사한 다른 것에 빗대어 표현하는 시적 상상력의 은유적 표현은 서사의 진행에서는 핵심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며, 서사적 상상력에서는 한 대상에서 다른 것들로 끊임없이 이동해 가는 방식, 즉 환유적 표현 방식이 보다 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소시민의 삶에 대한 구체적 형상화

이 소설은 눈 내리는 겨울 밤 가상의 시골 역 대합실에서 막차를 기다리는 아홉 사람들의 쓸쓸한 내면을 그리고 있다. 소설 <사평역>은 시 <사평역에서>와 동일한 상황과 분위기를 갖고 있지만, 등장 인물들의 삶을 훨씬 구체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작가는 사평역 대합실에 모인 등장 인물 하나하나에게 번갈아 초점을 맞추며 그들의 인생을 조명한다.

 

내면에 대한 이해와 위로

인물들이 둘러싸고 앉은 '난로'는 평온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만들어 냄과 동시에 각자의 과거를 회상하게 하는 매개체이다. 난로는 삶에 지친 이들을 따뜻한 열기로 녹여 주고 감싸 주는 것이다. 또한 이들이 기다리는 기차는 희망을 상징한다. 삶의 고통이 쉽게 끝나지 않듯이 기차 또한 좀처럼 도착하지 않는다. 그러나 기차가 연착하는 시간 동안 그들은 자신들의 삶을 회고하고 성찰하게 된다. 그들의 삶을 돌아보는 순간, 서로 다른 삶을 살아왔던 이들이 은연중에 서로를 이해하고 하나의 일체감을 갖게 되는데, 이것이야말로 이 소설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는 힘이 된다. 결국 이들은 각자의 삶의 자리로 열차를 타고 되돌아간다. 그런 그들에게 '사평역'에서의 위안과 평화가 또 한번 삶을 지속하게 하는 힘이 되는 것이다.

 

'사평역'의 서정성

임철우 소설의 서정성은 <사평역>이나 <달빛 밟기>, <그 섬에 가고 싶다>에서와 같이 그 자체로 서정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는 경우는 물론이며, 분단 문제를 다루었던 수작 <아버지의 땅>과 같은 소설에서도 빛을 발한다. 그의 서정성은 일차적으로 간결하고 서정적인 문체라든지, 눈 오는 겨울 톱밥 난로가 타고 있는 시골의 기차역이나 달 밝은 밤의 산길, 낙일도 사람들의 정감 넘치는 일상 세계와 같은 배경을 통해 드러나지만, 보다 본질적인 요소는 정감의 깊이이며 그를 통해 획득된 인간에 대한 시선이 따뜻함이다.

<사평역>의 경우, 『아버지의 땅』에 수록된 다른 작품들에 비해, 어둡지도 무섭지도 않은 세계, 슬픔과 비애가 있으되 우울과 절망으로 가라앉지는 않는 세계를 다룬다. 눈 내리는 겨울 밤, 톱밥 난로가 타고 있는 사평역의 대합실에 마지막 완행 열차를 기다리며 모여 있는 아홉 명의 사람들이 있다. 기침을 하는 농부와 그의 아들, 교도소에서 갓 출소한 중년 사내, 시위 때문에 제적당한 대학생, 고향에 다니러 온 술집 여자, 행상군 아낙네들, 돈을 훔쳐 달아난 종업원을 찾아 서울에서 내려온 중년의 식당 주인 등이다. 이들은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난로 곁에서 함께 시간을 보낸다. 저마다 가슴에 상처와 회한을 지닌 채, 고즈넉하게 타오르는 톱밥 난로의 불빛을 바라보고 있다.

이러한 풍경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시적이다. 그러나 이 소설 전체를 감싸고 있는 평화롭고 서정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데 근본적인 요소는 인물들 각각이 지니고 있는, 세계에 대한 관대하고 따뜻한 시선이다. 작자는 번갈아가며, 각각의 인물들이 지니고 있는 사연의 토막들을 들려준다. 더러는 갈등과 번민과 회한으로 얼룩져 있기도 하지만, 그 바탕에는 인간에 대한 본원적인 신뢰나 따뜻한 시선이 놓여 있다. 그런 따뜻함이야말로 <사평역>에서 탁월하게 형상화되고 있는, 또한 임철우의 소설이 보여주는 서정성의 원천이라는 것이다.

(출처:서영채, '임철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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