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개(1925)

-박영희-  

◆ 소설 읽기  

● 줄거리

정호는 인색하기로 유명한 지주이다. 석달 전에 강도를 당한 적이 있으며 제시한 돈을 주지 않아서 첩이 자기 집으로 가 버렸다. 그는 논을 사고 다섯 번째 첩을 데려오기 위해 삼만원을 찾아다가 벽장의 금고에 넣어둔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거금 60원을 들여서 개를 산다.

밤이 깊어가면서 무거운 침묵이 흐르고 있을 때 정호의 집 넓은 사랑에서 사냥개가 큰 소리로 짖는다. 덩그라니 빈 이간 방에서 혼자 자는 지주 영감 정호는 소스라치게 놀라서 잠자리에서 일어난다. 상노조차 제 집에 가고 없는 넓은 사랑에서 한밤 중에 개가 짖자 그는 두렵고 이상한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도 제가 할 일을 충실히 한다는 생각이 들자 개를 사기를 잘했다고 생각한다.

갑자기 개가 짖기를 멈추고 주위에 온통 정적만이 흐른다. 개가 짖지를 않자 그는 두려움에 떨면서 기괴한 연상을 한다. 별안간 키가 크고 남루한 옷을 입은 사내가 방안으로 들어서면서 붉은 피가 묻은 칼을 들이대면서 3000원을 요구한다. 그는 무슨 꿈이나 꾼 것처럼 환상에서 깬다.

그는 은행에서 찾아온 돈이 있는가를 확인하기 위해 벽장의 자물쇠를 연다. 그리고 첩을 데려오기 위해 삼백 석과 삼천 원을 주어야 할 일을 생각하고 어찌할 바를 모른다. 그는 그녀가 그 재물을 그대로 부지할 줄 아느냐고 하던 말을 떠올린다. 그는 그녀가 머리를 풀고 붉은 피를 흘리면서 칼을 들고 나타날 것만 같은 환상에 빠진다. 이때 개가 뛰어 내려가는 소리를 듣는다. 그는 여러 가지로 두려운 생각이 꼬리를 물고 연상된다. 그는 인색하기로 유명한 자기에게 사람들이 총을 들고 위협하는 환상을 한다. 그러나 사냥개가 자신의 재산을 지켜줄 것을 믿는다.

별안간 무엇이 마루 위로 올라오는 소리에 그는 더욱 가슴을 졸이면서 안절부절한다. 오늘밤에 이 돈을 가지고 이 방에서 잘 수가 없다고 생각한 그는 돈을 큰마누라에게 맡기고 여러 해만에 함께 하루밤을 지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가 금고를 잘 챙겨서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다. 사냥개는 주인을 알아보지 못하고 금고를 보면서 계속 짖어댄다. 그는 손짓으로 잘 자라고 한다. 그러나 사냥개는 계속 짖어대고 달려들기까지 한다. 그는 덤벼드는 개를 발로 찬다. 개는 정호의 목을 물어 뜯는다. 그의 목에서 피가 흘러나와 땅속으로 스며든다.

인색한 주인을 만나 여러 날 고기를 먹지 못한 개는 피를 혀로 핥다가 미쳐서 종적을 감춘다. 이튿날 늦은 아침에 정호의 시체가 발견되나 개의 자취는 볼 수가 없다. 그리고 마당 한편의 피로 물든 붉은 얼음 위에 삼만 원이 든 검은 금고가 놓여 있다.

● 인물의 성격

◆ 정호 → 모든 가치를 돈에 둔 지주로 축첩을 하고 재산을 지키는 일에 전념하는 인물이다. 모든 사람을 불신하고 자신만 믿으며, 자신의 재산을 지켜 줄 사냥개를 사오나  그 개에게 죽음을 당한다. 성격의 변화가 없는 정적 인물

◆ 사냥개 → 집지키는 일에 충실하다가 주인을 물어죽이는 개이다.

● 구성 단계

◆ 발단 : 깊어 가는 밤, 큰 소리로 짖어 대는 사냥개 소리에 지주 정호는 놀라 일어난다

◆ 전개 : 괴한이 침입하는 환상에 시달리던 정호는 금고 속의 삼만 원을 확인하여 본다.

◆ 위기 : 다섯 째 첩에게 주어야 할 삼천 원과 기부금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총을 들고 위협하는 환상에 시달린다.

◆ 절정 : 큰마누라에게 맡기려고 금고를 싸들고 나선 정호를 개가 몰라보고 물어뜯어 죽인다.

◆ 결말 : 이튿날 아침 정호의 시체와 금고가 발견되지만 개는 자취가 없다.

● 이해와 감상

<산양개>는 초기 계급주의에 입각하여 창작된 소설들이 그러하듯이 동물을 등장시켜 당대의 구조적 모순과 그에 대한 저항정신을 구현하고 있다. 이는 일제의 검열을 통과하기 위한 불가피한 방법임이 분명하다. 또한 이 작품은 대부분의 프로문학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살인에 의해 사건을 마무리하고 있다.

작품의 플롯(구성)이 지나치게 도식적이고 개연성마저 부족하다. 금고를 들고 나간 주인을 도둑으로 알고 덤비는 사냥개의 일은, 사온지 얼마 안되어 그렇다고 쳐도 주인을 물어죽인 개가 어디론가 사라지는 일을 두고 어떻게 계급 투쟁 운운할 수 있을 것인지. 만약 그것이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고 하려면 금고를 가져가거나 주인에 대한 원망 때문에 주인을 물어죽인 것으로 플롯을 짜야 할 것이다.

만약 사냥개가 상징성을 지닌 인물이라면 분명 민중(박해받는 프롤레타리아 계층)을 의미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개는 주인으로부터 심한 박해와 부당한 대우를 당하는 과정이 설정되고 그 과정에서 주인에 대한 분노와 복수심이 불타 올라 주인을 물어 죽여야만 할 것이다.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그러한 흔적을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그보다는 사온 지 얼마 안되어 주인을 도둑으로 알고 물어 죽인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고 봄이 좋을 듯하다. 이렇게 본다면 이 개는 정적 속성을 지닌 개(민중)이다.

일찍이 팔봉 김기진은 회월 박영희의 작품을 들어 '서까래도 기둥도 없이 붉은 칠만 해놓은 작품'이라고 신랄히 비판을 가한 바 있다. 작가는 계급사상과 계급적 실천이라는 문제에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소설이 지녀야 할 최소한의 예술성과 형식마저 무시한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프로문학이라는 커다란 서까래의 한 부분이 될 작품이라는 대답을 했다고 한다.

1925년 8월에 결성된 카프(KAPF)는 그 치열했던 의욕을 문학적으로 성숙시키지 못하고 내부 분열과 일제의 탄압으로 시달리다가 1935년에 해산되고 만다. 카프의 등장과 좌절은 당시 우리 문학의 돌파구와 한계를 그대로 보여 주는 것으로서 조명희의 '낙동강'에서 성취된 진지한 사회주의적 전망과 김팔봉(본명 김기진), 임화(본명 임인식)의 평론에 서 추구된 과학성의 성과 등, 부분적인 성과를 남기면서 일정한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신경향파'라는 말을 창안한 박영희 자신은 정작 카프의 문존 이념에도 충실하지 못한 채, '다만 얻은 것은 이데올로기이며 잃은 것은 예술'이라는 전향서를 쓰고 (1934년 1월 4일 '동아 일보') 자신의 실패를 인정한다. 일제 말기에 그가 보여 준 친일 행각은 민족적 신념조차 부족한 기회주의적 지식인이 걸어가는 안타까운 훼절이 아닐 수 없다.

● 핵심사항 정리

◆ 갈래 : 단편소설, 신경향파 소설, 계급주의 문학

◆ 배경

* 공간적 ― 부와 축첩에 열을 올린 어느 시골 타락한 지주의 집

* 시간적 ― 일제시대

* 사상적 ― 사회주의 사상과 노동자 계급의 해방사상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과 작가 관찰자 시점이 혼용됨.

◆ 주제 지주계급의 타락하고 부도덕한 삶과 무산계급의 해방

● 더 읽을거리

신경향파 문학(프로문학, 계급문학)에 대해서

계급 문학은 보통 '프로 문학' 또는 '경향 문학'으로 불리지만, 활동 초기에는 '신흥 문학' 또는 '신경향파 문학'이라고도 불렸다. 이 중 특히 '신경향파 문학'이라는 용어는 박영희에 의해 명명된 것으로 보통 KAPF(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 조직 이전의 자연발생적 계급주의적 색채의 문학을 의미한다. 계급 문학은 1922년 송영(宋影), 이적효(李赤曉), 박세영(朴世永) 등의 염군사(焰群社)라는 최초의 사회주의 예술 단체의 조직으로 구체화된다. 그러나 이 단체에서 발간한 [염군]이라는 잡지는 발간 금지를 당하여 그 자세한 작품 활동은 알 수 없다. 1924년에는 PASKYULA라는 문학 써클이 조직된다. 이 단체는 박영희, 안석영(安夕影), 김기진, 이익상(李益相) 등의 구성원이 자신들의 이름의 영문자를 모아 이름을 붙인 친목적인 문학 단체로서, 한두 번의 문학 강연회 외에는 뚜렷한 활동은 보이지 않는다.

이 두 단체가 1925년 8월 하나로 통합하여 조직한 단체가 바로 '카프 KAPF'이다. 그러나 이 단체도 창립 당시에는 뚜렷한 강령이나 활동 방침이 정해지지 않은 이름만의 써클적 성격의 모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1927년 박영희에 의해 분명한 목적 의식의 활동 방침이 주창되고 다수의 구성원이 이에 동조하면서 카프는 1935년 해산될 때까지 한국 문단 내의 최대 구심점으로 자리잡게 된다. 1920년대 중반부터 1930년대 중반의 약 10년 동안은 이러한 카프를 중심으로 한 계급 문학 시대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만큼, 이들이 차지하는 문단의 비중은 매우 컸다.

1920년대 이후 각종 사회주의 단체들이 조직되면서 지식인들의 현실 비판 의식이 눈뜨게 되고 날로 가혹해져 가는 식민지 지배에 대한 저항 의지가 싹트게 되면서, 이러한 현실에 적극적으로 맞서고자 하는 저항 문학 또는 현실주의(realism) 문학 운동이 활발히 전개된다. 이러한 문학 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하였던 조직이 바로 카프로서 이들에 의한 계급 문학은 곧 일제에 대항하는 저항 문학의 성격을 띠게 되는 것이다. 이들의 문학은 1934년의 박영희의 전향 선언의 한 문구 "얻은 것은 이데올로기요, 상실한 것은 예술 자신이었다."에서 보듯 흔히 예술성의 포기로 비판받고 있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막무가내로 문학 작품에서 선전·선동만을 주장한 것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사상성을 근거로 한 예술적 감동이 이들 문학의 목표였다. 이들의 문학 활동은 비평과 소설 창작에서 두드러지지만 시에 있어서도 많은 훌륭한 작품을 남겼다. 비록 현실적 제약으로 많은 작품들이 복자(伏字)처리를 당하여 그 전모를 알 수는 없지만 이 단원에 소개되고 있는 작품만으로도 당시 치열하게 살아갔던 우리 선조들의 저항 문학 정신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현실 폭로와 저항의 의지는 일부 민족주의 시인들에 의하여서도 활발히 전개된다. 그 대표적 시인이 이육사와 윤동주로 이들은 작품 활동과 독립운동을 병행하다가 불행히도 해방을 보지 못하고 옥사하고 만다. 특히, 윤동주는 그의 모든 작품들이 사후에 유고집으로만 소개되는 비극적인 삶을 살다간 시인이지만, 그만큼 이들의 시에는 조국 광복에 대한 열망이 뜨거운 민족애로 넘쳐나는 것이다. 이 외에도 전문적인 시인이기보다는 소설 창작과 연극·영화 운동을 통하여 민족 운동에 힘을 쏟았던 심훈의 유고시도 우리에게 진한 감동을 전해 준다.

이 시기의 모든 시들은 식민지 현실의 가혹한 상처를 보듬고 살아간 비극적 삶의 정화(精華)들이다. 특히, 그 계급주의적 사상성으로 말미암아, 또는 해방 이후의 월북의 행적 때문에 온전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우리의 문학사에서 슬그머니 사라져 버리고 만 일군(一群)의 시인들의 작품 중에는, 당시의 현실을 온몸으로 부딪치며 헤쳐 나갔던 치열한 삶의 행적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이제는 우리 모두가 이들 작품들을 너그럽게 읽으면서 우리의 문학 유산을 더욱 풍요하게 만들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그러나 이론적으로는 상당히 소리를 높였으나실제 작품에 있어서는 이를 문학적으로 승화시키지 못한 한계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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